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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LG’ 기틀 마련한 故 구자경 명예회장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글로벌 LG’ 기틀 마련한 故 구자경 명예회장

[LG그룹 제공.]

[LG그룹 제공.]

LG그룹 2대 회장으로 1970년부터 1995년까지 25년간 그룹을 이끌었던 구자경 LG명예회장이 2019년 12월 14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구 명예회장은 LG 창업주인 고(故) 구인회 회장의 장남으로 45세 나이에 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다. 

구 명예회장은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5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1950년 부친의 부름을 받아 LG그룹의 모회사인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 이사로 취임했다. 1969년 구인회 창업회장이 별세하면서 구 명예회장은 1970년부터 LG그룹 총수로 활약했다. 1987년부터 1989년까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도 맡았다. 

고인이 이끌던 LG는 대기업의 부침이 심했던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도 특혜나 이권을 둘러싼 잡음 없이 안정과 내실을 추구하며 우리나라 대표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구 명예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한 1970년에는 럭키와 금성사, 호남정유 등 8개사의 연간 매출이 270억 원에 달했다. 이후 고도 경제성장기를 거치면서, LG는 범한해상화재보험과 국제증권, 부산투자금융, 한국중공업 군포공장, 한국광업제련 등을 인수했고 럭키석유화학(1978), 금성반도체(1979), 금성일렉트론(1989) 등을 설립하며 외형을 키웠다. 

구 명예회장은 국토가 작고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사람만이 경쟁력이라는 ‘강토소국(疆土小國) 기술대국(技術大國)’ 철학을 강조했다. 회장 재임 기간 국내외에 70여 개의 연구소를 세워 연구개발을 통한 신기술 확보에 힘썼으며, 중국과 동남아시아 · 미주 지역에 LG전자와 LG화학 공장을 설립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한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의 권한을 이양하고 이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자율경영체제’를 그룹에 처음 도입한 이도 구 명예회장이다. 

구 명예회장은 1995년 70세의 나이에 장남인 고(故) 구본무 회장에게 그룹을 넘겨줬다. ‘21세기를 위해서는 젊고 도전적인 인재들이 그룹을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구 명예회장은 인재 육성과 기술 개발에 공을 들였다. LG연암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경남 진주 연암공업대학과 충남 천안 소재 천안연암대학 등을 지원하고, LG복지재단을 통해 사회공헌활동을 펼쳤다. 또한 말년에는 천안연암대학 인근 농장에 머물며 버섯을 연구하는 등 자연인으로 여생을 소탈하게 보냈다. 



구 명예회장은 슬하에 2018년 타계한 구본무 LG 회장과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 고문, LT그룹 회장 등 6남매를 뒀다. 부인 하정임 여사는 2008년 1월 별세했다.




신동아 202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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