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인앱결제방지법’ 국회 통과 의미
플랫폼 사회 진입은 패러다임 전환
기존에 찾지 못한 수요를 공급과 결합
한국은 몇 안 되는 토종 플랫폼 보유국
이점 살려 G2와 다른 방식으로 규제해야
네이버, 카카오, 쿠팡 같은 플랫폼 사업자 규제 논의
플랫폼 독과점은 피할 수 없는 흐름
‘똑똑하고 존경받는 기업’ 되도록 소비자가 유도해야
[홍중식 기자]
‘구글갑질방지법’ 제정으로 앱스토어를 보유한 글로벌 플랫폼이 자사의 결제방식을 강요하는 행위에 제동이 걸렸다. 법안 통과로 앱 마켓 사업자가 특정 결제방식을 강제하거나 앱 심사를 부당하게 지연하는 행위를 할 수 없게 됐다.
이번 법안 통과에 대한 외신의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법안 통과 직후 CNN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유럽과 영국이 참고할만한 선례로 한국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제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빅테크 기업의 자사 플랫폼 시장지배에 균열(dent)을 낸 세계 최초의 법안”이라고 평했다.
‘신동아’는 8월 5일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와 인터뷰를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급격하게 성장한 플랫폼 기업 규제 방안에 대한 내용과 새로운 형태의 노동과 시장 독과점에 대한 제도적 변화에 대해 물었다. 9월 2일에는 구글갑질방지법에 대한 추가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8월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구글갑질방지법’이 재석 188명 중 찬성 180명, 기권 8명으로 통과되고 있다. [뉴시스]
“플랫폼은 하나의 산업이 아니다”
-사회를 연구하는 사회학자가 정보기술(IT) 분야인 플랫폼을 연구 대상으로 삼은 이유가 궁금하다.“약 20년 전부터 조직이론을 연구하는 사회학자들 사이에서 플랫폼이 화두로 떠올랐다. 플랫폼은 사람 간의 네트워크를 획기적으로 바꿔놓는다. 전통적인 네트워크는 도로망처럼 이어진다. 반면 플랫폼은 이른바 ‘허브 앤드 스포크(hub & spoke)’ 형태다. 하나의 중심을 두고 여러 방향으로 뻗어가는 항공망이나 자전거 바퀴 모양을 떠올리면 된다. 조직을 연구하는 학자가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분야다.”
-네트워크를 변화시키는 플랫폼 산업은 기존 산업과 어떻게 다른가.
“플랫폼은 하나의 산업이 아니다. 글로벌 플랫폼 기업이 성장하면서 모든 산업을 망라하는 시장이 변하고, 사회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있다.”
이 교수는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 ‘알리바바’에서 구매했다는 태블릿PC용 전자펜을 예시로 들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 전자펜은 애플펜슬보다 필기감이 더 좋고 값은 5분의 1밖에 안 된다. 이 펜을 원하는 사람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다. 전통적인 시장 환경에서는 이 펜을 생산하는 업체가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가까이서 수요자를 못 찾으면 제품을 대량 생산해 봤자 물건이 창고에만 쌓일 테니까. 그런데 플랫폼 경제가 성장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플랫폼은 여러 곳에 있는 펜 수요자를 한군데로 모으는 힘을 발휘한다. 그들과 펜 생산업체를 연결해 준다. 이처럼 기존에 발굴하기 힘들던 수요까지 찾아내 공급자와 이어주는 게 플랫폼의 특성이다.”
-앞으로 플랫폼은 어떤 방식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보나.
“플랫폼은 기존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지 못한 방식으로 시장을 지배한다. 플랫폼의 특징은 사용자가 많을수록 효용이 커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도시에 ‘우버’ 사용자가 증가하면 우버 택시를 모는 기사 수가 늘고, 그 결과 탑승객 대기 시간이 줄어든다. 결과적으로 더 많은 승객이 우버를 이용하게 된다. 반면 사용자가 적은 플랫폼은 도태된다. 플랫폼이 활성화하면 독과점 시장이 생기기 쉽다. 이런 환경에서 대형 플랫폼 기업은 시장 지배를 넘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달라.
“플랫폼은 소비자가 자기 플랫폼에 더 오래 머물게 해야 발전한다. 그러니 자체 알고리즘을 통해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사용자의 의사 결정 패턴을 예측해 사용자가 선호할 만한 정보를 계속 제공한다. 이렇게 플랫폼 추천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필터 버블’에 갇히게 된다. 이 문제는 제품 및 서비스 구매 과정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정보 접근 면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필터 버블은 플랫폼 사용자가 자기 관심사에 맞게 ‘필터링 된’ 정보에 갇히는 현상을 말한다. 이 교수는 페이스북 등 SNS 플랫폼에서 보수적인 뉴스를 많이 보는 사람은 점점 자기 생각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접하게 되는 것을 예로 들었다. 진보적인 의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역시 관련 정보에만 노출된다. 최근 미국에서는 필터 버블이 초래한 정치적 양극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 교수는 “한국에서도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지 않나”라며 “세계 각국에서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G2 따라가지만 말고 독자 노선 추구해야
-플랫폼이 야기하는 폐해를 막을 방법은 없나.“앞서 언급했듯 플랫폼은 하나의 산업이 아니다. 기존 산업을 규제하던 틀은 플랫폼 앞에서 무용지물이다. 이제 새로운 규제 틀을 짜야 한다. 가보지 않은 길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참고할 만한 선진국은 없나.
“현재 세계 주요 플랫폼은 G2가 양분하고 있다. 미국은 이른바 ‘GAFA’라고 하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을 갖고 있다. 중국에는 ‘BAT’, 즉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가 있다. 이 두 나라는 서로 다른 모델로 플랫폼을 규제한다.”
-중국은 어떤 모델을 가지고 있나.
“중국은 2016년 ‘알파고’가 바둑 대국에서 이세돌 선수에게 승리하는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듬해 중국공산당은 2030년까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인공지능(AI) 중심 국가로 성장하겠다고 공표했다. 그 뒤 미국 플랫폼의 자국 시장 진입을 막고, 국가적인 역량을 투입해 자체 플랫폼을 키워냈다. 그게 바로 BAT다. 이 과정에서 중국 플랫폼들은 서구 플랫폼 기업이 수집하기 어려운 사생활 정보와 생체 데이터까지 끌어모아 광범위한 빅데이터를 만들었다. 당의 묵인과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중국 플랫폼 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중국은 빅데이터를 이용한 감시 사회에 더 가까워졌다. 중국이 플랫폼을 사실상 정부 영향력 아래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중국이 2009년부터 운영하는 ‘사회적 신용평가 제도’를 한 예로 들었다. 중국 정부는 범법자를 신고하거나, 자원봉사 등 선행을 한 사람에게는 가점을 부여한다. 탈세, 당 비방 게시물 포스팅, 범법행위자에겐 벌점을 부여한다. 그 결과물인 ‘사회적 신용 점수’가 낮을 경우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업이 어려워진다. 대중교통, 호텔 등을 이용할 때도 불이익을 받는다. 이 교수는 중국 정부가 플랫폼 기업이 구축한 AI 기술을 활용해 시민에 대한 감시를 날로 정교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어떤 길을 걷고 있나.
“미국에서는 국가가 아니라 시장이 플랫폼을 만들어냈다. 실리콘밸리의 혁신적인 기업이 플랫폼화 물결에 올라타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문제는 이렇게 성장한 기업들이 시장 질서를 교란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페이스북은 경쟁자가 될 것 같은 기업을 인수하며 몸집을 불렸고, 구글은 수익 창출을 위해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사에 받는 수수료를 하루아침에 크게 올리는 등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아마존은 수많은 자영업자를 문 닫게 했다. 반(反)독점 정서가 강한 미국에서 이것을 그대로 두고 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리나 칸을 연방거래위원회(FTC) 수장에 임명한 것은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리나 칸의 등장, 독점의 문제
역대 최연소(32) 나이로 연방거래위원회(FTC) 의장에 임명된 리나 칸 컬럼비아 로스쿨 교수. 그는 예일대 로스쿨에 재학 중이던 28세 때 ‘아마존 독점의 역설’이라는 논문을 출간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뉴스1]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네이버, 카카오, 쿠팡 등 플랫폼 사업자를 규제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다. 우리나라는 미·중 가운데 어느 모델을 채택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나.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이 중국을 따라갈 수는 없다. 한국은 독자적인 플랫폼을 가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다. 혁신적이고 역동적인 미국 모델의 장점을 받아들이되 독자적인 노선을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한국은 전선이 두 개라고 볼 수 있다. 토종 플랫폼은 국내법에 따라, 필요할 경우 새로운 법을 만들든가 기존 법을 바꿔가면서 규제하면 된다. 하지만 해외 플랫폼은 좀 다른 이야기다. 한국인이 많이 이용하는 플랫폼인 유튜브는 국내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에 망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는다. 외국계 플랫폼을 규제할 만한 도구가 없어 돈을 내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최근 참고할 만한 판결이 나왔다. 6월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ISP SK브로드밴드와 OTT 플랫폼 넷플릭스 사이 소송에서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에 망 사용료를 지급할 의무를 진다”고 판결했다. 그동안 넷플릭스를 비롯한 해외 기업들은 명확한 법적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관련 비용을 지급하지 않은 채 인터넷망을 사용해 왔다. SK브로드밴드가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넷플릭스는 지난해 “SK브로드밴드에 망 이용료를 낼 의무가 없다”며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패소한 것이다. 넷플릭스가 이 판결에 불복해 7월 15일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함으로써 양사의 다툼은 2라운드로 이어지게 됐다.
소송 이후 업계의 눈은 유튜브를 운영하는 구글로 쏠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발표에 따르면, 구글은 국내 인터넷 트래픽의 25.9%를 차지한다. 그러나 넷플릭스와 마찬가지로 망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내 ISP들이 인터넷 트래픽의 4.8%를 사용하는 넷플릭스와는 맞설 수 있어도 이미 너무 큰 트래픽을 차지하는 구글에는 동일하게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망 사용료 분쟁으로 유튜브 송출에 차질이 빚어지면 소비자 불만이 폭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의 트래픽은 1.8%, 카카오의 트래픽은 1.4%에 불과하다.
이 교수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일본, 유럽연합(EU), 동남아 국가와 공조해 새로운 규제의 틀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8월 31일 국회에서 통과된 ‘구글갑질방지법’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이 나아가야 할 독자적인 노선에 첫 발을 뗐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글로벌 플랫폼이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현상은 지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이번 법안은 여전히 국내의 시각에 머물고 있다. 이제 첫 발을 뗏으니 국제적인 공조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다.”
“규제해야 할 건 못 하고 있고, 안 해야 할 건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은 인간을 어느 때보다 플랫폼에 의지하게 만들었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본주의가 가보지 않은 길 앞에 놓여 있다”고 평가했다. [GettyImage]
“그렇지는 않다. 현재 우리 정치권에 다가올 변화를 글로벌한 스케일로 바라보며 플랫폼의 미래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정부도 여전히 고도성장기의 발전 국가 모델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규제하는 방식을 보면 자기들이 기업의 모든 걸 다 알아야 하고 일일이 정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긴밀하게 지내야 할 일본과의 관계를 정치적 이익을 좇아 이 모양으로 만든 것만 봐도….”
-말씀한 대로 우리나라는 신생 기업이 생겨나기 어려울 정도로 규제한다는 주장이 있다. 반대로 플랫폼 기업들이 공정경쟁을 저해하며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하는데도 전혀 규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누가 맞는 말을 하고 있다고 보나.
“둘 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간단히 말해 해야 할 건 못 하고 있고 안 해야 할 건 하고 있다. 새로운 산업을 규제하려면 사회적 토론과 경제적인 비용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덮어놓고 금지하면 혁신을 가로막을 수 있다. 하지만 사업 모델이 사회 전반에 해악을 끼치는 것으로 판명되거나 소수가 불특정 다수의 피해를 발판 삼아 이익을 챙기는 구도가 만들어지면 과감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규제가 불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무조건적인 규제 완화는 반대한다. 언급했다시피 플랫폼 기업의 성장은 사회 패러다임을 바꾸는 큰 변화다. 일개 기업이 해결할 수 없는 사회문제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네이버가 댓글 창을 만든 건 사용자 수를 늘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댓글 창에서 ‘드루킹 사건’ 같은 사회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나. 이런 문제는 기업이 독자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될 수 있다.”
-몇몇 플랫폼이 시장 전체를 장악하는 독과점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소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소비자가 사회적 약자를 착취하거나 시장 규칙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무분별하게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을 응징해야 한다는 의미다. 기업이 자기 이익만 추구하고 사회적 책임은 방기하는 ‘얄미운 기업’이 아닌, 성과도 좋고 사회적 가치 또한 추구하는 ‘똑똑하고 존경받는 기업’이 되도록 소비자가 유도해야 할 것이다.”
-플랫폼이 성장할수록 소비자는 플랫폼에 크게 의존하게 된다. 플랫폼 탈퇴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뜻인데 소비자가 플랫폼 기업을 응징하는 게 가능할까.
“최근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를 고려해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 열풍에서 볼 수 있듯이 요즘 소비자는 기업윤리에 어느 때보다 민감하게 반응한다. 또 한국은 운이 좋게도 주요 플랫폼 기업에 모두 경쟁자가 있다. 네이버가 부당한 행위를 하면 카카오로 가고, 쿠팡이츠가 말썽이면 배달의민족으로 가면 된다.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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