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택시 요금 인상 시도 실패
경쟁자 없어 80% 시장점유율 가진 공룡
‘로톡’ 인기 끌자 변협 ‘광고 규정’ 개정해 탈퇴 압박
비슷한 사업 모델 가진 네이버 진출 시간문제
생존 위해 제도 변화 필요
전문가 “규제 완화로 경쟁 촉발해 독점 방지”
갈등 골 깊어지는데 정부는 ‘뒷짐’
택시 호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카오 택시’가 8월 2일 호출이 많은 피크 시간대에는 추가 비용을 최대 5000원까지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각계 비판이 쏟아지자 8월 15일 요금 인상을 철회했다. [뉴스1]
이번 카카오 택시의 요금 인상 시도를 보며 일각에서는 3월 서비스를 종료한 ‘타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도 “‘타다’라는 경쟁자가 있었더라면 카카오 택시가 쉽게 요금을 올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타다는 2018년 10월 출범한 차량 호출 플랫폼. ‘초단기 승합차량 렌트 서비스’라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어 택시 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여객법)은 승차정원 11인승 이상 15인승 이하 차량의 경우 유상으로 운전자를 알선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타다는 이 틈을 파고들어 11인승 카니발을 마치 택시처럼 운행했다. 그러나 택시업계가 “면허 없이 영업을 하는 것은 편법”이라며 강력 항의했고, 결국 지난해 3월 이른바 ‘타다금지법’으로 불리는 여객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 사업 모델은 막을 내렸다. 현재 타다는 여느 콜택시 업체와 다르지 않게 택시면허를 사들여 운영하고 있다. 위 교수는 “타다의 새로운 사업 실험이 실패로 끝나면서 카카오 택시의 시장독점이 더욱 강화됐다”며 “최근 여러 분야에서 벌어지는 전문가 이익단체와 신생 플랫폼 간 갈등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말했다.
변협 “끝까지 모두 징계하겠다”
위 교수가 언급한 “이익단체와 신생 플랫폼 간 갈등”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와 ‘로톡’ 사이 다툼을 꼽을 수 있다. 로톡은 ‘로앤컴퍼니’가 운영하는 변호사 광고 플랫폼이다. 로톡에 접속하면 회원 변호사의 전문 분야와 소송 이력 등을 검색할 수 있다. 법률 소비자는 그동안 송사에 휘말리면 적합한 변호사를 찾아 서초동 법조단지를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아야 했다. 로톡을 이용하면 클릭 몇 번으로 손쉽게 관련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2014년 서비스를 시작한 이 플랫폼은 일반 시민과 변호사 양쪽에서 인기를 끌었다. 로톡에 가입한 변호사 회원 수는 3월 기준 4000명에 달했다. 변협 등록 변호사 약 3만 명 가운데 10분의 1이 넘는 수준이다. 문제는 최근 변협이 이러한 사업 모델에 반대하고 나섰다는 것. 변협은 5월 ‘변호사 광고 규정’을 개정해 “변호사는 변호사 업무를 광고·소개하는 서비스에 참여할 수 없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8월 4일 개정 조항이 효력을 발휘하면서 로톡에서 변호사 회원 탈퇴가 본격화했다. 변협은 8월 11일 자체 설립한 ‘법질서위반 감독센터’를 통해 로톡 가입 변호사에 대한 징계 의사도 밝혔다. 당시까지 남아 있던 1440명에게 “징계 요청 진정서가 접수됐으니 소명서를 제출하라”고 통보했다.현행법상 대가를 받고 변호사를 중개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변협은 “로톡이 사실상 유상으로 변호사를 중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로톡은 “변호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광고를 통해 수익을 올릴 뿐 중개는 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8월 11일 박범계 법무부 장관까지 나서 “변협의 로톡 소속 변호사 징계는 시대 역행”이라며 로톡 손을 들어줬지만, 이미 이 서비스는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이다. 이윤우 변협 수석대변인은 “이미 탈퇴한 변호사와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로톡 소속 변호사를 끝까지 징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위 교수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지난해 9월 네이버가 자체 법률 플랫폼을 출시했다”며 “로톡 같은 작은 신생 기업은 전문가 단체와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로톡이 시장에서 사라지면 네이버 같은 거대 자본이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타다가 사라진 택시 호출 시장을 카카오 택시가 잠식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네이버는 지난해 9월 ‘네이버 엑스퍼트’를 출시했다. 법률, 금융·재테크, 심리 상담 등 특정 분야 지식 전문가와 사용자가 실시간으로 1대 1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지식 상담 플랫폼 서비스다. 네이버는 상담료의 5.5%를 수수료로 받는데, 이를 불법 변호사 중개로 판단한 한국법조인협회가 네이버를 고발했다. 당시 수사를 맡은 경찰은 7월 26일 “(네이버가) 최소한의 운영비만 받고 부수적인 이익을 챙기지 않았다”고 판단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위 교수는 이어 “소비자는 이미 플랫폼을 통해 정보를 얻는 데 익숙해져 있다. 이제 와서 플랫폼을 막는 것은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라며 “한시라도 빨리 정부가 갈등 중재에 나서 다양한 기업이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 달리 전문가 이익단체와 신생 기업 간의 갈등은 여러 업계로 계속 확산하는 모양새다.
현재 모바일 원격진료·약배달 플랫폼 ‘닥터나우’는 대한약사회(이하 약사회)와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다. 닥터나우는 환자와 의사·약사를 화상통화 시스템으로 연결해 주는 플랫폼이다. 의사가 이 시스템을 통해 원격진료를 한 뒤 처방전을 발행하면 닥터나우에서 대신 약을 받아 배달해 주는 사업 모델을 가지고 있다.
현재 의료인이 환자에게 원격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불법이다. 닥터나우 운영이 가능한 이유는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원격의료를 허용해서다. 한시 조치가 종료되면 닥터나우는 서비스를 중단해야 하는 처지다. 약사회는 그 전에라도 이 서비스를 끝내야 한다는 의견이다. 권혁노 약사회 이사는 “약을 약국 외 기관에서 판매하는 행위에 대해 반대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네이버는 2019년 12월부터 일본에서 자사 메신저 ‘라인’을 통해 원격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일본 경제산업성이 라인의 자회사 ‘라인헬스케어’에 코로나19 대응책으로 원격의료 서비스를 맡기기도 했다. 한국의 원격의료 규제가 완화되면 네이버가 국내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소비자 편익이 어떠한 공공성보다 우위”
장지호 닥터나우 대표는 “보건복지부가 한시적으로 허용한 원격의료가 종료되면 닥터나우는 서비스를 종료해야 할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오홍석 기자]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전문경영대학원 교수는 “전문가 이익단체가 내세우는 공공성보다 더 우위에 있는 건 수많은 소비자의 편익”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전문직 종사자는 일반적으로 소비자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시장에서 소비자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게 보통이다. 최근 탄생하고 있는 신생 플랫폼은 소비자에게 폭넓은 정보와 선택지를 제공해 시장 내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하는 구실을 한다.”
이성엽 교수의 ‘정보의 비대칭성’을 풀어 설명하자면 이렇다. 플랫폼이 자리 잡기 전 약품 소비자는 병원 앞 약국이 정한 가격표에 따라 약값을 지불했다. 관련 플랫폼이 생기면 스마트폰으로 전국 각지 약국 가격을 검색하고, 가장 싼 약국을 골라 배달 서비스를 받는 게 가능해진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 편익이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서비스를 반대하는 전문가 이익단체는 플랫폼을 방치할 경우 시장독점을 초래할 수 있다고도 경고한다. 플랫폼 사업 모델은 특성상 이용자가 많아질수록 소비자가 더 편리해진다. 플랫폼 내 정보가 증가하고 상호작용이 더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플랫폼의 시장점유율이 올라가면 다른 업체의 추격이 쉽지 않다. 권혁노 약사회 이사는 “카카오 택시가 시장을 장악한 뒤 요금 인상을 추진한 게 대표적 사례”라며 “닥터나우가 지금은 수수료를 받지 않고 있지만 이용자가 늘어나면 수수료 부과가 예정된 수순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대해 장지호 닥터나우 대표는 “추후에도 수수료를 받을 계획이 없다. 수익은 원격의료가 활성화되면 수요가 커질 셀프청진기나 혈당계 같은 의료기기 판매로 창출할 계획”이라고 반박했다.
이성엽 교수는 전문가 이익단체 우려에 대해 “정부가 제 역할을 하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만일 하나의 플랫폼이 시장을 독점하면 일각의 주장처럼 수익 추구를 위해 요금을 인상하는 부작용이 생길 것이다. 이 문제를 막을 최선의 방법은 규제 완화를 통해 다양한 기업이 경쟁하는 구도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플랫폼 사업을 환영하는 건 소비자 편익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플랫폼 사업자가 독점적 지위를 악용해 소비자 편익을 거스르는 행동을 한다면 방송통신위원회나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활용해 사후 규제에 나서면 된다.”
“정치권은 표 안 되니 나설 필요성을 못 느낄 것”
관계자들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신규 플랫폼 사업자를 놓고 충돌이 반복되는 것은 갈등을 중재하고 미래 규제 방안 등을 논의해야 할 정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장지호 닥터나우 대표는 “회사 일로 바쁜 와중에도 규제 완화를 주제로 한 정부 주최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현장에서 보면 여야 정치인 모두 원격진료 규제 완화에 호의적인 의견을 보이는데 아직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다”고 밝혔다. 로톡 관계자 또한 “박범계 장관의 발언 이후 법무부에서 몇 가지 문의 사항을 전달했고 후속조치를 기다리고 있다”며 “현재 변협이 법률시장 혁신을 저해하는 행위를 하고 있으니, 정치권과 국회가 이를 막는 데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치적 인센티브가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문재인 정부 임기는 이제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기존 전문가 집단과 신규 플랫폼 사업자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고, 산업 환경 변화 과정에서 피해를 볼 사람들 보호 방안까지 마련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다. 오히려 괜히 일을 벌였다가 기존 전문가 단체의 반발을 사면 선거에서 손해만 볼 수 있다고 여길 것이다. 이런 여건에서 정치권에 큰 기대를 하기는 힘들다. 다음 정권이 출범하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검토한 뒤 연속성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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