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H. 오바마 지음, 노승영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920쪽, 3만3000원
그가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2008년,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한 출판사 주관으로 시민강좌를 열었다. (아마도) 나는 최연소 수강생이었다. 최 교수가 ‘꿈’ 원서(原書)를 손에 쥔 채 꺼낸 말이 잊히지 않는다. “인종 문제를 감동적인 문학작품처럼 다룬 걸작이다.”
책을 사서 이틀 밤을 새워가며 읽었다. 문장마다 묻어나는 호소력에 오롯이 사로잡힌 거다.
“1960년대 중반 저녁 시간에 방영되는 미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서 흑인 주인공인 코스비는 TV 시리즈 ‘아이 스파이’에 나오는 여자들을 차지할 수 없으며, ‘미션 임파서블’에서 흑인이 등장하는 공간은 주로 지하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꿈’)
‘약속의 땅’ 도입부는 ‘꿈’의 데칼코마니다. 혼혈인 그는 백인에게는 흑인, 흑인에게는 백인의 피가 섞인 흑인이었다. 한때 지구상 최고 권력자였던 그는 자신을 “모든 곳에서 왔으면서도 어디에서도 오지 않은 사람”이라 규정한다. “많은 질문의 핵심에는 인종 문제가 있었다. 왜 흑인은 프로 농구 선수는 될 수 있지만 코치는 될 수 없을까? 고등학교 때 나를 흑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던 여자아이의 말뜻은 무엇이었을까? 왜 액션영화에 나오는 흑인들은 점잖은 흑인 남자 한 명(물론 조연으로) 말고는 죄다 잭나이프를 휘두르는 미치광이인 데다 매번 목숨을 잃을까?”(‘약속의 땅’)
체제에 대한 불만은 급진주의의 토양이다. 한데 오바마는 유권자 등록 운동을 했고, 대학에서 헌법을 가르쳤으며, 주 의회 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키워드는 풀뿌리와 점진주의다.
“나는 혁명가가 아니라 개혁가였고, 이상까지 그런지는 몰라도 기질적으로는 보수적이었다.”(‘약속의 땅’)
그 탓에 임기 중 그에게 ‘노 드라마 오바마(No Drama Obama)’라는 별명이 붙었다. 떠들썩한 드라마를 연출하지 않는다는 거다. 심지어 그는 빈 라덴을 죽인 후에도 성과를 광고하는 대신 “테러리스트를 죽여야만 하나가 될 수 있는가”라고 번뇌한 사람이다.
책을 읽으면 ‘노 드라마’를 이해할 실마리가 보인다. 어릴 적 그는 “행동보다 사변을 좋아”했고 “거절당하거나 한심해 보이는 것에 예민했다.” 그래야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부터 자각해야 했던 흑인 소년이 생존할 수 있었다. 비주류의 삶은 대개 그렇다. 늘 나의 행동을 되새기고 남의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 소수자이자 경계인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국정을 운영한 것. 이것이 대통령 오바마의 진짜 경쟁력인지 모른다.
#오바마 #약속의땅 #내아버지로부터의꿈 #신동아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조민제 등 지음, 이우철 감수, 심플라이프, 1928쪽, 12만8000원
1937년 조선인 식물학자 4명이 ‘조선식물향명집’이라는 책을 펴냈다. 우리 학자가, 우리 땅 식물을 근대 학문체계에 맞춰 분류한 뒤, 우리말 이름을 적어 펴낸 최초의 책이다. 조민제 등 저자들은 치밀한 연구를 통해 당시 식물학자들이 조선어학회와 교류하며 우리 고유의 식물명을 살리고자 노력했음을 밝혀내고, 이 책이 ‘민족적 자각의 결과물’이었음을 강조한다.
나는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다
이종욱 지음, 투데이펍, 212쪽, 1만4000원
별다를 것 없이 흘려보낸 순간순간이 어쩌면 인생의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 홍보전문가 이종욱의 마음에 어느 날 떠오른 생각이다. 이날부터 그는 숨 쉬고 움직이고 울고 웃는 일상의 풍경을 차분히 들여다보고, 매 순간의 경이로움에 감탄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을 모아 펴낸 에세이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