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호

‘방콕족’ 위한 10부작 ‘밴드 오브 브라더스’ & 영화 ‘머나먼 다리’

[황승경의 Into the Arte ⑭]

  • 황승경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입력2020-09-3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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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덕’(밀리터리 덕후)의 바이블, 전쟁영화의 古典

    • 1944년 9월, 작전명 ‘마켓가든’이 주는 교훈

    • 공명심과 자만, 성급한 낙관이 부른 대참패

    • 실사 영화의 白眉, 현대인에게 던지는 지혜

    영화 '머나먼 다리'의 한 장면.

    영화 '머나먼 다리'의 한 장면.

    8월 5일 개봉한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400만 관객을 돌파하고, ‘살아있다’는 190만 관객을 넘어서면서 반짝 활기를 되찾는 듯했던 극장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풀이 죽었다. 한때 ‘방역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듯 보였던 정부가 방역 고삐를 늦춘 데다 대규모 야외 집회, 교회발(發) 집단감염 사례 증가 등으로 코로나19는 재확산됐다. 동서고금 샴페인을 일찍 터뜨리면 반드시 반대급부가 따르게 마련. 방역 전쟁이든 실제 전투 현장이든, 전쟁에서 승기를 잡았다고 해도 한순간 오판으로 전세가 역전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대표적인 사례가 1944년 9월 네덜란드를 피로 물들였던 역사상 최악의 작전 ‘마켓가든(Operation Market Garden)’이다. 

    전쟁은 승자만 기억하는 법이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작전 실패는 승전의 기쁨에 묻혔다. 그럼에도 연합군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준 마켓가든 작전은 잊을 만하면 다시 회자된다. ‘밀덕’(밀리터리 덕후)의 바이블로 통하는 영화 ‘머나먼 다리’(1977)와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2001)는 두고두고 그 패인을 곱씹게 만든다. 단순히 싸움에 이기고 지는 병법(兵法)을 넘어 영화는 현재의 일상과 전장이 오버랩되면서 오늘날을 사는 현대인의 삶의 지혜로 귀결된다.

    머나먼 다리로 영원히 떠난 병사들

    영화 '머나먼 다리'의 한 장면.

    영화 '머나먼 다리'의 한 장면.

    공수부대는 하늘에서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기습적으로 적의 요충지를 점령하는 최정예 특수부대다. 이후 지상부대와 만나 작전을 수행하지만, 여러모로 많은 제약을 받는다. 순간적으로 적의 요충지를 점령해도 전력 보급이 끊기면 바로 고립된다. 하늘에서 적에게 노출되면 낙하산을 펼치지도 못하고 추락할 수 있고, 강하 도중에는 강한 바람에 무기가 날아가 맨몸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전장에서 돌아오는 공수대원보다 돌아오지 못하는 병사가 훨씬 많은 이유다. 공수부대의 활약상을 담은 전쟁영화가 유독 많은 것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특수 상황이 보는 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공군 소속으로 ‘팔슈름야거’라는 공수부대를 양성했다. 초반에는 맹위를 떨치며 연합군을 떨게 만들었지만, 1941년 독일이 그리스를 점령하기 위해 수행한 크레타 전투에서는 대패했다. 벌건 대낮에 공수작전을 수행한 데다, 부대원들과 무기 컨테이너를 따로 낙하시킨 탓이다. 맨몸으로 먼저 내린 독일 공수부대원이 무기를 찾기도 전에 매복하고 있던 연합군에 노출돼 일망타진된 것. 이러한 크레타 전투를 경험했지만 3년 뒤 영국군 사령관 몽고메리는 대낮에 비슷한 작전을 개시하는 우를 범했다. ‘마켓가든 작전’이었다. 1944년 9월 17~25일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수행된 군사 작전으로, 연합군의 공수부대와 육상 병력은 네덜란드의 도시인 에인트호번과 네이메헌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으나 전략적으로 중요한 라인강의 교량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작전은 ‘마켓’이라 불리는 교량을 점령하는 공수부대의 공격과 ‘가든’이라 불리는 육상 공격 작전으로 이루어졌는데,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많은 공수부대가 투입된 작전이었다. 두 영화는 마켓가든 작전을 통해 공명심에 사로잡힌 리더는 병사들을 사지로 내몬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리처드 아텐보로(1923~2014) 감독의 ‘머나먼 다리’는 ‘전쟁영화의 고전’이다. 시작부터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 전후 상황을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자세히 설명한다. 영화의 백미는 숀 코너리, 앤서니 홉킨스, 진 해크먼, 로버트 레드퍼드, 로런스 올리비에 등 초호화 캐스팅 배우들의 명연기가 아니다. 컴퓨터그래픽(CG)이 불가능하던 때에 촬영된 실사 장면이다. 특히 완전군장을 한 출연진이 항공기에서 뛰어내리는 장면과 수송기가 글라이더를 매달고 이륙하는 장면에서는 탄성이 절로 난다. ‘머나먼 다리’의 원작자 코널리어스 라이언(1920~1974)은 제2차 세계대전 전투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빈 종군기자였다. 방대한 자료 조사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미 노르망디 해전(1959)과 베를린 전투(1965)에 관한 책을 집필했고, 노르망디는 ‘지상최대의 작전’(1962)으로 영화화됐다. 라이언은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4년간 ‘머나먼 다리’를 집필했다. 투병 중임에도 한 치 오차도 없애려 인터뷰와 자료를 꼼꼼하게 살폈다고 전해진다. 영화는 그의 동명 논픽션 소설의 순서를 그대로 따라간다.



    무모한 작전, 소사보프스키 장군의 반대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한 장면.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한 장면.

    노르망디상륙작전 이후 독일군의 ‘철통 저항’으로 한동안 발이 묶였지만 연합군은 세계대전 5년 만에 승기를 잡고 독일을 향해 진격했다. 연합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너무 빠르게 벨기에에 다다른 연합군은 예상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후방 보급로가 650㎞ 이상 길어진 것이다. 물자를 수송하는 보급차량이 운반하는 석유를 전방 보급 전에 수송하면서 다 써버릴 정도였다. 한술 더 떠 영국군 총사령관 몽고메리는 견원지간인 미국 패튼 장군보다 먼저 베를린에 입성하려 조바심이 나 있었다. 그가 묘책으로 제안한 것이 바로 ‘마켓가든 작전’이다. 작전 브리핑만 들으면 그럴듯하다. 

    “3만5000여 공수부대를 네덜란드 3지역으로 나눠 투입해 연결된 6개의 라인강 다리를 기습점거하고(마켓 작전), 대기 중인 지상군이 바로 진격해(가든 작전) 강을 따라 독일로 진격한다.” 폴란드의 소사보프스키 장군이 반대했지만 아무도 그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다들 지긋지긋한 전쟁을 하루빨리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갈 단꿈에 빠져서 이 무모한 작전을 실행에 옮겼다. 

    9월 17일, 미 101공수사단이 에인트호벤에 낙하하고 이어 미 82공수사단이 네이메헨, 영국 1공수사단이 아른험에 투입됐다. 대규모 최정예 병력의 낙하는 그러나 곧 혼돈의 낙하로 귀결됐다. 지형에 대한 사전 이해가 부족했고, 물자 부족, 기상 악화로 모든 것이 예상을 빗나갔다. 101공수사단은 에인트호벤에서 처음 다리는 확보했지만 두 번째 다리는 독일군이 미리 폭파해 하루를 허비했다. 82공수사단은 독일군의 강한 저항에 부딪혀 네이메헌의 교량을 점령하지 못했다. 설상가상 적진 깊숙이 투입된 영국 1공수사단은 사단 주력이 독일군에 차단됐다. 하필 1공수사단이 뛰어든 아른험에는 독일 SS기갑군단이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아른험 대교 반대편 독일군은 가능한 모든 병력을 재빨리 투입해 모든 화력을 영국군에 퍼부었다. 전열이 흐트러진 혼란 상황에서 통신까지 두절되는 진퇴양난이었다. 80시간을 영웅처럼 싸우는 아군에 전해줄 보급품도 독일군 영내로 낙하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발생했다. 성급함이 화근이었다.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당시 미 101공수사단의 이지중대 이야기다. 총 10부작인 이 드라마에서 마켓가든 전투는 4화에 담겼다. 영국의 1공수부대 정도는 아니지만 101공수사단의 손실도 컸다. 공수부대 낙하 직전, 전장에는 독일의 소년병과 자전거뿐이라고 했지만 막상 독일군은 타이거 전차로 무장해 매복하고 있었다. 영국 30군단의 셔먼 전차와 크롬웰 전차는 속수무책 박살이 났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이날 연합군의 어설픈 작전을 통해 군인들이 총알받이로 사라져가는 안타까운 일화를 잘 보여준다. 연합군은 전략상 그다지 도움이 안 되는 80㎞를 진군하면서 1만8000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당시 연합군은 마켓가든 작전 후유증으로 작전 6개월 뒤인 1945년 3월에야 라인강을 넘어 진격할 수 있었다. 전시에 리더의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할 수 있다.

    황승경
    ● 1976년 서울 출생
    ● 이탈리아 레피체국립음악원 디플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성균관대 공연예술학 박사
    ● 국제오페라단 단장
    ● 前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 리포터, 월간 ‘영카페’ 편집장
    ● 저서 : ‘3S 보컬트레이닝’ ‘무한한 상상과 놀이의 변주’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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