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호

가격 급락 암호화폐에 실리콘밸리 투자 계속, 왜?

현 블록체인 인터넷 태동기와 비슷…금융 시스템 대변혁

  • 박원익 더밀크코리아부대표 wonick@themilk.com

    입력2021-09-06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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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호화폐, 상용화되면 은행보다 안전

    • 핀테크와 암호화폐는 뗄 수 없는 관계

    • 실리콘밸리 기업도 암호화폐에 투자 중

    • 벤처캐피털 투자 규모도 역대 최대

    등락을 반복하는 암호화폐의 대장주 비트코인의 가격. [뉴스1]

    등락을 반복하는 암호화폐의 대장주 비트코인의 가격. [뉴스1]

    “NFT(Non-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한 토큰)는 기술과 디지털 미디어의 역동적인 융합을 상징합니다. ‘디지털 자산(digital assets·암호화폐 등)’ 생태계는 앞으로 더 빠르게 성장할 것입니다.”

    카렌 추프카(Karen Chupka) CTA(Consumer Technology Association·미국 소비자기술협회) CES 담당 부사장은 7월 29일(현지 시각) 발표한 성명에서 “CES 2022에서 NFT를 포함한 디지털 자산 산업을 소개할 계획”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CES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 전시회다. 스마트폰, 가전, 로봇, 자동차 등 첨단기술 제품이 전시되는 대규모 행사에 디지털 자산이 등장,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것이다. ‘도박’ ‘신기루’ 취급을 받던 과거와 비교하면 그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암호화폐·디지털 자산의 위상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은 또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의 미국 증시 상장이 그것이다. 코인베이스는 지난 4월 암호화폐 거래소 최초로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 디지털 자산의 제도권 편입에 물꼬를 텄다. 이후 암호화폐 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라인 증권 거래 앱 ‘로빈후드’가 나스닥 시장에 상장, 배턴을 이어받았다. 최근 들어서는 골드만삭스 등 제도권 금융업체도 적극적으로 비트코인 투자 상품 개발에 나서는 추세다.

    암호화폐, 기존 통화보다 효율적

    ‘더비워드(The B Word) 콘퍼런스’에 참여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왼쪽)와 잭 도시 스퀘어 CEO. [ARK Invest 유튜브 캡처]

    ‘더비워드(The B Word) 콘퍼런스’에 참여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왼쪽)와 잭 도시 스퀘어 CEO. [ARK Invest 유튜브 캡처]

    왜 디지털 자산이 주목받는 것일까? 힌트는 디지털 자산의 가능성, 잠재력을 기술업계에서 먼저 알아봤다는 데 있다. 기술업계는 암호화폐·디지털 자산을 투자 관점이 아닌 효율성, 편리성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더 편하고, 빠르고, 안전한 결제 수단으로서의 가능성을 높이 산 것이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의 핵심 기술인 ‘분산원장(distributed ledger)’ 기술을 활용해 데이터를 기록·저장할 수 있어 안전하다. 게다가 프로그램처럼 설계하고 작동(programmable money)하니 온라인 금융 사업과 연계하기도 쉽다. 비유하자면 종이 편지를 대체한 e메일과 같다.

    지난 7월 21일 개최된 ‘더비워드(The B Word)’는 디지털 자산 긍정론자들의 이런 시각을 잘 보여주는 콘퍼런스였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돈은 실용적인 목적을 위한 ‘정보시스템’으로 생각하는 게 가장 좋다. (현재의) 전 세계 은행은 각기 다른 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매우 느리게 작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제 송금 등 은행 간 거래의 경우 영업일 기준 1~5일이 소요되고 수수료 등 비용도 많이 들어 비효율이 초래된다는 것이다. 정보 전달 관점에서 보면 수표나 신용카드 역시 더 나은 시스템으로 발전할 여지가 많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일론 머스크의 이런 시각은 별안간 툭 튀어나온 게 아니다. 머스크는 1999년 온라인 결제 서비스 회사 엑스닷컴(X.com)을 설립, 컨피니티와 합병을 거쳐 페이팔(2000년)을 탄생시킨 인물이다. 핀테크(fintech·금융+기술)의 대명사 페이팔 역시 e메일 주소를 이용, 간편하게 송금한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금융업계의 비효율을 혁신한다는 그의 아이디어와 가치관이 암호화폐까지 이어져 온 셈이다.

    암호화폐가 바꿀 세계 금융시장

    오프라인 매장에서 ‘스퀘어’를 이용해 결제하는 모습. [스퀘어 제공]

    오프라인 매장에서 ‘스퀘어’를 이용해 결제하는 모습. [스퀘어 제공]

    핀테크 기업 ‘스퀘어’를 설립한 잭 도시 트위터 CEO도 더비워드에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생태계를 ‘인터넷 태동 초기’에 비유했다. 인터넷이라는 기술, 체계가 모든 것을 바꾼 것처럼 비트코인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자산이 금융시스템 전체를 바꿀 수 있다고 봤다.

    그는 “만약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 전에 비트코인이 존재했다면 소셜미디어의 비즈니스 모델이 오늘날과는 달랐을 것이다. 트위터 역시 광고에 의존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또 “금융이 국가 경계를 넘어 전체 인터넷을 고려한 수준으로 설계된다면 비즈니스 모델, 혁신의 규모가 달랐을 것”이라며 “인터넷의 표준이 되는 화폐,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화폐를 꼭 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도시 CEO는 스퀘어를 통해 이런 꿈을 차근차근 실현해 나가고 있다. 신용카드 POS(point of sales·판매시점정보관리) 시스템 서비스로 출발한 스퀘어는 페이팔 같은 온라인 결제 플랫폼으로 발전했고, 2018년부터는 모바일 간편 송금 앱 ‘캐시앱(Cash App)’을 통해 비트코인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2020년엔 암호화폐와 달러 등 법정화폐(Fiat Currency)를 자유롭게 거래하는 시스템을 개발, 관련 특허도 취득했다.

    올해 3월엔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예금 보험이 적용되는 은행사업 부문을 출범, 미래 세대의 은행으로서도 빠르게 경계를 확장하고 있다. 8월 1일에는 호주 후불결제(BNPL·Buy Now Pay Later) 업체 ‘애프터페이(Afterpay)’를 290억 달러(약 33조3800억 원) 가치에 인수하는 공격적인 행보를 선보이기도 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미국인이 사용한 후불결제 규모는 200억~250억 달러(약 23조~29조 원)에 달한다. 2025년에는 전 세계 후불결제 규모가 1조 달러(약 1148조 원)까지 커질 것이란 관측이다. 더 편하고 빠른 금융시스템을 꿈꾸는 잭 도시에게 디지털 자산은 필요조건이자 강력한 무기인 셈이다.
    일론 머스크, 잭 도시 같은 IT업계 일부 유명 인사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글로벌 경제, 산업, 금융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실리콘밸리 빅테크(bigtech) 기업들 역시 디지털 자산 분야에 뛰어들었다. 디지털 자산을 새로운 핀테크 기술로 보고, 이를 이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실리콘밸리도 암호화폐 도입 나서

    애플은 지난 5월 ‘대체 결제(alternative payments)’ 관련 사업 개발 매니저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냈다. 전자지갑(digital wallets), 후불결제, 암호화폐(cryptocurrency) 분야 등에서 5년 이상 경력을 쌓은 전문가를 뽑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를 애플의 디지털 자산 분야 확장 움직임으로 해석하고 있다. 애플은 그동안 암호화폐·디지털 자산 분야 진출과 관련해 신중한 태도를 보였으나 최근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관측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RBC캐피탈은 보고서를 통해 “애플 지갑(Apple Wallet) 앱이 디지털 자산 분야로 확장하면 훨씬 더 중요해질 것”이라며 “애플 지갑 앱으로 암호화폐를 거래할 수 있게 되면 업계 선두 주자 지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해 인간의 활동 에너지를 사용해 암호화폐를 채굴하는 시스템으로 특허를 신청했고, 블록체인 기술 기반 본인 인증시스템(DID)도 개발하고 있다.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를 앞세워 BaaS(서비스로서의 블록체인) 분야 솔루션도 적극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e-commerce) 업체 아마존 역시 지난 7월 말 “디지털 자산 및 블록체인 전략, 제품 로드맵을 개발할 경험 많은 리더를 찾고 있다”는 내용의 채용 공고를 올렸다. 당장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결제 수단으로 도입하는 건 아니지만, 디지털 자산 활용 준비에 돌입한 셈이다.

    구글, 페이스북 역시 마찬가지다. 페이스북은 ‘디엠(Diem·리브라의 후신)’이라는 이름의 스테이블 코인(기존 화폐에 가치를 고정해 가격 변동성을 낮춘 암호화폐)을 연내 선보일 계획이다. 구글은 투자 전문 조직 구글벤처스(GV)를 통해 블록체인 및 디지털 자산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비자(Visa), 페이팔, 세계 최대 거래소 그룹 ‘ICE(인터컨티넨털익스체인지)’ 등 선도적 금융업체들 역시 이미 디지털 자산 분야에 발을 담갔다. 핀테크 업체 펀데라(Fundera)에 따르면 결제 시 비트코인을 받는 기업 수는 전 세계 1만5174개에 달한다.

    VC 투자금도 역대 최대, 금융혁신 필요하단 증거

    벤처캐피털의 투자금 규모를 보면 기술업계가 디지털 자산 기술 및 사업을 얼마나 강력하게 지지하는지 알 수 있다. 투자 데이터 제공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올해 암호화폐 산업에 투자된 투자금 규모는 170억 달러(약 19조5000억 원)에 달한다. 이는 사상 최대 규모다. 암호화폐 가격 급등으로 벤처투자업계의 큰 주목을 받았던 2018년(74억 달러)과 비교하면 배 이상이며 2020년까지 이 분야에 투자된 투자금 총액을 모두 합친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피터 티엘 등 실리콘밸리 유명 투자자들이 후원하는 블록체인 소프트웨어 회사 블록원(Block.one)은 지난 5월 암호화폐 거래소인 불리시 글로벌(Bullish Global)에 100억 달러(약 11조5000억 원)를 투자, 큰 화제가 됐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를 보관할 수 있는 물리적 지갑(hardware wallet) 제조업체 ‘레저 사스(Ledger SAS)’도 지난 6월 3억8000만 달러(약 44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 분야 올해 투자 유치 기준으로 2위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실리콘밸리 유명 벤처캐피털인 안드레센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는 최근 22억 달러(약 2조5000억 원)를 모금, 이 분야 투자를 위한 세 번째 펀드(crypto fund) 결성을 완료했다.

    왜 디지털 자산, 암호화폐, 블록체인에 투자금이 몰릴까? 답은 간단하다. 이 분야에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디지털 자산·암호화폐를 더 저렴하고 편한 차세대 결제 수단, ‘데이터 관점에서의 통화’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바라본다는 건 역설적으로 기존 금융산업이 그만큼 낙후돼 있다는 증거다.

    대표적 예가 은행 등 기존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인 소비자가 많다는 점이다. 금융 체계를 갖추지 못한 저개발국은 입출금의 기본적 금융 서비스도 없는 경우가 많다. IMF에 따르면 전 세계 성인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7억 명이 은행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즉 은행을 대체할 수 있는 온라인 금융 서비스를 구축하면 17억 명의 이용자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들 나라에 은행은 없어도 이들 손에는 스마트폰이 있기 때문이다.

    스콧 갤러웨이 뉴욕대 경영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현재 핀테크 스타트업은 세계 유니콘(기업가치 1억 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 전체 기업가치의 약 5분의 1(17%)을 차지하고 있다. 다른 어떤 분야 투자금보다 높은 수치다. 페이팔, 스퀘어, 메르카도리브레(남미 핀테크 업체) 등 신흥 핀테크 업체 3곳의 시가총액이 웰스파고,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3곳의 시가총액을 합한 것보다 크다. 지난 5년 동안 페이팔이 출원한 특허 건수는 골드만삭스의 26배에 달한다.

    바꾸고 혁신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게 기업의 생리다. 갤러웨이 교수는 “금융업보다 파괴되기 적절한 산업은 없다. 혁신, 비용 절감, 불평등 감소, 저개발국 금융 서비스 확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핀테크 기업이 전통적인 금융기업에 앞서 있다. 혁신은 이미 눈앞에 다가왔다”고 했다.

    #NFT #실리콘밸리 #암호화폐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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