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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열 변호사의 ‘법률세상’

독점에 맞섰나 몹쓸 담합인가 9000억 배상 위기 애플 전자책

  • 김승열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KAIST 겸직교수

독점에 맞섰나 몹쓸 담합인가 9000억 배상 위기 애플 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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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에 맞섰나 몹쓸 담합인가 9000억 배상 위기 애플 전자책
최근 블룸버그 통신은 애플이 전자책 가격담합행위로 최대 9000억 원(8억4000만 달러)에 달하는 손해배상금을 물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7월, 미국의 소비자단체는 미국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뉴욕법원)이 애플의 전자책 가격담합 의혹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자 애플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애플은 2010년 태블릿PC인 아이패드를 내놓으면서 전자책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애플이 전자책 시장에 진출할 당시 이 시장은 아마존이 장악하고 있었다. 시장 점유율이 90%를 넘었다. 아마존은 전자책 판권 가격이 얼마인지에 관계없이 모든 전자책을 권당 9.99달러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장악했다.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시장점유율을 높여 독점기업의 위치에 올랐던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아마존의 시장독점은 좀처럼 깨질 기미가 없어 보였다.

전자책 시장에 새롭게 진출하면서 애플은 먼저 미국의 주요 출판사 5곳과 아이패드를 통한 전자책 판매 계약을 맺었다. “전자책 가격은 출판사가 자유롭게 정하되 판매 이익의 30%를 애플이 가져간다”는 조건이었다. 애플은 당시 출판사들에 권당 12.99~14.99 달러의 가격을 제시하면서 협력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애플이 내건 조건은 파격적인 것이었다. 서점이 갖고 있던 전자책 가격 결정권을 출판사에 돌려준 것부터가 달랐다. 당연히 출판사들은 애플의 제안에 환호했다. 애플은 가격 결정권을 출판사에 주면서 동시에 몇 가지 조건을 내걸었는데, 핵심은 출판사가 애플의 매입가보다 낮은 가격으로는 다른 곳에 전자책을 팔지 못하도록 하는 일명 ‘최혜국 대우조항’이었다. 이런 윈윈 전략 덕분에 출판사들은 거대한 독점기업인 아마존에 대응할 수 있었고, 애플 또한 신규시장에 손쉽게 진입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친 끝에 애플은 시장에 진출한 직후 10%가량의 시장점유율을 보이며 아마존에 맞섰다. 9.99달러로 묶여 있던 미국의 전자책 가격도 서서히 상승했다.

아마존과 애플의 싸움



미국 법무부가 애플을 상대로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과징금(civil penalty) 청구 소송을 제기한 건 2012년이었다. 당시 미 법무부는 애플이 출판사들과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 가격을 담합하고, 출판사가 아마존과 전자책 계약을 맺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33개 주 소비자단체는 애플의 담합행위로 전자책 가격이 올라가면서 소비자가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됐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제기하면서 소비자단체가 문제 삼은 법은 바로 1890년 제정된 미국 최초의 독점금지법인 셔먼법이다. 셔먼법은 국내외에서 정상적인 시장거래를 제한할 정도의 능력을 갖춘 생산주체들 간에 벌어지는 어떤 형태의 연합(카르텔)도 불법이라고 판단한다. 또 거래나 통상에서 어떤 형태의 독점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말 애플은 셔먼법을 어긴 것일까.

이번 애플의 전자책 담합 사건은 여러 가지 점에서 검토할 부분이 많다. 만약 이번 사건의 쟁점을 제조사(출판사) 간 담합으로 판단한다면, 이는 분명한 셔먼법 위반에 해당한다. 미국의 출판시장을 움직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출판사 5곳이 카르텔을 형성한 것이 되기 때문에 법적인 판단은 단순해진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판매사(애플) 제조사(출판사) 간 수직적 담합으로 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경우에는 비록 담합이 이뤄졌다 해도 합리성(rule of reason)을 갖는지를 따져야 한다. 그리고 합리적인 담합이었다고 판단되면 적법한 경영활동으로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미국 법원은 이번 사건을 판매사인 애플의 주도하에 벌어진 출판사들 간의 수평적 담합, 곧 셔먼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이번 소송에서 부각된 각각의 쟁점에 대한 애플과 법원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애플은 “출판사와 애플이 담합을 했다 해도 이는 수평적인 담합이 아닌 수직적인 담합이기 때문에 위법 법리보다 합리적 법리에 의해 판단돼야 한다. 또 애플의 행위는 전자책 시장의 경쟁을 촉진한 긍정적 면도 있다”고 강조했다.

독점에 맞섰나 몹쓸 담합인가 9000억 배상 위기 애플 전자책
그러나 법원은 “애플이 출판사와 직접 합의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는 수직적 담합이 아니라 수평적인 담합으로 명백한 위법”이라고 밝혔다. 또 “출판사가 가격을 인상하도록 공모할 의사가 없었고, 애플과의 계약을 이용해 전자책의 소매가격을 인상한 것은 출판사이기 때문에 애플은 이 사건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애플의 주장에 대해서도 법원은 “상호 협업에 의해 전자책 가격을 인상하려고 한 합의가 명백하게 확인된다”고 판시했다.

애플은 이외에도 “실제 가격 인상은 없었다”는 주장을 폈지만 법원은 “애플이 전자책에 대한 소비자가격 인상을 유도했다는 점이 인정된다”며 애플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애플이 담합합의에 중요한 구성원으로서 참가하고, 나아가 담합행위 전체에 명시적으로 참여했다”며 애플의 주장을 배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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