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호

미쳐도 미워도 간절한 가족사랑

빈센트 반 고흐 - ‘꽃핀 아몬드나무’ ‘성경이 있는 정물’

  • 입력2015-02-23 14: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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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쳐도 미워도 간절한 가족사랑

    ‘꽃핀 아몬드나무’

    우리 인간이 갖는 감정 가운데 가장 복잡 미묘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어떤 사람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나 일을 뜻합니다. 그 사람은 연인이 될 수도 있고, 부모가 될 수도 있고, 또 자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랑 하면 먼저 떠올리는 것은 연인 간의 사랑과 가족 간의 사랑입니다.

    사랑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이 두 사랑은 사뭇 다릅니다. 연인 간 사랑이 격정적이라면, 가족 간 사랑은 은근합니다. 연인 간 사랑은 이별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가족 간 사랑은 여간해선 끊어지지 않습니다. 이 두 사랑에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의 본질 중 하나가 애증 병존(ambivalence)인데, 연인 간 사랑이나 가족 간 사랑 모두 애착과 증오가 뒤엉킨 애증 병존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주제 가운데 하나가 이 사랑입니다. 화가들은 말로 전달하기 어려운 사랑을, 한없는 기쁨과 절망을 안겨주는 그 사랑의 마음을 화폭에 담으려 했습니다. 인간의 느낌과 생각은 언어로 전해지지만, 언어가 늘 최상의 수단은 아닙니다. 화가들은 언어 대신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전달합니다. 사랑이라는 느낌과 생각은, 그것이 말로 전달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그림과 같은 미술을 통해 전달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동생과의 깊은 우애

    여기서 저는 화가의 가족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특히 제가 주목하는 것은 렘브란트와 함께 네덜란드 회화를 대표하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의 가족입니다. 고흐는 세잔, 고갱과 함께 후기인상파로 불립니다. 그는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드가 등으로 대표되는 인상파로부터 영향 받았지만, 인상파를 넘어서서 자신의 마음과 영혼을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엔 현대인이 갖는 불안과 그 불안을 넘어서려는 의지가 잘 표현돼 있습니다.



    고흐가 어릴 때부터 화가의 길을 선택한 건 아닙니다. 성직자와 화가 사이에서 고민하다 우여곡절 끝에 전업 화가가 됐습니다. 이런 선택에 가장 큰 힘을 준 이는 동생 테오입니다. 네 살 터울의 고흐와 테오는 속 깊은 우애를 나눴는데, 둘의 우애는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에 잘 담겨 있습니다. 고흐가 테오에게만 소식을 전한 게 아닙니다. 어머니에게도 편지를 썼습니다.

    “사실 전 태어난 조카가 아버지 이름을 따르기를 무척 원했답니다. 요즘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하지만 이미 제 이름을 땄다고 하니, 그 애를 위한 침실에 걸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아몬드 꽃이 만발한 커다란 나뭇가지 그림이랍니다. (…) 이제 병원 밖의 세상에 익숙해지려 노력해야겠지요. 어쩌면 제가 다시 자유롭게 지내면서 일이 더 힘겨워질 수도 있겠지만, 희망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흐가 정신착란으로 자신의 귀를 자른 후 생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한 1890년 2월 15일, 어머니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입니다. 동생 테오 부부는 아들을 낳자 그 아이에게 형의 이름을 따서 빈센트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고흐는 무척 기뻐했습니다. 그 조카를 위해 그린 작품이 바로 ‘꽃핀 아몬드나무(Almond Blossom, 1890)’입니다. 막 태어난, 자신의 이름을 딴 조카의 침실에 걸 작품이니 고흐는 혼신의 힘을 다해 그렸습니다. 그의 순정한 마음과 세련된 기교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작품입니다.

    단아하면서도 화사한 이 작품에서 고흐가 일본 판화로부터 받은 영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활짝 꽃핀 아몬드나무는 정신착란이라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고흐의 간절한 의지를 담았습니다. 침대에 걸터앉아 어린 조카에게 꽃이 피는 생명의 순수한 기쁨이 무엇인지를 찬찬히 이야기해주는 삼촌의 정다운 음성이 들리는 듯도 합니다. 정신착란을 앓았던 화가가 그린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밝고 따뜻한 느낌이 가득한 작품입니다.

    애증의 병존

    고흐는 이 작품을 연작으로 그리려 했다고 합니다. 그림을 빨리 그리던 그의 습성을 생각할 때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고흐는 이 작품을 완성한 직후 정신착란을 다시 겪었습니다. 그가 건강을 되찾았을 때 아몬드나무 꽃은 이미 다 져버렸습니다. 연작을 그리지 못한 아쉬움에 ‘난 참 운이 없다’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테오는 이 작품을 아들 침대 위에 걸어뒀고, 조카가 이 그림에 매료되어 쳐다본다는 소식을 고흐에게 전하기도 했습니다.

    고흐는 남동생 테오와 어머니뿐 아니라 여동생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내가 가장 불안하게 생각하는 점은 글을 쓰려면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네 믿음이다. 제발 그러지 말아라, 내 소중한 동생아. 차라리 춤을 배우든지 장교나 서기 혹은 누구든 네 가까이 있는 사람과 사랑을 하렴.”

    작가가 되려는 여동생 윌에게 큰오빠 고흐가 쓴 편지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동생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애틋한 마음이 잘 담겨 있습니다. 유명해지기보다, 평범하더라도 인간적인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가족 간의 마음에는 동양과 서양 간에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이런 고흐에게 가장 문제적인 사람은 아버지였습니다. 개신교 목사이던 아버지는 큰아들 고흐가 자신의 직업을 잇기를 원했습니다. 고흐는 신학교를 다녔지만 결국 화가가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흐는 아버지와 불화를 겪게 됐습니다. 엄격한 프로테스탄트 목사이던 근엄한 아버지와 자유로운 미술을 사랑하게 된 아들 사이의 갈등은 불가피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설명하는 정신분석학 이론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주창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남성이 부친을 증오하고 모친에 대해 품는 무의식적인 성적 애착을 말합니다. 이 콤플렉스는 3∼5세에 나타나고 이후 억압됩니다. ‘아버지처럼 어머니를 사랑하고 싶다’는 바람은 이제 ‘아버지와 같이 되고 싶다’는 바람으로 변해 부친과의 동일시가 이뤄지는데, 여기에서 초자아(super-ego)가 형성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이렇듯 애증이 병존하는 관계입니다. 이 관계가 일차적으로 해소되는 것은 아버지가 이 세상에 부재하게 됐을 때입니다. 고흐에게도 그런 부재가 찾아왔습니다. 1885년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고흐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엄격한 신앙적 태도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를 미워하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인용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막 태어난 조카가 아버지 이름을 따르기를 무척 바랐다는 구절에서 엿볼 수 있듯, 고흐는 아버지를 마음속 깊이 그리워하고 존경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미쳐도 미워도 간절한 가족사랑

    ‘성경이 있는 정물’

    이런 아버지와의 관계를 선명히 보여주는 작품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한 달 뒤에 그린 ‘성경이 있는 정물(Still Life with Bible, 1885)’입니다. 평범해 보이는 듯한 이 작품에는 세 개의 사물이 놓여 있습니다. 펼쳐진 성경과 그 앞의 작은 책, 그리고 꺼진 양초입니다. 성경은 아버지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고, 꺼진 양초는 아버지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성경 앞에 놓인 책인데, 그것은 작가 에밀 졸라의 ‘삶의 기쁨’이란 소설입니다. 고흐는 당시 젊은 세대의 생각과 감성을 대표하던 졸라를 좋아했습니다.

    이 그림은 정직합니다. 성경으로 상징되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크지만, 그렇다고 졸라로 상징되는 자신의 삶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이 점에서 이 그림은 고흐가 품었던, 아버지를 마음속으로 존경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강요하는 아버지와 다투고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일종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 작품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성경이 있는 정물’을 보면서 저는 최근 발표된 한 조사를 떠올렸습니다. 한 일간지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소셜미디어(블로그)에 올라온 7억여 건의 문서를 분석한 결과 ‘엄마(어머니)’가 ‘무섭다’는 말의 연관 단어 순위 1위를 차지했습니다. ‘아빠(아버지)’는 ‘친구’ ‘오빠’ ‘언니’ 등에 이어 11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더 이상 엄격한 존재가 아니라 친구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맞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50~60대 아버지는 여전히 가부장적인 엄중한 존재가 되길 원하지만, 30~40대 신세대 아버지는 친구 같은 다정한 사람이 돼주려 합니다. 엄격한 아버지보다는 다정한 아버지가 아이의 교육에는 물론 좋습니다. 대다수 가정에서 아이들이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이 적은 현실을 생각할 때, 친구 같은 아버지는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영원히 함께할 수는 없겠지만, 어릴 적 아버지에 대해 품은 소중한 기억과 추억은 나중에 아버지가 부재했을 때에도 늘 삶의 어려움을 헤쳐나갈 힘과 용기가 될 수 있습니다.

    ‘꽃핀 아몬드나무’의 주인공인 조카 빈센트 빌렘 반 고흐는 고흐에게 매우 중요한 사람이 됐습니다. 고흐가 죽자 테오도 곧 죽었고, 고흐가 남긴 작품은 테오 아내의 소유가 됐습니다. 그녀마저 죽자 조카 빈센트 빌렘이 관리하게 됐습니다. 화가가 유명해지려면 작품 자체도 탁월해야 하지만, 관리도 중요합니다. 빈센트 빌렘은 고흐 재단을 세워 효율적으로 운영함으로써 고흐가 서양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의 한 사람으로 재평가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또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을 건립하는 데도 주도적인 구실을 했습니다.

    미쳐도 미워도 간절한 가족사랑
    박상희

    1973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문학박사

    現 사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사단법인 포사람 원장, JTBC ‘사건반장’ 고정 패널

    저서 : ‘자기대상 경험을 통한 역기능적 하나님 표상에 대한 연구’


    ‘꽃핀 아몬드나무’는 반 고흐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의 하나입니다. 빈센트 빌렘은 삼촌이 자신에게 선물로 준 이 작품을 계속 간직해온 셈입니다. 이 작품을 보고 또 보면서 빈센트 빌렘은 서양 회화의 역사에서 가장 경이롭고 치열했던 화가인 삼촌 고흐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요. 삼촌과 조카가 침묵으로 나눴을 그 대화는 안타까우면서도 애틋하고 또 즐겁지 않았을까요. 가족 간 사랑이란 바로 이런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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