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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사람 능력 탓하기 전에 맡기고 기다려보라” [경제사상가 이건희 탐구㊱]

삼성의 위임 경영, 사장들을 공부하게 만들다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아랫사람 능력 탓하기 전에 맡기고 기다려보라” [경제사상가 이건희 탐구㊱]

  • ● 회의에서도 주로 침묵하며 경청
    ● 李 회장이 현장 가지 않은 이유
    ● 묵묵히 듣다가 불쑥 디테일을 짚다
    ● 캐리비안베이 워터파크 탄생 비화
    ● 반도체 1등이 그룹에 미친 파급효과
    ● “우수 기술자 급여, 일체 간섭 안 해”
2013년 10월 28일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가운데)이 부인 홍라희 여사(오른쪽)와 함께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 신경영 선포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기록물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그룹]

2013년 10월 28일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가운데)이 부인 홍라희 여사(오른쪽)와 함께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 신경영 선포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기록물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그룹]

지난 회에서 이건희 회장의 ‘위임 경영’에 대해 소개한 바 있다. 이 회장의 리더십을 말할 때 고위직을 지낸 전직 삼성맨들이 하나같이 이구동성으로 말한 것이 바로 ‘위임’, 즉 임파워먼트(empowerment)였다.

위임 경영은 이 회장의 강한 철학이기도 했다. 그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권한과 책임을 주면 그 일을 제 것으로 생각해서 스스로 일에 몰두하고 신이 나서 일한다. 능력도 최대한 발휘할 뿐 아니라 아이디어도 자발적으로 낸다.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주인의식”이라고 했다. 그가 쓴 ‘DIY식 사고’라는 글의 전문이다.

최근 DIY 제품이 시중에서 부쩍 인기를 끌고 있다. 책상이나 의자 등을 반제품 상태로 사다가 가정에서 직접 조립하는 것으로 각자의 취향에 따라 색상과 형태가 다양하다는 것이 이 상품의 매력이다. 사람들의 가치관이 참으로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기업에서도 과거 공업화를 축으로 한 성장 시대에는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뭉쳤기 때문에 경영자는 군대식 지휘관의 자세로 모든 역할을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정보사회가 도래하고 환경변화가 급격해지는 현 시점에서는 경영자의 역할도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

소위 ‘DIY 식 사고’에서 그 해답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경영자의 자세를 과거처럼 ‘나를 따르라(follow me)’가 아닌 ‘네가 먼저 자율적으로 해보라(after you)’로 바꿔 보자는 것이다. 조직의 비전과 경영방침을 명확히 정해주고 구체적인 수행은 자율에 맡기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하고자 하는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잠재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뭉치는 힘 하나로 역사를 이루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숱한 외침에 맞서 모두가 일치단결하여 싸우고 나라를 지켜왔으며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앞장선 리더들의 헌신과 전체 국민들의 단합으로 세계 속에 발돋움 할 수 있었다.

이러한 환경이 지금은 바뀌고 있다. 한 국가의 힘 자체가 물리력에서 소프트한 힘, 즉 과학기술력, 뛰어난 인재의 보유 정도 등으로 바뀌었다. 모이는 힘만 갖고는 경쟁력을 갖기가 어렵게 됐고 소프트한 힘을 낼 수 있는 창조력이 필요해진 것이다.

창조력이라는 것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천재성을 타고 났어도 그것을 갈고 닦지 않으면 안 된다. 찬란한 빛을 발하는 다이아몬드도 갈고 다듬지 않으면 그저 원석(原石)에 불과할 뿐이다. 이제는 경영자들이 원석을 연마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부하가 능력이 없다고 탓한다. 그렇게 탓하기 전에 먼저 일을 맡겨보고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을 쓰는 비결은 적재적소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 사람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고 또 성과를 내도록 시간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

한 나라 황제가 된 유방은 절대적인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항우와 치른 3년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 비결은 항우가 매사를 직접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던 반면 유방은 장량에게 기획을 맡기고 물류는 소하, 전투는 한신에게 맡겨 그들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게 한데 있었다.


오너가 던지는 말의 무게 알았던 분

육현표 에스원 전 사장은 비서실 기획팀장 시절 이건희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매번 회의에 들어갔지만 회장이 주로 침묵하며 경청을 했지 일일이 뭔가를 지시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당신의 말이 전해질 무게감을 알았기 때문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회장님은 당신께서 선두에 서겠다며 동기 부여만 하실 뿐이지, 앞에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하시는 모습은 못 본 것 같습니다. 마치 당신이 기용한 사람을 믿지 못하는 일은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꼭 필요한 말씀만 하셨어요.

기업에서 오너의 지시는 그대로 ‘법’ ‘하나님 말씀’이잖아요. 회장님도 사람인데 하고 싶은 말이 왜 없었겠어요. 하지만 당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잘 알기 때문에 말을 아끼셨던 것 같습니다. 회장님 말 한마디에 경영진은 이것저것 따져보지도 않고 그대로 실행에 옮길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엄청나게 자제한 것이죠. 늘 상대방이 판단할 여지를 두고 말씀하셨습니다. 조직의 리더라면 꼭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장들은 공부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시를 이행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문제에 대해 곰곰이 다시 생각해야 하니까요. 회장님의 자율 경영, 말을 아끼는 경영은 사장들을 교육시키고 공부시키는 한 방법이기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육 전 사장은 이 회장이 되도록 현장을 방문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회장님은 생전에 ‘내가 현장을 간다고 하면 상황이 뻔하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중공업 조선소에 간다고 하면 페인트칠 다시 할 테고, 거기 있는 사람들 얼마나 고생하겠느냐 이런 말씀이셨죠.”

오너의 목적은 성과 만들어내는 것

호암은 용인자연농원 설립에 온갖 정성을 다했다. 용인자연농원 안에 있는 한옥에 기거하며 서울로 출퇴근할 정도로 용인자연농원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용인자연농원은 오늘날 명품 테마파크 에버랜드로 자리 잡았다. 사진은 용인 한옥에서 생각에 잠긴 호암. [호암재단]

호암은 용인자연농원 설립에 온갖 정성을 다했다. 용인자연농원 안에 있는 한옥에 기거하며 서울로 출퇴근할 정도로 용인자연농원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용인자연농원은 오늘날 명품 테마파크 에버랜드로 자리 잡았다. 사진은 용인 한옥에서 생각에 잠긴 호암. [호암재단]

삼성에버랜드와 호텔신라 사장을 역임한 허태학 전 사장은 1993년 호텔신라 면세점 사업부장이던 시절, 이건희 회장과 처음 만난다. 허 전 사장이 전하는 이야기에는 이 회장이 아랫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자율성을 주고 일을 맡겼는지 단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에피소드가 많다. 허 전 사장이 기억하는 이 회장과의 첫 만남은 이렇다.

“비서실장 보좌역이었던 이학수 차장이 보자고 해서 갔더니 회장께서 지금 일본 고베에 계시는데 저를 찾으신다는 거예요. 비행기를 급히 예약해 고베로 날아갔지요. 호텔 방문을 여는데 안에서 영 언짢은 말씀이 오가고 있었어요. 누가 꾸지람을 듣는 것 같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용인자연농원(삼성에버랜드의 옛 이름) 사업부장, 관리팀장이 엄청 꾸중을 듣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떻든 ‘와, 저렇게 혼나면 기가 죽어서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어요.

제가 어리둥절하며 문을 닫지도 못하고 서 있는데 사람들이 물러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들어갔습니다. 회장님께 꾸벅 인사를 하니 ‘그동안 무슨 일을 했느냐? 지금 일에 재미를 느끼느냐?’고 물으셔서 하는 일에 대해 보고를 드리고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대답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끝이었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다시 부르질 않는 거예요. 아무 지침도 없었고요. 일주일인가 열흘쯤 기다리다 회장님을 직접 찾아갔죠. ‘특별히 하명할 말씀이 없으시면 서울로 들어가서 일을 보다가 다시 무슨 말씀주시면 오겠습니다’ 했더니 뜬금없이 ‘도쿄 디즈니랜드를 제대로 보고 오라’고 하시는 거예요.”

갑자기 무슨 말이었을까요.

“저 역시 어리둥절했습니다. 호텔신라에서 일하고 있는 내게 왜 디즈니랜드를 보고 오라는 건가, 엔터테인먼트 기법이라든지 디자인을 호텔에 접목시켜 보라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제 생각을 읽으셨는지 ‘디즈니랜드 주변 도시나 골프장 개발한 것을 보고 오라’고 하시는 거예요. 더 감이 잡히지 않았어요. 그러더니 도쿄에 있는 놀이공원인 시티 워터파크도 가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길로 도쿄로 가서 모두 둘러보고 고베로 돌아가 보고를 드렸지요.”

뭐라 하시던가요.

“어땠냐고 하시기에 ‘한국에서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시설 규모도 크고 선면각곡색(線面角曲色 선이 분명하고 면이 살아 있으며 각지고 곡선의 유연함이 있으면서 색이 아름답다는 뜻)이 정말 독특하게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역시 서비스업은 시설들이 색상 면에서 차별화되지 않으면 고객의 호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제 말에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셨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서울로 돌아간 허 전 사장은 얼마 후 갑자기 용인자연농원으로 가라는 인사 발령을 받았다고 한다.

“좀 놀랍고 당황스러웠습니다. 솔직히 언해피(Unhappy)했고요. 제 꿈은 호텔신라에서 전문 경영인으로 크는 것이었거든요. 미국 코넬대까지 가서 호텔 매니지먼트 연수를 한 것도 호텔 경영에 대한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것이었는데 말이죠. 하지만 오너의 목적은 아랫사람을 부려서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지 개인을 키우는 게 아니잖아요? 이왕에 발령을 받았으니 내가 탈출할 것이냐 아니면 회사를 리노베이션 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그러던 중 몇 달간 해외 유명 리조트, 호텔, 레스토랑 등을 살펴보고 들어오라는 지침을 받았습니다. 한 달간 덴마크,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서부·중부·동부, 뉴욕까지 다 둘러보고 왔어요. 들어오니까 중앙개발 대표이사로 발령이 나 있었습니다. 그때 회장께서 제게 ‘자연농원을 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계획을 세워보라’고 하셨는데 비로소 고베와 도쿄, 세계 유명 리조트를 샅샅이 둘러보라고 한 깊은 뜻을 이해하게 됐지요.”

신경영 메시지 전파했던 또 다른 발신지

용인자연농원 개장 테이프 커팅. 호암은 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에 서 다. [호암재단]

용인자연농원 개장 테이프 커팅. 호암은 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에 서 다. [호암재단]

허 전 사장은 용인자연농원에 대한 전면적인 수술을 감행했다고 한다.

“나중에 깨달은 건데 1993년 신경영 선언 이후 회장님은 ‘불특정 다수가 드나드는 공간에서 뭔가 달라진 것이 있어야 나의 혁신 메시지가 전파될 것이다. 그리고 삼성그룹 내에도 확산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사실 혁신은 눈에 보이는 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공장과 사무실 안에서 아무리 해봤자 밖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어요. 용인자연농원이라는 곳을 1차 산업형에서 3차 산업형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면 대중적으로도 화제가 되고 그렇게 되면 신경영 선언의 확산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신 것 같아요. 판단을 잘하셨다고 봅니다.”

허 전 사장은 가장 먼저 브랜드 교체를 했다고 한다.

“미국 CI 업체를 택해서 ‘에버랜드’와 ‘캐리비안베이’로 네이밍을 했는데 가장 큰 걱정이 회장께서 과연 허락해주실까 하는 거였습니다. ‘자연농원’이란 이름이 이병철 선대 회장이 직접 지은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건희 회장은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고 했다.

“정말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걸 말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줬으니까요. 제가 뭘 바꾸고 싶다고 하면 ‘회사 대표가 알아서 하면 되지, 왜 자꾸 내게 묻느냐’고 하실 정도로 다 믿고 맡기셨어요. 신경영 선언 때 하신 말씀 그대로 개인적인 감정 따위는 일절 개입시키지 않고 회사를 개혁할 수 있다면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걸 하게 해주셨고 밀어주셨습니다.”

브랜드 교체에 이어 주변 인프라 업그레이드에 나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용인 들어가는 2차선을 4차선으로 확장했더니 도로가 확 트이게 됐죠. 만약 제가 월급쟁이 근성으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안주했다면, 지금의 에버랜드는 탄생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캐리비안베이 워터파크를 만들 때는 1000억 원을 투자했어요.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큰 투자였어요. 주변에서는 너무 과한 거 아닌가 라는 걱정도 많았는데 회장님은 ‘해보라’고 과감하게 밀어주셨습니다.”

1996년 8월 워터파크 오픈을 앞두고 이건희 회장이 최종점검 차 방문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시설을 둘러본 이 회장은 그에게 이렇게 딱 한마디를 한 게 전부였다고 한다.

“내보고 하라 켔으면 더 크게 했겠다.”

두 거인의 리더십 차이

기자는 이참에 김광호 전 부회장으로부터 이건희 회장 리더십에 대해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호암과 이 회장 리더십의 가장 큰 차이를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호암은 꼼꼼하게 따지는 스타일이었다면 이 회장은 묵묵히 듣고 생각한 뒤 ‘하시오’ 한마디로 결정하는 스타일이셨습니다. 호암은 선두에서 임원들을 독려하고 끌고 가는 스타일이었다면 이 회장은 임원들이 알아서 뛰게 하고, 뛸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초기에 회장은 정말 밤잠 안 주무시고 일에 몰두하셨어요. 오밤중이고 뭐고 없었어요. 새벽 1~2시에도 전화를 했는데 자다 말고 놀라 깨서 받으면 ‘이거 알아요? 저거 알아요?’ 물으시더니 제가 머쓱해져서 ‘잘 모르겠습니다’ 하면 ‘알아보세요’ 하고 끊으셨어요.

한번은 일본에 출장 갔다가 호텔 방에서 새벽 2시에 전화를 받은 일도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뭘 물어보셨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제가 대답을 잘 못 했더니 ‘알아봐’ 하시면서 딱 끊으셨던 기억이 있어요.

모시는 입장에선 당연히 긴장되고 피곤한 일이었지만 어쨌든 남들 다 자는 시간에도 뭔가 골똘히 생각하셨다는 데 놀랄 때가 많았습니다. 오너가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나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죠. 회장은 좋고 싫고를 분명히 말씀해주지 않으셨어요. 그냥 무표정이셨다고 할까. 어떤 때는 해도 된다는 건지, 아닌지 전혀 감을 못 잡겠는 때도 있었으니까요.

호암은 보고가 마음에 든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무릎을 팍 치신다든지 명확하게 의사 표현을 하셨어요. 참 꼼꼼하고 일만 생각하던 분이셨습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무서운 메모’란 게 있었어요. 오찬 회의하러 들어가면 테이블 옆에 만년필로 1뭐, 2뭐 이렇게 쫙 쓰인 메모지였는데 주무실 때 머리맡에 놓아두셨다가 문득 깨서 뭔가 생각나면 얼른 메모하고 다음 날 사장들한테 ‘이건 어떻게 됐냐?’ 꼭 물어보는 거죠. 사장들이 질겁했죠.

이건희 회장은 그런 스타일은 아니셨어요. 다만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굉장히 깊이 들어가셨습니다. 말씀은 많이 하지 않으셨지만 불쑥불쑥 한마디씩 던질 때마다 굉장히 디테일하셨습니다.

그리고 참 따뜻하셨습니다. ‘일에만 너무 매달리지 말고 말도 타고 그래라’ 해서 안양 마장도 데려가셔서 임원들이 말을 탔던 적도 있습니다. 소탈한 면도 많으셨습니다. 괜히 회장 앞에서 얼어서 그런 거지 저희들이 편하게 생각하는 걸 좋아하셨고, 스스럼없이 잘 받아주셨어요. 한번은 ‘자식들은 평생 애프터 서비스(AS)를 해야 된다’는 말씀도 하셨는데 부모 입장에서 누구나 공감이 가는 이야기 아닙니까.”

‘반도체 DNA’, 오늘의 삼성을 만든 원동력

호암이 아들 이건희 회장에게 써준 휘호. 이 회장과 지근거리에 일했던 전직 삼성맨들은 “이 회장은 오너가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임직원들에게 미칠 영향을 잘 알아 절제하고 경청했다”며 “한마디로 말의 무게를 잘 알았던 경영자였다”고 말한다. [호암재단]

호암이 아들 이건희 회장에게 써준 휘호. 이 회장과 지근거리에 일했던 전직 삼성맨들은 “이 회장은 오너가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임직원들에게 미칠 영향을 잘 알아 절제하고 경청했다”며 “한마디로 말의 무게를 잘 알았던 경영자였다”고 말한다. [호암재단]

김광호 전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우리 조직에 불어넣은 ‘반도체 DNA’가 오늘의 삼성을 만든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반도체 DNA’가 무엇인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절대 패배라는 걸 모르도록 한 거죠. 실제로 회장님이 생전에 말씀하셨던 ‘투견, 투계 교육시키는 법’이 그것이었습니다. 개나 닭을 훈련시킬 때 상대와 막 싸움을 시키다가 질 만하다 싶으면 확 빼버리는 거지요. 그렇게 훈련을 시키면 싸우는 입장에선 져 본 경험이나 기억을 갖지 않게 돼 어떤 상대를 만나도 이긴다고 생각하고 싸운다는 겁니다.

결국 기업도 마찬가지거든요. 현장에 나가 세계 초일류 기업과 붙었는데 끝까지 달라붙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될 거 아닙니까. 그게 바로 10년 만에 세계 1위에 오른 삼성 반도체 정신입니다.

물론 중간에 적자도 많이 나고 실패도 많이 했지만 절대로 물러서지 않게, 실패를 모르게 한다는 그런 정신이 바로 오늘날 삼성을 세계 1등으로 만든 반도체 DNA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이 초기에 반도체 사업을 할 때 상대하는 업체나 사람들이 IBM, HP(휴렛팩커드) 같은 세계 일류, 이른바 월드 베스트 컴퍼니 아니었습니까. 그런 기업들 등쌀에 미치고 환장(?)할 때도 많았지만 제품 생산에서부터 공장 운영, 재고에서부터 납기 관리까지 ‘아, 저렇게 하는 것이구나’하며 많이 배우게 된 겁니다.

삼성이 IBM이나 HP에 척척 납품도 하고 실적도 쌓고 시장 점유율도 오르니, 경영 상태도 좋아지면서 회장님 기대에 부응하니까 자신감도 생겼죠. 반도체 때문에 그룹이 망할지 모른다고 했는데 회장님이 취임하시면서 치고 올라가 이익을 내니까 이처럼 좋은 일이 어디 있었겠어요. 그런 자신감을 토대로 가전까지 바꿀 수 있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1993년 신경영 선언이 나오게 된 것이고요.

제가 삼성전자 통합 사장이 됐을 때 TV를 하다 갔는데 사고방식이라든가 일하는 방식이 반도체와 비교하면 많이 떨어져 있었어요. 그래서 ‘반도체 DNA’를 가전, 컴퓨터, 통신 각 부문에 집어넣으려 한 겁니다. 소위 글로벌라이제이션, 월드와이드 오퍼레이션을 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월드 베스트 TV고 휴대폰입니다. 한마디로 반도체 1등의 파급효과는 반도체 하나에서 끝난 게 아니라는 거죠.”

김광호 전 부회장은 “무엇보다 호암이나 이건희 회장 모두 사람 욕심이 강했다”고 했다.

“호암도 그랬지만 이건희 회장님이 가장 많이 얘기했던 게 ‘미국 기술자 데려오는 데 사장 월급보다 열 배 줘도 괜찮다’였습니다. 호암은 우리들이 해외 출장 갈 때에도 ‘절대 한꺼번에 같은 비행기 타지 마라, 따로 타고 다녀라’ 그런 지시까지 하셨어요.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사고까지 염두에 두고 리스크를 분산하자는 차원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 걸 보면 정말 용의주도했다고 할까(웃음), 정말 대단하신 분이셨죠.

이 회장님은 외국에서 기술을 가져오고 우수한 기술자를 데려오는 데서 돈을 얼마 주는지에 대해서는 일체 간섭을 안 하셨어요. 1979년, 1980년에 연봉 10만 달러(현재 환율로 약 13억 원)이면 꽤 큰 금액이었는데 그 돈을 주고 데려왔으니까요. 삼성이 실리콘밸리에 연구소(SSI)를 만들 수 있던 이유도 바로 그런 과감한 투자에 있죠.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 봉급 격차가 나는 것도 일체 개의치 않고 필요하다면 우선 잡아 오고(?) 봤어요. 물론 다 성공한 건 아니고 그 중에는 탈락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떻든 좋은 인재를 구해오는 것을 절대적이라고 여겼습니다.

구체적인 사업 결정은 사장들이 했지만, 표면에 나서 말하지 않고 뒤로 다 지원해주는 회장이 계셨기에 밀고 나갈 수 있었습니다.”

패배 자체보다 패배 의식이 문제다

김광호 전 부회장이 말하는 이건희 회장의 ‘투견鬪犬 훈련’은 이 회장의 글에도 나온다. 그의 글 ‘럭비 정신’의 전문이다.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한때 투견이 성행한 적이 있었다. 투견을 훈련시키는 과정을 지켜보면 매우 흥미 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투견 챔피언으로 만들려면 보통 생후 6개월에서 1년 된 어린놈을 골라서 싸움부터 시키는데 그 대상은 은퇴한 챔피언이다.

은퇴한 챔피언은 나이가 들어 힘은 약하지만 워낙 노련해서 젖내 나는 어린 투견이 힘이 빠질 때까지 적당히 싸우다 30분 정도 지나면서부터는 공격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은퇴한 챔피언이 이길 것 같으면 조련사가 떼어놓는다.

어린 투견은 그렇게 한 번도 패하지 않으면서 퇴역 챔피언이 갖고 있는 기술을 전수받게 된다. 이런 투견은 대회에 나가면 대부분 챔피언이 되고 이후 한 번이라도 지면 그날로 은퇴시킨다. 한 번 싸움에 지면 다시는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나 기업에서도 이런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잘 나가던 일류 인재나 일류 기업이 한 번 패배로 이류 인생, 이류 기업이 되고 나면 다시 일류로 올라서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패배 자체가 주는 타격보다 패배했다는 의식이 심중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후(戰後) 잿더미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성장을 일궜다. 그동안 만난 외국의 여러 인사들은 이런 성장과 발전을 기적이라고 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와 같은 기적에 바탕이 됐던 것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런데 패배 의식은 이런 가능성을 잠재운다. 공포를 불러오고 의지와 행동을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지금 불황의 단면들이 곳곳에서 보이는데 어떤 이는 공황 조짐까지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경제가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공황은 오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무서워해야 할 것은 패배 의식에 사로잡히는 일이다. 경제적 공황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지만 심리적 공황은 한 번 빠지면 쉽게 벗어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럭비 정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럭비는 한 번 시작하면 눈비가 와도 중지하지 않고 계속한다. 걷기조차 힘든 진흙탕에서는 온몸으로 부딪치고 뛴다. 오직 전진이라는 팀의 목표를 향해 격렬한 태클과 공격을 반복하면서 하나로 뭉친다. 그래서인지 럭비선수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럭비팀으로 모이기만 하면 사회적인 지위에 관계없이 모두 하나가 된다고 한다.

악천후를 이겨내는 불굴의 투지, 하나로 뭉치는 단결력, 태클을 뚫고 나가는 강인한 정신력, 이것이 럭비에 담긴 정신이다. 물론 야구, 골프 등의 운동에도 저마다 소중한 룰과 정신이 있다.

이 시점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몸을 던져서라도 난관을 돌파하겠다는 럭비 정신으로 정신적 패배주의를 극복하는 일이다. 이런 정신이 한 사회의 정신적 인프라로 자리 잡을 때 그 사회에는 위기를 이겨내는 저력이 생긴다. 어느 국가, 사회, 기업을 막론하고 진정한 힘은 사람에게서 나오며 그 힘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신동아 2022년 10월호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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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Opinion Leader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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