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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에게 인권 문제는 흥정 대상 아니다

北 인권은 文-바이든 갈등 진원지

  •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gwshin@stanford.edu

바이든에게 인권 문제는 흥정 대상 아니다

  • ● 대북전단 살포 금지 조치 이해 못 해
    ● 文정부가 바이든 외교라인 가르치려 해선 안 돼
    ● 섣부르게 북·미 정상회담 중재? 바이든 행정부와 코드 맞지 않아
    ● 한국도 공석인 북한인권대사 임명해야
    ● 이번 선거로 ‘트럼피즘’ 외려 강화
    ● 대북정책에서 장외의 트럼프 협조도 구해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오른쪽)이 2020년 11월 16일(현지 시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을 대동한 채 
자택이 있는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경제 정책 구상을 밝혔다. [윌밍턴=AP 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오른쪽)이 2020년 11월 16일(현지 시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을 대동한 채 자택이 있는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경제 정책 구상을 밝혔다. [윌밍턴=AP 뉴시스]

“바이든이 이겼지만 이긴 게 아니고, 트럼프가 졌지만 진 게 아니다.” 

미국 지인의 자조 섞인 외침처럼 ‘바이든호(號)’가 닻을 올렸지만 험로가 예상된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경제 회복, 인종갈등 치유 등 당장 급한 난제가 수두룩한데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로 손상된 미국의 리더십을 회복하는 일도 쉽지 않다. 안으로는 민주당 내 좌파의 압박, 밖으로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의 거센 도전에 맞서 싸워야 한다. 바이든의 미국과 트럼프의 미국 간 싸움이 지속되면서 향후 4년간 미국 사회는 치유보다는 분열, 통합보다는 양극화가 더 심화할지 모른다. 

조 바이든은 반(反)트럼프 연합전선의 선봉장으로 나와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는 29세부터 37년간 상원의원을 지냈고, 곧이어 8년간 부통령으로 재직했다. 출마한 모든 선거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백전노장 정치인이다. 워싱턴 조야의 네트워크와 막강한 인재풀을 자랑한다. 행운도 따랐다. 팬데믹과 경제 침체로 인해 트럼프의 현직 프리미엄을 상쇄하고도 남을 선거 환경이 조성됐다. 주류 언론과 전문가 그룹의 대대적인 지원도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피 말리는 접전과 연이은 소송 끝에 가까스로 승리했다. 고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은 리더보다는 ‘올드 보이’ 이미지가 강했고, 뚜렷한 어젠다와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반트럼프 정서’에 기댄 탓이 크다. 4년 전 트럼프를 과소평가했던 유권자들은 ‘최선은 아니더라도 최악은 피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바이든에게 투표했다.


‘바이든 연합군’의 결집 혹은 분열

2020년 11월 14일(현지 시간) 미국 수도 워싱턴의 백악관 프리덤 광장에 모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도둑질을 멈춰라” “트럼프-펜스” 등의 문구가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대선 결과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윌밍턴=AP 뉴시스]

2020년 11월 14일(현지 시간) 미국 수도 워싱턴의 백악관 프리덤 광장에 모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도둑질을 멈춰라” “트럼프-펜스” 등의 문구가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대선 결과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윌밍턴=AP 뉴시스]

정치 경험으로 보면 ‘준비된 대통령’이지만 직면한 도전이 만만치 않다. 당장 팬데믹과 경제 침체라는 발등의 불을 꺼야 한다. 트럼프 현상의 기반이 된 백인우월주의를 넘어서는 동시에 이를 포용해야 한다.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등 민주당 내 좌파의 압박 속에서 트럼프를 지지한 우파 세력을 포용하는 정책을 만드는 일도 쉽지 않다. 



주요 인선을 놓고 벌써 민주당 내 좌파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어 ‘바이든 연합군’의 결집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미지수다. 대선과 함께 치러진 연방의회 선거 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국내 정책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의회의 경우 민주당이 상원을 탈환하는 데 실패했다. 민주당은 하원에서 외려 의석수가 기존보다 줄었다. 법인세 인상이나 규제 강화 등 제도 변화를 이루어내기가 어렵게 됐다. 의료보험 확대 등 개혁안도 보수가 6대 3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대법원으로 인해 여의치 않을 전망이다. 

2021년 1월 조지아주 상원의원 선거가 열린다. 공화당이 2석 중 1석을 가져와 상원을 수성하고 2년 후 하원마저 탈환하면 고령 탓에 단임에 그칠 가능성이 큰 바이든은 곧바로 레임덕에 처할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선 바이든이 신승했지만 조지아주는 전통적인 공화당 우세 지역이다. 또 중간선거에선 야당이 승리한다는 관례에 비춰보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행정부는 민주당이, 의회는 공화당이, 사법부는 보수가 장악한 가운데 트럼프의 장외 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민주당 내 권력투쟁까지 일어나면 미국 정치는 한 치 앞을 모르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트럼프는 투표뿐 아니라 소송에서도 졌다. 하지만 끝까지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자신에게 투표한 7000만이 넘는 지지자를 배경으로 퇴임 후에도 장외 정치를 펼 것이다. 트럼프는 ‘합법적으로 이긴 선거를 부정으로 빼앗겼다’는 프레임으로 지지자를 결집해 정치를 계속하려 할 것이다. 4년 후 대선에 다시 출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역사상 연임에 실패한 뒤 대통령직에 다시 오른 인물은 그로버 클리블랜드 딱 한 명뿐이다. 트럼프는 퇴임 후 조용히 회고록을 집필하거나 원로 정치인으로 미국 사회를 위해 묵묵히 봉사한 전임자들과 상반된 행보를 보일 전망이다. 

사라진 ‘가드레일’과 한국

당선 직후 바이든은 “지금은 치유의 시간”이며 “블루 스테이트(민주당 지지 지역)나 레드 스테이트(공화당 지지 지역)가 아닌 유나이티드 스테이트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오히려 더 깊은 갈등의 서막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트럼프는 바이든 행정부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분열과 증오의 정치를 가속화할 공산이 크다. ‘샤이 트럼프’는 이에 화답해 더는 무대 뒤에 숨지 않고 전면에 나서서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선거 결과에 대한 승복은커녕 크고 작은 소송과 여론몰이로 민주주의 규범과 정신을 마구 훼손해도 공화당 지도부는 침묵했다. 2020년 2월 탄핵 표결 때에도 공화당 내에선 미트 롬니 상원의원만이 대통령의 권력남용 혐의를 인정했다. 린지 그레이엄, 테드 크루즈와 같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상원 중진 다수가 선거에서 생환했다. 이번 선거를 통해 ‘트럼피즘(Trumpism·트럼프주의)’은 더욱 강해졌다는 의미다. 

한 공화당 전략가의 말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공화당 내 800파운드 고릴라다.” 더는 정치권의 이단아가 아닌 공화당 내 최대주주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하버드대의 두 정치학자 스티브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에서 한탄한 대로 미국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을 때마다 이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 정당 내 ‘가드레일’을 이젠 기대하기 어렵다. 바이든의 미국과 트럼프의 미국 간 싸움이 계속될 가능성이 큰 이유다. 

미국 대선에서 드러난 심각한 정치 양극화와 후폭풍은 한국에도 의미심장한 과제를 던진다. 촛불정신으로 출범했다는 문재인 정부하에서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양극화와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법치주의라는 미명하에 민주주의 정신과 규범도 광범위하게 훼손되고 있다. 

‘조국 대 반(反)조국’으로 쪼개진 거리의 정치, 법무부와 대검찰청의 갈등, ‘문빠’와 극우 유투버들의 활보는 민주주의가 성숙해 가는 과정에서 겪어야 할 성장통으로 치부하기엔 폐해가 너무 크다. 좌우 극단으로 쏠린 사회에선 합리적 목소리가 설 자리가 없다. 지식인들은 자기 검열에 빠진다. 포퓰리스트들은 서민의 표를 얻기 위해 기득권을 공격하고, 이를 통해 다수자가 되면 의견이 다른 집단과 소수자를 압박하는 횡포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리저리 찢기고 갈린 한국 사회가 이대로 방치된다면 다음 대선에선 미국 못지않은 대립과 후폭풍을 맞게 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여야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관용의 정신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 절차적 법치주의를 넘어 민주적 규범과 정신을 반드시 수호해야 할 가치로 내면화해야 한다. 포퓰리즘과 국수주의를 등에 업은 민주주의의 침체는 글로벌한 현상이며 미국도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대선을 둘러싼 혼란을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해선 안 된다. 그나마 미국은 바이든 연합군의 승리로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지켰지만 한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 우선주의’의 종언

“마음속 깊이 중산층의 가치가 뿌리내린 외교 전문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재임 기간 부통령이었던 바이든에 대해 내린 평가다. 바이든은 자타가 공인하는 외교 베테랑이다. 상원의원 시절 외교위원장도 여러 차례 역임했다. 제2차 세계대전 영웅이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이후 외교 안보 분야에서 경험이 가장 많은 대통령이다. 외교 안보 사안마저 정치적으로 접근한 트럼프와는 다르다. 

공화당 내 외교 안보 전문가 그룹조차 외면한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 주위엔 인재풀도 풍부하다. 국무장관에 내정된 토니 블링컨(Tony Blinken)이나 외교안보 보좌관인 잭 설리번(Jack Sullivan)은 바이든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와 그의 철학과 생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르시스트적 개인기에 의존한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은 전문가 그룹을 중심으로 탄탄한 팀플레이를 펼칠 것이다. 아시아 정책에서는 선거 캠프에서 ‘아시아 팀장’ 역할을 한 일라이 래트너(Ely Ratner)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즉각 폐기될 것이다. 바이든은 미국 우선주의와 국수주의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고립을 가져왔다고 믿고 있다. 그의 표현 “미국이 돌아왔다”는 우방과의 공조, 국제협력을 통해 미국의 리더십을 회복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한국 등 전통적 동맹관계를 복원·강화하고 파리기후협약이나 WHO(세계보건기구) 등 국제기구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강화할 것이다. 

기후변화와 같은 글로벌 이슈에 중점을 두고 민주주의, 인권 등 보편적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할 전망이다. 한미일 공조를 중시할 것은 분명하다. 다만 대북 정책은 “Anything But Trump”(트럼프 지우기)를 추구하면서 오바마 시대의 ‘전략적 인내’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어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트럼프식의 거친 언사와 레토릭, 일방주의 접근은 없더라도 바이든의 대(對)중국 압박은 외려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은 당선 전부터 중국을 “심각한 도전(serious challenge)”으로 규정했다. 그는 “중국이 국제 무역 규범을 어기고 있으며, 자국 기업에 불공평한 정부 보조금을 지원할 뿐 아니라, 미국 기업을 차별하고 지적재산권을 탈취하고 있다. 약 100만 명에 달하는 제조업 일자리를 중국에 뺏겼다”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중국 인식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바이든은 트럼프식 외교 정책이 전통적 우방마저 압박하고 적대시해 대중국 연대를 이루지 못했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 과정에서도 국제적 리더십을 전혀 보이지 못하자 그 공백을 중국이 메웠다는 인식도 갖고 있다. 바이든은 “중국이 팬데믹이라는 레몬을 레모네이드로 만드는 것을 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를 지낸 커트 캠벨(Kurt Campbell)과 바이든의 첫 외교안보 보좌관으로 내정된 잭 설리번이 2019년 말 ‘포린 어페어스’에 공동 기고한 글에서 바이든 정부의 대중 정책 기조를 엿볼 수 있다. 이들은 관세보다는 지적재산권, 중국의 불공정행위, 기술력 강화, 국제사회에서의 규범 강화 등을 통해 중국을 미국 주도의 틀 속에 넣고 (지금까지의 ‘협력과 경쟁’이 아닌) ‘경쟁과 협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관세나 농산물 판매 증가 등에 초점을 맞춘 트럼프의 대중 무역 압박 정책은 효과가 없거나 실패했다고 본다. 

대신 이들은 우방과 협력해 인공지능, 5G 등 새로운 기술의 사용을 규정하는 국제적인 ‘룰, 규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트럼프의 고립주의와 국수주의로 붕괴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재건하는 데 미국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진핑 두고 ‘불량배’

바이든은 중국 정부가 가장 껄끄러워하는 인권 문제를 본격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미·중 갈등은 또 다른 차원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중국 소수민족의 인권 문제(신장 위구르족), 홍콩 민주화, 대만 독립 등의 이슈를 제기할 것이다. 민주적 가치와 규범을 기치로 국제 공조를 강화해(가령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 개최 등) 중국을 고립시키면 미·중 갈등은 또 다른 차원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 바이든은 민주당 대통령 경선 토론회에서 중국 인권문제와 관련해 시진핑 주석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며 ‘불량배(thug)’라고 칭했다. 미국의 전통적 리버럴인 바이든에게 인권, 민주주의는 정치적 흥정과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미·중 간 갈등 전선이 확대되면 한국은 트럼프 시대보다 더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철지난 방식이나 ‘전략적 모호성’에서 벗어나 분명한 원칙을 정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가령 동맹과 관련된 사안엔 미국과 적극 협력하면서 그 이외의 사안엔 중국에 협조하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할 수 있다. 

바이든이 아시아 정책에서 중국 문제와 함께 중요하게 다룰 또 다른 사안은 동맹이다. 미국 우선주의로 흔들린 한국, 일본과의 동맹을 강화해 ‘3국 공조’를 강조할 가능성이 크다. 일단 한미 간 방위금 분담을 둘러싼 갈등은 완화될 전망이다. 또 한일 갈등을 방치하던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은 한일관계 개선에 적극 개입할 공산이 크다. 

이 경우 징용 배상 문제를 둘러싼 일본과의 갈등에서 한국이 반드시 유리한 지점에 있는 것은 아니다. 성노예, 여성인권과 관련된 위안부 문제에선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나 국내법과 국제조약 간 괴리에서 발생한 징용 배상 문제는 다르다. 전향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아베 정부가 주도한 인도-태평양 전략도 지속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일관계 개선뿐 아니라 미국, 일본, 호주, 인도가 주요 멤버인 ‘쿼드’ 회의 참석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북한 문제는 바이든 정부의 대외정책에서 후순위로 밀릴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북한 문제가 트럼프 행정부에서처럼 미국 외교·안보의 주요 어젠다가 된 것은 예외적인 일이다. 최근 4년간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향상되는 등 상황이 많이 변했기 때문에 오바마 시대의 ‘전략적 인내’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바이든이 트럼프의 ‘리얼리티 쇼’ 식 톱다운 방식에 거부감이 큰 건 분명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을 거부하지는 않더라도 북한의 분명한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는 등의 사전 준비 없이는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은 별 소득 없이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의 정통성과 몸값만 올렸다는 게 바이든 측 시각이다. 정체를 뚫겠다며 한국 정부가 섣부르게 북·미 정상회담을 ‘중재’하겠다고 나서선 안 된다. 바이든 정부의 정책 방향이나 코드와 맞지 않을뿐더러 북한 문제에 조급해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바이든은 정통 외교 스타일을 중시하고 전문 외교관을 중용한다. 트럼프 행정부처럼 CIA(중앙정보국)가 중심이 돼 ‘마이크 폼페이오-김영철’ 라인을 만들고 대북 외교를 주도하는 일은 보기 어려울 것이다. 클린턴,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대북 문제를 전담케 했던 대북정책조정관직을 국무부 산하에 다시 만들 수도 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대북정책조정관이던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의 카운터파트로 한국에서는 임동원 당시 대통령외교안보특보가 나선 바 있다. 

문재인 정부도 국정원이 아닌 외교부나 통일부에서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 중심으로 대북정책 라인을 재편하고 미국과 호흡을 맞춰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북 전문가들은 씨가 말랐다. 반면 바이든 행정부에는 클린턴-오바마 민주당 정부를 거친 대북 인재풀이 풍부하다. 문재인 정부가 섣불리 이들을 가르치려 해선 안 된다. 물론 트럼프가 김정은 위원장을 국제 무대로 불러온 건 중요한 자산이다. 이를 활용할 방안을 미국과 함께 고심할 필요가 있다.


바이든, 북한 인권대사 임명할 듯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나고 있다. [판문점=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나고 있다. [판문점=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인권 문제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에도 주요 의제가 될 것이다. 트럼프는 임기 초반에 지성호 등 탈북민을 의회 시정연설과 백악관에 초청하며 북한 인권 문제를 적극 거론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 외교를 한 뒤로 북한 인권 문제는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의회에서 규정한 북한 인권대사조차 임명하지 않았다. 유엔(UN)에서의 북한 인권 토의 및 활동에도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반면 바이든은 비핵화 못지않게 인권 문제를 중시할 것이다. 공석인 북한 인권대사를 임명할 테고 유엔에서도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는 데 적극 나설 전망이다. 최근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한 한국의 조치에 대해 미국의 조야, 특히 바이든 측에선 이해를 하지 못한다. 북한 인권 문제는 바이든-문재인 정부 간 갈등의 소지가 될 수 있다. 한국도 최근 4년간 공석인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직을 채우는 등 미국과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다. 

임기 말의 문재인 정부가 마음이 급해 정전협정, 정상회담 등 한국의 어젠다에 치중해 성급하게 앞서나가서는 곤란하다. 2001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빌 클린턴 행정부 막바지에 급물살을 타던 북·미 관계가 좌초할 움직임을 보인 적이 있다. 그해 3월 김대중 대통령이 워싱턴을 급히 방문해 부시 대통령을 설득하려다 실패했다. 당시 김 대통령은 첫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국제적 무게감을 갖춘 노련한 정치인이었다. 그런데도 워싱턴에서는 김 대통령이 너무 서두른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바이든 행정부도 팬데믹, 경제회복, 인종갈등, 사회통합 등 국내 현안이 산적해 있어 2021년 상반기에는 대북 문제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대북 문제를 위한 한미 정상회담 등을 서두를 필요가 없는 이유다. 그보다는 바이든 정부에서 중요하게 다뤄질 대북정책의 원칙과 사안에 대해 철저히 대비하는 게 중요하다. 또 북한이 바이든 정부 초기에 장거리미사일 실험 등을 통해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도록 설득하면서 한반도 상황을 차분히 관리해야 한다.


두 개의 미국

대선 후 미국에는 빈부격차, 인종갈등, 정치적 양극화, 국수주의 등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가 잔존하고 있다. 트럼프는 무대에서 퇴장했지만 트럼피즘은 더 강고해졌다. 미국 민주주의 전통과 바이든의 정치적 리더십에 기대를 걸어보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향후 4년간 바이든의 미국과 트럼프의 미국이 반목하는 최악의 상황을 마주해야 할지도 모른다. 

미국의 변화된 정치 지형을 고려할 때, 한국은 바이든 정부와의 공식 라인 이외에도 대북정책 등에서 트럼프의 협조를 구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트럼프가 북한 최고지도자를 국제사회로 이끌어내고 핵·장거리미사일 실험을 막는 노력을 기울인 건 긍정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장외에서도 ‘미국 우선주의’를 기치로 국내외 문제에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바이든 정부와는 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그가 공화당 내에서 가진 영향력을 감안해 의회를 상대로 한 외교적 노력도 늘리고, 트럼프 지지 세력을 상대로 한 풀뿌리 공공외교도 강화해야 한다. 대미외교의 무게와 양상이 더욱 무겁고 복잡해졌다.



신동아 2021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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