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시장규모, 2030년 600兆
“편의점에 상당한 타격 줄 것”
10년 전 ‘10원 전쟁’ 아른거려
서비스 차별화 아닌 속도에 치중
‘골목상권 침해’ 논란 유발 우려도
퀵커머스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쿠팡이 ‘쿠팡이츠 마트’를 통해 본격적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7월 14일 서울 송파구 쿠팡 마이크로 풀필먼트 센터 앞에서 쿠팡이츠 오토바이가 대기하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지난 5월 24일 서울의 한 대학가에서 배달의민족, 요기요, 부릉 등의 배달 라이더들이 음식을 배달하고 있는 모습이다. [뉴스1]
국내에서 퀵커머스 시장이 주목받기 시작한 시점은 배달 앱 배달의민족이 ‘B마트’를 선보인 2019년이다. B마트는 신선식품이나 생필품을 주문하면 30분 내에 배송해 주는 서비스다. B마트는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30여 개의 ‘도심 물류센터’를 만들었다. 제품을 선별해 보관해 뒀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즉시 배달할 수 있게 했다. B마트는 서비스 출시 2년 만인 지난해 매출액 1450억 원, 주문 건수는 1000만 건 이상을 기록하면서 성공 가도를 달렸다.
그러자 경쟁사들이 너도나도 뛰어들기 시작했다. 배달 앱 요기요가 지난해 ‘요마트’라는 서비스를 내놨고, 쿠팡이 올해 ‘쿠팡이츠 마트’를 시작했다.
기존 점포 일부 ‘물류센터’ 활용
퀵커머스의 배달 품목은 주로 생필품이다. 편의점이나 슈퍼마켓, 대형마트가 보유한 수요를 겨냥한 서비스다. 관련 업체들도 부랴부랴 퀵커머스 서비스를 시작하거나 준비하고 있다.편의점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의 경우 참여형 보도배달 플랫폼인 ‘우리동네 딜리버리(우딜)’를 선보였다. 일반인이 신청해 건별로 제품을 배달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다. GS리테일은 최근 매물로 나온 요기요 인수도 검토하고 있다. 요기요는 배달 앱 서비스지만, 많은 배달원을 인프라로 보유하고 있는 만큼 퀵커머스를 강화하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형마트와 백화점을 운영하는 유통 대기업들도 뛰어들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신선식품을 주문한 뒤 30분 내에 배달해 주는 서비스를 선보였고, 신세계와 롯데 역시 기존 오프라인 점포를 활용한 퀵커머스 서비스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달 대행업체인 부릉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는 신선식품 새벽배송 업체인 오아시스마켓과 합작법인 ‘브이’를 출범했다. 퀵커머스 시장에 도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대부분 유통업체가 퀵커머스에 뛰어드는 것은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글로벌 배달 앱 업체 딜리버리히어로는 전 세계 퀵커머스 시장규모가 오는 2030년이면 600조 원 수준이 되리라 내다본 바 있다.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비대면 소비’가 일상화하면서 생필품을 퀵커머스로 받는 수요 역시 늘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통업체들이 주문 제품을 빠르게 배달해 줄 수 있는 역량을 이미 어느 정도 갖췄다는 점도 시장 성장의 동력이다. 지난 수년간 국내 배달 앱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라이더(이륜차 배달원)’ 시장이 커졌다. 전문 배달원 수가 늘었을 뿐 아니라, ‘인프라’라고 할 만한 수준으로 시장이 체계화하면서 빠른 배송이 가능해졌다. 배달의민족이 퀵커머스 시장을 개척할 수 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도심 곳곳에 ‘물류센터’만 만들어두면 기존 배달원들을 활용해 생필품 역시 배송해 줄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서 ‘B마트 서비스’가 시작됐다.
기존 유통업체들이 점포를 새롭게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퀵커머스를 가능하게 했다. 롯데와 신세계,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운영하는 업체들은 기존 점포의 일부를 ‘물류센터’로 만드는 작업을 발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 시장이 빠르게 커지면서 도심 곳곳에 위치한 점포를 ‘창고’로도 활용하겠다는 발상이다.
이 경우 기존 오프라인 위주의 업체들은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배송 인프라를 갖출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유리한 고지에 섰다고 평가받는다. 그간 오프라인 점포는 ‘온라인 시대’에 불필요한 공간으로 여겨졌는데, 반전이 벌어진 셈이다.
편의점 GS25가 운영하고 있는 ‘우리동네 딜리버리’ 서비스. [GS25 제공]
“편의점 중장기 성장성 좌우”
생필품이나 신선식품을 한 시간 내에 배달해 주는 퀵커머스 서비스는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디딘 만큼 시장을 선점하는 게 중요하다. 또 경쟁사들이 줄줄이 배송 속도를 올리고 있는데 두 손 놓고만 있을 수는 없다.유승우 SK증권 연구원은 “퀵커머스는 국내 커머스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퀵커머스가 편의점이 점유하던 수요를 끌어들일 것으로 전망했다. 유 연구원은 “퀵커머스는 편의점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오프라인 점포를 거점으로 대응하는 편의점과 그렇지 않은 편의점의 중장기적 성장성이 좌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후발주자인 쿠팡은 지난 7월 초부터 서울 송파구 일부 지역에서 ‘쿠팡이츠 마트’를 테스트하고 있다. 시범운영이긴 하지만 배송 시간을 10~15분으로 단축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경쟁사와는 달리 이 서비스만 전담하는 배송 기사를 물류센터에 상주시킨다는 점이 속도의 비결이다. 전담 기사를 두는 것은 당연하게도 돈이 더 드는 일이다. 자금을 들여서라도 더 빠른 속도로 승부를 보겠다는 속셈이다.
B마트의 경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B마트는 사업 초기 300여 개에 불과하던 취급 품목을 최근 7000여 개까지 늘렸다. 카테고리를 늘려 소비자들이 B마트를 통해 장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전략이다.
퀵커머스에 대한 투자도 늘고 있다. 메쉬코리아는 지난 7월 말 KB인베스트먼트와 KDB산업은행으로부터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메쉬코리아는 이로써 올해에만 1000억 원가량의 자금을 확보했다. 메쉬코리아는 투자금을 퀵커머스 인프라 증설에 사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퀵커머스 시장의 중장기적 성장성에 의구심을 보이는 이들도 있다. 유통업체들이 경쟁을 위한 경쟁에 빠져 출혈만 커지고 얻는 것은 크지 않으리라는 지적이다.
퀵커머스에는 많은 인프라가 필요하다. 수많은 배달원은 물론 곳곳에 물류 센터를 만들어야 한다. 당장은 이미 갖춘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이려면 지금보다 주문 가능 물품의 종류를 늘리거나 서비스 지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이유로 퀵커머스 시장경쟁이 대대적인 ‘쩐의 전쟁’이 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이 이렇게 빠른 배송을 간절히 원하는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퀵커머스 역시 음식 배달과 마찬가지로 ‘배달료’를 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이미 골목골목에 있는 편의점에 가지 않고 배달료를 내면서 생필품을 사려는 수요가 많을까 하는 지적이다.
소비자는 ‘빨리빨리’에 민감할까
일부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2010년 벌어진 ‘10원 전쟁’을 떠올리기도 한다. 당시 대형마트 업계 1위 이마트가 일부 생활필수품을 최저가로 판매하겠다고 선언했다. 경쟁사가 가격을 따라 내리면 단돈 10원이라도 더 내리겠다는 마케팅을 시작했다. 경쟁사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 역시 ‘우리도 10원이라도 더 싸게 팔겠다’고 선언하며 맞불을 놨다.경쟁은 오래가지 못했다. 서로 최저가를 책정하다 보면 이론적으로는 제품 가격이 0원이 돼야 한다. 경쟁을 지속하려면 수익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극단적인 경쟁이었다. 해당 업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성’을 되찾고 경쟁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경쟁사보다 무조건 싸게 팔겠다고 외치는 걸 그만두고 독자적인 상품 경쟁력을 내세우는 방식으로 선회했다.
이 경쟁이 의미가 없던 이유 중 하나는 소비자들이 생각보다 가격에 민감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소비자들은 10원 더 싸다고 해당 점포를 굳이 찾지는 않았다. 일부러 비싼 점포를 찾지도 않지만, 대체로 저렴하다는 인식만 있으면 거부감 없이 장을 본다. 경쟁이 너무 치열해지면 소비자조차 신경 쓰지 않는 무의미한 싸움이 돼버린다는 의미다.
한 대형마트 업체 관계자는 “당시 유통업체 대부분이 가격을 낮추자 소비자의 가격 민감도가 떨어졌던 게 사실”이라며 “어딜 가도 저렴하다는 인식이 확산하니 유통 기업 입장에서는 가격으로 차별화하는 게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배송 속도 역시 어느 업체가 얼마만큼 빠르냐에 대한 소비자의 민감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앞서 차별화한 배송 서비스로 주목받은 업체들 역시 속도만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서비스를 선보여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 배송 속도 경쟁에 불을 댕긴 건 쿠팡의 ‘로켓배송’으로 여겨진다. 기존 택배 서비스에서는 평균 2~3일이 걸리던 배송 시간을 로켓배송은 ‘익일배송’으로 바꿔놨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속도에만 열광한 게 아니다. 로켓 배송은 ‘쿠팡맨’을 내세워 전에 없던 ‘친절한 택배 서비스’로 소비자의 마음을 잡았다. 쿠팡맨들은 상품을 배송해 주면서 고객들에게 ‘인증 사진’을 찍어 보내는 등의 서비스로 이슈가 됐다.
신선식품 새벽배송 서비스를 처음 선보인 마켓컬리는 강남 주부들의 필수 앱으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강남 지역을 기반으로 ‘프리미엄 신선식품을 선별해 배송해 준다’는 점을 내세운 전략이 주효했다. 반면 최근 주목받는 퀵커머스의 경우 대부분 ‘속도’에만 치중돼 있다는 점이 문제다.
“골목상권 붕괴 필연적”
시장이 커질수록 퀵커머스가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논란도 커질 전망이다. 한국편의점주협의회는 지난해 10월 B마트와 요마트가 줄줄이 출시되자 성명을 내고 “슈퍼마켓과 편의점, 중소형 마트 등 전통적으로 소매업종에서 취급하는 식재료와 생활용품, 애견용품을 집중 공급하고 있어 골목상권의 붕괴가 필연적”이라고 지적했다.B마트와 요마트의 경우 주로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 경우 제조사들과 판매 채널을 연결하는 도매상 역시 타격이 불가피하다. 협의회는 “중간도매상도 더는 설 자리가 없어 유통망 붕괴가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협의회에 따르면 B마트 서비스가 출시된 이후 서울의 한 편의점 점포는 2020년 8월 기준으로 전년 11월보다 평균 배달 주문액이 절반가량 줄었다.
아직은 퀵커머스 시장이 막 첫발을 내디딘 터라 정치권에서 적극적으로 관심을 나타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동네 슈퍼마켓과 편의점이 타격을 받기 시작하면 규제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퀵커머스는 G마켓이나 쿠팡 등 이커머스 업체들과 달리 도심 곳곳에 물류센터를 짓고 라이더들이 움직이기 때문에 골목상권 침해 논란은 필연적”이라며 “규제가 본격화하면 시장이 위축할 수 있다는 사업 리스크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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