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호

진보법학자 신평의 일갈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희대의 악법”

‘언론개혁’ 빙자한 법 개정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이유

  • 신평 변호사·㈔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 lawshin@naver.com

    입력2021-08-09 10:3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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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분한 논의 없이 다수의 힘으로 무리한 법 개정 추진

    • 민주 사회에서 언론 자유가 갖는 중요성 무시

    • 언론사 매출액 기준으로 손해액 산정? 동서고금 전례 없는 발상

    • 입증책임 예외 조항으로 언론에 압도적으로 불리한 환경 조성

    • 대통령 등 공인에 대한 비판 막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

    • 권력에 의한 가짜뉴스 전파 눈 감고 반대쪽에만 재갈 물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8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어지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반대 시위 현장을 찾아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8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어지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반대 시위 현장을 찾아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정부와 여권은 이른바 ‘조국사태’ 이후 ‘검찰개혁’을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했다. 압도적인 국회 의석을 바탕으로 밀어붙여 소기의 성과를 얻었다. 무모하고 허황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검찰개혁 작업의 종료와 함께 강성 친문세력은 올 초 “이제 할 일은 ‘언론개혁’”이라고 선언했다. “‘가짜뉴스’를 잡기 위한 언론개혁법안을 만들어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거듭 공언했다. 이 법안의 주된 내용은 △가짜뉴스를 생산한 측에 손해액의 3배에 이르는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물린다 △관련 기사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자는 해당 기사 열람차단을 청구할 수 있다 △댓글로 상처를 입은 자는 댓글 삭제에 더해 그 댓글이 있는 게시판 운영중단을 요청할 수 있다 등이었다.

    충분한 논의 없이 ‘다수의 힘’으로 법안 개정 추진

    7월 27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는 고의·중과실로 허위 보도를 한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뉴스1]

    7월 27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는 고의·중과실로 허위 보도를 한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뉴스1]

    그러나 여론이 법안 추진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특히 야당의 반대가 심했다. 그 과정에서 2월 임시국회를 놓쳤다. 아니 놓쳤다기보다 4월 7일로 다가온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라는 중대한 정치행사를 앞두고 무리하지 않으려 법안 처리를 미룬 것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이후 서울‧부산에서 모두 야당 시장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했다. 그 결과 강성 친문의 목소리가 잦아들며 정상적이고 순리에 입각한 타협의 정치가 복원되는 듯했다. 그러나 강성친문은 다시 일어섰다. 문재인 대통령의 강력한 팬덤을 바탕으로 이른바 언론개혁 입법을 재차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7월 27일, 드디어 그들은 결행했다. 이날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 산하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소위)는 그동안 우후죽순 격으로 제출된 무려 16개의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합해 ‘위원회의 대안’을 만들고 의결했다. 당시 회의록을 보면 ‘위원회의 대안’을 회의 전 위원들에게 제시조차 하지 않는 등 온갖 파행이 빚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법안소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 3명이 이에 항의하며 법안 처리에 반대했지만,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의원 3명과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다수결로 법안소위를 통과한 법안은 이후 문체위 전체회의 심사를 거쳐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로 가게 된다. 문체위 구성 또한 법안 통과에 유리하다. 문체위원 16명 중 8명이 민주당 의원이다. 여기에 김의겸 의원까지 더하면 총 9명으로 의결정족수인 과반을 넘어선다.



    무엇에 쫓기듯 서둘러 의결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보면, 과거 언론 등을 통해 공개된 것보다 더 심각하게 언론을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액의 범위를 기존 세 배에서 다섯 배로 높였고 △손해배상액을 정함에 있어 언론사 매출액을 기준으로 삼도록 하는 파격적인 내용을 넣었다. 더욱 심한 문제가 또 있다. 일정한 요건을 충족할 경우 언론사 보도가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것이라고 추정하는 ‘입증책임의 예외 혹은 전도(顚倒)’를 규정한 것이다.

    매출액 기준 손해액 산정? 동서고금 전례 없는 발상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왼쪽)가 2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오보방지 및 허위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필요성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왼쪽). 7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승수(오른쪽), 김예지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처리 시도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뉴스1]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왼쪽)가 2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오보방지 및 허위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필요성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왼쪽). 7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승수(오른쪽), 김예지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처리 시도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뉴스1]

    이 법안 조항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최근 문체위 법안소위를 통과한 언론중재법 개정안 제30조의 2 ①항은 “법원은 언론 등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에 따라 재산상 손해를 입거나 인격권 침해 또는 그 밖의 정신적 고통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손해액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액을 정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아무리 언론의 폐해가 여기저기서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이 법안에서 말하는 “허위·조작보도”를 의도적으로 감행하는 언론사가 얼마나 될까. 잘못된 보도는 대부분 기사를 작성한 기자나 이를 거르는 데스크의 부주의에서 야기된다. 그럼에도 허위·조작보도라는 섬뜩한 표현을 법문에 사용한 것이 예사롭지 않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자유가 갖는 중요성을 일말의 여지조차 말살하려는 듯 느껴진다. 모든 언론인을 잠재적 범죄인으로 취급하는 형국이다.

    또 개정안 제30조 2항에는 언론 보도에 따른 손해액을 산정할 때 “해당 언론사의 전년도 매출액의 1만분의 1에서 1000분의 1”이라는 기준을 고려하도록 돼 있다. 현행법에는 “변론의 취지 및 증거조사의 결과를 고려하여 그에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손해액을 산정하여야 한다”고만 돼 있는 조항에 언론사 매출액 관련 내용을 추가한 것이다. 손해액 산정 기준을 언론사 매출액으로 삼는다는, 동서고금에 전례 없는 이 ‘특수한 발상’은 개정법안이 ‘언론사의 목을 겨냥한 옥죄기’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한편 개정법안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잘못된 보도를 할 경우를 규정한 것은, 아마 미국 연방대법원이 1964년 내놓은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 판결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당시 연방대법원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언론 자유에 관한 찬란한 금자탑 구실을 하는 판결문을 내놓았다. 그 핵심 내용은 “공인에 관한 보도의 경우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가 입증되지 않는 한 손해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때 현실적 악의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관해 여러 해석이 있으나, 우리 법제에서 보면 고의 또는 중과실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미국에서는 이 판결이 선고된 이후 지금까지 언론사가 공인에 대한 보도 때문에 손해배상 책임을 명백하게 진 경우가 단 한 건도 없다.

    우리의 경우도 정상적인 소송 과정을 통해서는 잘못된 보도가 “고의 또는 중과실”에 의한 것으로 인정받는 경우가 극히 드물 것으로 보인다. 소위 언론개혁을 목표로 추진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서는 이조차 막으려고 한다. 그리하여 앞에서 본대로, 잘못된 보도를 “허위·조작보도”로 낙인찍는 프레임을 짜놓았다. 나아가 언론 자유를 중대하게 침범하는 심각한 장치를 따로 마련했다.

    언론에 ‘압도적으로’ 불리한 입증책임 예외 조항

    개정법안 제30조의 3을 보자. “언론보도 등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언론사 등의 명백한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돼 있다. 이후 “고의 또는 중과실”로 추정할 수 있는 사례를 열거한다.

    원래 소송에서는 입증책임을 원고나 검사가 진다. “고의 또는 중과실”도 그쪽에서 입증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미국에서처럼 한국에서도 잘못된 보도의 고의 또는 과실을 원고가 입증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 개정법안 제30조의 3은 이 한계를 돌파하려고 만든 것이다.

    법적으로 ‘추정’은 A라는 사실이 있으면 B라는 사실이 일단 입증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입증책임의 예외 혹은 전도를 인정하면 언론을 상대로 소송을 건 상대방이 매우 유리해진다. 언론보도를 문제 삼는 쪽이 소송에서 이길 가능성이 아주 커진다. 정상적인 소송이라면 “고의 또는 중과실” 입증이 거의 불가능할 사안도, 개정된 조항에 의하면 수월하게 입증할 수 있다. 여기에 법 개정의 핵심 포인트가 흉포한 야수처럼 숨어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이 입증책임의 특혜를 받는 인사에 공직자윤리법 제10조 제1항 제1호부터 제12호까지의 인물을 포함시켰다.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의 장 등이 이에 해당한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바로 이러한 인사가 언론의 비판 대상이 되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것이다.

    앞서 밝혔듯 미국에서는 1964년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판결이 나온 이후 현재까지 언론사가 공인에 대한 보도로 손해배상 책임을 진 명백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다. 그러나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한국에서는 공인이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쉽게 승소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권력에 대한 비판이 과도할 정도로 억제될 게 분명하다. 개정안이 법률로 제정된다면 언론에 무시무시하게 살 떨리는 위축효과(chilling effect)를 야기할 것임이 틀림없다.

    한국 언론 환경은 지금도 기울어진 운동장

    왜 진보를 자칭하는 세력에서 헌법상 인정되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 중 가장 중요한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쪽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일까? 진보는 인류의 보편적 자유와 권리의 신장을 우선적 가치로 삼아야 하지 않나.

    물론 한국 언론 행태에도 여러 문제가 있다. 억울한 피해자도 적잖게 생겨난다. 하지만 이에 대처하는 제도적 장치가 이미 마련돼 있다. 명예훼손법제를 비롯해 여러 법 규정이 작동한다. 이제 살펴보겠지만 여타 문명국가에서 인정하는 일반적인 언론 규제보다 훨씬 강도 높은 규제가 이미 한국에서 시행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언론환경은 이미 권력을 가진 자, 사회적 지위가 우월한 자에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이 점은 우리가 소위 언론개혁 작업을 평가할 때 빠뜨려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현대 사회에서 언론을 억압하는 기제는 총칼이 아니다. 명예훼손에 관한 법제다. 한국 명예훼손 법제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매우 엄격하다. 언론처럼 표현행위를 하는 화자(話者)와 그 반대쪽, 즉 언론에 언급되는 대상자(對象者)를 비교할 경우 화자에게 불리하고 대상자에게 유리하게 돼 있다.

    유엔의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규약’(ICCPR)은 “가장 심각한 명예훼손의 경우에만 형사처벌을 고려할 수 있고, 징역형은 절대 허용해서 안 된다”고 명시한다. 우리는 이런 세계적 추세를 무시한 채 명예훼손에 징역형을 규정하고, 심지어 진실한 사실을 보도해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도 처벌받을 수 있는 위험에 노출시킨다. 형법 제307조 ①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이러한 법제도보다 더 큰 문제는 경찰, 검찰 등 수사기관과 법원이 명예훼손에 관한 수사나 재판을 할 때 ‘언론 자유’가 갖는 고귀한 가치를 거의 배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명예훼손에 관한 민‧형사 재판이 진행될 때 입증책임을 지는 쪽은 사실상 피의자나 피고인, 즉 화자다. 가령 미투 사건이나 내부고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수사기관과 법원은 문제를 고발한 자에게 사건 실체를 입증하도록 요구한다. 화자의 설명이 부족하면 검사는 그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하고, 법원은 별 고민 없이 유죄판결을 내린다. 미투나 내부 비리의 주요 증거는 부당한 성적 행위를 한 사람 또는 고발당한 회사나 조직이 대부분 갖고 있음에도 말이다.

    권력에 의한 가짜뉴스 전파는 누가 책임지나

    지금도 언론사에서 사회 고발성 기사를 쓰는 기자는 항상 수사를 받고, 법정에 불려 다니며 유죄판결을 받거나 손해배상 책임을 질 위험에 노출된다. 그런 기자들이 평소 갖는 불안감이나 스트레스가 얼마나 크겠는가. 그러다 보면 자기검열 함정에 빠지게 된다. 한국의 엄격한 명예훼손 법제는 출판문화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국내 출판사 대부분은 정치적으로 논쟁 소지가 있는 책 출판을 꺼린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에 대한 건전한 비판이 막혀버리는 사례가 매우 많다.

    실례를 보자. 최근 한국사회를 뒤흔든 이른바 ‘채널A 사건’이 있다. 법원이 채널A 기자에 대해 무죄 판결을 한 현 시점에서 보면 가짜뉴스를 전파한 것은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을 비롯한 권력층 인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예방 백신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실패를 끊임없이 숨기고, 이에 대한 건전한 비판을 모두 가짜뉴스라고 매도한 쪽도 정부, 여당이다. 이것은 가짜뉴스 전파가 아닌가. 백신확보 실패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인 국민의 생명권을 저해한 행위로, 향후 언젠가 그 과정에 있었던 일이 백서 발간이라는 형태로 소상히 공개돼야 할 것이다. 그 백서에는 아마 현 정부의 무능과 실책이 적나라하게 기록될 것이다.

    이렇게 현재 한국 언론환경은 권력에 현저히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 운동장을 더 기울게 하려고 한다. “귀찮은 가짜뉴스를 없애겠다”며 “소위 언론개혁을 하겠다”고 한다. 과욕이자 반민주적인 행태라고 밖에 표현할 방도가 없다.

    현대사를 돌아보면 미국이 세계 민주주의의 요람 구실을 했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미국 민주주의를 일군 토대는 언론의 자유였다. 미국 헌법에서 언론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 제1조’(The First Amendment)는 사회적 위상이 매우 높다. 필자는 수년 전 미국 명문 로스쿨을 순회하며 커리큘럼을 살펴본 일이 있는데, 어느 로스쿨이든 수정헌법 제1조에 관한 강의과목이 대체로 100개 정도씩 됐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다루는 문제 대부분도 바로 이 조항, 즉 언론자유에 대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형성된 미국 연방대법원 판례는 하나의 거대한 수원지 구실을 했고, 그 물은 전 세계로 흘러들어가 민주주의의 땅을 적셨다. 그 결과 각국에서 언론자유의 중요성을 부각하며 현대 민주주의가 따라야 할 전범(典範)을 마련했다. 우리 한국도 마찬가지다.

    문명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강도 높은 규제

    미국 법학자 토머스 에머슨(Thomas I. Emerson)은 언론 자유가 갖는 가치를 다음 네 가지로 압축했다. ①훌륭한 사회의 본질적 요소인 개인의 자아실현 ②사상의 자유시장론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진리에의 도달 ③사회구성원이 공개적인 토론을 통한 의사결정에 참여하게 하는 것 ④사회의 경직성을 탈피한다는 의미에서의 안정과 변화의 균형 등이다. 실로 언론의 자유는 원활한 민주정치를 유지하고 개인의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하는 데 불가결한 것이다. 그리하여 헌법이 인정하는 국민의 기본권 중에서도 언론의 자유 혹은 표현의 자유는 우월적 지위가 인정된다. 언론의 자유에 대한 규제는 다른 기본권에 대한 규제보다 훨씬 더 심사숙고해 이뤄져야 하고, 규제의 정도도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그런데 민주화가 달성됐다고 하는 오늘 한국에서, 그것도 정부와 여당이 언론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문명국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하고도 강도 높은 규제를 강행하려고 숨차게 나아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요즘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그 폐해가 극심해 대책을 새로 마련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아전인수 격 판단이다. 필자가 보기에 현재 가짜뉴스를 주로 생산하는 건 친정부 단체와 여당의 매체 장악자들이다. 미국 트럼프 정부 시절 가짜뉴스(disinformation) 제조창으로 통하던 ‘큐어난(QANon)’에 필적하는 존재가 한국에도 있다. 바로 김어준 씨의 ‘뉴스공장’ 등이다. 그 폐해를 더욱 증폭시키는 것은, 미국에서와 달리 뉴스공장이 공영방송인 TBS 교통방송에서 버젓이 방송되고 있다는 점이다. 김어준 씨는 사람을 선동하는 내용으로 끊임없이 가짜뉴스를 만들어내고 있으나 어느 누구도 시정 조치를 하지 못하고 있다. 가짜뉴스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권력을 등에 업고 있으면 사회를 조종해나가는 힘을 얻는다. 반대쪽에서 만들어내는 가짜뉴스보다 훨씬 위험성이 크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을 통해 노리는 것은 김어준 씨 등의 가짜뉴스가 아니다. 약한 강도로 성가시게 다가오는 반대쪽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미래

    7월 5일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서 열린 ‘언론보도와 징벌적 손해배상 긴급토론회’에서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7월 5일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서 열린 ‘언론보도와 징벌적 손해배상 긴급토론회’에서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정부와 여당은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가운데 국민의 사법신뢰도가 꼴찌인 점을 빙자해 이른바 검찰개혁에 나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권력 실세에 대한 수사를 방해하는 일련의 정책을 추진했다. 현재 진행하는 언론개혁도 전형적인 성동격서(聲東擊西) 수법이다. 일부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여론을 이용해 정권에 대한 비판을 억제함으로써 정권 연장을 실현하려하는 게 이 정권이 강조하는 언론개혁의 본질이다.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나라라면, 그리고 그 나라가 현대 문명사회의 범주 안에 있다고 한다면 이런 사악한 장치를 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절대 만들 수 없다. 이 개정안은 한 마디로 해괴한 악법이다. 임기 말에 이른 문재인 정부가 돌연 이런 악법을 통과시키고자 온갖 파행을 이어가며 역량을 쏟아 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만약 그들이 끝내 이 개정법안의 본회의 통과를 강행한다면 그 본심은 비판 언론을 잠재움으로써 정권을 연장하려는 것임에 분명하다. 또 한편으로는 이 정부가 이토록 억지를 부리는 이유가 지지세력의 응원을 마지막까지 유지하려는 데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만약 후자라면 중도에 포기할지도 모른다.

    언론중재법 개정법안이 법안소위를 통과한 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같은 주요 언론단체가 반대 의사를 명백하게 표시했다. 정부의 우군이라고 할 수 있는 정의당에서도 입법 불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언론법학자로서 필자는 이 부분에 기대를 갖고 있다. 또 하나, 그래도 이 정부 안에 양식과 양심을 갖춘 인사가 반드시 있으리라고 믿는다. 혹독하고 부당하게 언론 자유를 침해하며 세계 문명국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악법이 될 이 개정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저지하는 데 그들이 조용히 나설 것을 희망한다.

    #언론중재법 #신평 #신동아


    신평
    ● 1956년 출생
    ● 서울대 법학과 졸업, 동 대학원 법학박사
    ● 제23회 사법시험 합격
    ● 前 인천지방법원, 서울가정법원, 대구지방법원 판사
    ● 前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헌법학회 회장
    ● 철우언론법상(2013), 대한민국 법률대상(2018)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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