
이재철씨의 검찰 수사기록과 로비 리스트. 서울 서초동에 있는 서울중앙지검 청사.
기자가 신성해운 국세청 로비사건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올해 1월 초였다. 당시 기자는 고발인 이씨와 고소인 서씨가 검찰에 제출한 고발장을 입수한 뒤 본격적인 취재에 나섰다. 수차례에 걸친 이씨·서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는 한편 ‘로비 리스트’ 등 각종 자료도 확보했다.
고소·고발인이 거론한 신성해운의 로비대상 기관에는 청와대, 국세청, 검찰, 경찰 등이 망라돼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건은 점점 축소됐다. 애초 고발인의 주장에 담겼던 검찰, 국세청 수뇌부에 대한 로비 의혹은 조사대상에서 배제되면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국세청, 경찰 등 하위직 공무원들과 2~3명의 전직 고위공무원만이 조사를 받았다.
“증거 없어 내사 종결”
결론부터 말하면, 지난해 말부터 시작해 6개월 넘게 수사가 진행된 이 사건은 결국 고발인 구속이라는 석연찮은 결과로 막을 내렸다. 로비를 한 사람은 있는데 로비를 받은 사람은 확인되지 않은 사건. 다음은 검찰이 정 전 비서관을 불구속 기소한 직후인 5월29일 발표한 수사 결과 내용 중 일부다.
“전·현직 국세청 고위간부들의 경우 공여자와 수수자 모두 금품수수 사실을 부인하고 있으며, 의혹에 부합하는 이재철의 진술은 ‘신성해운 K전무로부터 들었다’는 식의 전문증거(傳聞證據)에 불과해 증거로 할 수 없다. 그 외에 달리 금품수수 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를 전혀 발견할 수 없어 모두 내사 종결했다. …(고위 간부를 제외한 나머지 국세청 직원들의 경우에도) 금품수수 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를 전혀 발견할 수 없어 내사 종결했다.”
사건 초기 언론에도 공개된 바 있는 ‘로비 리스트’는 이씨가 서씨와 협의해 만든 것이었다. 로비 리스트에는 총 10명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국세청이 4명으로 가장 많았고 정 전 비서관 가족 3명, 경찰 1명, 검찰 고위간부 1명, 국무총리실 관계자 1명이었다. 로비 리스트 작성 경위에 대해 서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검찰(조사부)에서 로비 리스트를 만들어 제출할 것을 요구해 이씨와 협의해 리스트를 만들었다. 리스트에는 정 전 비서관 가족, 국세청, 경찰, 검찰 등 권력기관에 대해 신성해운이 로비를 한 내용이 모두 포함됐다. 로비 대상자는 더 많았지만, 이씨와 협의해 핵심 인사들만 추리기로 했다. 3~4년 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이씨는 당시 상황을 비교적 정확하게 기억해냈다.”
‘로비 리스트’에 등장하는 검찰 고위인사는 2004년 당시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이하 ○차장)다. 로비 리스트에 따르면, 2004년 당시 신성해운 세무조사로 불거진 검찰 조사 당시 책임자였던 ○차장은 서울 서초구의 한 술집에서 신성해운 K상무로부터 현금 2억원을 받은 것으로 돼 있다. “당시 사건무마 청탁을 부탁하려고 변호사와 함께 술집에서 2억원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씨와 서씨는 ○차장의 금품수수 사유에 대해 “(세무조사 이후 신성해운이 서씨를 공갈·협박죄로 고소한 것과 관련) 서씨 구속과 (신성해운) 박○○ 사장 불구속 기소 후 집행유예 선처 부탁, K상무 본인의 선처 부탁”이라고 ‘로비 리스트’에 적었다. 서씨는 “그밖에도 2~3명의 검찰 직원에 대한 로비가 있었고 이 부분을 검찰 수사에서 밝힌 바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검찰 로비 의혹이 제기됐음에도 이씨와 서씨 두 사람에 대한 조사에서 서울중앙지검 ○차장을 포함한 검찰 측 로비 대상자들의 이름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법원에 제출된 두 사람의 진술조서 어디에도 ‘검찰에 대한 신성해운의 로비’를 짐작케 하는 대목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