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호

‘백신 실책’ 집권 586, ‘정신의 힘’ 아닌 ‘과학’ 믿으라

[민경우 586칼럼⑨] 전통시대 마법에 현혹된 文정부

  • 민경우 민경우수학교육연구소 소장

    mkw1972@hanmail.net

    입력2020-12-3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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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신 선제적 확보에 실패한 韓

    • 범여권 일각의 反과학적 태도

    • 허황된 수사와 불필요한 과장

    • 전문가의 식견과 법칙 무시

    • 신뢰·연대보다 첨단 기술이 무기

    *586세대 NL(민족해방 계열) 이론가이자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사무처장 출신 필자가 문재인 시대에 표하는 유감.

    10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경기 성남시 SK바이오사이언스 연구소를 찾아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간담회는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 상황을 점검하고 임상에 참여한 연구진을 격려하고자 마련됐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10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경기 성남시 SK바이오사이언스 연구소를 찾아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간담회는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 상황을 점검하고 임상에 참여한 연구진을 격려하고자 마련됐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2020년 12월 중순 미국과 영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미국과 영국은 백신이라는 현대적 무기를 들고 병마와 싸우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유럽연합(EU), 일본 등 제대로 된 선진국 모두 마찬가지다. 반면 한국의 상황은 불투명하고 아리송하다. 

    백신을 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백신을 개발한 제약회사들이 한국에 백신 판매를 주저할 아무런 정치적 이유도 없었다. 드라마와 영화에 난무하는 음모와 모략 따위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정부의 노력과 선(先)구매 자금만 있으면 됐다. 5000만 명을 접종하는데 필요한 돈은 1조 원 정도에 그쳤다. 

    그럼에도 한국은 빠르게 백신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좌파를 대표하는 지식인 중 한 명인 프랑스의 자크 아탈리는 12월 20일 공개된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한국이 코로나 백신을 구하지 못했다고? 직접 확인을 해보기 전엔 믿기 어려운 일이다. 사실이라면 끔찍한 실수(terrible mistake)”라고 당황해 했다. 좌파 지식인이 보기에도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12월 29일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 미국 제약회사 모더나의 스테판 반셀 최고경영자(CEO)와 통화하고 모더나가 한국에 2000만 명분 코로나19 백신을 공급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청와대는 “기존 백신 공급계약에 더해 모더나와의 계약이 이뤄지면 총 5600만 명이 맞을 수 있는 백신을 연내에 확보하게 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선진국에 비해 백신 확보 과정이 원활하지 않다는 비판은 면하기 어렵다. 아마도 우리는 오랫동안 문재인 정부의 어이없는 실책에 대해 말하게 될 것이다. 필자는 문재인 정부의 기원인 1970~1980년대 운동권의 사상에서 실마리를 찾아볼까 한다.

    도덕적 덕담과 과학기술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AP 뉴시스]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AP 뉴시스]

    1970~1980년대 운동권은 세상을 제국주의-식민지, 기득권-민중으로 양분해서 봤다. 여기서 제국주의와 기득권의 무기는 과학이고, 식민지와 민중의 무기는 사람들의 단결된 힘이다. 과학을 제국주의의 무기로 보기 때문에 과학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갖게 된다. 이에 따라 운동권은 이른바 대안적 과학에 빠져 들었다. 1990년대 운동권에서 자연의학이나 한의학, 친환경 유기농과 친환경 에너지, 대안학교 운동 등 정통 과학에서 다소 벗어난 조류가 발달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런 조류는 코로나19 국면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대구·경북지역에서 한창 코로나19가 확산하던 2월 29일 페이스북에 “이 시기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써야 하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라고 썼다. 

    최민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2월 19일 KBS 라디오 방송에 나와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과 토론하는 과정에서 이런 대화를 나눴다. 

    이준석: “그 논리라면 안정성이 가장 높은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을 구해야지, 왜 3상도 안 끝난 백신을 구합니까?” 

    최민희: “뭘 잘 모르면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고요. 영국에서 만든 백신이 안정성이 없는 게 아니라, 미국에서 허가를 안 내주는 겁니다.” 

    이준석: “그런 걸 보통 안전하지 않다고 합니다.” 

    최민희: “미국이 허가 안 해주면 안전하지 않은 겁니까?” 

    이준석: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최고 권위 기관입니다.” 

    최민희: “허허허허. 아우 친미 수준이 너무 높으세요.” 

    범여권 고위급 정치인 중에는 초보적 과학 지식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이중 다수가 문과 출신이다. 이들은 과학 등 기초 소양을 쌓지 않은 상태에서 주로 정무적 판단에 의지해 고위직에 올랐다. 김승환 교육감이나 최민희 전 의원의 발언에서도 현대 과학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읽힌다. 

    범여권의 반과학적 태도를 잘 보여주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3주년 특별연설이다. 5월 10일 문 대통령은 “세계를 선도하는 확실한 ‘방역 1등 국가’가 되겠다”고 했다. 올해 상반기 한국이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선전할 수 있었던 것은 마스크 쓰기,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초보적 위생 조치를 집단적으로 실행한 동양적 전통과 관련이 있다. 이는 대만, 홍콩 등이 좋은 성과를 보인 것과 맥을 같이 하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이를 K-방역이라고 명명하고 홍보하는 데 열을 올렸다. 정작 K-방역에 대한 마땅한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5월 10일 연설도 “양보하고 배려했고 연대하고 협력했다”와 같은 도덕적 덕담, 정신적 미덕 같은 내용이 주를 이룬다. 

    운동권 주류는 유독 동학농민혁명을 좋아한다. 그들은 과학기술과는 멀어 보이는 용모와 차림새를 갖춘 사람들이 과학기술로 무장한 세력과의 싸움에서 인간적 의리와 단결로 승리를 쟁취하는 스토리를 좋아한다. 이런 경향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점점 심화하고 있다. 

    실상은 전혀 다르다. 동학농민군 수십만 명은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 수천 명에 참패했다.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신식 무기의 효용이지만, 운동권들이 얻은 교훈은 무기가 없더라도 마음만 있다면 싸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과학을 경시하고 정신적·문화적 요소를 통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이상한 기류가 운동권 사이에 만연했다. 2020년 여름, 코로나19 대응 방법을 결정해야 할 상황에서 정부는 정신 승리라는 전통시대의 마법에 현혹됐다. 그 연장선에서 정부는 백신 대신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두기 정도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운동권 정치인 vs 전문가

    최근 수십 년 간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이제 인간은 우주를 정복하고 인간보다 뛰어난 기계를 개발하고 DNA를 제어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과학자를 키우는 단위도 커졌다. 대부분의 나라는 국가 단위에서 기술을 개발하고 과학자를 양성한다. 심지어 지구 규모의 프로젝트도 적지 않다. 

    반면 현대 과학을 은연중 불신하는 조류는 운동권과 함께 면면히 살아남았다. 이들은 시민단체 등에서 주류 과학을 비판하면서 가정이나 지역 사회 단위에서 대안적 실천을 하는 형태로 명맥을 이어왔다. 마침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주류 과학과 대안적 과학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가장 극적이었던 것은 탈(脫)원전이다. 문 대통령은 영화 ‘판도라’에서 많은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국내의 영화와 소설, 드라마에는 거대 산업이나 첨단과학을 주관하는 국가, 정부, 정치인, 기업 등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스며들어 있다. 음모와 모략으로 가득한 시중의 판타지에 짙게 깔린 정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픽션(fiction)은 그냥 픽션이다. 정상적인 성인이면 재미로 보는 픽션과 실제 벌어지는 일을 구분한다. 

    반면 2010년대 어느 시점부터 사람들은 픽션과 과학을 혼동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데이터와 자료, 과학자와 전문가가 아니라 운동가와 논객으로부터 과학을 배우는 이상한 시대가 됐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문재인 시대의 결정적 특징이다. 

    나는 이런 장면을 많이 봤다. 나는 이과에 속하는 의예과에 입학했다가 중퇴하고 문과에 속하는 국사학과에 재입학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졸업 후에는 오랫동안 통일운동을 했다. 내 안에서는 수학과 과학이라는 세계와 정치와 역사라는 또 다른 세계가 공존했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수학과 과학에 대한 초보적 지식과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이 걸핏하면 역사와 정의를 들먹이며 문재인 정부에서 정치적으로 부상했다. 

    2020년 상반기 코로나19 국면에서 의료진이 보여준 전문성과 헌신성은 놀라웠다. 나는 올 봄에 빠짐없이 뉴스를 챙겨보며 그들의 말을 경청했다. 그들은 데이터와 자료에 근거해 발언했고 불필요한 수사를 구사하거나 때 이른 낙관을 하지 않았다. 

    정치인 대부분은 허황된 수사와 불필요한 과장을 서슴지 않았다. 정치인 대부분이 고도로 발전한 과학기술의 지적 기반을 무시한 채 대중영합적인 정치 기술에 의존했다. 

    2020년 하반기 한국에서는 두 개의 세계가 극적으로 충돌했다. 부동산 정책, 추-윤 갈등, 의사 파업, 코로나19 백신 파동에서 공히 충돌이 있었다. 이 모든 사태는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전문가들이 축적해온 전문적 식견과 법칙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세상을 유린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그 와중에 세계 일류의 방역 성과를 보인 한국이 백신을 제때 확보하지 못한 기막힌 상황이 연출됐다. 누군가의 말대로 대통령이 이명박이나 이재명이었다면, 혹은 그저 전문가의 말을 귀담아 듣는 정치인이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反日의 요체

    2020년 인류는 기념비적 성과를 올렸다. 전 세계가 협력해 바이러스의 유전자 정보를 공유하면서 1년이 채 지나지 않는 시점에 백신을 개발했다. 백신은 mRNA(메신저 RNA)라는 새로운 방식에 기초하고 있다. mRNA 방식의 출현은 2010년부터 시작된 과학기술 혁명(인공지능, 중력파, 우주개발 등)과도 맥을 같이 한다. 인류가 거둔 과학적 성과에 대해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는 홈페이지에 “Science Will Win(과학이 승리한다)”이라고 적었다. 

    과학에 대한 맹신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갈 길이 멀다. 세계 최초로 백신 접종을 시작한 영국에서 변이 바이러스가 출현했고 애써 개발한 백신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과학자들을 믿고 그들의 지혜에 의지해 전진해야 한다는 점이다. 동학농민혁명에 비유하자면 신뢰와 연대 같은 ‘정신의 힘’이 아니라 일본군에 맞서 싸울 첨단 무기를 준비하는 게 반일의 요체다.

    ● 1965년 출생
    ●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
    ●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
    ●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사무처장·진보연대 정책위원회 부위원장
    ● 저서 : ‘수학 공부의 재구성’ ‘새로운 보수의 아이콘’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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