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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과 작품을 잇는 징검다리, ‘도슨트’의 세계

“철저하게 ‘중간자 언어’ 사용하는 전시장의 조연”

  • 오홍석 기자 lumiere@donga.com

관람객과 작품을 잇는 징검다리, ‘도슨트’의 세계

  • ● 대중의 미술 관심 높아져 도슨트 수요 증가
    ● 관람객과의 상호작용으로 미술관 문턱 낮춰
    ● 작품 부각하기 위해 희생하는 역할 자처
    ● 자료 조사에서 연기까지 직접 해내
    ● 아직 재능 기부, 자원봉사라는 인식 강해
    ● 스타 도슨트 “2, 3년 후 직업으로 인정받을 것”
‘스타 도슨트’ 김찬용 씨가 관람객 앞에서 전시 해설을 하고 있다. 과거 도슨트는 자원봉사자로만 여겨졌지만, 최근 도슨트의 전시 해설을 듣기 위해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이 늘고 있다. [김찬용 도슨트 제공]

‘스타 도슨트’ 김찬용 씨가 관람객 앞에서 전시 해설을 하고 있다. 과거 도슨트는 자원봉사자로만 여겨졌지만, 최근 도슨트의 전시 해설을 듣기 위해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이 늘고 있다. [김찬용 도슨트 제공]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남서울미술관)이 ‘도슨트 대회’라는 이색 전시회를 열어 화제다. 6월 15일부터 두 달간 ‘묵다 묻다’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 전시는 특정 작품이 아니라 ‘도슨트’를 전면에 내세워 눈길을 끌었다.

‘가르치다’라는 뜻의 라틴어 ‘docere(도세르)’에서 유래한 도슨트는 주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관람객에게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도슨트가 ‘가르쳐주는’ 것은 작품의 제작 시기, 표현 기법 등에 그치지 않는다. 유능한 도슨트는 화가의 생애와 해당 작품에 담긴 의미, 미술관의 기획 의도 등까지 풍성히 알려준다. 같은 전시회를 감상한다 해도 어떤 도슨트를 만나느냐에 따라 관람객의 이해 정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남서울미술관의 이번 전시는 이러한 도슨트의 중요성을 집중 조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전시회는 동일한 작품을 놓고 여러 명의 도슨트가 서로 다른 해설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묵다 묻다’라는 제목은 도슨트들이 직접 지은 것으로, ‘묵다’에는 18년 역사를 가진 서울시립미술관 도슨트 활동을 돌아본다는 의미가, ‘묻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후 새롭게 요구되는 도슨트의 역할 등에 대해 묻고 답하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 전시를 기획한 강세윤 남서울미술관 큐레이터는 “도슨트는 어려운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줘 미술 대중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최근 도슨트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진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전시회에 도슨트가 처음 등장한 건 1995년 광주비엔날레. 이후 작품 이해 도우미로서 명맥을 이어온 도슨트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대중의 주목을 받으며 새로운 위상을 갖게 됐다. 관람객과 잘 소통하며 작품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일부 도슨트가 SNS로 유명해지자 몇몇 전시 기획사는 전시회 홍보 전면에 도슨트를 내세우기도 했다.



흔히 도슨트를 큐레이터와 혼동하기도 한다. 큐레이터는 한국에서는 학예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큐레이터는 미술관 소속으로 주로 전시를 기획 총괄하고, 미술관 소장품을 관리하기도 한다. 도슨트는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의 기획 의도를 파악해 작품과 엮어 관객에게 이야기로 들려주는 사람이다.

“도슨트는 중간자의 역할 지키는 것”

미술관에서 인파를 몰고 다니는 도슨트를 보면 ‘큐레이터가 써준 걸 그냥 읽는 사람 아닌가’ 할 수도 있다. 그러나 4년차 도슨트 최수정(46) 씨는 “모든 도슨트가 전시 해설 대본을 직접 작성한다”며 준비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도슨트는 해설을 준비하기에 앞서 전시를 기획한 학예사로부터 전시의 취지, 배경 설명에 대한 자료를 받는다. 나머지 정보는 직접 찾는다. 연구 과정에서 작가와 관련된 논문, 이전 전시 도록, 비평가의 평론 등을 찾아 자료를 모은다. 요즘은 작가의 인터뷰 영상을 찾아 참고하는 경우도 많다. 직접 쓴 대본을 처음 선보일 때면 늘 떨린다. 같이 일하는 도슨트들과 돌아가며 서로의 전시 해설 과정을 보고 동료 평가를 통해 개선점을 찾아나간다.”

14년차 도슨트 김찬용(36) 씨는 한국에 몇 안 되는 ‘전업’ 도슨트다. 그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전업 작가로 성공하기는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작가가 아닌 미술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찾던 중 2007년 그에게 기회가 왔다. 당시 김씨는 국내 현대미술 작가들의 기획전에서 스태프로로 일하고 있었다. 관람객들이 특정 작품 앞에서 “이것도 작품이냐”고 말하는 것을 우연히 듣고,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이 저평가되는 게 안타까워 “제가 설명해 드릴까요?”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미술관 매니저가 김씨에게 “일과 시간이 끝난 뒤 남는 시간에 전시 해설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김씨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만들어보자”라며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후 김씨는 여러 전시관에서 일하며 한국에서 도슨트라는 직업을 만들어냈고, 이제 그는 ‘스타 도슨트’가 됐다. 그동안 알베르토 자코메티, 르 코르뷔지에, 장미셸 바스키아 등 굵직한 해외 작가의 국내 개인전 해설을 도맡았고, 그의 해설을 듣기 위해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도 있다.

김씨는 도슨트 말고도 다양한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구독자 3만3000명의 유튜브 채널 ‘김찬용의 아싸틔비’를 운영하고 책도 쓰고 강연도 한다. 그는 “여러 가지 직업을 가져야 하는 요즘 트렌드에 맞춰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도슨트를 “작품과 전시가 더 부각될 수 있도록 조연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훌륭한 도슨트는 중간자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며 “기획자의 기획 의도를 왜곡하지 않으면서, 작가가 작품에 담아내고자 했던 바를 파악해 관람객이 각자의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풀어내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대신 “도슨트는 관람객이 자신만의 해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직업이므로 도슨트가 돋보여서는 안 된다”며 “도슨트의 최고 미덕은 ‘치우치지 않음’”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철학을 반영하듯 그는 관람객 앞에 설 때 상하의를 모두 ‘올블랙’으로 맞춰 입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업계 종사자들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도슨트가 직업으로 자리 잡기 위한 과도기를 겪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도스트는 국내 도입 초기 무급으로 재능을 기부하는 자원봉사자로 여겨졌다. 여전히 자원봉사자 도슨트가 대다수지만 서서히 전업 도슨트가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이 개최한 제1회 도슨트 대회 ‘묵다 묻다’. 이번 전시는 작품과 작가가 아닌 도슨트를 전면에 내세워 눈길을 끌었다.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제공]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이 개최한 제1회 도슨트 대회 ‘묵다 묻다’. 이번 전시는 작품과 작가가 아닌 도슨트를 전면에 내세워 눈길을 끌었다.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제공]

여전히 무급 자원봉사자라는 인식

최수정 씨는 “한 민영 미술관은 도슨트에게 ‘전문 자원봉사자’라는 이름을 붙인 뒤 최저시급만 지급했다”며 “석 달 동안 12회 전시 해설을 한 대가로 12만 원 남짓한 돈을 받았다”고 했다. 도슨트 업무가 관람객 앞에서 선보이는 전시 해설뿐 아니라 해설을 위한 공부와 자료 준비 등까지 포함하는 걸 감안하면 처우는 형편없는 편이다.

김문석 서울도슨트협회장은 “프랑스의 경우 도슨트협회가 체계적으로 도슨트를 교육하고 자격증을 발급한다”며 “도슨트가 필요한 미술관과 협회 간에 계약을 맺고 협회가 도슨트를 파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고정 급여를 지급하는 기관이 없어 전업 도슨트가 나오긴 힘들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협회를 중심으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게 그의 부연이었다.

도슨트 교육 또한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2002년 유럽 배낭여행 당시 박물관에서 도슨트를 보고 ‘나도 저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는 고은경 씨는 2006년 서울시립미술관 도슨트 교육 프로그램을 거쳐 도슨트가 됐다. 3개월간 1주일에 세 시간씩 교육을 받고 채점관들 앞에서 전시 해설을 시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이 프로그램 지원자는 100명이 넘었지만, 도슨트로 선발된 사람은 15명에 불과했다. 고씨는 “당시 교육이 평일 오후 시간에 있어서 회사 일로 수업에 못 가는 날엔 동료 수강생이 녹음한 파일로 강의를 듣곤 했다”며 “미술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수료하지 못할 만큼 커리큘럼이 빽빽했다”고 말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은 도슨트를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역량 강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도슨트라는 직업을 개척해 온 김찬용 씨는 업계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 그는 “일을 시작한 지 10년차이던 2017년만 해도 한 달에 휴일 없이 일해 벌어들이는 수입이 60만~70만 원 남짓했다”며 “그때는 누군가 도슨트가 되겠다고 하면 뜯어말렸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도슨트로만 벌어들이는 수익은 과거에 비해 서너 배 이상 늘어났다”며 “코로나19가 끝나 전시가 다시 활성화되면 2,3년 안에 도슨트가 번듯한 직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도슨트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최근 도슨트가 되겠다는 사람들 중 이 직업을 징검다리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며 “미술인들과 인맥을 쌓을 목적으로 달려들거나 단순히 인기 많은 인플루언서가 되겠다는 목표로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라고 조언했다. 그는 “도슨트라는 직업이 결코 쉽지 않은 만큼 도전하기 전에 자신이 정말 미술을 좋아하고, 편향되지 않은 시선으로 관람객에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도슨트 #현대미술 #남서울미술관 #김찬용 #신동아



신동아 2021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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