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호

달콤한 디저트가 전하는 찐득한 위로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20-11-10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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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걸음마를 떼기 전부터 먹을 것을 양손에 움켜쥐는 아이였고, 입이 비면 문살 사이 창호지까지 뜯어 입에 넣었다고 한다. 

    • 한옥에 살았던 기억은 단 1초도 남아 있지 않은데, 찢어진 문 앞에 동그랗게 앉아 있는 내 사진은 수도 없이 봤다. 좋은 먹성에도 불구하고 한동안은 표준 몸매에 가까운 삶을 어찌어찌 살았다. 그러다가 단 4개월 만에 10㎏ 가까이 살이 찐 적이 있다. 해외에서 요리 견습생으로 있을 때다. 바삭한 빵에 초콜릿크림을 듬뿍 얹어 먹는 아침을 시작으로, 하루 종일 주방이며 숙소에 둔 크림을 수시로 퍼 먹었다. 

    • 고소하면서 달콤하고, 적당히 찐득한 것을 입안에서 우물우물 녹이며 삼키는 맛에 완전히 중독됐다.

    마스카르포네 치즈와 에스프레소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티라미수.  [GettyImage]

    마스카르포네 치즈와 에스프레소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티라미수. [GettyImage]

    핑계를 대자면 달콤한 맛에 기대던 당시, 나는 춥고 외로웠다. 남자들이 군대 생활을 이야기할 때 “밥을 먹어도 배가 고프고, 옷을 입어도 춥다”고들 하는데 딱 그 심정이었다. 낯설고 물 선 곳에서 어설프기 짝이 없던 견습생은 매 시간 자신에게 위로를 ‘먹이느라’ 몸이 뚱뚱 불어나는 걸 보지 못했다. 자그마치 20년 전 이야기다. 

    아무것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같을 때, 달콤하고 향기로운 것을 한입 두입 먹으면 마음이 두 발로 다시 서는 기분이 든다. 요즘 딱 먹어야 할 디저트로는 티라미수(tiramisu)가 떠오른다. 티라미수는 이탈리아어로 ‘나를 끌어올려 줘(tira mi su)’라는 뜻으로, ‘끌어올리다’는 ‘기운을 북돋다’와 같은 의미로 통한다. 달콤한 마스카르포네 치즈와 강렬한 에스프레소의 절묘한 만남은 먹을 때마다 경이를 느끼게 한다. 

    티라미수는 뚱뚱한 손가락처럼 생긴 빵 사보이아르디(레이디핑거)를 술과 커피에 적신 뒤, 달걀 치즈 설탕을 넣은 크림과 빵을 켜켜이 쌓아 만든다. 이것을 냉장실에 굳혔다가 코코아가루를 솔솔 뿌려 먹는다. 부들부들한 티라미수는 숟가락으로 듬뿍 떠먹어야 제맛이다. 언제 먹어도 이름값을 하는 디저트다.

    찰랑찰랑 말랑말랑 이탈리안 젤리

    이탈리아 사람들이 사랑하는 폭신하고 달콤한 디저트 바바(왼쪽). 바삭한 과자 속에 신선하고 달콤한 치즈 크림을 넣은 카놀리. [GettyImage]

    이탈리아 사람들이 사랑하는 폭신하고 달콤한 디저트 바바(왼쪽). 바삭한 과자 속에 신선하고 달콤한 치즈 크림을 넣은 카놀리. [GettyImage]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디저트 가운데는 ‘바바(babba)’도 있다. 리큐어가 들어간 시럽을 발라 완성하는 가볍고, 폭신폭신 달콤한 빵이다. 길이가 짧고 통통한 송이버섯처럼 생겼다. 바바의 구름같이 가벼운 살집을 한입 베어 물면 부드러움과 달콤함, 코에 빙빙 도는 기분 좋은 향이 전해진다. 

    한국에 있는 이탈리안 식당에서는 바바를 보기 어렵다. 얼추 비슷한 맛을 느끼려면 이렇게 해보자. 물과 설탕을 1:3 정도로 섞어 살짝 끓인다. 설탕이 녹은 다음 럼(또는 주정강화 와인이나 리몬첼로)을 설탕의 3분의 1 정도 넣어 잘 젓는다. 여기에 폭신한 브리오슈를 푹 담가 스며들게 한 뒤 먹는다. 



    판나코타(panna cotta)는 바닐라 향이 가득 밴 생크림 젤리에 커피, 과일 등을 얹어 맛을 낸 차가운 디저트다. 찰랑찰랑 말랑말랑한 판나코타는 입에 들어가면 탄력이 사라지며 보드라워진다. 크림도 아니고 젤리도 아닌 향기로운 무언가가 목구멍으로 휙 넘어가는데, 바닐라 향과 단맛은 오래오래 입에 남아 기분을 산뜻하게 만든다. 

    시칠리아의 대표적 디저트 카놀리(cannoli)는 어릴 때 먹던 ‘센베이’ 과자 같은 것에 신선하고 달콤한 치즈 크림을 채워 넣고, 피스타치오를 굵게 부숴 잔뜩 붙여놓은 것이다. 즉석에서 만든 카놀리를 먹으면 바사삭하며 대차게 부서지는 맛에 신이 난다. 부스러기가 사방에 떨어지고, 입 주변에 크림이 잔뜩 묻기에 같이 먹는 사람과 서로 보고, 킥킥 웃는 사이 재미가 샘솟는다. 마지막에 아작아작 피스타치오를 씹으며 향을 느끼는 것도 즐겁다. 

    바치 디 다마(baci di dama)는 초미니 햄버거처럼 생긴 과자다. 아몬드나 헤이즐넛 가루로 반죽을 만들어 조그맣게 구운 과자 두 개 사이에 누텔라(초콜릿 크림)를 바른다. 바치는 이탈리아어로 입맞춤을 뜻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평소 나누는, 양 볼을 마주 대는 인사도 바치라고 한다. 서로 꼭 껴안고 있는 것처럼 생긴 이 앙증맞은 과자는 입에서 가볍게 부서지며 단맛을 선사한다. 수북이 쌓아놓고 커피와 곁들여 집어 먹으면 꿀 같은 휴식 시간을 만들 수 있다. 

    단맛과 쓴맛이 어우러져 독특한 매력을 뽐내는 디저트도 있다. 사실 ‘단쓴’은 디저트가 가진 하나의 계보다. 티라미수 위에 달지 않은 카카오가루를 새카맣게 뿌리는 것, 찐득하고 달콤한 치즈케이크를 에스프레소와 함께 먹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달고 쓴맛의 매력을 가진 것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말린 오렌지 껍질 조림이다.

    단쓴단쓴, 미각을 깨우는 마법 주문

    길쭉길쭉하게 썬 오렌지 껍질을 설탕물에 조리면 맛있는 간식이자 풍미 넘치는 요리 재료가 된다.  [GettyImage]

    길쭉길쭉하게 썬 오렌지 껍질을 설탕물에 조리면 맛있는 간식이자 풍미 넘치는 요리 재료가 된다. [GettyImage]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오렌지 과육은 맛있게 먹고 남은 껍질을 길쭉길쭉하게 썬다. 마멀레이드 만들 듯 가늘게 썰기보다는 좀 도톰하게 썰어야 씹는 맛이 난다. 오렌지 껍질 흰 부분은 도려내지 말고 그대로 둔다. 손질한 껍질은 물에 담가 우르르 한번 끓인다. 물을 갈아 우르르 끓이기를 두 번 반복한다. 총 세 번 끓이는 것이다. 이러면 흰 부분의 과도한 쓴맛이 빠진다. 

    이제 쓴맛을 줄인 오렌지 껍질에 물과 설탕을 같은 양으로 넣고 끓인다. 오렌지 껍질, 물, 설탕 무게가 1.5:1:1 비율이 되도록 하면 된다. 설탕이 녹으면 불을 약하게 줄여 뭉근하게 조린다. 시럽 양이 반 이하로 줄고, 오렌지 껍질에 반짝반짝 윤기가 돌면 불을 끈다. 이후 오렌지 껍질을 채반에 널어 꾸덕꾸덕하게 말리면 완성이다. 

    좀 더 정통적인 레시피는 오렌지 껍질에 설탕 시럽을 부어 절이고, 다음 날 이 시럽을 다시 끓여 오렌지에 부어 절이는 과정을 3~5일 동안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면 오렌지 풍미가 훨씬 진하게 남는다. 

    쫀득하고 새콤달콤하면서 근사한 모양을 가진 오렌지 껍질 조림은 쓸모가 많다. 과자처럼 집어 먹고, 술안주로 곁들이고, 잘게 썰어 빵이나 과자 만들 때 섞고, 아이스크림이나 시큼한 요거트에 섞어 먹으면 맛있다. 단맛이 적은 다크초콜릿을 녹여 오렌지 껍질 조림에 묻혀 굳히면 ‘오랑제트(orangette)’라는 유명한 초콜릿 과자가 된다. 

    맛의 대비가 매력적으로 드러나는 식재료가 하나 더 있다. 생강이다. 그토록 맵고 쓰고 아무리 씹어도 섬유질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생강은 사실 단맛의 절친한 친구다. 얇게 썰어 설탕에 조려 만든 편강을 떠올리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편강의 달면서도 은근히 아린 맛과 매운 향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귀여운 사람 모양의 ‘진저맨 쿠키’도 그렇다. 밀가루와 생강가루를 섞어 달콤 매콤하게 만든 이 과자는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다. 

    생강은 청으로 만들어 먹는 경우가 많지만, 잼으로도 즐길 수 있다. 생강청을 거르고 난 생강에 설탕을 넣고 보글보글 끓여 믹서에 곱게 갈면 된다. 은은하되 알싸한 향이 그대로 살아 있는 생강잼은 쿠키나 빵에 도톰하게 얹어 먹으면 좋다. 우유에 듬뿍 넣고 끓여 뜨거울 때 후후 불며 먹는 맛도 제일이다.

    촉촉한 빵에 듬뿍 얹어 먹는 크림의 매력

    헤이즐넛과 카카오 분말에 설탕과 팜유 등을 넣어 만든 ‘누텔라(nutella)’는 많은 사람을 사로잡는 마성의 단맛을 가졌다. 누텔라가 차지하고 있는 막강한 자리를 빼앗을 만한 게 있다면 ‘로투스 크림’이 아닐까 싶다. 이 크림 재료는 ‘로투스 비스코프(lotus biscoff)’라고, 빨간 봉지에 한 개씩 포장돼 있는 과자다. 참고로 ‘비스코프(biscoff)’는 비스킷과 커피의 합성어다. 바작바작 입자가 도드라지게 씹히는 이 과자는, 어릴 때 먹던 ‘달고나’의 잘 익은 설탕 풍미에 계피 향이 더해진 맛을 낸다. 얇고 바삭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바로 이 과자를 부숴 크림에 섞어 만든 게 로투스 크림이다. 독특한 향과 맛으로 세계를 사로잡은 과자로 크림을 만들었으니 오죽 매력적일까. 최근 아이스크림이며 빵에 ‘로투스 풍미’를 더해 만든 제품이 한정적으로 나오기도 했다. 

    누텔라 같은 초콜릿 크림과 로투스 크림처럼 이미 맛있는 것은 어디 곁들여 먹어도 맛있다. 빵과 과자에 발라 먹는 게 가장 간편하다. 버터, 생크림, 우유 등과 섞어 따뜻한 온도에서 묽게 풀면 쓰임이 더욱 다양해진다. 음료에 섞어 먹을 수 있고, 빵이나 쿠키를 구울 때도 사용한다. 최근에는 떡에 초콜릿이나 로투스 맛을 더해 색다르게 먹기도 한다. 견과류를 오븐에 구운 뒤 이런 크림에 굴려 그대로 굳히기만 해도 맛있다. 두 가지 모두 과일과 잘 어울린다. 과일을 켜켜이 넣고 만드는 케이크나 마른 과일을 넣고 만든 다양한 과자와 곁들여 먹을 수 있다. 


    자연이 선물한 달콤함, 메이플시럽

    품질 좋은 메이플시럽은 촉촉하게 구운 팬케이크에 주르륵 부어 그대로 먹는 게 좋다.  [GettyImage]

    품질 좋은 메이플시럽은 촉촉하게 구운 팬케이크에 주르륵 부어 그대로 먹는 게 좋다. [GettyImage]

    메이플시럽은 완전히 결이 다른 단맛을 선사한다. 앞서 이야기한 두 가지 크림은 여러 재료를 절묘하게 조합한 결과다. 반면 메이플시럽은 단일한, 순수의 맛이랄까. 

    메이플시럽은 이름에서 알다시피 사탕단풍나무(메이플) 수액으로 만든다. 토양과 기후 그리고 나무 재배 방식에 따라 풍미가 섬세하게 달라진다. 기온이 낮아지면 나무는 가지 끝까지 수액을 끌어올린다. 그러다 날이 풀리면 수액이 나무 아래로 흘러내린다. 이렇게 온도가 오르락내리락 왔다갔다 할수록 맛있는 나무 수액이 많이 나온다. 이것을 채취해 끓인 것이 메이플 시럽이다. 

    메이플시럽 색깔은 연한 노란색부터 검붉은 색까지 다채로운데, 대체로 투명한 시럽의 품질이 좋다. 색이 진하고 불투명하다면 첨가물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그대로 먹기보다 조리용으로 쓰면 좋다. 색으로 품질을 구분하기 어렵다면 향이나 맛을 보자. 향과 맛이 복잡하지 않고, 거세지 않으며, 부드럽고 은은할수록 순수한 메이플시럽일 공산이 크다. 

    좋은 메이플시럽은 그대로 먹어야 맛있다. 촉촉하게 구운 팬케이크, 바삭하게 구운 토스트, 우유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 새콤한 그릭 요거트, 새콤달콤하게 과일 넣은 시리얼, 오븐에 구운 호박이나 감자, 고구마에 주르륵 끼얹어 먹는다. 

    이 달콤한 시럽은 고기나 생선에 더해 먹어도 맛있다. 짭짤하게 구운 베이컨이나 발효 햄과 복합적인 맛이 나는 소시지, 삼겹살이나 오리처럼 기름진 고기와도 잘 어울린다. 단조롭지 않은 단맛이 짭짤하고 기름진 재료와 만나 색다른 조화를 이룬다. 버터에 구워 익힌 연어에도 두어 방울 얹어 먹는다. 메이플 시럽 색이 짙고, 맛도 향도 강렬한 편이라면 녹인 버터와 섞어 간식, 후식, 식사에 두루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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