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한 전복회를 오독오독 씹으면 입 안에 바다 맛이 가득해진다. [GettyImage]
오독오독 살집 속에 풍성한 바다 냄새
내가 어릴 때는 전복이 정말 비쌌다. 비싸서 그랬는지 대체로 별다른 가공 없이 회로 먹었다. 전복회를 처음 먹은 건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네 가족과 흑산도로 가던 배 안에서다. 얄팍하게 썰어 놓은 전복 회는 생각보다 단단하다. 내 입엔 너무 딱딱했다. 오독오독 힘줘 살집을 씹으니 바닷물 냄새가 나고, 참기름장이나 초고추장과 뒤섞이는 중에 희미한 맛이 느껴졌다. “귀한 거니 맛보라”고 권하는 어른들 말씀에 입에 넣긴 했는데, 씹어 삼키는 내내 “이걸 왜 먹지”라는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날 내 입에 처음 들어온 수많은 날 것들, 예를 들면 해삼, 멍게, 개불, 성게알, 전복 가운데 가장 개성 없고 불친절한 게 전복 같았다. 그날은 온통 비린 것밖에 없는 선상에서의 식사가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지금의 내가 그 식탁에 앉았다면 어른들에게 질세라 호로록호로록 잘만 먹었을 텐데.2000년대 중반 이후 양식이 활발해지며 전복은 큰 부담 없이 맛볼 수 있는 식품이 됐다. 양식이라 해도 풍작과 흉작이 있어 가격이 오르내리지만, 이제는 별식으로 사먹을 만하다. 전복 한 알이 여물기까지 바다에서 보내는 시간이 18~24개월이란 점을 고려하면 결코 비싼 값은 아니다.
15미 내외 크기 전복을 고르면 죽·찜·탕·구이 등 여러 가지로 요리해 먹기 좋다. [GettyImage]
전복은 클수록 비싸다. 크다고 바다에서 더 오래 산 것은 아니고, 맛이 더 좋다는 보장도 없지만 시장 가격이 그렇다. 내가 동네 슈퍼에서 자주 만나는 전복은 양식한 참전복으로 크기는 15미 내외다. 이 정도를 고르면 가격도 크게 부담되지 않고, 죽·찜·탕·구이 등 여러 가지로 요리해 먹기 좋다.
꼬물꼬물 활전복 간단히 손질하기
제일 즐겨 먹는 전복죽을 끓이려면 활전복을 사야 한다. 살아 있는 전복을 깨끗이 문질러 씻는다. 특히 배 부분이라고 느껴지는 누르스름한 면을 잘 닦자. 거기가 전복 발이다. 바다를 떠나 서울까지 오면서 여기저기 많이도 붙어 움직였을 테다. 옆으로 난 주름 부분도 꼼꼼히 솔로 문질러 닦는다. 다음은 분리. 단단한 쇠숟가락을 껍데기와 살 사이에 넣고 힘주어 떠내듯 살집을 뗀다. 살집이 분리됐다 싶으면 내장이 찢어지지 않게 살살 뜯어낸다. 조금 수월한 방법이 있다. 넓은 프라이팬에 야트막하게 물을 부어 끓인다. 전복 껍데기가 바닥으로 가도록 넣고 10~15초 정도 뒀다가 꺼낸다. 이후 한 김 식혀 살을 떼면 힘을 덜 줘도 된다. 내장을 익히지 않으려고 이렇게 손질하는 것이다. 전복을 익혀 먹을 거라면 끓는 물에 통째로 넣고 10~15초 정도 데쳐내면 분리가 더욱 쉽다.내장을 잘라 낸 다음 살집이 얇은 쪽 끝을 꾹 누르면 이빨이 보인다. 이 부분을 바깥으로 저며내듯 자르면 길고 하얀 식도가 따라 나온다. 내장 귀퉁이에 모래주머니가 있는데 나는 늘 떼지 않고 먹지만 아직 흙이나 모래를 씹은 적은 없다.
불린 찹쌀에 전복 내장을 잘게 잘라 넣고 살살 으깨며 섞은 뒤 참기름에 달달 볶아 전복죽을 끓이면 고소하고 향긋한 맛이 일품이다. [GettyImage]
“몰래 조미료를 넣었나?!” 먹어보면 깜짝 놀라는 전복구이
찜이나 구이는 전복죽에 비하면 간단한 편이다. 나는 냄비에 채반을 넣고 전복살을 껍데기에 올려 쪄 먹는다. 전복 내장은 미리 손질해 죽에 양보하는 편이다. 찜에 정성을 더하자면 다시마를 채반 바닥에 깔고, 전복 위에 무를 얇게 썰어 올리기도 한다. 이러나저러나 찐 전복은 놀랄 만큼 부드럽고, 향이 좋다. 그에 비하면 연하게 올라오는 단맛과 구수함은 겸손한 편이다.칼집 낸 전복 살에 살짝 녹인 가염 버터를 발라 오븐에 구우면 향긋 고소한 전복구이가 완성된다. [GettyImage]
최근 완도 전복 가격이 뚝뚝 떨어진다고 들었다. 공급에 비해 수요가 적어서란다. 자연이 언제 전복 가격을 다시 올릴지 모른다. 애 타는 어민 걱정을 줄여주고, 살 찔 염려 없이 온갖 에너지를 몸에 가져다주는 전복 맛을 볼 때가 바로 지금이다.
#전복손질법 #전복죽 #전복버터구이 #전복찜 #신동아
전복찜은 만들기는 간편한데 놀랄 만큼 부드럽고, 향이 좋다. [Getty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