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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 한 대로…” 저소득층 아이들의 악몽 같은 여름

폭염·코로나로 이중고, ‘통풍 제로’ 반지하방 고통 가중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선풍기 한 대로…” 저소득층 아이들의 악몽 같은 여름

  • ● 얼린 생수병 끌어안고 더위 견딘 아이들
    ● 외부 지원 받아도 낡은 건물 무너질까 에어컨 설치 못해
    ● 환기 안 되는 반지하방, 극성스럽게 피어나는 곰팡이
    ● 무더위 지나면 더 힘든 겨울이 온다
    ● 최소한 어린이만이라도 ‘지옥고(지하·옥탑방·고시원)’에서 구해야
반지하방에서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해 여름을 난 지수(가명)와 두 동생 모습. 세이브더칠드런이 아동 인권 보호를 위해 대역을 사용해 촬영한 것으로, 배경에 등장하는 집은 실제로 지수 남매가 사는 곳이다.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반지하방에서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해 여름을 난 지수(가명)와 두 동생 모습. 세이브더칠드런이 아동 인권 보호를 위해 대역을 사용해 촬영한 것으로, 배경에 등장하는 집은 실제로 지수 남매가 사는 곳이다.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초등학교 1학년 진아(가명)는 올 여름방학 내내 거의 온종일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에 머물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동네 도서관이나 아동센터에 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에어컨이 없는 집은 낮 동안 지내기에 너무 더웠다. 코로나19로 어머니 식당에 손님이 줄어든 게 그나마 다행이었을까. 진아에겐 그랬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머니 사정은 또 달랐다. 어머니는 부쩍 줄어든 수입으로 생계를 꾸리기가 더 힘겨워졌다. 식당 문을 닫고 집에 돌아온 밤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밤새 선풍기를 돌리는 것조차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진아네 형편을 알게 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기후 변화에 따른 폭염 취약 아동 가정 긴급 지원’ 명목으로 30만 원을 보내줘 그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얼린 생수병 끌어안고 더위 견딘 아이들

2021년 여름, 지구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8월 13일 “7월 지구 표면 온도가 1880년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높았다”고 밝혔다. 이번 여름은 길기도 했다. 7월 13일 밤 서울 최저기온은 26.3도를 기록했다. 작년(8월 4일)보다 23일 앞서 열대야가 찾아온 것이다. 과거 48년(1973~2020) 평균(7월 22일)과 비교해도, 올해 열대야는 9일 더 빨랐다. 유난히 혹독한 이번 여름은 가난한 집 아이에게 특히 더 큰 고통을 줬다.

경기 북부에 사는 민재(가명)는 5남매의 막내다. 방 두 개짜리 집에 엄마 아빠까지 일곱 식구가 산다. 냉방장치라곤 선풍기 한 대뿐. 일용직 아버지가 무더위와 코로나19로 수입이 평소보다 줄면서 그것조차 마음 놓고 틀기 어려운 날이 이어졌다.

올해 1월 태어난 연서(가명)도 지은 지 30년 된 집에서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해 여름을 났다. 연서네 집 거실엔 창문조차 없다. 안방에 하나 있는 환기창은 ‘먹자골목’ 쪽을 향하고 있어 냄새와 소음 때문에 열어두기 힘든 형편이다. 전경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경기북부지역본부 옹호사업팀장은 “주거 환경이 열악한 가정의 경우 환기가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여름이면 실내 온도가 바깥 기온보다 오히려 더 뜨겁게 느껴지기도 한다”며 “그런 집에 사는 어린이들이 더위를 견디려고 꽁꽁 얼린 생수병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다.

어린이는 성인에 비해 신진대사가 원활하다. 열이 많고 체온이 잘 오른다. 반면 땀으로 체열을 조절하는 기능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폭염에 노출되면 열사병 등 온열질환에 걸릴 위험이 크다. 특히 밀폐된 고온다습 환경은 열사병을 유발하기 쉽다. 체온이 서서히 오르다 정상체온 범위(약 35.5~37.5도)를 벗어난 상태가 유지되면 심할 경우 의식장애 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질병관리청은 올해 5월 20일부터 8월 7일까지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에 접수된 온열질환 발생 건수가 121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배(753건) 늘었다고 밝혔다.



낡은 집 무너질까 에어컨 설치도 못해

옴짝달싹하기 힘들 만큼 세간이 꽉 들어찬 한 집 안 풍경. 올여름 폭염이 이어지면서 주거환경이 열악한 취약계층 어린이들이 큰 고통을 겪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옴짝달싹하기 힘들 만큼 세간이 꽉 들어찬 한 집 안 풍경. 올여름 폭염이 이어지면서 주거환경이 열악한 취약계층 어린이들이 큰 고통을 겪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이 가운데 상당수가 저소득층일 것으로 보인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2020 폭염영향보고서’를 보면 2018년 기준 고소득층(건강보험료 상위 20%)의 온열질환 발병률은 7.4명이었다. 반면 저소득층에 해당하는 의료급여수급자는 1만 명당 21.2명이 온열질환을 앓았다. 약 3배에 이르는 수치다. 이에 따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열악한 환경의 이웃을 돕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나상민 세이브더칠드런 미디어팀장은 “7월 한 달 동안 폭염에 취약한 가정 아동 325명에게 냉방용품(서큘레이터, 선풍기, 쿨매트, 제습기 등)을 지원했다”며 “부모님들께 ‘아이가 밤에 더워 제대로 잠도 못 잤는데 쿨매트 덕에 좀 살 수 있게 된 것 같다’는 얘기를 들으면 다행스러우면서도 안타까웠다”고 전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펴낸 ‘폭염 민감계층의 건강피해 최소화 방안’(폭염) 보고서에 따르면 “수면 공간 온도를 견디기 어렵다”는 응답 비율이 저소득층의 경우 52.8%로 일반 집단(44.2%)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일상생활 공간 온도를 견디기 어렵다”는 응답 비율도 저소득층(49.1%)이 일반 집단(35.2%)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전문가들은 올해 같은 폭염 환경에서는 가정 내 에어컨 유무가 삶의 질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상당수 저소득층이 에어컨 설치 자체가 불가능한 환경에 산다는 점이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주거빈곤 가정 실태를 조사해 펴낸 ‘아동의 미래, 집에서 시작합니다’ 보고서에는 17세 영태(가명)네 환경이 기록돼 있다. 아이는 조사 담당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집 안으로 바람 들어오는 구멍이 없어요. 바람이 불어도 철판 같은 게 막아져 있으니 답답한 거죠. 열기는 열기대로 방 안에서 돌아요. 에어컨은 없고요. 벽걸이 에어컨은 벽을 뚫으면 집이 무너져서 위험하고, 세워놓는 에어컨은 집이 낮아서 높이가 안 맞아요. 이 집은 에어컨을 쓸 수가 없어요.”

환기 못 하는 여름철, 극성스럽게 피어나는 곰팡이

폭염과 혹한을 야기하는 기후변화가 특히 취약계층 어린이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음을 경고하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캠페인 사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폭염과 혹한을 야기하는 기후변화가 특히 취약계층 어린이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음을 경고하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캠페인 사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7세 성균이(가명)는 무허가 조립식 건물에 살고 있다. 47세 성균이 엄마는 “집이 샌드위치 패널이다 보니 밤에도 되게 덥다. 달궈진 열이 빠져나가지를 않는다”고 토로했다.

“가장 힘든 건 음식을 할 때예요. 불을 써야 하는데 패널이라 열이 빠져나갈 공간이 없어요. 창문을 열어놓아도 요리 한번 하면 온몸이…. 라면 하나 끓여도 더워요.”

기자는 코로나19 전파 우려 때문에 올여름 폭염에 시달리는 이들 가정을 직접 방문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사회복지사들이 채록한 증언 내용은 구체적이면서 생생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폭염 보고서에 따르면 저소득층은 에어컨이 없는 비율이 14.1%로, 일반 인구집단(2.5%)의 7배 수준이다. 에어컨이 있는 경우에도 경제적 이유로 사용을 자제한다는 응답이 68.6%에 달했다.

방예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경기북부지역본부 대리는 “취약계층의 경우 에어컨을 갖고 있어도 구형 모델인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냉방 효율이 떨어져 전기료는 많이 들고 공기는 시원해지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니 가난한 가정에서는 에어컨 사용을 꺼리고, 아이들은 견디기 힘든 환경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나상민 세이브더칠드런 팀장은 “예전엔 집에 냉방장치가 없는 저소득층 가정 어린이의 경우 낮 동안 복지관 행정복지센터 등에 가서 더위를 피할 수 있었다”며 “코로나19로 공공시설을 이용하기 어려워지면서 아이들이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고통이 더욱 커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에어컨이 없는 가정 상당수는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곰팡이로도 고통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기가 잘 안 되는 집안은 여름이면 덜 마른 빨래 냄새와 곰팡이 악취로 가득 차게 마련이다. 거기에 끼니 때 발생하는 음식 냄새까지 섞이면 숨을 쉬는 게 고역이 되기까지 한다. 전경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팀장은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는 한 가정을 방문했다가 답답한 공기에 깜짝 놀랐다. 작은 창문이 있긴 한데 그걸 열면 밖에서 벌레가 들어오니 그조차 꽁꽁 닫고 지내더라”며 “곰팡이와 벌레는 한여름 더위 못잖게 취약계층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요소”라고 전했다.

서울시와 한국도시연구소가 발표한 ‘서울시 아동 주거빈곤 가구 주거실태조사 연구’에도 이런 현실이 잘 드러나 있다. 연구진이 만 18세 미만 아동이 포함된 서울시내 주거 취약계층 245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아동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로 가장 많이 꼽힌 게 습기·곰팡이(71.0%)였다. 이어 비좁음(64.5%), 쥐·해충(63.3%), 채광·환기(60.8%)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의 75.5%는 “주거환경으로 인해 아동에게 질병이 생긴 적이 있다”고도 답했다. 알레르기·비염(64.9%), 감기·천식(57.8%), 아토피·피부질환(45.4%)이 흔히 나타났다.

반지하방에서 선풍기 한 대로 버틴 세 남매

특히 영화 ‘기생충’을 통해 세계에 널리 알려진 반지하 환경은 자라나는 어린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10세 지수(가명)가 바로 그런 집에서 산다. 지수와 엄마, 두 동생이 함께 사는 집은 건물이 다닥다닥 늘어선 주택가 한 빌라 건물의 반지하 층에 있다. 보증금 45만 원, 월세 45만 원 하는 집 창문을 열면 바깥 열기와 검은 매연이 동시에 쏟아져 들어온다. 집 앞에 선 자동차 배기구가 창 쪽을 향하고 있어서다. 여름이면 벽을 뒤덮은 곰팡이가 매트리스 위까지 번져도 창문을 활짝 열어두기 어렵다. 지수는 세이브더칠드런을 통해 냉방용품비 등을 지원받았지만, 열악한 환경은 겨울에도 이 가족의 삶을 힘들게 할 전망이다.

전경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팀장은 “여름에 더운 집이 보통 겨울엔 춥다. 단열이 잘 안 되기 때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런 가정의 경우 추위를 조금이라도 이겨내려고 가족이 모여 생활하다 보니 실내 환경이 더욱 악화하기 쉽다고 한다. 공기 중 일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고 부유 세균량이 늘면 어린이 건강에 큰 위협 요인이 된다. 최근 코로나19로 대중목욕탕 이용이 어려워진 점도 문제다. 욕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주거 환경의 어린이들은 겨울이 되면 위생 면에서 더욱 열악한 조건에 내몰릴 수 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폭염이 길어지고 혹한 또한 매서워지는 상황이다. 최소한 어린이들이 지하나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비닐하우스 등 이른바 비주택에서 사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행 주거기본법 제 2조에는 “국민은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 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우리나라 아동 약 8만6000명이 ‘비주택’에 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임세희 서울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주거환경은 정신적·육체적인 면에서 아동의 성장 및 발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며 “주거복지 정책을 세울 때 어린이가 있는 가정 보호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동주거 #주거빈곤 #폭염 #코로나19 #신동아




신동아 2021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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