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 대폭 늘린 文정부, 하루 1.6건 적발
비용 부풀려 횡령, 거래처 결탁한 조직적 범행
서류 허위 작성, 채용 위장…진화하는 비리
공무원 업무과실·인수인계 미흡 탓 비일비재
부정수급으로 회수한 청년고용장려금 44억7900만 원
점검조사 실효성↓ 솜방망이 처벌 개선 시급
최근 국고보조금 예산이 매해 크게 늘어나면서 부정한 방법으로 보조금을 수령하는 이가 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보육교사 출신 육아교육 박사가 전한 얘기다. 이 인사는 “사안의 부도덕성 때문에 보육교사 출신으로서 분통이 터지지만 놀랍지는 않은 일”이라고 했다. 주변에 알아보니 시간제 보조교사를 정식 보육교사로 채용한 것처럼 꾸민 뒤 다른 사람의 보육교사 자격증을 빌리는 일이 빈번히 일어난다는 것이다.
보조금 대폭 늘린 文정부, 하루 1.6건 적발
최근 하청업체 또는 거래처에 대금을 부풀려 국고보조금을 횡령하거나 목적 이외 용도로 사용하는 등 다양한 국고보조금 부정 수급 범행이 성행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부정 수급 혐의 적발 건수는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다. 2016년 214건이던 적발 건수는 2017년 234건, 2018년 492건, 2019년 546건으로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그 수가 사상 처음 600건을 넘어서며 4년 만에 185.9% 증가율을 보였다. 2013년 10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권익위에 신고가 접수된 사례 중 환수가 결정된 부정 수급액 규모는 1344억 원에 달한다. 권익위가 집계한 국고보조금 부정 수급 건수가 복지 분야에 국한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실제 부정 수급 규모는 엄청날 것으로 추정된다.
보조금 부정 수급이 크게 늘어난 것은 문재인 정부가 국고보조금 예산을 대폭 늘린 것과 무관치 않다. 기획재정부가 운영하는 국가보조금통합관리시스템 ‘e나라도움’ 통계를 보면 2017년 59조6000억 원이던 국고보조금 예산은 올해 97조9000억 원으로 4년 새 1.5배가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부정 수급이 크게 증가한 원인으로 허술한 정부 정책을 들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국고보조금 늘리기에만 치중하고 재정 누수 막기엔 소홀한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비용 부풀려 횡령, 거래처 결탁한 조직적 범행
국고보조금은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보조금법)에 근거해 국가가 행정상 목적을 달성하고자 공공단체나 경제단체, 개인에게 재화를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보조금 성격은 크게 △현금 △현물 △서비스 등으로 나뉜다. 올해는 복지, 고용·노동, 산업, 농축산업 등 전 분야에서 기초연금, 생계 급여, 아동수당 지급, 국가 예방접종 실시처럼 국민 생활과 밀접한 5300여 정책이 국고보조사업 형태로 집행되고 있다.현행 보조금법은 거짓 또는 부정한 방법으로 보조금을 지급받은 사람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보조금 등을 다른 용도에 사용한 사람은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국고보조금 규모가 매해 대폭 늘어나면서 정부는 보조금 부정수급 적발을 강화하고자 2013년 12월 ‘복지사업 부정수급 제도개선 종합대책’을 시작으로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종합대책’(2014년 12월) ‘보조금 부정수급 근절방안’(2018년 1월)을 마련하는 등 안간힘을 썼다. 또한 국민들의 자발적 신고를 유도하기 위해 지난해 1월 법을 개정했다. 기존 2억 원으로 제한하던 포상금 지급액 한도를 없애고 환수액의 30%를 신고자에게 지급하도록 한 것이다.
그렇다면 부정 수급자는 어떤 방식으로 보조금 수령을 노릴까. 가장 흔한 수법은 ‘가격 부풀리기’다. 하청업체 또는 거래처에 대금을 부풀려 보조금을 횡령하거나 목적 이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특히 공연·예술 사업, 기술 개발 사업, 시설 사업 등 ‘일회성’ 국고보조사업에서 가격 부풀리기 수법이 자주 동원된다. 오윤섭 감사연구원 연구2팀 팀장은 “일회성 국고보조사업 특성상 모니터링이나 감사를 통해 부정 수급자를 걸러내기 어려운 한계가 존재한다”고 분석한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보조사업 수급자는 모니터링에 걸리지 않으면 제재 없이 넘어갈 수 있는 데다 설령 부정 수급 사실이 발각되더라도 추가 사업에 응모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 ‘일단 일을 저지르고 보자’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기계 설비의 경우 가격이 기계 사양이나 업체마다 천차만별이라 지자체나 부처에서 꼼꼼하게 비용이나 원가를 살펴보기 어렵다는 한계를 노리고 범행을 일삼는다.”
실제로 A협회는 한국창작 발레 공연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국고보조금을 비롯해 강원도 지방보조금을 신청해 총 1억8000만 원을 수령했다. 이후 A협회 소속 B회장은 정산보고서를 작성해 문체부 산하 국민체육진흥공단, 강원도에 각각 제출했다. 하지만 감사원의 감사 결과, B회장이 공연 대행사 운영자와 공모해 허위 항목을 계상(計上)하거나 비용을 실제보다 부풀려 대가를 지급하고 다시 돌려받는 방식으로 총 5300여 만 원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 현재 이 사례는 문체부로 이첩돼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허위 작성부터 채용 위장까지
최근에는 화물차주와 거래처가 결탁해 실제 주유하지 않거나 주유량보다 부풀린 금액을 화물차 유가보조금 카드로 결제한 뒤 차액을 되돌려 받는 ‘카드깡’ 수법으로 유가보조금을 빼돌리는 사례도 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스1]
현행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제68조에 따르면,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화물차 유가보조금을 받은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표면상으로는 C씨 등 11명이 절차에 따라 유가보조금을 수령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경찰 수사 결과, C씨 등 11명은 주유업자와 결탁해 실제 주유하지 않거나 주유량보다 부풀린 금액을 화물차 유가보조금 카드로 결제한 뒤 차액을 현금으로 되돌려 받는 이른바 ‘카드깡’ 수법으로 유가보조금을 수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외에도 외상 거래 후 일괄적으로 허위 결제하거나 자가용이나 다른 차량에 주유하는 방법으로 주유량을 부풀려 보조금을 가로챈 사실도 밝혀졌다. 결국 C씨를 비롯한 2명은 지난해 6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국가보조금으로 시설이나 건물을 짓고 소유권을 이전 받아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에도 공사비를 부풀린다. 보통 건물을 지을 때는 지자체가 현금을 보조하고 보조사업자가 현금을 지원받는 대가로 건물을 지은 뒤 소유권을 이전받아 사업을 수행한다. 보조사업자가 보조금 일부를 부담하는 경우가 많기에 건물이 보조사업자 소유가 되는 경우도 흔하다. 대신 해당 시설을 처분하거나 담보 대출을 받는 등의 행위는 제한된다. 그런데 그동안 적발된 사례를 보면 보조사업자가 공사비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자기부담금을 들이지 않거나 건물에 담보를 설정한 경우도 적지 않다.
권오성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가보조금 부정 수급의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의 혈세가 엉뚱한 곳으로 새고 있다는 것이다.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며 “정부나 지자체가 건설 책임을 지고 소유권을 가진 후 보조사업자에게 임대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된다면 부정수급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 장려금을 빼돌리는 수법은 다양하고 치밀하다. 구비 서류를 허위로 작성하는가 하면 보조사업 신청자와 지역 유지, 공무원 간 은밀한 ‘짬짜미’(남모르게 자기들끼리 짜고 하는 약속)를 통해 고용 장려금을 신청하기도 한다.
6월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총 441곳 사업장에서 지난해 청년 추가 고용 장려금의 부정 수급 혐의가 확인됐다. 이들 사업장에서 회수한 보조금만 44억7900만 원. 청년 고용 장려금은 중소·중견기업이 청년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고용한 청년 1인당 3년 간 2700만 원을 지원하는 제도.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인력소개업체 ‘브로커’를 통해 소개받은 단기 근무자를 신규 직원으로 그럴듯하게 채용하거나 유령 직원을 고용해 보조금을 신청하는 수법이 요즘 자주 보인다. 최근 몇 년 사이 정부가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년고용장려금 지원 규모를 확대하자 기를 쓰고 지원금을 수령하려는 사람들의 수법이 다양하게 진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담당 공무원의 부주의로 수급자가 보조금을 부정 수급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윤섭 팀장은 “지자체의 인력 부족이 심하다 보니 한 공무원이 보조사업 여러 개를 수행해 업무 과실이 잦은가 하면 주무부처에서 지침을 부정확하게 하달하거나 수시로 변경해 부정 수급 실태를 파악하기 쉽지 않은 문제도 있다”며 “공무원의 인수인계 미흡으로 인한 관리 문제도 영향을 미친다. 단순히 개인의 문제를 넘어 정부 및 지자체의 구조적 문제를 의심해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6월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총 441곳 사업장에서 지난해 청년추가고용장려금의 부정 수급 혐의가 확인됐다. [사진=게티이미지]
점검조사 실효성↓, 솜방망이 처벌 개선 시급
전문가들은 부정 수급이 발생하는 원인으로 점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을 꼽는다.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부정 수급을 해도 적발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긴다는 것. 부정 수급자 처벌의 일관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일례로 현행 ‘수산직불제법’에는 “부정한 방법으로 보조금을 수령하는 사람은 부정 수급액의 2배를 추가 징수한다”고 규정돼 있다. 반면 보조금법상 제재 부가금은 부정 수금액의 최대 5배에 이른다. 권오성 선임연구위원은 “개별법마다 부정 수급자에 대한 제재 정도가 달라 처벌의 일관성이 떨어진다. 부정 수급자에 대해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으니 국민은 부정 수급을 범죄가 아닌 잘못된 관행 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했다.보조금이 ‘눈먼 돈’이라는 인식을 바로 잡으려면 보조금의 법적 개념부터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오윤섭 팀장은 “보조금에 대한 명확한 법적 개념이 마련되지 않은 탓에 민사소송 시 보조금 성격을 놓고 불필요한 다툼을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법적 개념을 분명하게 세우고 보조금법상 제재 규정 보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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