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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작고 5주기, 식품산업의 선구자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

“내 가족이 먹는 음식이라는 마음으로 최고 품질 지향”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인물탐구]작고 5주기, 식품산업의 선구자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

  • ● 현장에서 답 찾고 품질로 승부 거는 기업문화 정착
    ● 국내 식품회사 중 가장 많은 ‘1등 제품’ 보유
    ● 기업의 사회적 가치 중시, 사회공헌활동 지속
    ● ‘식품보국’ 철학 계승, 인류 식생활 향상에 이바지
오뚜기 창업주 함태호 명예회장은 ‘최고의 원료, 최고의 시설, 최고의 품질’을 지향했다. 1979년 5월 5일 창립 10주년 행사 모습. [오뚜기 제공]

오뚜기 창업주 함태호 명예회장은 ‘최고의 원료, 최고의 시설, 최고의 품질’을 지향했다. 1979년 5월 5일 창립 10주년 행사 모습. [오뚜기 제공]

오뚜기 창업주 고(故) 함태호(1930~2016) 명예회장은 국내 식품산업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카레, 케첩, 마요네즈 등 많은 제품을 한국에 처음 선보이고 즉석식품으로 통하는 가정간편식(HMR) 시장을 개척해 식생활 향상과 발전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생전에 함 회장은 시장을 선도하는 개척 정신을 강조하며 “오뚜기의 기본은 수요를 창조하며 성장·발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증명하듯 그는 ㈜오뚜기 창업 당시부터 경쟁사의 시장을 나눠 갖기보다는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수요를 찾아내고 늘리는 데 주력했다.

함 명예회장은 ‘맛있고 영양가 있는 품질 좋은 음식’을 만드는 일을 가장 귀한 소명으로 여겼다. 그와 함께 오뚜기를 일군 임원들은 “최고의 품질을 위해서는 최고의 원료로 최고의 시설에서 가장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창업주로부터 귀가 아프게 들었다. 함 명예회장은 ‘최고의 품질로 고객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신념과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 가족이 먹는 음식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고 전했다.

오뚜기가 국내 식품회사 가운데 시장점유율 1위 제품(분말카레, 분말수프, 케첩, 마요네즈, 후추, 식초, 참기름 등)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갓뚜기’로 불릴 만큼 소비자에게 큰 사랑을 받는 배경에는 창업주의 이런 경영 철학과 남다른 리더십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함 명예회장은 기업의 이윤 추구에만 급급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에도 ‘소리 없이’ 앞장섰다. 9월 12일 작고 5주기를 맞아 그가 식품업계 안팎에 남긴 발자취를 쫓아봤다.

군문(軍門)을 나와 경영을 배우다

함태호 명예회장은 1930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부친 함형준 씨와 모친 이덕발 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소년 함태호는 경기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피난 대신 자원입대를 선택했다. 6·25전쟁 임시군사교육학교인 육군종합학교를 거쳐 소위로 임관, 1957년까지 군에서 복무했다. 사선을 넘나들던 전쟁이 끝나고 30대를 앞두게 되자 그는 “무기를 들고 나라를 지키는 일도 중요하지만 헐벗은 국가경제와 굶주린 국민을 위해 식품산업 육성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1957년 소령으로 군을 전역한 그해 홍익대학과 상학과에 편입학해 늦깎이 대학생활을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1959년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부친이 경영하던 식품원료제조업체인 조흥화학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0년 동안 그는 선친 밑에서 경영 수업을 받으며 기획, 영업, 재무 등 실무에 필요한 경험을 두루 쌓았다. 아울러 경영인으로서의 소양을 한층 더 체계적으로 다지고자 1968년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했다.

함태호 명예회장이 독립한 건 조흥화학 입사 10년 만이던 1969년. 아버지의 뒤를 잇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길을 홀로 개척하는 것’을 더욱 의미 있는 일로 여겼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그가 선택한 분야는 식품제조업이었다. 조흥화학에서 인공감미료와 식품첨가물을 만드는 업무를 수행하면서 식품 제조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식품사업으로 국민의 식생활을 개선해 보고 싶은 열망도 커졌다. 결심이 굳어지자 함 명예회장은 선친에게 포부를 밝히고, 선친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며 조흥화학을 떠나 홀로서기에 나섰다.



준비된 경영인이 만든 ‘카레와 마요네즈의 선풍’

마흔에 접어든 1969년 그는 ㈜오뚜기의 전신인 풍림상사를 설립하고,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작은 공장을 마련했다.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한 덕분에 그해 5월 5일 첫 제품이 나왔다. 제품명은 ‘오뚜기 즉석카레’. 50년 넘게 정상의 자리를 지킨 ‘오뚜기 카레’가 세상에 첫선을 보이는 순간이었다. 인도의 커리가 일본을 거쳐 한국에서 우리만의 새로운 식품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후 함 명예회장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오뚜기’라는 브랜드를 달고 국내에는 없던 수프, 케첩, 마요네즈, 식초를 연이어 내놓으며 우리나라 식단의 혁신을 이끌었다. 제품은 내놓는 대로 시장의 베스트셀러가 됐고, ‘오뚜기 3분 카레’로 대표되는 즉석식품은 오뚜기를 식문화를 선도하는 식품기업으로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오뚜기 브랜드가 회사를 대표하게 되자 함 명예회장은 1973년 상호를 풍림상사에서 오뚜기식품공업주식회사로 바꿨다. 1980년에는 사명을 다시 ‘오뚜기식품주식회사’로 변경했다. 1987년엔 청보식품을 인수하며 라면 사업에 진출하고 참치·즉석밥 시장으로 활동 무대를 넓혔다. 매출은 날로 늘었다. 회사 설립 10년 만인 1979년 100억 원, 1988년에는 10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1996년에는 사명을 다시 지금의 ‘주식회사 오뚜기’로 바꾼다. ㈜오뚜기는 이처럼 성장의 역사를 이어가며 2007년 매출 1조 원을 돌파하고, 2017년엔 매출 2조 원 시대를 열었다. 설립 이후 한 해도 마이너스 성장을 하지 않은 것 또한 놀라운 기록으로 평가된다.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은 2011년 5월 13일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다. [오뚜기 제공]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은 2011년 5월 13일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다. [오뚜기 제공]

‘부전상립’의 오뚜기 정신

함태호 명예회장에게 오뚜기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겠다’가 아닌, ‘결코 넘어지지 않고 항상 서 있는 부전상립(不轉常立)’을 의미한다. 오뚜기가 1980년대부터 10여 년에 걸쳐 다국적기업과 즉석식품을 두고 경쟁을 펼치며 우리 시장을 지켜내는 데 성공한 사례는 함 명예회장이 지닌 강인한 오뚜기 정신을 엿보게 한다. 부전상립의 오뚜기 정신은 위기 속에서도 이 회사가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도전을 거듭하게 했다.

당시 오뚜기는 영업사원이 거래처를 직접 방문해 진열을 돕고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루트세일(Route Sale)을 국내 최초로 실시했다. 시식판매와 판매여사원 제도도 우리나라 최초로 도입했다. 또 파격적인 차량 광고 마케팅을 국내에서 처음 실시해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도 성공했다. 오뚜기 임직원과 관계사들은 “함 명예회장은 치열한 시장경쟁 속에서도 직원들을 가족처럼 대하며 사기를 높이고, 협력업체의 이익을 보장하며 동반성장을 이뤄냈다”고 입을 모은다.

투철한 국가관, 따뜻한 나눔

오뚝이 모양에 해맑은 어린이의 얼굴을 한 로고와 식문화를 선도한 제품은 유명하지만 기업인이자 자연인으로서의 함태호 명예회장은 그림자 같은 경영인이었다. 제품과 브랜드를 내세우며 자신은 항상 한발 물러나 있기를 자처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삶’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항상 가슴속에 나라가 우선이라는 마음을 품고 살았다. 전국 오뚜기 공장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사내 월례조회와 행사 때는 항상 애국가를 4절까지 제창했다. 애국가를 부르며 ‘기업은 국가에 기여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이다. 이 전통은 지금도 이어진다. 나보다 우리, 우리보다 국가를 우선한 창업주의 기업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삶에서도, 경영에서도 ‘함께 사는 세상’을 강조한 함 명예회장은 창업 초창기부터 지역사회에 공헌하고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따뜻한 나눔을 실천했다. 1996년 설립한 재단법인 오뚜기함태호재단이 구심점이 됐다. 이 재단은 지난해까지 1000여 명의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2009년 오뚜기 학술상을 제정해 식품산업 발전과 식생활 향상에 기여한 학자와 연구원에게 해마다 2회 시상한다. 2012년에는 장애인 복지법인 밀알복지재단 후원 사업을 시작했다. 단순한 후원이 아닌 ‘굿윌스토어’라는 자립 프로그램을 통해 일자리를 제공,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고 있다.

심장병 어린이 후원사업은 오뚜기를 대표하는 사회공헌활동으로 꼽힌다. 함 명예회장은 거액의 수술비를 감당하지 못해 많은 어린 생명이 고통받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1992년부터 한국심장재단을 통해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를 후원했다. 처음에는 매월 5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22명으로 후원 인원이 늘었다. 2016년 9월 영면에 들기 직전까지 함 명예회장이 새 생명을 선물한 어린이는 4265명에 달한다. 이후로도 그의 아름다운 유지는 오뚜기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오뚜기 관계자는 “함태호 명예회장님은 새롭게 생명을 얻는 어린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적어 보낸 편지를 그 어떤 명예보다 소중히 여겼다”며 “회장님 빈소에 유독 어린이와 청년이 많았던 것도 오랜 나눔의 인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함태호 명예회장은 생애 대부분을 기업인으로 지내며 ㈜오뚜기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식품기업으로 일궜다. “새로운 맛을 찾아내 우리 식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일관한 덕분이라는 평이 많다. 이러한 신념은 그가 생전에 남긴 어록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특히 △현장에서 답을 찾아라 △품질에는 타협이 없다 △관심은 변화를 불러온다 △일은 일을 찾는 것이 일이다 △숫자로 관리하고, 숫자로 문제를 찾고, 숫자로 결과를 얻자 같은 말은 사회 전반에 큰 울림을 준 어록으로 꼽힌다.

1982년 11월 3일 식초공장 가동식에 참석한 함태호 당시 오뚜기식품주식회사(현 오뚜기) 사장이 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오뚜기 제공]

1982년 11월 3일 식초공장 가동식에 참석한 함태호 당시 오뚜기식품주식회사(현 오뚜기) 사장이 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오뚜기 제공]

‘식품보국(食品輔國)’과 ‘풍림(豊林)’

식품의 질을 높여 나라 발전에 기여하고자 했던 그의 식품보국(食品輔國) 정신은 오뚜기의 기업 이념에 잘 나타나 있다. ‘인류의 식생활 향상과 건강에 이바지하는 기업, 맛과 품질을 가장 소중히 생각하고 행동하는 기업, 소비자에게 맛과 품질을 책임지는 기업, 인류가 필요로 하는 기업’이 그것이다. 2016년 함 명예회장이 타계한 후에도 인류 식생활 향상에 이바지하기 위한 오뚜기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그의 뒤를 이어 오뚜기를 이끄는 함영준 회장은 창립 50주년을 보내며 이렇게 말했다.

“창업주가 꿈꾸던 풍림(豊林)에 어느 정도 다가섰는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숲은 우거지고 나무의 뿌리가 깊어질수록 더 많은 산소를 내뿜어 세상을 이롭게 할 것을 알고 있다. 더 많은 나무를 심고 정성껏 가꾸는 일, 곧 인류 식생활 향상에 이바지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겠다. 지난 시간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 더욱 힘을 내겠다.”

#함태호 #갓뚜기 #식품보국 #부전상립 #신동아



신동아 202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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