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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대학생판 ‘쩐의 전쟁’

대출금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는 기본, 대부업체 이용하다 파산신청까지

  • 문수아 인턴기자(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rplmsa@hanmail.net

2008 대학생판 ‘쩐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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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대학생판 ‘쩐의 전쟁’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오른쪽부터 네 번째)가 7월 31일 신촌 민들레영토에서 대학생들과 등록금 문제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대출금으로 겨우 학교는 다녔지만 생활은 엉망이 되었다. 학자금과 별도로 지원되는 생활비 100만원으로는 자취생활을 계속하기 어려웠기 때문. 겨울에는 추워서 지내기도 어려운 자취방 월세로 20만원을 내고, 월 평균 7만원의 각종 공과금, 휴대전화 요금 등을 내고 나면 생활비 100만원은 금세 바닥을 보였다.

“학기 중에도 당연히 알바는 해야 해요. 지방대라서 과외로 돈 벌기는 어렵고 주로 편의점, 고깃집에서 일했어요. 시급 4500원을 준다는 고깃집에서는 12시간 이상 일하기도 했어요.”

일주일에 3일 아르바이트를 해서 버는 돈은 월 50만원.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니 장학금은 생각도 못한다. 예전에는 성적우수 장학금도 꽤 받았지만 지금은 중상위권을 유지하기도 벅차다.

이번 학기엔 대출마저 받을 수 없게 돼 버렸다. 몇 차례 이자 납부 연체를 한 게 문제였다. 그래서 남은 선택은 또다시 휴학하는 것뿐이다.

“겸사겸사 휴학을 하려고 했어요. 아르바이트에 공부에, 집 같지도 않은 곳에서 살다 보니 몸이 많이 축났거든요.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어요. 집에서 지내면서 생활비도 아끼고 아르바이트해서 돈도 모으려고 해요.”



그는 현재 전주에서 식당을 하는 어머니를 돕고 있다.

제2금융권에 손 벌렸다가 낭패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는 조현아(가명·여·29)씨는 제2 금융권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가 큰 곤욕을 치른 경우다. 그는 학부 3학년부터 박사과정까지 총 5차례 대출 서비스를 이용했다. 세 차례는 정부 학자금 대출을 이용했지만 이자를 연체하는 바람에 더는 대출을 받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모 저축은행에서 300만원씩 두 차례 대출을 받았다.

이자를 갚아 나가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는 게 그의 하소연이다. 매달 이자만 10만원 이상 내야 하는데, 공대 대학원에 다니다 보니 과외를 할 만큼 시간 여유도 없었다. 3년간 힘겹게 낸 이자만 합쳐도 거의 원금에 가까운 액수라고 한다. 소득은 없고 낼 돈은 정해져 있으니 스트레스에 시달려 공부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하루만 입금을 늦게 해도 독촉하는 문자와 전화 때문에 심적인 부담이 너무 컸단다.

“정부 학자금 대출이 그나마 낫더군요. 지난 일이지만 급한 불 끄겠다고 제2금융권에 손내민 것을 정말 후회합니다. 시간도, 돈도 아깝고, 무엇보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어요.”

조씨처럼 연체 때문에 대출을 받지 못하는 학생이 급증하고 있다. 참여연대가 교육과학기술부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얻은 자료에 따르면, 학자금 대출 연체건수가 2008년 2월 기준 2만6800건에 달한다. 2007년 2월 1만7200명, 같은 해 8월 2만2300명이던 것에 비해 크게 늘었다. 이자나 원금을 제때 갚지 못해 연체자가 되었다가 신용거래가 불가능한 금융채무불이행자가 된 대학생도 2007년 12월 기준 3413명에 달한다. 한번 연체하면 정부 학자금 대출을 받기는 사실상 어렵다. 학자금 대출을 받지 못한 학생들은 휴학을 하고 등록금을 벌거나 제2금융권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점을 노리고 ‘정부 학자금 대출’을 가장한 고금리 대출상품으로 학생들을 유인하는 대부업체도 등장했다. R사는 ‘학자금 대출의 대표 브랜드’라고 선전한 홈페이지에 정부 학자금 대출 안내 코너를 소개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월 1.5~ 4.8%의 저금리라고 소비자를 현혹하는 이 회사의 학자금 대출상품의 실제 금리는 연 30% 이상이다.

2008 대학생판 ‘쩐의 전쟁’

지난 3월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등록금 인상 관련 대선공약을 지키라며 학생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회사가 선전하는 월 이자율 4%로 400만원을 대출할 경우 실제로는 연 이자 48%, 즉 연간 192만원의 이자가 발생하는 셈이다. 이런 회사는 등록금 고지서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수수료 없이 정부 학자금을 대출해준다는 대부업체는 R사 외에도 B사, O사 등 여럿 있다.

상환능력 고려한 외국 학자금 대출제도

우리나라의 학자금 대출제도는 재학 중인 학생에게 이자 등 상환부담을 지우는 데 비해 선진국의 경우 대학 졸업 이후 상환을 시작하도록 설계돼 있다. 무엇보다 소득연계형 등록금 후불제를 실시하는 나라가 여럿 눈에 띈다.

영국의 경우 학자금 대출자가 대학을 졸업한 뒤 연간 소득이 1만파운드(약 2000만원) 이상이 될 때부터 상환을 시작한다. 대출자의 최소한의 생계유지를 고려한 조치다. 상환기간 역시 졸업 후 대출자의 소득과 총 융자액에 따라 달라진다. 이자율은 소매물가지수에 따라 인플레이션에 연동된다. 총상환액은 대출자의 전체 소득 중 1만파운드를 제외한 소득의 9%로 대출자가 봉급을 받을 때마다 분할 상환된다.

일본의 경우 이자가 면제되는 제1종 장학금과 장기 저리가 부과되는 제2종 장학금으로 나뉜다. 2종 장학금은 소속 대학에 상관없이 월별로 3만엔, 5만엔, 8만엔, 또는 10만엔을 대출받을 수 있다. 여기에 적용되는 대출이자는 연리 최대 3%이며, 현재 연리 0.6%가 적용되고 있다. 융자금 상환은 학생이 졸업한 후부터 시작되며, 상환기간은 최장 20년이다. 무이자인 1종 장학금과 달리 대출기간이 동일하더라도 월 대출액과 적용 금리에 따라 총상환액과 월 상환액이 달라진다.

네덜란드의 성과연계보조금은 특별한 사례에 속한다. 1996년에 도입된 이 제도는 학생이 일정 학업성취기준에 도달하면 지급받은 학자금 융자금이 상환의무가 없는 보조금으로 전환된다. 재정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학생들이 정해진 기간 내에 졸업할 수 있도록 장려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우리나라는 대출 시점부터 일정 기간이 경과한 후에 갚아나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학자금 대출금리가 시중금리와 별반 다르지 않고, 졸업 후 취업률 또한 저조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용불량자나 연체자를 양산하는 꼴이다. 정부지원 예산이 줄면서 지원 대상이 축소되고, 심사가 강화되면서 대출을 받지 못하는 학생이 속출하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

이진선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는 “일본은 저렴한 고정금리에 무이자나 저리로 학자금 대출을 지원하고 있고, 영국과 호주도 소득이 생긴 뒤 차차 갚아나가도록 한다”며 “우리나라도 상환기간을 확대하고 원금을 균등 분할해서 갚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동아 200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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