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호

“정신 안 차리면 구한말 온다” [경제사상가 이건희 탐구②]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20-12-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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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전자는 이미 망한 회사

    • 불량은 암이다

    • 선진국 문턱에 온 듯한 착각에서 벗어나라

    • 불면증에 시달린 밤들

    *‘경제사상가 이건희 탐구’는 격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고 천명한 ‘신경영 선언’ 당시 모습. [동아DB]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고 천명한 ‘신경영 선언’ 당시 모습. [동아DB]

    이건희 회장은 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서 삼성전자를 향해 ‘이미 망한 회사’ ‘2류 기업’이라고 혹독하게 깎아 내렸다. 선진국과 일본 기술을 모방하는 데만 급급하고 세계 시장에서 싸구려 취급을 받는 현실을 뼈아프게 짚은 것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한 말이다. 

    “국내에서 그래도 낫다는 삼성전자를 보자. 상품 수는 수천 가지, 계열사는 30여 개다. 이중 국제 경쟁력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제품은 반도체, 그것도 메모리 하나다. 분명히 말하지만 삼성은 국제적으로 2류다. 내가 회장이 되고 입버릇처럼 불량 없애라, 질(質) 위주로 가자고 했는데 아직도 양(量)에 매달리고 있다. 만들기만 하면 팔 수 있다는 건 구 시대적 얘기다. 오그라지고 망가지는 게 눈 앞에 보이는데 (여러분들은) 눈 하나 까딱 안 한다.”

    삼성전자는 이미 망한 회사

    1980년 아버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왼쪽)와 함께 찍은 사진. [동아DB]

    1980년 아버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왼쪽)와 함께 찍은 사진. [동아DB]

    그러면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계열사를 조목조목 중환자에 비유했다. 

    “삼성전자는 3만 명이 만든 물건을 6000명이 하루 2만 번 씩 고치고 다닌다. 쓸데없이 자원낭비하고 페인트 낭비해 공기 나쁘게 하고 나쁜 물건 만들어 나쁜 이미지를 갖게 한다. 이런 낭비적 집단은 이 세상에 없다. 암(癌)으로 치면 2기다. 제일 급하게 손을 써야 한다. 기회를 놓치면 3기에 들어간다. 누구도 못 고친다.” 



    삼성건설은 영양실조라고도 했다. 

    “자금과 기술자를 투입시켜 노력해야 회생시킬 수 있다. 삼성건설은 영양실조에 당뇨병까지 겹쳐 있다. 종합화학은 태어날 때부터 잘못 태어났다. 우리나라 유화산업에는 제대로 된 경영자가 없다. 키워야 한다. 삼성물산은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전자를 나눈 정도의 병이다. 삼성생명이 상대적으로 경영을 잘해온 것 같지만 엉터리 계약들 많다. 삼성 전체가 이렇게 중병(重病)에 걸려있다.” 

    이 회장은 “앞으로 남은 시간은 7년이다. 2000년까지 죽기 살기로 해야만 살아날 수 있다”며 “지금까지는 누구 책임도 아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고친다. 내가 책임자”라고 선언했다. 

    그의 암에 대한 언급은 단순한 엄포가 아니었다. 당시 이 회장은 부친 이병철 회장과 둘째 형 창희 씨를 잇따라 암으로 잃은 상태였다. 지금 세상이야 불치병이 아니지만 당시만 해도 암 진단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이 회장 인식 속에서 암이란 단어는 비유적 언어가 아니라 경험을 통해 인식된 실존적 언어였을 것이다. 

    어떻든 자신이 오너인 회사들을 향해 입에 올리기도 힘든 극단적 단어를 써가며 절망감을 토해낸 것은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심경의 표현이었을 것이며 이제 자신이 직접 집도의가 되어 도려내겠다는 비장감을 드러낸 말이었을 것이다.


    전원이 꺼져버리는 삼성TV

    그는 삼성전자가 만들어내고 있는 불량제품들도 암세포에 비유했다. 

    “삼성이 파는 전자제품, 중공업 제품에는 회사 로고가 분명히 박혀 있다. 그런데 고장이 나면 울화통이 터진다.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이다. VTR 같은 경우 아끼는 테이프를 넣었는데 고장이 나 다 갉아먹었다. TV에서 재미있는 영화를 보는데 휴즈가 똑 떨어져나가 꺼진다. 이러면 당연히 그 회사 욕이 나오지 않겠는가. (소비자들은) 안 잊어버린다. 그 회사 제품 절대 안 산다. 안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쁘다’고 떠들고 다닌다. 이것이야말로 몸에 암세포가 번지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삼성전자 제품 불량률이 현재 수준(3~6%) 이라면 망조다.” 

    평소 전문 엔지니어에 버금갈 정도로 기계에 해박하던 그의 질타는 매우 구체적으로 이어진다. 

    “전자렌지 부품은 500개가 안 된다. 마그네트론을 빼면 철판하고 유리조각만 붙이는, 당연히 불량 ‘0’으로 가야 하는 단순 산업이다. 그런데도 불량이 계속 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VTR 부품은 아무리 많아도 800개가 안 되고 컬러TV는 500~600개 정도 된다. 일본의 혼다, 도요타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은 1만5000개, 2만 개로 차원이 다르다. 그런데도 불량은 거의 제로다. 자동차같이 움직이고 충격 받고 비바람 맞고 아침저녁 온도차가 심한 환경에서도 불량률이 제로에 가까운데 집안에만 있는 전자제품 불량률이 3%, 5%, 6%씩 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나는 일본 제품들을 보면 삼성은 이대로 문 닫아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 명예롭게 닫아야 하나 이런 생각까지 든다. 삼성전자가 6%씩 불량을 내면서도 작년에 250억 이익이 났는데 불량률을 2%로 내릴 경우 얼마나 이익이 날지 한번 생각해 보라. 불량을 줄이는 건 ‘경영을 잘 해라’ ‘이익을 더 내라’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과 양심 불량의 문제다.” 

    이 회장 말 중에 ‘보다가 전원이 나가는 TV나 테이프를 갉아먹는 비디오 기기(지금은 기기 자체를 찾아볼 수 없지만)’를 요즘 젊은 세대들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시 ‘메이드 인 코리아’ 수준이 그랬다. 이 회장이 신경영 선언을 하기 2년 전인 1991년 주한 일본대사관 경제참사관으로 갓 부임한 시모고지 슈지라는 사람이 쓴 ‘한국 가전제품 체험기’에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 나온다. 

    그가 경험한 제품이 삼성 것이라는 언급은 없지만 당시 국내 일류기업들의 가전제품 제조 수준이 얼마나 조악했는지가 생생하게 담겨있는 에피소드라서 인용한다. 이런 제품을 사는 외국인들이 속으로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보았을까 하는 생각에 낯이 뜨거워지다가도 그로부터 불과 수십 년 만에 세계 최고 제품을 만들어낸 한국 기업인과 노동자들의 노고가 새삼 전해져와 뿌듯한 마음도 든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일본에서 가져온 세탁기가 낡아 한국 일류 기업 세탁기를 구입했는데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배달해준 사람에게 부탁했더니 자기는 배달만 하는 사람이니 서비스 센터에 연락하라고 했다. 며칠 뒤 서비스센터 사람이 와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는데도 움직이지 않았다. 판매점에 이야기했더니 바꿔주겠다고 해서 새 것이 왔다. 그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다시 또 서비스센터 사람이 와서 고생한 끝에 겨우 움직이게 됐다.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갖고 한국 제조업체 불량률이 높다거나 점원들의 지식이 부족하다거나 애프터서비스가 나쁘다고 일반화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의 가전제품 제조업체는 고객을 한 사람 잃었다는 것이다.’(유순하, ‘삼성은 없다’에서 재인용) 

    제품 불량이 단지 불편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업 이미지는 물론 나라 이미지까지 갉아먹는다는 점에서 암세포와 다를 바 없다는 이 회장의 뼈아픈 지적에 백분 공감하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다시 이 회장의 말이다. 

    “과거에는 1등부터 5등까지 다 살 수 있었다. 2등은 2등대로, 3등은 3등의 몫이 있었는데 이제는 1군에 못 들어가면 모든 것이 0이 되는 시대다. 전국 체전 금메달과 올림픽 금메달은 다르다. 전국체전 1등 했다고 자랑하는 소리 들으면 화가 난다. 이제는 세계 챔피언이라야 챔피언이다. 삼성은 지금 상태로는 당장 문제없다. 하지만 21세기 초반까지 이런 상황으로는 못 간다. 전자 건설 중공업 유화는 위험수위다. 4개사가 흔들리면 그룹이 흔들린다. 그룹이 흔들리면 누구도 못 도와준다. 새 정부에서는 더 그렇다. 우리가 스스로 서로 도와 살리고 키워야 한다. 명심하라. 마음으로는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제는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궁금해지는 건, 단지 불량제품을 없애자는 정도의 개선이라면 국내에서 임직원들을 모아놓고 하는 질책만으로도 충분했을 터인데 왜 굳이 이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까지 임원들을 모두 불러내는 파격적인 방식을 썼을까. 여기에는 그의 복잡하고 깊은 내면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신 안 차리면 다시 구한말 온다

    1993년 7월 이인길 동아일보 경제부 차장은 일본 후쿠오카로 날아가 이 회장을 직접 만난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막 선언하고 일본으로 날아온 이 회장을 단독으로 취재했다. 세 시간에 걸친 장시간 인터뷰를 마친 기자는 장문의 기사를 그해 신동아 9월호에 싣는다. 

    이 회장은 신경영 선언 배경을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답한다. 

    “회장이란 사람이 비싼 돈 써 가며 임직원들을 해외에 불러내 새벽 3시, 4시까지 강연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기업의 위기 상황을 말해주는 겁니다. 

    국가로 보나 삼성으로 보나 현재가 보통 위기상황이 아닙니다. 정신 안 차리면 구한말 같은 비참한 사태가 올 수 있습니다. 이완용이 역적임은 분명해요. 그러나 그때 이완용이 없었어도 김완용, 박완용이 나왔을 거요. 상황이 그렇게 돼 있었다는 거죠. 정치도 썩어 있었고 국력도 제로에 가까웠잖아요. 직원들에게 계산시켜보니 당시 우리 국력은 경작지 기준으로 1000억 원이 안 됐어요. 

    언제까지 일본 욕만 하고 뭉개버리고 있을 겁니까. 세계에서 생산력이 제일 높은 곳이 일본입니다. 우리가 요대로 조금만 가면 3류 4류로 떨어지고 맙니다. 엔고가 돼도 수치상으로는 좋게 나오지만 생산, 기계 모두 일본에 의존하고 있으니 플러스 마이너스하면 없어요. 

    과거에 한일합방이 하드적인 것이었다면 앞으론 소프트적 경제적 합방이 눈앞에 보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또 다른 이완용이 나오는 걸 저는 볼 수가 없습니다. 

    일본을 보세요. 기계 로봇 할 것 없이 주요 부문에서 최소 30%에서 70~80%까지 세계 생산을 독점하고 있어요. 일본은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왜 못합니까. 저는 어릴 때부터 외국을 자주 다녀와서 일류가 뭐고 질이 뭔지 느낌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10년 정도가 중요한 시기인데 또 기회를 상실할 수는 없는 일이죠.” 

    -국내에서 해도 될 텐데 왜 하필이면 해외에서 회의를 하게 됐습니까.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를 않아요. 일류 선진국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나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라는 거지요. 해외지사에 몇 년씩 있는 사람들이 통역 하나 제대로 못해요. 원자력 발전소를 봐도 그냥 지나치고 말아요. 건설에는 몇 년이 걸리는지, 전력단가는 얼마고 환경은 어떤지, 직접 보고 위기의식을 느껴 변화의 필요성을 감지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해외에서 회의를 한다고) 수십 억 쓰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선진국의 기초가 뭔지 보고 자극 받으면 1석5조의 효과가 나와요. 

    지난 20년간 삼성은 매출이 450억 원 규모에서 35조 원으로 늘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그런 줄 알지만 착각입니다. 1970~1980년대 고도성장은 반도체, 주식회사, 컴퓨터의 출현에다 생산대국 일본에 인접한 지리적 이점이 있었고 소 팔고 논 팔아 교육을 시킨 결과가 한데 어우러진 것입니다. 그런데 삼성을 포함해 너나없이 제 잘난 덕으로 그렇게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이걸 깨우치려는 겁니다.” 

    -우리가 과연 선진국 대열에 올라설 수 있을까요. 

    “지금 세계는 업(業)의 개념이 급속도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과거 10년 동안 세상이 바뀐 것보다 앞으로 10년 동안 더 빨리 더 많이 바뀔 것입니다. 자동차를 한번 봅시다. 자동차에서 전기·전자 비중이 지금은 25%~30% 정도지만 앞으로 10년 뒤엔 50% 이상이 돼 전기·전자 연구 안 하면 외국과 경쟁하기 힘들게 됩니다. 일본의 도요타 닛산 혼다에서 매년 300~500여 명씩 전기·전자 기술자 뽑아 훈련시키고 있어요. 그러니 지금부터 삼성이 어디에 와 있고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동안 모르고 사는 게 편했는지 모르죠. 

    인프라를 보세요.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1975) 이후 인프라에 투자를 전혀 안 했습니다. 향후 2, 3년 놓치면 금세기의 변화는 마지막입니다. 정부와 국민, 기업이 삼위일체가 돼 뛰어야 합니다. (…) 지금 반도체 메모리, 핸드폰 초기 단계, 팩시밀리 정도를 앞서가고 있는데 이것도 투자 안 하면 몇 년 넘기기 힘들어요. 완전히 2류, 3류가 되지 않으려면 항만 공항 도로 투자 서둘러야 합니다. 얼마 전 아시아나 사고가 왜 났습니까. 조종사 과실도 물론 크죠. 그러나 기본 문제는 인프라예요. 보잉 737기면 최단 활주로 길이가 2000m, 폭 40m 이상이에요. 외국 가면 목포 같은 비행장은 제트 전투기용 외엔 없어요.” 

    홍콩에서 발간되는 아시아위크 1994년 6월 1일자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신경영 선언은) 미리 생각하거나 계획한 전략이 아니었다. 변화 없이는 2류 기업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충격요법을 쓰게 했다. 냉전시대 종식과 함께 경제전쟁 시대가 본격 시작됐으나 삼성은 물론 한국민 전체가 심각함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불면증과 식욕부진에 시달렸다

    2012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 2012’를 찾은 이건희 회장. [삼성전자 제공]

    2012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 2012’를 찾은 이건희 회장. [삼성전자 제공]

    생전에 그가 유일하게 펴낸 책인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1997)에는 신경영을 선언하기 직전까지 얼마나 불안과 긴장의 나날을 보냈는지가 담담하게 기록돼 있다. 

    “87년 회장에 취임하고 나니 막막하기만 했다. 79년에 부회장이 된 이후 경영에 부분적으로 관여해 왔지만, 그때는 ‘선친’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었다. 이제는 내가 모든 걸 짊어져야 하는데, 세계 경제는 저성장 기미가 보이고 있었고 국내 경제는 3저 호황 뒤의 그늘이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이런 상황인데도 삼성 내부는 긴장감이 없고 ‘내가 제일’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50년 동안 굳어진 체질이 너무도 단단했다. 계열사 간, 부서 간 이기주의는 눈에 보일 정도가 되어 소모적 경쟁을 부채질하고 있었다. 이런 삼성의 현실과 세기말적 변화에 대한 위기감에 등골이 오싹해질 때가 많았다.” 

    이 회장은 심한 불면증과 식욕부진에도 시달렸다고 고백한다. 

    “92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불면증에 시달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사업 한두 개를 잃는 것이 아니라 삼성 전체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엄습해 식욕도 사라졌다. 불고기를 3인분은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대식가인 내가 식욕이 떨어져서 하루 한 끼를 간신히 먹을 정도였다. 그 해에 체중이 10㎏ 가까이 줄었다.”

    앞서 소개한 1993년 9월호 신동아 인터뷰에서도 이런 치열한 내면의 일단을 보여준다. 

    -보통 때 댁으로 가시면 뭘 하십니까.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일뿐입니다. 그리고 TV뉴스를 매일 2시간씩 꼭 봅니다. ‘동아’ ‘조선’ 등 4대 일간지의 삼성 관계 기사를 모조리 읽고 특별한 이슈가 있으면 적어도 2개 신문의 논설과 해설을 꼭 읽죠. 경제잡지 7개, 일간경제지 2개를 보고, 골프잡지 1개, 자동차잡지 2개 건강잡지, 기술잡지, 그 외 국내 TV방송과 일본 NHK 기술 관계 다큐멘터리, 동물 관계 프로그램까지 보다 보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하루 수면시간을 4시간 정도로 줄인 게 1년이 됐습니다. 요즘은 긴장이 되니 하루 3시간, 어떨 때는 24시간도 잠 안 자고 견딥니다.” 

    그런데 이 회장의 이런 위기의식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그는 취임 직후인 1987년 이후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위기의식을 강조했다. 

    신동아 1988년 3월호는 ‘이 회장 취임 이후 매스컴 단독인터뷰’라는 제목으로 그의 육성을 실었는데, 이 회장이 신경영 선언 5년 전부터 대한민국의 미래를 거시적 안목으로 보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메시지를 내놓는다. 

    “역사적으로 보면 세기말에는 반드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18세기, 19세기가 다 그랬어요. 이제 20세기말을 우리가 보내는데, 느낌으로 무언가 대단한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변화에 겁먹을 필요는 없지요. 과감히 맞서 대처해 나가야 합니다.” 

    사실 그의 불안은 현재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불만족이나 걱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안팎의 국내외 상황에 대한 면밀한 통찰에서 나온 것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했던 그의 말이다. 

    “세계는 국경 없는 전쟁에 돌입했다. 선대(先代)가 경영했던 1987년 이전과 현 경영 상황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정치 외교 첨단기술 등 모든 분야가 급변하고 있다. 과거 50년의 변화보다 향후 10년에 있을 변화의 양과 질이 훨씬 더 많고 클 것이다. 기업조직, 연구소, 생산방식, 사고의 틀 모든 게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전 세계가 시장개방을 요구하고 있고 중국 같은 후발 개도국이 추격해오고 있다.” 

    이 회장은 이대로 가다가는 삼성을 넘어 대한민국이 3류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위기감까지 갖고 있었다. 

    “우리는 60년대에 경제기초를 닦았고, 70~80년대에 경제의 틀이 잡혔다. 80년대 중반까지는 모든 것이 쉬워서 단순 조립 사업으로 수출도 하고 먹고 살았다. 후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성공한 대표 나라가 한국이었다. 옛날에는 행정부와 전 국민이 위기의식과 헝그리 정신을 가지고 눈이 반짝반짝했는데 요즘은 모든 게 어려워졌는데도 그저 잘 되겠지, 몇 가지만 개선하면 옛날같이 되겠지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다. 이제는 모든 제품이 복합화 시스템화 차별화되지 않으면 팔기도 어렵지만 팔 수도 없다. 물건 하나 팔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국가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 국가·국민·재계 다 합쳐도 될동말동 어려워졌는데 (상황을) 아주 우습게 보고 있다. 조금만 정신 차리면 된다고 생각하고 착각하고 있다. 삼성은 물론 나라 전체가 이 시점에서 정신 안 차리면 인도네시아처럼 3류국으로 떨어진다. 난 이것이 눈에 보인다.” 

    27년 전 육성인데도 바로 오늘날의 상황을 보고 말하는 듯 생생하게 들린다. 당시 그의 눈에 비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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