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호

로마네콩티 vs 페트뤼스

부르고뉴 벨벳 여인 vs 보르도 성골 백작

  • 조정용│와인평론가 고려대 강사 cliffcho@hanmail.net│

    입력2009-01-06 15: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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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와인의 중심지인 프랑스에는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귀족 와인이 많다. 그중에서도 로마네콩티와 페트뤼스는 최고 중 최고다. 피노누아와 메를로의 참 맛이 각각 그대로 드러나는 로마네콩티와 페트뤼스는 태생적으로 다르지만 감각적으로 닮았다. 한 병에 수백만원 하는 이들 럭셔리 와인의 비밀은 무엇일까. 와인평론가 조정용씨가 신년호부터 와인 세계의 흥미로운 뒷얘기를 담은 ‘라이벌 와인’을 연재한다.
    로마네콩티 vs 페트뤼스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대표적 포도밭인 ‘라 로마네’

    점과 선을 사용한 화법으로 유명한 미술가 이우환은 세 자녀로부터 진주혼식 기념 선물로 로마네콩티(Roman′ee-Conti) 1990년산 한 병을 받았다. 자녀들은 그 와인을 사기 위해 돈을 모았다. 와인 심미주의자인 화가는 최상의 와인을 받아 들고는 그 정성에 감복한 나머지 그것을 결코 딸 수 없었다고 저서 ‘시간의 여울’에서 고백했다.

    로마네콩티는 지구상에서 가장 열망받는 와인이다. 누구에게 물어도 오직 하나의 와인만을 꼽으라면 서슴없이 로마네콩티를 말한다. 그 맛의 특징은 벨벳, 고혹, 미스터리로 요약된다. 비단결처럼 부드럽고 우아한 질감이 무척이나 매혹적이라서 도대체 이런 맛과 향의 근원이 무엇일까 하는 지적 호기심을 유발한다.

    로마네콩티는 지역이나 마을 이름을 와인 이름으로 삼는 부르고뉴의 평범한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 대신 포도밭 이름을 와인 이름으로 쓴다. 마을 최고의 와인에만 적용되는 원칙이다. 그래서 라벨에는 포도밭 이름이 표시된다. 로마네콩티, 그것은 바로 포도밭 이름이다.

    로마네콩티 vs 페트뤼스
    라 로마네 포도밭과 콩티 왕자

    로마네콩티는 어떻게 생겼을까. 원래 ‘로마네’라는 포도밭이 있었고, 그 남쪽 상단 부분을 콩티란 사람이 사들여 그 구역 이름을 로마네콩티로 바꾸었다. 콩티는 콩티 왕자(Prince de Conti·1717~1776)로,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의 장조카다. 그는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고 열 살 나이에 왕자 칭호를 얻어 이후 49년간 왕자로 지냈다. 그 선조의 고향인 콩티-쉬르-셀르(Conti-Sur-Selles)의 콩티를 따서 왕자 칭호를 붙였다. 풀어쓰면 콩티 마을 출신의 왕자인 것이다.



    루이 15세의 애첩으로 베르사유를 휘저었던 마담 퐁파두르는 콩티 왕자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절대 권력을 탐한 그녀에게 왕의 장조카는 항상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왕자는 이 포도밭을 구매할 때 퐁파두르에게는 철저하게 비밀로 했다. 사사건건 트집 잡는 그녀가 무슨 떼를 쓸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결국 그녀의 모함으로 콩티는 베르사유를 떠나게 되지만, 대신 그는 자신의 이름이 최고의 와인에 붙는 영광을 누렸다. 1760년 왕자는 당시 주변 포도밭의 11배에 해당하는 액수인 9만2400리브르를 주고 이 포도밭을 사들였다. 포도밭을 구매한 정황은 미국 음식 평론가 리처드 올네의 저서 ‘로마네콩티’에 상세히 기술돼 있다.

    이 포도밭의 피노누아 품종은 1584년에 심었는데, 콩티 왕자가 밭을 차지했을 때에도 그대로 유지됐고 이후 1945 빈티지까지 같은 포도로 양조돼 왔다. 16세기의 포도가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져왔다니 참 놀라운 일이다. 뿌리도 프랑스산, 줄기도 프랑스산으로, 즉 360년 동안 순수 프랑스 토종 피노누아로 전해 내려왔다. 그러나 왕자의 식탁에 오른 로마네콩티는 오늘날과는 좀 달랐다. 그 당시에는 피노누아 외에도 피노블랑을 같이 심어 혼합해 만들었다.

    188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기승을 부린 필록세라(포도뿌리 혹벌레) 영향으로 프랑스 포도밭 생태계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는다. 이때 포도나무 뿌리가 거의 시들어 죽었다. 작지만 생명력이 질긴 진드기에 유서 깊은 포도밭들이 맥을 추지 못했다. 필록세라에 내성이 있는 미국산 대목에 프랑스산 줄기를 접붙이는 방법이 유일한 타개책이었다. 그러나 로마네콩티는 미국산 대목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대신 포도나무 번식의 방법을 달리하거나, 이산화황을 밭에 뿌려서 상당 기간 피노누아의 순수성을 지켰다.

    그럼에도 필록세라를 이길 수 없었다. 결국 1946년 로마네콩티 양조장도 백기를 들고, 포도나무를 모조리 뽑아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1946년부터 1951년까지는 와인이 생산되지 못했다. 땅을 완전히 갈아엎고 이듬해인 1947년에 다시 포도를 심었다. 이렇게 해서 2008년 기준으로 로마네콩티의 나이는 거의 환갑이 된다.

    최초의 거라지 와인

    오늘날의 밭 면적은 왕자가 살아 있던 시대 그대로다. 1.8헥타르( 135m2 내외의 면적)의 ‘손톱만한’ 밭에서 매년 평균 약 500상자(6200병)가 나온다. 거라지 와인(창고를 뜻하는 garage에서 온 말로 소량 생산 와인을 일컬음), 컬트 와인(숭배의 뜻을 지닌 cult에서 온 말로 이 역시 소량 생산된 고급 와인을 일컬음)이란 말은 1990년대 프랑스와 미국에서 생긴 신조어이지만, 따지고 보면 로마네콩티가 이들의 원조다.

    로마네콩티의 생산량은 보르도의 샤토무통로쉴드의 5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연평균 4000상자를 병입(甁入)하는 보르도의 최고가 와인 샤토 페트뤼스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로마네콩티를 최초의 거라지 와인, 최상의 컬트 와인이라고도 한다. 생테밀리옹의 발란드로(연간 약 1000상자 생산), 라 몽도트(약 800상자 생산) 혹은 미국 나파밸리의 스크리밍 이글(약 600상자 생산)보다 적다.

    로마네콩티 vs 페트뤼스

    고급와인 ‘페트뤼스’를 생산하는 장 피에르 무엑스 사장.

    로마네콩티의 와인 제조작업은 수작업 수확, 극심한 가지치기, 여름날의 열매 솎기 등을 통한 품질 향상이 특징적이다. 2007년 6월 필자가 로마네콩티를 찾았을 때 포도밭에서 일하는 젊은 일꾼을 보았다. 그는 나무 하나 하나를 살피며 꽃망울이 터진 송이의 개수를 세고 있었다. 계절이 가면 그중 상당 부분은 열매가 익기도 전에 잘려나간다. 남은 송이에 당분이 집중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포도열매가 좋아야 와인이 좋다. 양조장에서는 되도록이면 공정에 간섭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와인이 만들어지도록 한다. 자유방임형이라고 할까. 어찌 보면 하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내버려두는 것이 가장 까다롭지만 가장 효과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로마네콩티만의 독특한 양조 방식은 있다. 이곳은 포도송이에서 포도알을 골라내지 않고 전체를 양조통에 집어넣는다. 그러면 가지에서 나오는 타닌을 확보할 수 있다. 로마네콩티는 품질이 좋지 않은 송이를 골라내기 위해 오래전부터 컨베이어 벨트를 사용했다.

    양조장에 따라서 혹은 빈티지에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즉 포도알의 타닌이 충분하다면 가지를 제거하고 알만 골라 발효시키기도 한다. 발효 후에는 통 바닥에 침전된 효모 찌꺼기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는다. 한 번 정도만 빼내고 그대로 둔다. 그러면 효모 찌꺼기에서 비롯되는 아로마와 맛의 힘을 얻을 수 있다. 맑은 와인을 얻기 위해 여과작업은 수행하지 않지만, 달걀 흰자로 정제 작업을 한다. 오크통을 제작하는 것도 남다르다. 오크 널빤지는 3년 동안 건조해 사용한다. 와인에 과도한 오크 향취가 묻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로마네콩티 vs 페트뤼스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한 포도밭. 뒤쪽에 지롱드 강이 보인다.

    로마네콩티에 쏠리는 관심은 사실 작명 방법 혹은 양조 특징에 있지 않다. 바로 가격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이 로마네콩티다. 가격이 비싼 이유는 우선 공급을 휠씬 뛰어넘는 수요에 있다. 한때 코스닥에 벤처 열풍이 불었다. 어떤 투자자들은 벤처 주식 매입보다는 공모주에 기대를 걸었다. 소규모 회사의 기업 공개에 수조원이 몰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경쟁률이 수백 대 일에 이르니 고작 몇 주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로마네콩티도 마찬가지다. 매년 수천 병을 병입할 뿐인데, 전세계 와인 중개상들이 서로 사겠다고 아우성이니 가격이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경쟁이 치열한 발행시장인 셈이다.

    병당 600만원 고가 와인

    둘째 이유는 유통시장에서조차 매물을 발견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투자 등급 와인을 구매한 애호가들은 일부는 소비하고 일부는 경매장에 내다 팔지만, 로마네콩티는 그렇지 않다. 소량이다 보니 재판매보다는 직접 음용을 목적으로 한다. 결론적으로 발행시장에서 한껏 부푼 가격은 매물 부족이란 매력을 지니고 유통시장에서 다시 천정부지로 상승한다.

    로마네콩티는 와인의 지존으로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의 소재이기도 하다. 그 작가는 우연히 접한 그 와인 한 잔으로 심미안이 생긴 것일까. 그는 누이와 함께 진지한 작품 탐구의 길로 들어섰다. 이를 통해 프랑스인조차 흥미롭게 읽을 만화를 제작했다. 와인 애호가들이 넘치는 일본에서도 역시 로마네콩티는 꿈의 와인이다.

    대부분의 와인은 빈티지에 따라 희비가 교차한다. 좋은 빈티지는 맛도 좋다. 가격이 비싸도 그 맛을 보려는 욕구로 인해 인기가 높다. 하지만 빈티지가 좋지 않으면 인기도 같이 시들해진다. 물론 가격도 내린다. 그러나 로마네콩티는 예외다. 중력의 법칙에서 벗어나 있는 물건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로마네콩티만큼은 전혀 새로운 세상에 있는 존재 같다. 이처럼 귀한 로마네콩티가 30년 정도 잘 익으면 일본에서는 ‘신주(神酒)’라고 표현하며 이 세상 최고의 와인으로 인정한다. 신주라, 얼마나 귀해 또 얼마나 대단해서 그 말을 쓴단 말인가.

    일반인이 로마네콩티를 만나는 유일한 방법은 경매장에 가는 것이다. 2006년 맨해튼에서의 일이다. 1999 빈티지 36병이 다양한 용기에 담겨서 출품됐다. 낙찰가는 21만1500달러. 병당 약 600만원이었다. 하지만 국내 상황은 사뭇 다르다. 2005년 조선호텔에서 열린 아트옥션 와인경매에 로마네콩티 1999년산 1병이 출품됐다. 350만원부터 입찰을 받았다. 주위가 좀 소란해지면서 ‘너무 비싸다’는 말이 들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이다. 로마네콩티 한 병이, 그것도 세기의 빈티지라 할 만한 게 350만원에 그쳤으니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포도밭의 순례자들

    그러나 경매에 임한 응찰자들은 이런 사실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입찰 경쟁은 시시했고, 결국 로마네콩티는 370만원을 제시한 중년의 신사 품으로 날아갔다. 와인 정보가 들쑥날쑥한 서울에서 가끔 있는 이런 해프닝은 눈 밝은 애호가들에게는 횡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지난 11월 해외뉴스에서는 2005년 로마네콩티 한 병이 2만유로의 가격표를 붙이고 유명 와인가게에 진열되어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엄청난 부를 거머쥔 중국인들이 뒤늦게 와인에 눈을 떠서 특정 와인의 가격을 터무니없이 올려놓곤 한다.

    로마네콩티 vs 페트뤼스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의 와인숍 에노데카를 찾은 고객들이 샤토 페트뤼스(1945년산)와 샤토 무통 로쉴드(1945년)를 구경하고 있다.

    2004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로마네콩티 구하기란 그리 힘든 일이 아니었다. 물론 돈만 있다면. 그러나 이젠 돈이 있다고 해도 구할 수 없다. 선견지명이 있는 애호가들로 이미 구입 예약자 명단이 꽉 찼다. 그들은 로마네콩티 한 병을 얻기 위해 다른 종류의 와인 열한 병을 부담 없이 함께 구입한다.

    포도밭의 구분이 그리 분명하지 않은 부르고뉴에서 로마네콩티 찾기는 식은 죽 먹기다. 본-로마네 마을 뒷산으로 이어지는 경사길을 조금만 걸으면 십자가를 만난다. 높이 솟아 있어 멀리서도 보인다. 그 십자가 왼편이 로마네콩티다. 비 오는 날에도 그 근처엔 항상 여행자들이 몰려 있다. 십자가 주변에 서서 포도밭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각양각색의 여행자들은 자유복장으로 길을 떠난 순례자 같다. 그들은 성지에 온 양 조용히 속삭이며 예순을 바라보는 나무와 땅을 마냥 바라보고 있다.

    프랑스 와인의 양대 산맥 부르고뉴와 보르도는 각기 다른 역사와 전통에 기반을 둔 특징적인 와인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로마네콩티가 부르고뉴를 대표한다면 페트뤼스(Chateau Petrus)는 보르도를 대표한다. 수도사들에 의해 맛의 원천이 밝혀진 이후 오늘날 와인 심미주의자들의 식탁에까지 오른 로마네콩티는 어떠한 불황에도 끄떡하지 않는 와인이다. 페트뤼스는 유서 깊은 보르도에서도 역사나 전통이 전혀 받쳐주지 않는 무명 샤토였으나,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양조장 관리인에 의해 오늘날 성대한 잔치의 주인공 와인이 되었다. 특히 1945년에 생산된 페트뤼스는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97~100점을 준 와인으로 가치 및 희소성이 더욱 높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혼사에 등장해 갈채를 받은 페트뤼스는 케네디 가문의 행사에도 자주 쓰여 대서양을 넘나들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1945년 이전까지는 무명의 양조장이었던 페트뤼스는 이제 보르도에서 최고로 빛나는 보석 같은 존재가 됐다.

    보르도의 제왕, 페트뤼스

    흥미롭게도 페트뤼스는 보르도 와인이지만 보르도답지 않다. 즉 여느 보르도 와인처럼 여러 품종을 혼합해 만드는 전통적인 양조방법을 쓰지 않고 대신 부르고뉴처럼 단일 품종으로 와인을 만든다. 페트뤼스는 보르도 양조 특성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보르도를 대표하는 역설적인 와인이다. 메를로만으로 양조했는데도 어찌 그리 와인이 힘찬지 마시는 사람마다 놀란다. 특히 빈티지가 좋은 경우의 페트뤼스는 수십년 이상을 숙성하면서 올곧은 질감 속에 감추어진 단단한 속을 드러내며 애호가들의 마음을 흔들어댄다.

    길을 나서 샤토 페트뤼스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보르도의 젖줄기 지롱드 강의 오른편에 자리잡은 마을인 포므롤에서 비교적 쉽게 눈에 띈다. 흰색 바탕의 건축물인데다,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이름을 크게 새겼기 때문이다. 강 오른편 출신이란 뜻을 지닌 무엑스(Moueix)를 성(姓)으로 쓰는 일가가 현재 페트뤼스를 경영하고 있다. 보르도에서 가장 작은 규모의 원산지인 포므롤은 바로 이 페트뤼스 때문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작은 거인’이다.

    이곳 주인인 장 피에르 무엑스는 부지런한 세일즈맨이었다. 페트뤼스를 실은 수레를 끌고 이 마을 저 마을, 더 멀리는 보르도 구석구석을 누비며 와인을 팔았다. 그는 성실함과 완벽한 품질을 추구한 덕분에 훗날 샤토의 지분을 거머쥐었다. 그가 세상을 뜨고는 페트뤼스의 생산과 유통은 두 아들이 맡았다. 전세계를 돌면서 페트뤼스의 이름을 알리고 있는 크리스티앙은 유통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크리스티앙의 아들 에두아르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로마네콩티 가족은 한국에 한 번도 오지 않았지만 페트뤼스 가족은 여러 차례 방한했다.

    페트뤼스는 영어 피터(Peter)에 해당하는데, 성경에 나오는 베드로와 같은 이름이다.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수제자로 꼽히는 베드로가 이 와인의 라벨에서 오른손으로 열쇠를 쥐고 있다. 그 열쇠는 천국의 열쇠를 상징한다. 노란 바탕에 붉은 글씨로 쓰인 페트뤼스는 그 안에 최고 와인의 비밀이 담겨 있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페트뤼스의 비밀은 기실 포도밭에 있다. 마을 대부분이 자갈이나 모래 토양인 데 반해, 페트뤼스는 진흙으로 된 단춧구멍 같은 표토층이 특징이며, 그 아래에 자갈 토양이 자리 잡고 있다. 또 그 아래에는 철분이 풍부한 토양층이 형성되어 있다. 총체적으로 배수에 능한 구조다. 철분 함유량이 높은 토양이라 색이 검어 자갈과 모래가 표면을 이룬 인근 포도밭과 구별된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와인

    페트뤼스 포도밭도 유서 깊다. 어떤 카베르네프랑의 수령은 80년이 넘는다. 1956년 포므롤을 휩쓴 냉해로 많은 포도밭에서 포도나무가 뽑혀나갔지만, 페트뤼스 포도밭에서는 추위를 이겨낸 나무들을 남겨두었다. 이것이 오늘날 깊게 뿌리박은 메를로의 맛을 잉태했다. 포도밭 면적은 10.9헥타르인데, 이는 로마네콩티의 5배에 해당한다. 부르고뉴 기준으로는 넓을지 몰라도, 보르도에서는 아담한 양조장이다.

    포도밭의 95% 면적에는 메를로가 자라고 있고, 나머지는 카베르네프랑이다. 그러나 카베르네프랑은 1960년대 이후 양조에 잘 쓰이지 않는다. 포도나무가 기력이 쇠하면 나무 대 나무로 교체하는 방식이 있고, 일정 구역의 힘 빠진 나무를 모두 한꺼번에 바꾸는 방식이 있는데, 페트뤼스에서는 후자를 택하고 있다.

    페트뤼스 양조장의 특징을 한마디로 하자면 완벽주의일 것이다. 면적당 수확량이 적어 여느 양조장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크리스티앙이 책임을 맡은 후부터 소출량 통제에 더 힘을 썼다. 튼실한 포도알을 얻기 위해 미리 송이 크기를 제한하는 방법이다. 여름에 포도가 여물기 전에 송이의 일부를 잘라내며, 가을에 익어가는 동안에도 부지런히 포도밭을 오가며 송이 크기를 살핀다. 빈티지가 좋은 경우라면 좀 다르지만, 빈티지가 좋지 않다면 소출 제한은 품질 확보의 유일한 방법이다.

    포도가 골고루 다 잘 익지 못하는 결과를 빈티지가 좋지 않다고 말한다. 빈티지가 좋지 못할 때 생산량은 줄어든다. 잘 익은 걸로만 골라야 하기 때문이다. 2002년이 그랬다. 일조량이 충분하지 못해 품질이 좀 떨어졌다. 빈티지가 좋으면 5만병 정도 생산하는데 그해에는 2만병 정도밖에는 병에 담지 못했다. 포도의 품질이 극히 나빴던 1991년에는 아예 페트뤼스를 생산하지 않았다. 포도 품질에 대한 완벽주의의 한 예다.

    페트뤼스는 단번에 확 사로잡는 입맛이 단연 일품이다. 영화 ‘머큐리’에서 주인공 브루스 윌리스가 페트뤼스 병을 들고 나발을 불며 마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역시 확실하고 강력한 입맛을 잘 표현한 것 아닐까. 단단한 타닌의 구조가 어찌 그리 강한지 모르겠다. 아주 남성적이며 힘찬 기상이 느껴진다. 하지만 향기 속에 감춰진 묘한 나무 냄새는 페트뤼스만의 개성이라 하겠다. 이런 방향은 로마네콩티에서도 풍긴다.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삼림에 들어섰을 때 나는 나무 냄새 같은 식물성 향기가 있다. 그것이 강하지는 않아 청초하고 우아한 동양란을 연상하게 만든다. 순결하고 단아한, 자연스러운 향내는 100% 순종만이 잉태할 수 있는 성질이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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