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최초’ 기록 최다 보유한 여성 정치인
검찰개혁 총대 메는 일, 하고 싶지 않았지만 회피 못했다
윤석열은 정치검사, 느닷없는 말실수 아니다
불공정·양극화 해소 위해 지대개혁 필요
남북 교류로 평화 조성, ‘기후정의’ 실현 시급
추진력이 내 경쟁력, 모두가 잘사는 나라 꿈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인터뷰 내내 “양극화와 불평등 해소”를 강조했다. [지호영 기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6월 23일 대통령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한 후 이른바 ‘윤석열 저격수’를 자처하고 있다. 현재 야권 후보 가운데 지지율이 가장 높은 윤 전 총장과 대선에서 맞설 적임자가 바로 자신임을 강조한 것.
추 전 장관은 1995년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한 후 최초의 여성 판사 출신 국회의원,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지역구 5선 여성 국회의원,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선출직) 여당 대표 등 화려한 역사를 써왔다. 정치인으로서 더 오를 고지는 최고지도자인 대통령뿐이다. 추 전 장관이 본선을 치르려면 10월 더불어민주당 내 경선에서 다수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말처럼 “소신과 원칙을 지키는 스타일”이기 때문일까. 당내 지지 세력이 약한 게 단점으로 지적된다.
현재 추 전 장관의 지지율은 여당 내 3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TBS 의뢰로 8월 13~14일 진행한 범여권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 전 장관은 5.7%로 이재명(27.3%) 경기지사, 이낙연(18.9%) 전 대표의 뒤를 이었다(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정치권에서는 이를 근거로 “추 전 장관 지지층이 확고히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일각에서는 “추 전 장관이 이번 당내 경선에서는 승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차기 대선주자로 입지를 공고히 하는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추 전 장관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사람이 높은 세상’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가 제시한 정책 공약은 크게 세 가지로 ‘지대개혁’ ‘신세대평화정책’ ‘에코정치’다. 대선 출마를 위해 급조한 공약이 아닌 오랜 정치 경험과 소신이 담긴 공약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의 두 번째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추 전 장관을 8월 13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윤석열은 정치검사, 느닷없는 말실수 아니다”
- 장관직 사퇴 후 청와대에 입성할 거란 관측이 나왔다. 개각할 때 러브콜을 받았을 법한데.“하마평은 있었는데 실제로 (청와대로 오라는) 제안이 오진 않았다. 그리고 심적으로 쉬고 싶었다고 할까. 법무부 장관을 지낸 1년 1개월 하루하루가 늘 비상 상황이었다. 조용한 날이 없어서 많이 지쳐 있었다.”
- 쉬는 동안 대선 출마를 준비했나.
“전혀 아니다. 무엇보다 휴식이 필요했기에 그냥 있으려 했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4월 재보궐선거에서 지고 나서 그 원인을 잘못 진단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진단이 너무 엉터리였다. 지지해 준 40%의 유권자에게 감사를 표해야 하는데 당시 선거대책본부장이던 이낙연 당대표가 보름 정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당에선 초선의원 5인방(더불어민주당 전용기·오영환·이소영·장경태·장철민)이 나서서 조국 탓, 추미애 탓을 했다.
조국과 추미애가 한 일은 검찰개혁이다. 그건 혼자 개인의 기질로 한 게 아니다. 사회적 공감대 아래 국민과 약속한 일을 한 것이고 대선공약이었고, 대통령이 그런 사명과 소신을 꾸준히 설명하셨고, 대통령의 당부였다.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이 지명한 인사고, 대통령도 국민의 뜻이고 시대 과제니까 (검찰개혁을) 한 것인데 민주당이 그걸 뒷받침하지는 않고 선거에서 졌다고 해서 밀어내기를 하고 탓을 했다.
70년간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이 됐다. 검사의 문제라기보다 지휘부에 있는 사람들의 문제다. 박근혜·최순실 사건이 권력자 소수의 문제로 파생됐듯 검찰비리도 소수의 문제지 검사 조직 전체의 문제는 아니다. 그건 얼마든지 개혁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 제기도 하지 않고 덮어버리려 하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심적으로 고통스러웠다.”
그는 이후 한길사 대표의 권유로 7월 1일 출간한 대담집 ‘추미애의 깃발’을 김민웅 전 경희대 교수와 준비하면서 “많은 대화를 통해 지난 시간을 반성하고 마음을 치유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선후보군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허상이다. 지금 나온 여러 말실수가 느닷없는 게 아니다. 검찰총장일 때 언론이 물어봤더라면 다 들통날 수 있는 내용이다. 검사로서의 윤석열은 정치검사고 정치검찰이다. ‘리걸마인드(legal mind법적 사고력)’가 확고하고 법철학적으로 건강하면 정치할 생각을 안 한다. 법철학이 부실했기 때문에 지금 하는 말들이 다 엉터리인 거다. 기초가 없는 말들이다. 120시간 노동이나 부정식품 얘기, 임상시험 안 거친 약을 먹을 수 있게 규제를 풀어야 한다거나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지 않았다는 말들이 고스란히 그 사람이다. 건강하고 법철학적으로 다져져 있고 자기 위치에 대한 소신이 확고한 사람은 정치를 염탐하지 않는다. 원래 정치검찰이었는데 언론이 그동안 묻지 않아 들통나지 않았던 것뿐이다.”
- 윤 전 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고위 인사들이 야당에 입당했고,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도 장외에서 대선 행보를 하고 있다.
“모두 고도의 정치 중립이 요구되는 자리다. 감사원장도 헌법기관으로서 사정 업무를 맡는다. 정치 중립을 보장받았고 그걸 지켜야 하는 자리다. 권리가 있으면 의무가 따르는데, 신분보장의 권리만 누리고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의무는 다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 그런 분들을 왜 임명했느냐? 인사 실패가 아니냐?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이 정권은 국민의 95%가 나라를 바로 세워달라고 해서 탄생한 정부다. 국민통합이 중요하기에 탕평 인사로 임명한 것이다. 그분들은 국민에 대한 신의를 지켰어야 한다. 이건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 법무부 장관으로서 총대 메고 검찰개혁을 추진하는 역할을 했다. 하고 싶은 일이었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회피하지 못했다. 딱히 할 사람도 없었다. 잘할 분이 있었다면 내가 나서서 추천했을 것이다.”
- 이른바 ‘명추 연대’(이재명-추미애 연대설)라는 말이 돌고 있다. 경선 막판 이재명 경기지사와 단일화에 나설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단일화 가능성은 없다. 내가 내건 공약은 하루아침에 만든 것이 아니다. 꼭 추진해 보고 싶어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공약이다. 내가 하려는 게 있는데 뭐 하러 단일화를 하겠나.”
불공정·양극화 해소 위해 지대개혁 필요
추미애 전 장관은 “법무부 장관직에서 물러난 후 대담집을 준비하면서 많은 대화를 통해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놓친 부분을 발견했다”고 털어놨다. [지호영 기자]
“독과점은 시장 작동을 막는다. 부동산 독과점으로 파생된 문제가 시장 흐름을 막고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로 인한 불공정 문제와 양극화를 지대개혁으로 해소하고자 한다. 지대개혁은 부동산 불로소득에 대한 합리적 공정과세를 이뤄내겠다는 것이다. 합리적 공정과세란 비정상적으로 낮은 세율을 정상화시키는 과세 정상화를 말한다.”
- 왜 지금 지대개혁을 들고 나왔는지 궁금하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지가 비율이란 것이 있다. 영국과 우리나라가 약 4.6배로 높은 편이다, 국민이 땀 흘려 번 돈이 GDP로 구현되는데 그것이 거의 땅에 박혀버리는 거다. 몇 년 전 현대자동차가 강남구 삼성동 한전 부지를 10조 원에 매입했다. 5G를 열어야 하는 시대 입구에서 일론 머스크는 미래 기술에 투자하고 있는데 우리는 땅에 투자한다. 국민이 다 함께 노력해 국가가 혁신성장을 하자고 하면 기업이 그 방향으로 사고를 해줘야지 왜 땅에 투자하나. 앞으로 건물주가 망하는 시대가 올 거다. 스마트 기술이 급부상하는 시대가 열릴 거다. 그런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지대개혁이 필요한 거다. 한국에 일론 머스크 같은 기업가가 나오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 사유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적 소유를 막겠다는 것이 아니다. 집 한 채 가진 실소유자, 사업용 부지를 갖고 있는 분은 보호하는 것을 전제로 한 지대개혁이다. 불로소득이 우리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연간 400조 원 규모다. 우리나라에서 정상 과세하는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같은 보유세의 경우 OECD 기준 3분의 1, 미국 기준 6분의 1 수준이다. 과다 보유 비용이 너무 싸기 때문에 부동산 투기를 많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유세를 OECD보다 약간 낮은 수준으로 내게 하자는 것이다. 과거 야당이 동의했던 수준이 부동산 가격의 0.5%다. 지금은 0.16%에 그친다.”
남북 교류로 평화 조성, 기후정의 실현 시급
- 제2공약인 ‘신세대평화정책’은 남북 교류에 방점을 두고 있다. 궁극적 목적이 뭔가.“우리는 산업화·민주화의 혜택을 누리고 살았는데 대신 나쁜 걸 후세에 물려줬다. 그 3가지가 양극화·분단·기후위기다. 모두 구조적 문제로 파생됐다. 전환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 다음 세대는 평화를 발판으로 성장하게 해주고 싶다. 분단 상황을 고착화하면 북한에서는 계속 북핵을 개발할 거고 우리는 그 문제를 떠안으며 살아야 한다. 엄청난 안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분단이 고착화하지 않도록 평화 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래서 남북한 학생들이 교류할 수 있는 ‘신세대평화정책’을 내놓은 것이다. 미·중 갈등으로 인한 신냉전 시대에는 어느 편에서든 공격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대비해 우리 스스로 기술 표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 역량이 된다.
우리 해운산업이 컨테이너 표준을 만들지 않았나. 남북이 공동 연구해 기술 표준을 만들 수도 있다. 당장 사람이 오가는 게 어렵다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나 스위스 같은 제3국에서 남북이 공동 연구한 기술로 특허출원도 함께 내보는 거다. 그러다 보면 남북이 함께할 기회가 생기고 교류할 일이 많아질 것이다. 남북 교류가 일자리 창출의 발판이 될 것이다.”
- ‘에코정치’를 주요 공약으로 내건 특별한 이유가 있나.
“기후정의가 절실한 시대다. 왜냐면 상위 1%가 15%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데 그 피해를 가난한 계층이 보게 된다. 시간이 흐른다고 이산화탄소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 30년 전 무분별하게 배출한 이산화탄소 때문에 지금의 기후 위기가 온 것이다. 계속 이런 식으로 배출하면 다음 세대는 더 심각한 환경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지금 10대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책임질 세대가 아닌데 그 문제가 야기하는 비용을 부담하며 살아야 한다. 발생 주체와 비용 부담 주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기후정의를 위해서는 생물다양성과 환경보존을 국가의 책무로 하고 ‘기후 약자’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기후 약자가 생기지 않도록 헌법에 관련 규정을 만들어야 하며 기후정의를 시민의 기본권으로 하자는 것이 에코정치의 골자다. 녹색 대전환이 시급히 이뤄지지 않으면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을뿐더러 기술 후진국이 되고 만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우리는 방역에 중점을 뒀다면, 유럽은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기술 체계를 만들었다. 기후 위기나 불평등 심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우리는 다시 후진국으로 미끄러질 수 있다. 지금은 탄소 국경세 부과 등을 통해 이산화탄소 감축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빨리 신기술로 넘어가야 한다.”
- 문재인 정부는 태양열 발전에 막대한 투자를 했지만 그 효과나 결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많다. 에코정치를 위해 개발을 염두에 둔 신재생에너지가 있나.
“우리나라는 배터리 산업이 뛰어나다. 신재생에너지와 관련한 기술을 두루 가진 보기 드문 나라다. 바이오라든지 배터리 등 10가지 정도의 영역에서 골고루 갖고 있다. 10년 전에는 원자력발전(원전)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태양광이나 풍력 에너지보다 더 쌌다. 그런데 지금은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만드는 에너지가 원전보다 싸졌다. 엄청난 기술혁명이 일어나 태양광 전열판 설치 비용은 80%, 풍력발전기 설치 비용은 70% 싸졌다. 전열판을 교체하기도 쉬워졌다. 친환경 소재가 개발돼 (폐기물을) 치우는 문제도 많이 해소됐다. 하지만 원전 운용 비용은 폐로 처리비까지 감안해야 해서 태양광발전이나 풍력발전보다 상대적으로 비싸졌다.”
-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민생이 불안하다. 어떤 해법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세대 간 갈등, 서울과 지방의 격차 문제 등 불평등·양극화 해소가 절실해졌다. 지대개혁, 신세대평화정책, 에코정치 공약은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해법이 될 것이다.”
추진력이 내 경쟁력, 모두가 잘사는 나라 꿈꿔
-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방향을 잘 이해하고 제시하는 능력인 것 같다.”
- 대통령은 지지자가 아닌 사람도 포용과 화합으로 껴안을 줄 아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자리다. 법무부 장관 시절 의견이 다른 검찰총장과 자주 날을 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부정적 이미지가 생기기도 했다. 대선후보로서 이 부분을 어떻게 풀어갈 생각인가.
“검찰개혁을 주창하면서 보인 모습이 개인적으로는 굉장한 손해다. 검찰개혁이 어려운 주제이고,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70년간 켜켜이 쌓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일이어서 불가피하게 그런 이미지가 덧씌워진 면이 있다. 앞으로 (그 때문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유권자들과) 차분히 잘 소통하면서 반성이 필요한 부분은 반성하고, 이해가 필요한 부분은 이해를 구하면서 개선해 나간다면 그것이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 대선에 앞서 당내 경선을 치러야 한다. 민주당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이재명, 이낙연 후보에 비해 경쟁 우위에 있다고 자신하는 점은 뭔가.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위험한 사회가 됐다. 예측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 예측 능력과 문제를 진단하는 능력, 방향을 제시하는 능력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있다. 민주적 리더십도 좋지만 그것만으로는 답답함을 해소할 수 없다. 뚝심 있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추진력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내가 두 후보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 어떤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
“한국은 돈이 없는 나라가 아니다. 하지만 국가에 돈이 있다고 국가경쟁력이나 경제가 성장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양극화와 불평등 해소가 절실한 이유다.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하지 않으면 성장에 발목이 잡힌다. 이제 20세기 성장 방식이 아닌 21세기형 성장 방식을 추구해야 한다. 나라만 잘사는 게 아니라 국민이 모두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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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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