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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청년이 쓴 보수정당이 ‘호남으로 가는’ 좁은 길

호남과 좌파의 밀착 명분은 보수가 제공했다

  • 나연준 ‘제3의길’ 편집위원

호남 청년이 쓴 보수정당이 ‘호남으로 가는’ 좁은 길

  • [국민의힘 호남 껴안기③]
    ● 좌파 영남 파고들 때 보수 호남 포기
    ● 30년 1당 독식 부작용
    ● 역사왜곡금지법은 반지성적 행태
    ● PK친노 세력의 호남 인식
필자는 광주 출신으로 1981년생이다. 중앙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했다. 현재는 ‘제3의길’ 편집위원으로 글을 쓰고 강연한다.

*신동아는 9월 18일~21일 오전 10시 4회에 걸쳐 국민의힘 호남 공략 관련 기사를 게재합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8월 19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윤상원·박기순 열사 합장묘를 참배하고 있다.(왼쪽)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은 5월 18일 당시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뉴스1]

김종인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8월 19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윤상원·박기순 열사 합장묘를 참배하고 있다.(왼쪽)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은 5월 18일 당시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뉴스1]

보수정당에 호남은 험한 준령으로 둘러싸인 파촉(巴蜀)의 땅이다. 1987년 이후 김대중은 파촉에 웅거해 중원을 노렸다. 보수세력은 합종(合從)으로 김대중을 막아내고자 했고, 김대중은 연횡(連衡)으로 이를 깨뜨리고자 했다. 1990년 3당 합당이 합종의 전형이라면, 1997년 DJP 연대는 연횡의 묘수였다. 

1997년 보수세력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을 ‘예외적’ 패배로 인식했다. 그래서 ‘호남고립화’라는 합종전략을 수정하거나 폐기하지 않았다. 그사이 보수세력의 근거지였던 영남은 조금씩 무너져 내려갔다. 영남 출신 친노세력이 부산·경남에서 득세하기 시작했고, 울산·마산·창원 등 노동자 밀집 지역에서 민주노총의 지원을 받은 진보정당 후보가 당선권에 근접했다. 

좌파가 영남 지역을 집요하게 파고들 때, 보수세력은 호남 유권자와 출향민을 스스로 ‘포기’하다시피 했다. 그 결과 호남과 좌파는 정치적으로 밀착했다. 보수정당은 자기 손으로 파촉에 이르는 잔도를 절반쯤은 불태운 것이다.



수도권 호남 출향민 표심(票心)

21대 총선 이후 일부 보수층 유권자는 당선 불가능한 호남을 완전히 포기해 버리자고 한다. 하지만 호남고립화는 이제 더는 보수가 다수파를 확보할 수 있게 하는 필승 전략이 아니다. 특히 호남에서 수도권으로 이주한 출향민의 존재는 서울·경기 박빙 지역에서 승패를 가르는 열쇠다. 

호남고립화의 기본 전제인 영남의 압도적 지지도 예전만 못하다. 이번 총선에서 부산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는 두 곳을 제외하고 모두 지지율 40% 이상을 확보했다. 이제 보수정당은 다시 다수파로 올라서기 위한 중장기 전략을 새롭게 세워야 한다. 여기서 호남과 좌파의 분리는 핵심 과제다. 그래야 나라가 산다. 

보수정당이 호남에서 저조한 성적에 머무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일부 보수층의 호남혐오 정서다. 온라인 공간에서 혐오의 언어가 난무한다. 최근 보수 유권자들이 즐겨 찾는 상당수 유튜브 방송도 마찬가지다. 댓글이나 채팅창에 호남혐오 발언이 나오지 않은 경우를 찾기 힘들다. 

또한 호남 출신 정치인이 잘못하면 유독 출신 지역을 거론하는 경향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전 장관은 부산 출신이라는 이유로 비판받지 않는다. 법무부 장관 추미애도, 통일부 장관 이인영도, 좌파 스피커 노릇하는 김어준과 유시민도 마찬가지다.

30년 1당 독식의 부작용

둘째, 보수정당의 무관심이다. 선거 기간 상당수 호남 지역구에서 보수정당 벽보와 현수막을 보기 힘들다. 보수정당 정치인들은 지레 호남 지역 출마를 포기해 버린다. 애초부터 선택지가 되기를 마다하는 보수정당이 호남의 지지를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다. 노무현과 김부겸 같은 정치인들이 지속적으로 영남에 도전한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셋째, 호남인 스스로가 고립을 자초하는 경향이다. 호남은 30년 동안 1당 독식이 이루어진 지역이기에 정치인, 언론인, 지식인, 시민단체가 한 몸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사회에서 상호 비판과 견제 기능이 미약하다. 문재인 정부 이후 시민단체의 관변화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호남은 이러한 경향이 훨씬 빨리 진행돼 왔고 그만큼 공고하다. 그래서 정치담론이 기형적이다. 

우선 호남 지역의 정치담론은 당파성이 강하다. 지역 시민사회는 이 문제를 성찰하지 않는다. 이들은 5·18민주화운동 같은 상징자산을 당파적으로 이용한다. 예컨대 지난해 9월 26일 광주 지역 시민단체와 교수들은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8000여 명을 모아 시국선언을 하며 조국 구하기에 나섰다. 심지어 10월 서초동 조국수호 집회에서 ‘광주가 조국이다’는 깃발까지 등장했다. 

다음으로 기질론적 사고를 지적할 수 있다. 호남 지역 정치인, 정치평론가, 시민단체 등이 호남인을 논할 때 ‘민주주의 의식이 뛰어나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도대체 왜 호남인의 민주주의 의식이 높다는 것인가. 5·18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있지만, 민주화운동이 호남에서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또한 민주화운동이 있었다는 것과 그 지역민의 민주주의 의식이 높다는 것 사이에는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 더구나 둘 사이에는 40년이라는 시차가 있다.

“과연 광주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대형 버스를 앞세우고 시위 중인 광주시민과 학생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5·18민주화운동 당시 대형 버스를 앞세우고 시위 중인 광주시민과 학생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79년 부산과 마산에서 항쟁이 있었다는 이유로 두 도시가 민주주의 의식이 높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1987년 6월 서울에서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지속됐다는 이유로 현재 서울시민을 민주투사로 인정하지 않는다. 유독 광주시민에 한해서만, ‘민주주의 의식이 높다’고 ‘대접’을 한다. 고립된 소수라는 자기 인식을 자기 위안으로 전도시키는 심리다. 

이와 같은 자기 위안은 나르시시즘으로 이행한다. 호남 지역 지식인들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호남인, 약자에 공감하는 호남인과 같은 우상을 창조한다. 호남 지역 월간지로 꽤 유명한 ‘전라도닷컴’의 편집장 황풍년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세월호 광주시민상주모임이 도보 행렬을 할 때, 사람들로부터 “과연 광주다”라는 찬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불의에 맞섰던 정의로운 정신이 그저 빛나는 역사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시민의 일상 속에서 펄펄 살아 있다는 감동이 밀려오며 선한 의지를 다시금 부추기는 것이다.”(황풍년·‘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 

대관절 이게 무슨 말인가. 어찌하여 그 정의로운 정신은 유독 광주에서만 역사 밖으로 튀어나와, 시민의 선한 의지를 부추긴단 말인가. 이런 감상평 이면에는 호남 지역 지식인의 왜곡된 나르시시즘이 있다. 탈식민주의 이론가 프란츠 파농의 지적을 참고할 만하다. 

“백인에겐 하나의 사실이 있다. 스스로를 흑인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사실 말이다. 흑인에게도 하나의 사실이 있다.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그들 사상사의 풍요로움과 그들 지성사의 뒤떨어지지 않는 가치를 백인들에게 증명하려고 애쓴다는 사실 말이다.”(프란츠 파농·‘검은 피부, 하얀 가면’)

PK친노세력의 호남 인식

지역 정치인과 시민사회가 애용하는 ‘광주정신’ ‘오월정신’이라는 수사 역시 이러한 나르시시즘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5·18의 가치를 평가하고 싶다면 보편적 개념으로 설명하면 그만이다. 혹시 ‘서울정신’ ‘부산정신’ ‘마산정신’과 같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정신을 외치는 것은 지역의 특수성을 강조하려는 지식인들의 나르시시즘일 뿐이다. 

호남혐오와 나르시시즘은 기질론적 사고를 공유한다. 호남혐오론자는 호남인이 태어날 때부터 ‘사기꾼’이고 ‘빨갱이’라고 낙인찍는다. 반면 나르시시즘에 취한 지역 지식인들은 호남인이 태어날 때부터 ‘민주시민’인 양 상찬한다. 둘의 정치적 요구는 똑같다. 전자가 호남인을 향해 “평생 민주당이나 찍는 구제불능”이라고 비아냥거리면, 후자는 “민주당을 찍어서 호남인의 민주의식을 증명하라”고 주문한다. 둘 다 변화하지 말고 생긴 대로 살라는 뜻이다. 

아울러 호남혐오는 일부 보수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호남 지역을 석권하자 민주당 지지자들은 호남 비하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호남 출신인 내가 보기에 같은 혐오감이라도 표출되는 행태가 다르다. 일부 보수층의 호남혐오가 감정적 배설에 가깝다면, PK친노는 이를 정치공학적으로 이용한다. 전자가 투박하고 공격적이라면, 후자는 은밀하고 음흉하다.

보수가 호남-좌파 밀착 명분 제공

그러므로 호남인은 각성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몇몇 호남 출신을 중용한다는 이유로, 고립이 두렵다는 이유로 지금처럼 묻지마 지지를 보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행태야말로 고립을 자초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문 정권의 수많은 실정에도 불구하고 타 지역의 두 배가 넘는 지지를 보내는 현실은 이제 과거의 피해의식으로 이해받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물론 호남이 일거에 바뀔 수는 없다. 하지만 내부에서 보수적 목소리를 조금씩이라도 키워가야 한다. 이를 위해 일부 보수층의 혐오는 비판이나 격려로 바뀌어야 한다. 호남은 ‘뭘 해도 안 되는 지역’ 따위의 조소야말로 호남과 좌파가 밀착하는 명분을 제공한다. 또한 호남 내부 보수의 입지를 줄여나간다. 

최근 보수정당은 호남에 대해 과거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8월 19일 김종인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망월동 묘역에서 “시대를 대표해 무릎을 꿇는다”며 신군부에 참여했던 과거 전력과 자유한국당 시절 5·18 관련 망언에 대해 사과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격한 반응을 했다. 우원식 의원은 “이런 쇼는 보고 싶지 않다”고 했으며, 정청래 의원은 “신파극”이라고 깎아내렸다. 반면 일부 보수층에서는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론도 있었다. 

이처럼 양쪽으로부터 비판받는 김종인 위원장의 처지는 현재 보수정당의 서진(西進)정책의 딜레마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서진은 해야만 한다. 다만 보수정당으로서 원칙을 지켜야 한다. 나는 보수정당이 5·18이 ‘민주화운동’이라는 보편적 평가를 수용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만 ‘광주가 조국이다’처럼 5·18의 상징자산에 기생하는 운동권을 비판할 자격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제기하고 있는 ‘역사왜곡금지법’ 같은 반지성적 행태에는 단호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그 어떤 위대한 인물과 사건도 비판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5·18이 그 어떤 가치를 품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넘어설 수 없다. 대표적 좌파 지식인 임지현마저 ‘역사왜곡금지법’은 유럽 극우파나 만드는 법이라고 지적했다(‘신동아’ 2020년 9월호 ‘탈민족주의 좌파 임지현 “조국·임종석, 진짜 좌파라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제하 기사 참조) 

아쉽게도 현재 보수정당은 이런 부분에서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설령 보수정당이 아무리 민주당보다 5·18을 상찬하다고 해도 민주당과 경쟁에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미 5·18은 민주당과 운동권이 독점하고 있는 상징자산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따라 하는 것은 아류일 뿐이다. 지금 보수정당이 그렇다. 적어도 호남을 공략하는 데 있어 보수정당은 상대의 문법에 정면으로 맞서는 상징자산과 비전을 발굴하는 노력을 한 적이 있는가. 아니, 진보의 상징자산과 정치 퍼포먼스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기라도 했는가. 

한국 정치에서 좌파는 민주화의 서사, 보수는 산업화의 서사를 갖고 있다. ‘신뢰’와 ‘신중’이라는 인간적 덕목, 코스모폴리탄적 세계인식, 교육을 통한 인재 육성, 근대 산업을 일으키는 능력 등은 모두 보수가 지향해야 할 가치다. 그리고 이것은 5·18을 매개로 호남을 성역화·고립화하는 좌파의 상징조작에 맞선 ‘세속’의 빛나는 성취이자 지향이다.

세속의 ‘성취’에 방점 찍어야

보수정당은 바로 이러한 세속의 ‘성취’에 방점을 찍고 서진해야 한다. 광주의 자영업 폐업률은 8년 동안 전국 1위다. 매년 5000명의 청년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를 떠난다. 여권이 새로운 시도처럼 소리 높인 광주형일자리도 완전히 실패했다. 호남에서 좌파가 과거를 들먹이며 공세를 취할 때, 보수는 그들이 망친 현실로 반박할 필요가 있다. 망월동에서 ‘무릎 꿇기’보다 호남에 산업을 주겠다고 말해야 한다. 

좌파와 호남의 결착을 끊어내는 일은 어려운 정치적 과제다. 일부 보수층의 호남혐오를 건전한 비판으로 바꾸어내고, 호남의 상징자산에 기생하는 일부 운동권의 행태를 폭로하며, 이를 통해 호남인의 자발적 고립을 끊어내고, 지속적으로 정쟁을 유발하는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원칙을 지키며, 보수정당에 걸맞은 새로운 상징과 비전을 벼려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이끌어갈 지역의 보수정치인을 길러내야 한다. 고통스럽고도 좁은 길이다. 그러나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다.



신동아 2020년 10월호

나연준 ‘제3의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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