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호

[추적] ‘드루킹 사건’ 판결문 “김경수, 댓글작업 인식하고 드루킹에 URL 전송”

법원 “특정 정당‧후보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 유도할 목적”

  •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1-08-23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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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원, 김경수 업무방해 유죄

    • 2016년 11월 9일, 무슨 일 있었나

    • 金 “‘킹크랩’ 시연 본 적 없다”

    • 法 “3개 네이버 ID 접속해 ‘공감’ ‘비공감’ 누르는 작업”

    • 김경수가 보낸 7개 기사…드루킹은 “처리하였습니다^^”

    • “경인선은 일주일간 휴가 주었습니다” 답변하기도

    • 1~3심 재판부마다 달리 판단한 공직선거법 위반

    • 이재명 “유감”, 이낙연 “金 진실성 믿는다”

    • 전문가 “불리한 결과 나오면 사법개혁 주장”

    • “포털 자율규제·실명제 도입해야”

    7월 26일 경남 창원시 창원교도소 앞에서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재수감되기 전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7월 26일 경남 창원시 창원교도소 앞에서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재수감되기 전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사법부에서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고 해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바뀔 수는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말씀드린다.”

    7월 26일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경남 창원교도소에 재수감되기 전 남긴 말이다. 7월 21일 대법원(형사2부)은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전 지사에게, 컴퓨터 등 장애업무방해(업무방해)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무죄 판단했다. 2018년 1월 31일 더불어민주당이 네이버 댓글 의혹 조작을 경찰에 고발한 지 37개월 만이다.

    ‘친문 적자’ 김 전 지사의 수감에 정치권도 들끓었다. 여권에서는 김 전 지사를 옹호하는 발언을 쏟아냈고, 야권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김 전 지사가 말하는 ‘진실’은 무엇일까.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문을 들여다봤다.

    ‘경공모와 공모했나’가 사건의 핵심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관련 재판은 두 갈래로 진행됐다. 하나는 필명 ‘드루킹’으로 불리는 김동원 씨를 비롯한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회원들 재판이다. 김씨를 비롯한 경공모 회원 10명은 이미 최종심에서 댓글 조작과 관련된 혐의에 대한 유죄판결을 받았다. 2020년 2월 대법원은 김씨의 5개 혐의(업무방해·정치자금법 위반·위계공무집행방해·증거위조교사·뇌물공여)를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경공모 회원들이 조직적으로 3013개 네이버 등 포털 아이디를 이용해 기사 7만6090개에 달린 댓글 118만8914개에 총 8840만1672개의 ‘공감(추천)’ 또는 ‘비공감(반대)’을 눌러 댓글 순위를 조작한 혐의가 인정된 것이다.

    또 다른 재판은 김 전 지사의 업무방해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가리는 재판이다. 해당 재판의 핵심은 김 전 지사가 경공모와 댓글 조작을 공모했는지 여부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는 업무방해 혐의는 유죄, 공직선거법 위반을 무죄로 본 원심 판단을 확정했다.



    “법원 판단을 존중한다”는 것이 민주당의 공식 입장이지만, 여권 대선후보들은 ‘친문 적자’로 불리는 김 전 지사를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7월 21일 이재명 경기지사는 “참으로 유감이다. 할 말을 잃게 된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같은 날,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대법원 판결이라 존중한다”면서도 “개인적 믿음으로 볼 때 김경수 지사의 진실성을 믿는다”고 밝혔다. 여권 지지자 사이에서는 사법부가 편향된 판단을 내렸다는 주장이 나온다. 방송인 김어준 씨는 7월 22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이번 재판의 결정적 증거는 없고 드루킹의 발언만 존재한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사법부가 경공모 회원들의 말만 믿고, 김 전 지사가 말하는 진실이 훼손됐는지를 알아보려면 2심 판결문을 살펴봐야 한다. 대법원 판결은 원심에서 법리 해석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판단하는 법률심이기 때문이다. 7월 21일 대법원은 업무방해 혐의에 대한 원심(2심) 판단에 대해 “공동정범의 성립에 관한 법리오해, 이유모순, 이유불비 또는 판단누락 등의 잘못이 없다”며 피고인 김 전 지사의 상고를 기각했다(대법원 판결문 2쪽). 업무방해 혐의에 서울고등법원의 판단을 모두 인정했다는 의미다.

    2심 판결문은 총 246쪽에 달한다. 이 중 2심 재판부는 업무방해 혐의에 대한 내용에 184쪽을 할애했다. 그만큼 해당 혐의를 판단하는 데 신중을 기했다는 의미다. 항소사건 접수부터 선고까지 약 21개월간 20차례의 공판이 열렸다. 허익범 특검에서 특검보를 맡았던 박상융 변호사는 “2개월간의 수사만큼이나 2년여 시간이 소요되며 양측 공방이 오고간 2심 공판 과정이 판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특히 2016년 11월 9일에 있었던 일을 두고 공방이 길게 이어졌다”고 말했다.

    2016년 11월 9일은 김 전 지사가 경공모의 근거지인 경기 파주시 느릅나무 출판사 사무실(산채)에 두 번째 방문한 날이다. 이날이 재판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것은 특검이 당일 경공모 측이 댓글 조작 자동화 프로그램인 ‘킹크랩’을 김 전 지사에게 시연한 날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드루킹’ 김동원 씨를 포함해 ‘경제적공진화모임’ 회원들이 사용했던 경기 파주시의 한 건물. [문영훈 기자]

    ‘드루킹’ 김동원 씨를 포함해 ‘경제적공진화모임’ 회원들이 사용했던 경기 파주시의 한 건물. [문영훈 기자]

    증언뿐 아니라 디지털 증거

    항소심 재판에서 김 전 지사 측은 일관되게 “산채에 방문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킹크랩 시연은 보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특검 측은 네이버 로그(인터넷 접속) 기록으로 해당 주장을 반박했다. 당일 네이버 로그 기록에 따르면 3개의 네이버 ID가 접속해 오후 8시 7분부터 8시 23분까지, 16분간 킹크랩이 작동하는 6단계(특정 뉴스 기사에 접속해 댓글에 공감 또는 비공감을 누르는 행위)를 반복했다.

    재판부는 “(김씨의) 진술 부분이 객관적인 로그 기록과 일응 부합하는 것으로 보이므로 그 진술의 신빙성은 매우 높다고 할 것”이라 판시했다(판결문 117쪽). 로그 기록이 당일 김 지사에게 킹크랩을 시연했다는 김씨의 진술과 부합한다는 것이다. 또 김 전 지사의 산채 방문 시간에 맞춰 킹크랩에 대한 설명이 담긴 브리핑 자료가 만들어졌다는 점 등을 들어 2016년 11월 9일 킹크랩 시연이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공모 혐의를 인정하는 데 김 전 지사와 김씨 사이에서 오간 텔레그램·시그널 메시지가 중요한 증거로 작용했다. 김씨는 김 전 지사에게 텔레그램으로 “킹크랩 완성도는 98%”라는 메시지를 포함해 총 47회 ‘온라인 정보보고’를 했는데,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킹크랩 개발 및 운용에 대한 묵시적 동의 내지 승인”으로 판단한다(판결문 140쪽).

    “김경수, ‘경인선’ 동원해 댓글 작업하리라고 인식”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컴퓨터 등 장애업무방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1심·2심·대법원의 판결문. [문영훈 기자]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컴퓨터 등 장애업무방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1심·2심·대법원의 판결문. [문영훈 기자]

    그 외에도 김 지사가 2016년 11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11차례 김씨에게 기사 주소(URL)를 전송했다. 이 중 7개 기사는 이른바 ‘댓글 작업’이 가능한 것이었고, 김씨가 “처리하였습니다^^” “처리하겠습니다^^” “경인선은 이번 주 금요일까지 일주일간 휴가를 주었습니다” 등으로 답변했다. 2심 재판부는 “김 전 지사가 김씨가 킹크랩을 이용하거나 ‘경인선’(드루킹의 대외 선거 조직)을 동원하여 댓글 작업을 하리라는 점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서 김씨에게 URL을 전송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판결문 169쪽).

    김 전 지사 측은 “경공모 회원들의 진술이 일관성이 없고 상호 일치하지 않아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박했으나, 재판부는 허위 진술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그들의 진술 자체를 무(無)로 돌리는 것은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형사재판의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 판단했다(판결문 130쪽). 재판부가 로그 기록이나 텔레그램 대화 내용과 같은 객관적 증거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드루킹의 말만 믿었다”는 주장과 달리 2심 재판부는 판결 전 로그 기록 등 디지털포렌식 증거를 상세히 살펴봤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증거는 인적 증거와 물적 증거로 나뉜다”며 “인적 증거에 해당하는 증언은 번복되거나 상대방의 주장과 충돌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신빙성을 따질 때 물적 증거로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전 지사 유죄판결에 특검팀의 공이 컸다는 것이 중론이다. 허 특검은 김 전 지사와 경공모의 공모 혐의를 인정하는 법원의 판단을 이끌어내기 위해 로그 기록 분석, 비밀대화방 복원 등 디지털포렌식 분석에 집중했다. 김 전 지사가 상고장을 대법원에 제출한 뒤, 파기환송을 고려해 허 특검을 포함한 특검팀은 디지털포렌식 전문가 2급 필기시험에 응시해 전원 합격하기도 했다.

    재판마다 바뀐 공직선거법 판단

    1·2·3심 재판부가 모두 김 전 지사의 업무방해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것과 달리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에 대한 판결 내용은 매번 달라졌다. 2019년 1월 30일 1심 재판부는 김 전 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김 전 지사가 김씨 측근 도모 씨를 센다이 총영사 자리에 추천해 공직선거법 135조 등을 어겼다고 판단한 것이다. 공직선거법 135조는 선거운동과 관련해 이익을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2심을 선고한 서울고법은 공직선거법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 전 지사가 2018년 1월 2일경 김동원에게 도두형의 센다이 총영사직 제공의 의사를 표시한 것은 2018년 6월 13일 실시되는 제7회 지방선거의 선거운동과 관련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이 부분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판결문 230쪽). 선거운동과 관련한 이익 제공이 성립하려면 특정 후보자 존재가 인정돼야 하는데, 2018년 1월 당시 전국동시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후보가 특정됐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대법원 역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지만 근거는 달랐다. 대법원은 “처벌대상은 공직선거법이 정한 선거운동 기간 중의 금품제공 등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대법원 판결문 4쪽). 지방선거 후보자가 특정돼 있지 않더라도 공직선거법 위반이 성립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다만, “이 사건 이익 제공의 의사표시가 이 사건 지방선거와 관련하여 이뤄졌다고 볼 증거가 없다”는 2심의 무죄 판단을 확정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여권 일각에서는 ‘사법개혁’ 주장이 다시 나왔다. 강경파로 분류되는 민주당·열린민주당 초선 모임 ‘처럼회’는 8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이 사법부 독립이라는 미명 아래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남을 수 없다”며 “사법개혁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김 전 지사 관련 판결을 언급하며 “판결에 놀라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높다”며 “시민들이 로또 재판과 판사 복을 걱정해야 하나”라고 덧붙였다. 보수성향으로 분류되는 이동원 대법관을 겨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법개혁 아닌 사법부 압박이다”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수사와 공소유지를 맡아온 허익범 특별검사가 7월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수사와 공소유지를 맡아온 허익범 특별검사가 7월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전문가들은 사법부에 대한 정치권의 불복이 사법부에 압력을 행사하는 일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장 교수의 말이다.

    “정치권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재판 결과가 나오면 ‘사법개혁’을 외치고, 유리한 재판 결과에 대해선 ‘잘한 재판부’라며 정치적 유불리에 다른 판단을 내린다. 김 전 지사의 상고심 주심을 맡은 이동원 대법관에 대해서도 보수성향이라며 재판 결과를 의심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법관이 불공정한 재판을 할 우려가 있을 때 제척·기피·회피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존재함에도 무리한 비판을 하는 것은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권이 사법부에 대한 존중을 해주지 않는 건 일반 국민들에게도 부정적인 시그널을 주는 것”이라며 “이로 법치국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상의 건전한 여론 형성을 방해하고 사회 전체의 여론까지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중대한 범죄라 아니할 수 없다. 특정 정당이나 그 정당의 후보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을 유도할 목적하에 특히 이 사건 범행은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 등 국민이 직접 그 대표를 선출하고자 정치적 의사를 표출하는 선거 국면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그 위법성의 정도가 더 무겁다.”

    김 전 지사 재판의 2심 재판부가 판결문(235~236쪽)에 판시한 내용이다. 노동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이번 대법원 판결을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선거, 선거에 기초가 되는 국민 여론을 조작한 사건에 대한 경종을 울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대선 때마다 공직자가 연루된 여론조작 사건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는 국가기관 주도로 댓글 조작이 이뤄졌는데, 이태하 전 국군사이버사령부 심리전 단장은 부대원 120명에게 대선 기간에 댓글이나 리트윗 1만2000여 건을 달도록 지시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국정원 직원들에게 대선 및 총선 관련 트윗 120만 건을 달도록 지시해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3월 대선, 여론조작 반복되지 않으려면…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선거기간이 되면 선거 캠프, 금전적 이익을 바라는 이들,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려 하는 사람 등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이 여론조작의 유혹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실명제 도입이나 포털의 자체 감시 시스템 도입 등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장 교수는 “선거의 특성상 사후 처벌보다 사전 예방이 더 중요하다”며 “선거 기간만이라도 댓글 실명제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포털의 자율 규제를 강조한다.

    “인터넷 보급률이 높고, 모든 연령대가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한 한국의 특성상 온라인에서 형성되는 여론은 선거에도 비교적 큰 영향을 미친다. 포털의 책임감이 필요한 때다. 기사에 댓글이 많이 달릴수록 광고 수입을 거두는 포털이 건전한 댓글 문화를 만드는 데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김경수 #드루킹 #대법원 #진실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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