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호

영등포 쪽방촌, 그 필사적인 여름나기[‘쪽방촌 간호사’ 동행 르포]

“낮 시간 실내 머물라”는 권고, 쪽방촌에선 무용지물

  •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1-08-17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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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어컨·창문 없는 한 평짜리 방

    • 골모길에선 열 식히려 바닥에 물 뿌려

    • ‘무더위 쉼터’로 가라? “거동 힘들어 못 가”

    • 집에서 쓰러진 온열질환자, 코로나19 탓에 다시 집으로

    • 영등포 쪽방촌 주민 500여 명, ‘안전 숙소’는 區 전체 26실

    • “창호일체형 에어컨 지원,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7월 29일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거리. [문영훈 기자]

    7월 29일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거리. [문영훈 기자]

    7월 중순 이례적으로 짧은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시작됐다. 서울 기준 7월 최고기온이 33℃를 넘는 폭염 일수가 절반(15일)이다. 야외에서 일하는 현장 근로자들이 온열질환으로 사망에 이르고, 농산물 가격이 치솟는 등 폭염으로 인한 피해가 이어졌다. 냉방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방에 사는 쪽방촌 주민들이 더위에 느끼는 고통은 차원이 다르다. 폭염이 한창이던 7월 말 8월 초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 쪽방촌을 찾았다.

    “열대야로 새벽에도 숨이 턱턱 막힌다”

    7월 29일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의 방 내부. 한 평(3.3㎡) 남짓 크기에 창문도 작다. [문영훈 기자]

    7월 29일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의 방 내부. 한 평(3.3㎡) 남짓 크기에 창문도 작다. [문영훈 기자]

    영등포 쪽방상담소에 따르면 영등포 쪽방촌에 사는 주민은 466명이다. 이중 65세 이상 노령층 인구는 176명으로 주민 3명 중 한 명이 노인이다. 고지혈증·고혈압·당뇨 등 다양한 기저질환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영등포 쪽방상담소 소속 간호사 신인숙 씨가 이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폭염과 혹한 기간에도 기저질환자 집을 방문해 건강상태를 체크한다. 7월 29일 더위가 한창이던 오후 2시, 신 간호사는 주민들에게 나눠줄 얼린 생수를 한아름 가방에 넣고 쪽방상담소를 나섰다. 기자는 그와 동행 취재를 했다.

    영등포 쪽방촌은 서울 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 바로 옆이다. 쪽방촌은 고층빌딩이 즐비한 길 건너 번화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쪽방촌 골목에 들어서니 아스팔트 바닥에 물기가 가득했다. 신 간호사는 “갑갑한 집 안 대신 골목에서 더위를 식히는 주민들이 많은데 바닥 열기라도 낮추기 위해 바닥에 물을 뿌리고 있다”고 했다. 비교적 흐린 날인데도 체감 온도는 33.7℃를 기록했다. 쪽방촌 길목에는 주민들이 간이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올해 덥기는 말도 못하네요.”

    12년째 영등포 쪽방촌에서 거주 중인 정모(69) 씨의 말이다. 바람이 통하는 골목이나 영등포 고가차도 밑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는 주민들과 달리 정씨는 방 안에 머물고 있었다. 시멘트가 흡수한 열기로 방 안 공기는 밖보다 후덥지근했다. 내부에 에어컨은 없다. 대다수 쪽방촌 주민들은 더운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에 의존한다. 정씨는 “빈혈을 앓고 있어 오래 서 있지도 못한다”고 집에 머무는 이유를 설명했다. 정씨처럼 기저질환이 있는 쪽방촌 주민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 보낸다.



    당뇨를 앓고 있는 쪽방촌 주민 최모(61) 씨의 방에는 약통이 가득했다. 방에는 두꺼운 이불이 깔려 있었다. 기자가 “이불을 걷으면 덜 덥지 않을까요”라고 묻자 최씨는 “당뇨 합병증으로 인해 바닥에 몸이 닿으면 아파서 견디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씨의 몸은 앙상했다. 열대야가 길어지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을 보내야 한다. 최씨는 “자다가 숨이 막혀 자주 깬다”며 “폭염이 찾아온 뒤 하루에 서너 시간 자는 게 일상”이라고 토로했다. 최씨의 방에는 가로 세로 길이가 30㎝인 창문이 있지만 옆 건물에 막혀 바람은 들어오지 않는다. 평균 월세가 20만 원인 쪽방촌에는 창문조차 없는 방도 많다.

     7월 29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고가차도 아래에 쪽방촌 주민들이 레토르트 식품·쌀·커피 등 후원 물품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영등포 쪽방촌 주민들은 폭염을 피하고자 영등포역 고가차도 아래 그늘이 있는 곳에 모인다. [문영훈 기자]

    7월 29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고가차도 아래에 쪽방촌 주민들이 레토르트 식품·쌀·커피 등 후원 물품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영등포 쪽방촌 주민들은 폭염을 피하고자 영등포역 고가차도 아래 그늘이 있는 곳에 모인다. [문영훈 기자]

    기록적 폭염, 실내 온열질환자 비율 두 배 급증

    기저질환이 있는 노령층은 온열질환에 더욱 취약하다. 온열질환은 열로 인해 발생하는 급성질환으로 두통과 어지러움, 피로감, 의식 저하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신속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사망에도 이를 수 있다.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온열질환으로 응급실에 실려 오는 환자 10명 중 9명은 고령층”이라며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나 폭염 대응에 어려움이 있는 지적장애인들이 냉방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실내에 머물다가 온열질환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영등포 쪽방촌에도 7월 말 응급환자가 발생했다. 신 간호사가 집에서 쓰러진 주민을 발견해 구급차를 불렀으나 응급실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체온이 높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의심 환자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신 간호사는 “다시 쪽방촌으로 돌아와 바람이 통하는 곳에 누이고 환자 체온을 낮췄다”고 했다. 남 교수는 “체온이 높은 온열질환 응급환자는 음압병실이 갖춰진 병원에서 치료한다”고 말했다.

    폭염특보가 발효되면 행정안전부는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내용의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하지만 실내가 항상 안전한 공간은 아니다. 쪽방촌처럼 환기가 원활하지 않고 냉방시설이 완비돼 있지 않은 곳에 머무르면 온열질환 발생 가능성은 커진다. 질병관리청 ‘온열질환 응급감시체계’에 따르면, 5월 20일부터 7월 28일까지 12명이 온열질환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3명은 냉방이 적절하지 않은 실내 공간에 있었다.

    폭염 강도가 세질수록 실내에서 발생하는 온열질환자 비율은 더 높아진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발간한 ‘2020 폭염영향보고서’에 따르면 2013~2017년까지 집에서 온열질환이 발생한 비율은 전체 온열질환 환자 중 7.6%를 차지했지만 기록적 폭염이 발생한 2018년 실내 온열질환 발생 환자는 13.8%로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김형옥 영등포 쪽방상담소장은 “폭염이 절정에 달하는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2~3주 만이라도 기저질환이 있는 고령층 주민들이 잠시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폭염특보 시 이용할 안전 숙소는 부족

    서울시는 ‘2021년 여름철 폭염종합대책’을 내놨다. 주거 취약계층인 쪽방촌 주민들을 위한 대책도 있다. 쪽방촌에 만들어진 24시간 운영 무더위 쉼터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영등포 쪽방촌 거주자 천모(81) 씨는 무더위 쉼터를 이용해 본 적이 없다. 천씨는 “다리가 불편해 한 발짝 떼기가 무섭다”며 “온몸에 땀띠가 났지만 선풍기를 틀어놓고 버틴다”고 말했다. 신 간호사는 “쪽방촌 주민들에게 무더위 쉼터의 존재를 알리고 있지만 대로를 건너와야 해서 몸이 불편한 분들은 잘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문을 닫는 경로당이나 공공시설을 대신해 문을 연 안전 숙소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영등포구청은 만 65세 이상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을 대상으로 폭염특보가 내려진 날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이용할 수 있는 안전 숙소를 운영하고 있다. 주민센터를 통해 신청한 이들에게 폭염특보가 내려진 당일 비어 있는 관내 호텔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영등포 쪽방촌에 거주하는 노령층만 176명이지만 영등포구가 제공하는 안전 숙소는 최대 26개실이다. 쪽방촌이 있는 다른 지자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사는 노령층 인구만 800명에 달하지만 용산구가 운영하는 안전 숙소는 12개실에 불과하다”며 “폭염에 취약한 고령층을 위한 제대로 된 대책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더욱 적극적인 폭염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의 설명이다.

    “대다수의 무더위쉼터는 주민센터나 문화시설 등 기존 공공시설을 개방해 운영하는데, 평소에 공공기관을 방문하지 않는 이들은 잘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기는 어렵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안전 숙소도) 신청을 받는 방식이 아니라 폭염에 취약한 주거 취약계층을 미리 선별해 연수원 같은 공공시설에 잠깐 거주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창문형 에어컨 설치…주거 개선책을 찾아라”

    7월 11일(현지시간) 미국 서부 데스밸리의 비공식 기온이 56℃를 기록했다. [AP 뉴시스]

    7월 11일(현지시간) 미국 서부 데스밸리의 비공식 기온이 56℃를 기록했다. [AP 뉴시스]

    문제는 앞으로 폭염과 같은 이상기후가 더 잦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8월 9일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협의체(IPCC)가 승인한 6차 평가 보고서는 “2040년까지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1.5℃ 상승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평균 온도가 1.5℃ 상승하면 반세기마다 한 번꼴로 찾아오는 ‘극한 고온’ 현상 빈도가 8.6배 높아질 수 있다. 올해도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 현상이 감지됐다. 7월 11일 미국 서부 데스밸리 국립공원에서는 기온이 56℃까지 치솟았다. 7월 중순 중국 허난성에서는 사흘간 기존 연간 강수량에 맞먹는 폭우가 쏟아졌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의 말이다.

    “올해 미국 서북 부지역, 시베리아 동북부 지역에서 발생한 폭염은 지금까지의 기후 예측 범위를 벗어난 것이다. 유럽과 중국에서 발생한 기록적인 폭우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이상기후 빈도는 늘어날 것이다.”

    기후변화는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 황 교수는 “폭염으로 피해를 본 이들을 보면 주거 취약계층이나 기저질환이 있는 고령층, 건설 현장 등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 등이다. 농촌에서는 외국인 노동자가 여름철 온열질환으로 사망하기도 한다. 낮 시간에 ‘실내에 머물라’거나 ‘작업을 중단하라’는 권고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다. 온열질환 환자 발생 원인을 면밀하게 분석해 각 상황에 맞는 적극적인 대응 방침을 제시해야 한다.”

    영국은 2008년 기후변화법(Climate Change Act)을 제정해 5년마다 ‘기후변화 위험평가’를 시행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사회적 리스크를 점검하는 것이다. 한국은 이제 시작 단계다. 2017년 조항이 신설된 보건의료기본법 37조 2에 따라 질병관리청장은 기후변화가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5년 마다 조사·평가해야 한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앞으로 폭염과 같은 기후변화로 인한 주거 취약계층의 피해를 막으려면 보다 중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무더위 쉼터·안전 숙소같이 주거지에서 벗어나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방안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대신 가격이 저렴한 창호일체형 에어컨을 지원해 주는 등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에어컨조차 설치하기 어려운 건물에 사는 이들도 많은데 이 경우에는 서울 동자동이나 영등포처럼 공공개발을 통해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정책 목표를 수정해야 한다.”

    #폭염 #쪽방촌 #기후위기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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