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호

“뚫고 나가는 게 우리 일 건설경기 위기도 뚫겠다”

광혁건설(주) 신현각 대표

  • 최호열 기자 │honeypapa@donga.com

    입력2014-04-22 14: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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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관령터널 등 터널, 지하철 구간, 택지개발 주역
    • “손해 보더라도 남에게 피해 주지 말자” 상생경영철학
    • 전문건설업체만 ‘보증 책임’ 떠안는 불공정 해소해야
    • ‘건설산업’ 하면 대형 종합건설업체를 떠올린다. 하지만 대형건설사로부터 공종별로 하도급을 받아 건설 현장의 최일선에서 실제 시공하는 ‘전문건설업계’야말로 우리나라 건설산업을 실질적으로 떠받치는 주역이라 하겠다. 대표적인 전문건설업체를 찾아 우리나라 전문건설 기술의 우수성을 살펴보고, 그들의 애환을 통해 건설업계의 구조적 문제점을 짚어보면서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뚫고 나가는 게 우리 일 건설경기 위기도 뚫겠다”
    십수 년 전만 해도 서울에서 강릉 가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4시간 이상 걸리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굽이굽이 대관령고개를 오를 생각에 현기증부터 났다. 지금은 2시간 반이면 뚝딱이다. 대관령터널 덕분이다. 국토의 70%가 산인 우리나라 특성상 터널은 시간적 거리를 단축해주는 중요한 사회적 인프라다. 이처럼 터널을 뚫고, 도로를 닦는 토공은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밑거름일 뿐 아니라, 국민 복지에도 크게 기여하는 건설업종이라 할 수 있다.

    연대보증제도 폐해

    광혁건설(주)은 대표적인 토공업 전문건설사다. 일반인에겐 낯설지만, 해마다 대학생 취업 선호 기업 순위에서 건설업종 최상위권에 오를 정도로 내실 있는 회사다. 정직원 200여 명, 연매출 규모 2500억 원으로, 4만3000여 개 전문건설업체 중에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중견업체다. 건설, 특히 뚫고 파는 토공이 주는 거친 이미지와 달리 광혁건설 신현각(63) 대표에게선 충청도 출신 특유의 여유가 느껴졌다.

    ▼ 토공 분야에는 어떻게 뛰어들게 되었나.

    “어려서부터 건설 장비를 좋아했다. 아는 분이 중기(중장비)업체를 운영했는데, 주먹구구로 운영하는 것을 보며 체계적으로 하면 성장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그 회사가 부도 나 직접 인수했다. 중기업체를 운영하며 건설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리는 게 즐거웠다. 그게 인연이 돼 1989년 전문건설업체를 창업하게 됐다.”



    ▼ 직접 운영해보니 어떻던가.

    “재미도 있고, 어린 시절 꿈도 이뤘지만 금전적으로는 손해를 많이 봤다.(웃음) 후회 많이 했다.”

    ▼ 무슨 말인가.

    “당시 연대보증제도란 게 있었다. 1995년부터 2000년 사이에 연대보증을 섰던 회사 4곳이 부도 나 그걸 해결하려 개인 재산을 다 처분해야 했다. 당시 80억 원이 넘는 거금이었는데, 솔직히 회사 문을 닫을까도 고민했다. 그럼 내 재산이라도 지킬 수 있으니까. 그러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고 생각하고, 가지고 있던 부동산을 처분해 해결했다. 그 부동산들이 지금은 모두 15배 이상 올랐으니, 개인적으론 큰 손해를 본 것 아닌가.(웃음)”

    ▼ 손해를 보면서도 사업을 계속하는 이유가 뭔가.

    “우리 사회에서는 건설을 저평가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건설만큼 멋있고 창조적인 일이 없다. 맨땅에 새로운 게 들어서는 게 놀랍지 않나? 사람들 삶과도 가장 밀접한 게 건설이다. 건설 공사가 없는 도시는 죽은 도시다. 그런 자부심과 재미로 일한다.”

    매출보다 내실

    ▼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건설 경기가 계속 침체돼 있다.

    “IMF 시절도 힘들었지만, 지금은 정말 힘들다. 우리가 많이 하는 일이 터널공사인데, 정말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다. 그래도 우리 회사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잘 모르지만 파고 뚫는 것은 잘한다. 이 난관도 직원들과 함께 뚫고 나갈 자신이 있다.”

    ▼ 주로 어떤 공사를 했나.

    “일반 토목공사를 주로 한다. 50여 개의 터널을 뚫었고, 지하철 구간 공사도 20여 곳을 했다. 대관령터널도 우리 작품이고, 서울지하철 2~9호선, 인천과 부산, 광주지하철에도 참여했다. 택지도 10여 곳 개발했는데, 총면적이 여의도의 몇 배에 달한다. 지금은 원주-강릉 간 고속철도 토공 작업을 한다.”

    ▼ 기억에 남은 공사가 있다면.

    “왕십리-분당선 지하철에 중랑천 아래를 지나는 구간이 있다. 모래자갈층이라 지반이 약해 공사 중에 물이 새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조금만 잘못하면 동부간선도로가 침하돼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대형건설사가 맡아도 그런 구간에선 곧잘 붕괴사고가 나곤 하는데, 우리는 보강공법을 통해 사고 없이 개통했다. 철도공사 사장이 직접 현장을 방문해 감사를 표했을 정도다.”

    ▼ 다른 전문건설사들과 차별화한 기술이 있다면.

    “최근에도 터널굴진 최신 장비인 Boomer WE3C(3038) 점보드릴(터널 및 광산용 3붐 컴퓨터 점보드릴)을 국내 최초로 도입해 부산외곽고속도로 9공구 터널 공사 현장에서 사용한다. 이처럼 선진 기술과 장비를 빠르게 도입해 공사 능력을 향상시킨다.”

    그의 남다른 노력과 과감한 투자로 광혁건설은 1997년 국제품질경영시스템(ISO 9001), 2000년 국제환경경영시스템(ISO 14001), 2002년 안전보건경영시스템(K-OHSAS 18001) 인증을 취득했다. 2008년 건설의 날엔 대통령 철탑산업훈장도 받았다.

    ▼ 연매출이 2500억 원 규모이던 것이 지난해엔 1500억 원대로 떨어졌다.

    “건설업은 매출보다 내실이 중요하다. 매출이 줄더라도 손해가 확실한 공사는 안 하려 한다. 매출을 늘리려 무리하게 저가 수주를 하다보면 회사가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의 저가낙찰 제도는 정말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또한 회사의 내실을 기하기 위해 꾸준히 부채 규모를 줄여 지금은 자본금 대비 200% 수준까지 낮췄다.”

    이는 전문건설업체에서는 매우 우량한 편이라고 한다.

    ▼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할 텐데.

    “그동안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물론 해외 진출이 쉬운 일은 아니다. 조심스럽게 추진한다. 그동안 카자흐스탄에서 도로포장공사를 완료했고, 현재 네팔 수력발전 댐 공사를 한다. 파키스탄 댐 공사와 미얀마 공항 활주로 공사도 추진 중이다. 제주공항 활주로 공사를 한 경험이 있어 자신 있다.”

    관계 경영, 인정 경영

    회사 이름 ‘광혁’의 의미를 물으니 넓을 광(廣)에 빛날 혁(赫), 넓게 베풀어 세상을 빛낸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의 경영철학이 느껴졌다.

    ▼ 거래업체들과의 상생경영을 어떻게 추구하나.

    “첫 번째 경영 원칙이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남의 돈은 떼먹지 말자다. 거래라는 게 나와 상대가 함께 이익을 보자고 하는 것이다. 상대에게 부당하거나 일방적으로 손실이 나게 하면 거래가 아니다. 현재 어음 발행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더 나가서는 완전히 없앨 생각이다.”

    ▼ 직원들과의 상생은 어떻게 하나.

    “내가 여행을 좋아해서 사업 초창기부터 근무연수가 3년, 6년, 9년, 12년이 될 때마다 한 번씩 부부동반으로 해외연수를 보냈다. 지금은 경기 침체 탓에 4년, 8년, 12년, 16년으로 근무연수를 조정해 시행한다. 이는 전문건설회사라 직원들이 해외에 나갈 기회가 적으니까 이런 기회에라도 에너지를 충전하고, 해외 건설 문화에 대한 견문도 넓히라는 의미다.”

    사회적 상생 방법도 남다르다. 직원들에 따르면 이 회사만의 독특한 나눔 방식이 있다고 한다. 신 대표가 매일 직원 한 명씩 돌아가며 일정액의 후원금이 든 봉투를 준다. 그걸 받은 직원은 봉투에 자기 이름을 적어 직접 기부함에 넣는다. 직원들이 자기 이름으로 기부를 하면서 나눔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려는 신 대표의 멋진 배려다. 직원들은 이를 통해 애사심이 생기고 나눔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고 말한다.

    신 대표는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노숙자시설, 복지단체 등에도 후원한다.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으려 했지만 그는 “그냥 어려서부터 하고 싶었다. 30년이 넘도록 형편이 좋으면 많이 하고, 안 좋으면 적게 하더라도 꾸준히 하려고 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직원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게 화(和)다. 내가 경영을 계속하는 이유도 결국 ‘관계’와 ‘인정’이 좋아서다. 상생도 그런 게 아닌가 싶다.”

    ■ 하도급사만 떠안는 ‘보증 책임’ 합리적 분담 절실

    전문건설업체를 경영하며 겪는 애로점에 대해 신현각 광혁건설(주) 대표는 ‘보증 책임’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건설공사는 공사기간이 장기간인 데다 원도급자, 하도급자, 설계자, 감리자, 자재장비 납품업체 등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참여하기 때문에 보증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주체별로 합당한 보증 책임을 져야 함에도 하도급자인 전문건설업체에만 각종 보증 책임을 지우는 것은 문제”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건설업체들이 가장 많이 지적하는 ‘보증 책임’ 문제는 하자담보책임이다. 하자 원인이 어느 주체에서 비롯된 것인지 따지지도 않은 채 대부분 하도급업체가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하도급자에게 과실이 없거나 하자 발생 원인이 불분명함에도 무조건 하도급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경제민주화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정한 ‘건설업 표준하도급계약서’는 ‘을’의 귀책사유에 의해 발생한 하자에 대해서만 책임을 부담하도록 명시한다. 그럼에도 하도급계약을 할 때 부당특약을 넣어 하자담보책임을 하도급자에게 전가하는 게 현실이다. 전문건설협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하도급업체 절반이 귀책사유가 없음에도 원도급업체로부터 불합리한 하자담보책임을 요구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자보수 비용도 전적으로 부담하는 경우가 68.8%나 됐다. 이로 인해 절반 가까운 전문건설업체가 경영상 부담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뚫고 나가는 게 우리 일 건설경기 위기도 뚫겠다”

    광혁건설이 공사한 대관령터널(왼쪽), 공항철도 수색역.

    하자담보책임기간도 문제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하도급계약을 할 때 법적 책임기간의 평균 약 1.3배로 더 길게 설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하자보증기간의 개시 시점도 해당 공정이 완료되는 시점이 아니라 전체 공정이 완료되는 시점으로 하는 것도 문제다. 해당 공정 완료 후부터 전체 공정이 완료되는 기간만큼 책임기간이 늘어나는 것이다.

    신 대표는 “특히 토공업종은 특성상 전체 공정 완료까지 장기간이 걸리는 데다, 토공은 초기에 하는 공사여서 늘어나는 하자책임기간이 수년에 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토로했다. 공정거래위원회 표준하도급계약서에는 장기계속공사에서는 하도급업체의 하자책임 개시 시기를 총 공사 완료 시점이 아닌 연차별 공사 완료 시점으로 정한다.

    이종상 전문건설공제조합 이사장은 “하자담보책임을 일방적으로 하도급자에게 전가하거나 책임기간을 장기로 설정하는 부당한 특약을 무효화하고, 하자발생 귀책사유 규명 절차를 법제화해야 하며, 하자 발생 원인의 객관적 판정기준을 정하고, 판정기관도 설립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부는 지난해 6월부터 영세 건설기계 대여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건설업자가 대여대금 지급을 보증하는 ‘건설기계대여대금 지급보증제도’를 시행한다. 전문건설업체들도 취지엔 충분히 공감하지만 보증 책임이 전문건설업체에만 집중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건설기계 관련 보증 책임

    “뚫고 나가는 게 우리 일 건설경기 위기도 뚫겠다”

    청원·상주고속철도.

    건설기계를 대여받는 것은 공사를 수행하는 하도급 전문건설업체이므로, 보증 책임은 전문건설업체가 져야 한다. 반면 건설기계대여업자가 대여 계약이행을 보증하는 것은 임의사항이다. 즉 전문건설업체는 줘야 할 돈(건설기계 대여대금)은 법적 강제에 의해 보장해주면서도 대여 계약이행 책임은 보장받지 못하는 억울한 처지에 놓인 것이다.

    반면 전문건설업체는 대부분 원도급사에 계약이행을 책임지겠다는 계약이행보증서를 교부한다. 하지만 원도급사가 하도급대금을 지급하겠다는 보증서를 교부하는 비율은 40%도 안 된다. 결국 전문건설업체는 받을 돈(하도급대금)은 보장받지 못한 채 계약이행보증은 책임져야 한다. 이처럼 전문건설업체들은 위로 아래로 보장은 다해주고, 어떤 안전장치도 보장받지 못하는 샌드위치 신세인 셈이다.

    이종상 이사장은 “대금지급 상호주의에 입각한 건설기계임대업자의 계약이행보증을 법적 강제화하든지, 원도급자가 하도급대금은 물론 장비대여업자, 자재공급업자에 대한 대금까지 일괄적으로 보증하는 ‘포괄대금지급보증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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