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호

시계를 거꾸로 돌린 백전노장, 스필버그

[황승경의 Into the Arte] 영화 ‘파벨만스(The Fabelmans)’

  • 황승경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입력2023-05-31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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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는 사진처럼 정지된 프레임을 1초에 24번 바꿔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눈속임 예술이다. 영화감독은 촬영과 편집으로 이미지를 강하게 드러내기도 하고 아예 보이지 않게 숨기며 인간의 감각을 조율한다. 하얀 스크린에 드러나는 감독의 마법은 영락없는 현실이 돼 우리네 삶을 위로한다. 금세기 최고의 마법사 중 한 명인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백전노장의 솔직한 과거도 감동을 선사할까.
    영화는 찍는 것이 다가 아니라 관객의 눈동자에 맺히는 이미지를 위한 편집예술이라는 것을 감독은 스스로 현장에서 직접 터득한다.[ CJ ENM]

    영화는 찍는 것이 다가 아니라 관객의 눈동자에 맺히는 이미지를 위한 편집예술이라는 것을 감독은 스스로 현장에서 직접 터득한다.[ CJ ENM]

    1981년 여성 최초로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종신교수가 된 엘렌 랭어(Ellen J. Langer)는 1979년 외딴 시골마을에서 단순하면서도 혁신적인 심리 실험 ‘시계 거꾸로 되돌리기 연구(Counter Clockwise study)’를 진행했다. 20년 전 가구와 가전으로 꾸며진 평범한 가정집에서 75~80세 노인들은 추억여행을 하기 위해 두 가지 규칙을 따랐다. 20년 전으로 돌아가 그 시대를 사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 청소와 빨래 등 집안일을 직접 하는 것이었다.

    노인들은 이미 20년이 지난 영화 ‘벤허’를 개봉작처럼 보면서 즐거워했고, 로즈메리 클루니와 냇 킹 콜의 노래를 신곡처럼 들으며 몸을 흔들어댔다. 얼마 후 노인들에게 뜻밖의 결과가 나타났다. 보호자 도움 없이는 걷기조차 힘들어하던 노인들이 혼자 옷을 입고, 계단을 내려갔다. 식욕도 크게 늘어 마치 20년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활동량이 많아졌다. 자연히 몸과 마음은 20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스필버그의 일기장

    결국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을 실험으로 증명한 것이다. 젊음이나 건강을 지난날의 추억으로 치부하지 않고 마음속 한계를 깨트리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웠다. 이 연구는 노화를 바라보는 인간의 태도와 고정관념에 대한 편견을 깨고, 인식의 대전환을 불러왔다.

    1946년생으로 올해 76세인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다큐멘터리처럼 찍었다. 영화 ‘파벨만스’는 지난 60년 동안 메가폰을 잡은 거장의 ‘영화로 찍은 자서전’이다. 영화를 좋아하던 아이가 어떤 계기로 영화와 사랑에 빠져 어떻게 성장하는지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영화 ‘파벨만스’를 보면서 필자의 머릿속에는 ‘시계 거꾸로 되돌리기 연구’가 맴돌았다. ‘어떻게 건강하고 지혜롭게 살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진 랭어 교수처럼 스필버그 감독도 영화 곳곳에서 같은 질문을 속사포처럼 내던진다. 마치 “잠깐이지만 과거의 자신을 들여다보세요”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나요?”라고….

    스필버그 감독은 잊고 싶었을 성장통도 세밀하고 진솔하게 그렸다. 남의 일기장을 몰래 들여다보는 관객을 향해 그는 솔직하게 고백한다. 아니 어쩌면 스필버그 감독은 ‘파벨만스’를 통해 자신을 치유하려 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가 여러 인터뷰에서 “‘파벨만스’를 만드는 과정이 분명 내게 치유가 되는 과정이었고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은 굉장한 특권이었다”고 말한 것처럼, 이 영화를 통해 그는 제작비 4000만 달러짜리 ‘회상 치료’를 받았을 지도 모른다.



    랭어 교수의 실험처럼, 스필버그 감독은 살면서 겪은 의미 있는 사건이나 경험을 고찰하는 회상 치료를 통해 그동안 자신을 따라다니던 가족의 해체와 유대인이라는 족쇄를 정면으로 바라봤을 것이다. 회상을 활용한 심리치료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과거에 대한 증오와 죄의식 등을 이해하고 수용하게 되니 말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감의 원천이 된 가족들. 청소년기 감독, 엄마, 아빠, 세 여동생들(왼쪽부터). [CJ ENM]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감의 원천이 된 가족들. 청소년기 감독, 엄마, 아빠, 세 여동생들(왼쪽부터). [CJ ENM]

    카메라 앞에서도 자유롭고 다양한 표정과 포즈를 전했던 어머니는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 최초이자 최고의 배우였다. [CJ ENM]

    카메라 앞에서도 자유롭고 다양한 표정과 포즈를 전했던 어머니는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 최초이자 최고의 배우였다. [CJ ENM]

    “영화는 꿈이란다, 영원히 잊히지 않는 꿈”

    20세기 인류의 역사를 바꾼 인물로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름이 항상 오른다. 황당한 공상에서 출발해 기발한 상상을 거쳐 천재적 영감이 된 그의 창의력의 근원이 무엇일까. 팔 다리 가늘고 배만 불뚝한 외계인 ET와의 우정, 한적한 휴양지에 갑자기 출몰한 식인상어 죠스의 공포, 흥미진진한 보물탐사 모험을 주도하는 고고학자 인디애나 존스, 멸종된 공룡들이 시대를 뚫고 등장하는 기발함으로 시작한 쥬라기 공원 등 그의 필모그래피는 다채롭다.

    우리는 보통 이성적인 타입을 좌뇌형 인간, 감성적인 타입을 우뇌형 인간이라 칭한다. 이는 뇌의 왼쪽이 물리적이고 이성적 판단에 관여하고 오른쪽이 창의적이고 직관적 판단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스필버그의 어머니 레아는 피아니스트로 아들이 상식을 넘어선 무한한 상상력을 품을 수 있도록 자극했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이자 대학에서 전기를 전공한 공학도 출신인 아버지 아놀드는 아들에게 현장에서 벌어지는 물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논리적 사고를 심어줬다. 이 탈무드 토양 덕분에 그는 좌뇌와 우뇌가 두루 발달할 수 있었고, 빈틈없는 연출력을 가진 천재 감독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의 영화는 황당한 공상과 기발한 상상을 거쳐 천재적 영감으로 현실과 미지를 넘나들며 우리네 삶을 위로한다.

    영화 ‘파벨만스’ 포스터. [CJ ENM]

    영화 ‘파벨만스’ 포스터. [CJ ENM]

    영화 ‘파벨만스’는 1952년 뉴저지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6살의 세미(가브리엘 라벨)는 엄마 미치와 아빠 저크의 손을 잡고 세실 B 드밀 감독의 영화 ‘지상 최대의 쇼’를 관람하러 길을 나선다. 무서운 장면 때문에 겁을 잔뜩 먹은 세미를 안심시키려 아빠 저크(폴 다노)는 ‘영화는 현실이 아니고 여러 장의 사진을 돌려 빛을 투과시키는 기술의 결과’라고 설득한다. 이에 엄마 미치(미셀 윌리엄스)는 세미가 평생 기억할 말을 가슴에 새겨준다. “영화는 꿈이란다. 영원히 잊히지 않는 꿈.”

    영화 속 기차 충돌장면이 무서워 잠을 설치던 세미는 하누카(유대교 전통 명절) 선물로 아빠가 사준 미니어처 기차를 자동차와 충돌시키며 영화 장면을 재현해 본다. 허나 장난감 기차를 무한정 충돌시킬 수는 없는 일. 이를 유심히 본 엄마는 “이미지를 카메라에 담아 계속해 보면서 공포를 몰아내자”며 8mm 필름카메라를 아들 손에 쥐어준다. 어린 세미는 촬영한 각도와 배치, 구성에 따라 각기 다른 섬세한 미장센이 완성되고, 이미지를 이어 붙이는 편집으로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신세계를 경험한다.

    신이 난 세미는 스스로 대본을 만들어 자신의 영화에 케첩을 피로 응용하기도 하고 두루마리 휴지를 사용해 여동생들을 미라로 출연시킨다. 청소년이 된 세미(가브리엘 라벨)는 여전히 가족과 친구를 총동원해 다양한 앵글로 실험하며 자신의 순간순간을 카메라에 기록한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는 실감나는 전투 장면을 위해 밀가루를 사용했고 필름에 구멍을 뚫어 섬광효과를 내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이를 통해 그만의 영화관이 구축됐다.

    하루는 자신이 촬영한 가족의 단란한 영상을 편집하고 있었다. 아버지 친구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남다른 눈빛을 감지했다. 하늘이 내려앉는 느낌이었고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아버지 친구를 따라 집을 떠난다. 스필버그는 상처받을 가족을 생각해 자신이 이미 어머니의 외도를 눈치 챘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벙어리 냉가슴으로 함구했다. 그의 여동생들도 이번 영화를 통해 오빠의 가슴앓이를 알게 됐을 정도다. 영화는 그에게 판타지도 선물했지만 말 못할 평생의 비밀도 전한 셈.

    스필버그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다. 학교성적은 낙제를 겨우 면할 정도라 당대 명문 서든캘리포니아 대학(USC) 영화과에 연이어 낙방하고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을 택해야 했다. 막상 대학에 입학하고부터는 동년배 중에 그 누구도 스필버그의 작품세계를 능가하는 이가 없었다. 현장에서 얻은 경험의 결실은 성공의 자양분이었기 때문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뉴시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뉴시스]

    열등감 이기는 지름길은 인정하는 것

    비록 2023년 오스카 시상식에서는 무관에 그쳤지만 ‘파벨만스’로 스필버그는 오스카 작품상으로는 13번째, 감독상으로는 9번째 이름이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각 2번 수상했으므로 타율로 보자면 그다지 높은 확률은 아니다. 그는 최초의 블록버스터 영화 ‘죠스(1975)’로 대작 영화시대를 연 주인공이다. “흥행만 좇는다”는 비난과 “지극히 상업적”이라는 그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대를 앞서가는 선구안이 누구보다 뛰어났기에 오스카 심사위원들의 미운털까지도 잠재울 수 있었다.

    19세기 후반에서 제1차 세계대전까지 260만 명의 동유럽 출신 유대인은 박해를 피해 아메리카행 배에 올랐다. 스필버그의 조부모 모두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이 시기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 가족이다. 그의 가족은 홀로코스트로 우크라이나에 남았던 몇몇 친지들이 희생되는 비극적 아픔을 간직한다. 그러한 연유로 그는 2022년 3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을 때 난민을 위해 100만 달러를 선뜻 기부했다.

    뉴저지에는 유대인이 많이 거주해 유대인 스필버그는 초등 저학년까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컸다. 아홉 살부터 7년간 살았던 남서부 애리조나 피닉스 교외지역에서는 유대인이 그의 가족뿐이었다. 보통 유대인들은 엄격한 규율로 유대공동체만의 민족정체성을 다졌지만 그의 가정은 자유로운 성향을 지닌 어머니의 영향으로 미국사회와 비교적 융합하며 지냈다. 그럼에도 물과 기름 같이 융화되지 못하던 문화적 이질감은 극복되지 않았다. 이는 영화에서 잘 나타난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 불빛으로 가득한 마을에서 유독 유대교도인 그의 집에만 암흑이 드리웠다. 지금이야 미국 금융을 쥐락펴락하는 부호 100명 중 22명이 유대인이고 영향력 있는 미국 주요 언론 경영진 35%가 유대인이지만 1960년대에는 극소수 유대인만이 세를 펼쳤다.

    아버지의 이직으로 전학 간 캘리포니아 고등학교에서 세미는 노골적인 무시와 차별을 당했다. 학교폭력의 희생자가 된 세미는 더욱 외로웠고 유대인이라는 꼬리표는 열등감으로 따라다녔다. 고등학생 세미는 정체성을 부정하기보다 현실을 인정해 버리며 극복한다. 자신을 괴롭히는 가해자를 자신의 학교 영화에서 영웅으로 만들어 슬기롭게 상황에 대처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대표작 ‘E.T’, ‘죠스’, ‘쥬라기 공원’(위부터).
유니버설 스튜디오, [유니버설 픽쳐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대표작 ‘E.T’, ‘죠스’, ‘쥬라기 공원’(위부터). 유니버설 스튜디오, [유니버설 픽쳐스]

    스필버그는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영화로 그 과정을 풀어 해결했다. 그래서 스필버그의 인생 자체가 바로 그의 영화다. 아버지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담을 바탕으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려 했다. 이혼 가정의 상실감을 ‘E.T’(1982)와 ‘캐치 미 이프 유 캔’(2003)에서 그렸으며 ‘A.I’(2001)에서는 자신의 예술적 영감의 근원이던 가족과 인류애를 승화시켰다.

    할리우드에서 유대인이라는 출신은 꼬리표가 아니라 완장이다. 20세기 초반 미국사회는 영화를 ‘니켈로디온(5센트짜리 볼거리)’이라 부르며 하류 취급했지만 영화산업의 중요성을 간파한 유대인은 이 틈새를 파고들었다. 유니버설, 파라마운트, 20세기 폭스, MGM, 워너브라더스, 컬럼비아 등의 메이저 영화사들은 유대인 자본으로 세워졌다. 청소년기 그를 벼랑으로 내몰았던 유대인 꼬리표는 성인이 된 다음 발을 들인 영화계에서 추천장이 됐다.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은 단순히 거장의 일대기를 넘어 삶의 질곡에서 예술과 인생은 무엇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유대인이란 이유로 받았던 편견과 멸시를 정체성으로 삼아 ‘쉰들러 리스트’(1993)와 ‘뮌헨’(2005)에 녹였다.

    어둠을 뚫고 나오는 영화관 영사기의 한줄기 빛이 관객의 눈동자에 맺힐 때 영화는 비로소 완성된다. 영화 ‘파벨만스’에는 음악의 존 윌리엄스(91), 촬영의 야누스 카민스키(63), 편집의 마이클 칸(88), 공동각색의 토니 커쉬너(67) 같은 할리우드 최고의 스필버그 사단이 총출동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그동안 관객은 그의 수려하고 유려한 결과물만 감상했지만 ‘파벨만스’를 통해 스필버그 영화 결정체가 만들어지는 동기와 과정까지 공감한다.


    황승경
    ● 1976년 서울 출생
    ● 이탈리아 레피체국립음악원 디플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성균관대 공연예술학 박사
    ● 국제오페라단 단장
    ● 前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 리포터, 월간 ‘영카페’ 편집장
    ● 저서 : ‘3S 보컬트레이닝’ ‘무한한 상상과 놀이의 변주’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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