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과일 복숭아는 딱딱하든 말랑하든 달콤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GettyImage]
얼마 전 ‘딱딱이 복숭아’를 구입할 차례가 돌아왔다. 뽀얀 색에 멍이 없고, 묵직한 복숭아 4개들이 한 팩을 샀다. 깨끗하게 씻어 냉장실에 넣고 시원해지기를 기다렸다 한 알 먹어 보니 단맛은 없고 아삭함만 있는 게 아닌가. “안 되겠다, 익혀 먹자” 싶어 남은 3개를 실온에 뒀다. 그런데 익기는커녕 마르는 게 아닌가. 결국 주스나 잼으로 만들려고 뭉텅뭉텅 썰어 냉장실에 넣었다. 알고 보니 우리나라에서 키우는 복숭아 품종이 100여 개나 되고, 내가 고른 것은 호락호락 후숙 되지 않는 종류였던 것 같다.
단 맛이 다소 떨어지는 복숭아는 큼직하게 썰어 주스나 잼으로 만들어먹으면 좋다. [GettyImage]
껍질이 훌훌 벗겨지는 말랑 달콤 복숭아
무모계, 유모계, 황육계, 백육계, 경육종, 용질성. 복숭아를 나누는 기준이다. 언뜻 닭고기 분류어처럼 보일 수 있지만 털의 유무, 과육의 색깔(하얀지 노란지), 살집이 단단한지 무른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이름으로 보면 백도와 황도는 모두 털이 있다. 자두처럼 껍질이 붉은 천도는 털이 없다. 단맛으로 따지자면 대체로 황도가 제일이고, 아삭거림은 백도, 새콤 산뜻한 맛은 천도가 좋다. 과육이 단단한 천도가 있긴 하지만 상쾌하게 사각거리는 맛은 백도가 한 수 위인 편이다.생산량은 백도가 황도보다 훨씬 많고, 생산 기간도 길다. 요즘 시장에선 딱딱이 백도 중 유명이 많이 보인다. 이 품종은 본래 단맛이 뛰어나지만 작황에 따라 심심한 맛이 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실온에서 익히려 들지 말고 시원하게 보관했다가 아삭하게 먹는 게 낫다.
미백은 껍질이 훌훌 벗겨지는 말랑하고 달콤한 복숭아다. 실온에 두면 부드러운 과육 맛도 즐길 수 있다. 이 외에도 미홍, 유미, 수미, 미쓰홍, 대옥계처럼 낯선 이름의 복숭아가 즐비하다. 복숭아 상자에 품종이 친절히 적혀 있다. 각각의 특징을 알아두면 다양한 맛을 경험하며 좋아하는 것을 골라 먹을 수 있다.
황도는 살구색에 석양빛을 뒤섞어 놓은 것처럼 색이 곱다. 과육은 부드럽고, 향긋한 단내가 물씬 난다. 옆을 지나가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강렬한 여름 열매다. 시장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건 장호원황도다. 수확한 뒤 재빨리 먹어야 맛좋은 선골드, 후숙하면 더 맛있는 백천도 인기다. 9월에 시장에 나와 “복숭아 계절의 문을 닫는 품종”이라고 알려진 만생황도(장호원황도의 만생종)도 있다.
복숭아 꾹꾹 누르면 농부 마음도 멍들어요
껍질에 털이 없고 자그마한 천도복숭아는 노란 과육과 신맛이 매력적이다. [GettyImage]
독특한 복숭아를 하나 꼽아 보자면 천도의 외모와 백도의 맛을 지닌 ‘신비’ 복숭아가 있다. 겉모양이 자두와도 닮았다. 매끈하고, 덜 익은 건 노릇하고 푸릇하다. 아무리 봐도 새콤해 보이는데, 맛을 보면 놀랍다. 시원하고 달콤한 백도 맛이 난다. 신비복숭아는 후숙하면 더욱 달게 즐길 수 있다.
흔치는 않지만 종종 보이는 납작복숭아도 매력 있다. 유럽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품종으로 도넛복숭아, 접시복숭아, UFO복숭아 등으로 불린다. 작은 복숭아를 위아래에서 꾹 눌러 만든 것처럼 재미난 모양이다. 꼭지 쪽은 노르스름하며 익을수록 진홍색을 띤다. 과육이 단단한 편으로 아삭하다. 신맛은 적고 단맛이 좋다. 크기가 작아 먹을 것도 많지는 않은데, 대중적인 품종이 아니라 덥석 구입하기엔 비싼 편이다.
복숭아는 무르기 쉬운 과일이다. 맛있는 걸 고르겠다고 꾹꾹 누르면 누르는 대로 멍이 들고 만다. 농부와 상점 주인의 마음에도 멍이 생긴다. 그보다는 박스에 적힌 품종을 살펴보고, 향을 맡아보고, 멍이나 흠집은 없는지 눈으로만 매섭게 관찰하는 정성을 들여 구입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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