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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거악에 맞서 상상으로 독립운동…‘조국 백서’ 독해[사바나]

30대 논객이 본 조국&필자들의 ‘애국지사병’

  •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그들만의 거악에 맞서 상상으로 독립운동…‘조국 백서’ 독해[사바나]

  • ●이미 10년 전 김어준이 알아차린 ‘조국스러움’
    ●발문, ‘조국 사태’ 연원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서 찾아
    ●‘평화’니 ‘민족’이니 거창한 이야기 늘어놔
    ●누구도 묻지 않았는데 윤미향과 정의기억연대 거론
    ●자녀입시 논란 두고 ‘우리 사회 평균적 욕망 실현 방식’
    ●‘거악에 맞서는 정의로운 나’라는 과잉 자의식
    ●조국 옹호하다 한 편의 글 안에서도 말 달라져
    ●맹목적 보호가 조국의 삶을 ‘트루먼 쇼’로 만들어
*사바나 초원처럼 탁 트인 2030 놀이터. 밀레니얼 플레이풀 플랫폼.

8월 12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서점에 진열돼 있는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조국백서). [뉴스1]

8월 12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서점에 진열돼 있는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조국백서). [뉴스1]

8월 5일 출간된 ‘검찰개혁과 촛불시민’, 일명 ‘조국백서’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조국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2019년 8월 9일 당시 조국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후 그를 둘러싼 온갖 의혹과 추문이 불거졌다. ‘조국백서’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조국과 그 가족의 행태는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멀끔한 외모에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입바른 소리를 내놓는 ‘고매한 선비’ 조국의 이미지가 산산이 부서졌다. 대학 시절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활동을 했다는 것 정도는 다 아는 사실이었다. 외려 그 점을 문제 삼는 야당이 또 ‘색깔론’을 들먹인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민정수석 시절 사모펀드에 그의 일가가 약 75억 원을 투자약정 했다는 논란, 그의 가족이 소유하고 있는 웅동학원의 학교 운영 등에 문제가 많다는 점은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자녀 입시 문제가 터졌다. 2019년 8월 23일 조국은 사모펀드 투자금을 기부하며 후보자 가족이 웅동학원 내에서 갖는 직함 및 권한을 포기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 뒤 끝내 임명장을 받았지만 결국 같은 해 10월 14일 사퇴했다. 

이 과정에서 큰 상처를 받은 것은 조국이나 현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이 더 큰 충격을 받은 듯 하다. 조국 사태 초기부터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온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지난 1월 13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렇게 탄식했다. “마침 어제 조국이 박종철, 노회찬 묘역 참배했다고 한다. (조)국아, 너는 대체 어떤 종류의 사람이니?”



“너는 대체 어떤 종류의 사람이니?”

2019년 9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장에서 열린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조 후보자가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2019년 9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장에서 열린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조 후보자가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그렇다. 사실 우리 모두가 궁금하다. 대체 조국은 어떤 종류의 사람일까? 무슨 독창적인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에 본인의 딸에 대한 언론의 취재는 인권침해지만 자신이 예전에 국가정보원 직원의 주소를 SNS에 공개하며 취재를 부추긴 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행동이었다는 식으로 말할 수 있을까? 그가 트위터에 써댔던 온갖 입바른 소리, 이른바 ‘조만대장경’은 현재 본인의 모든 행태를 반박하고 있다. 그의 열성적 지지층 바깥의 세계에서 조국은 한낱 조롱감이자 ‘밈’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그러나 정작 그 스스로는 일말의 부끄러움을 느끼는 기색 없이 꿋꿋하게 오늘도 SNS를 누비며 ‘정의롭고 멋진 나님’을 뽐내고 있다. 

어쩌면 조국은 갑자기 변한 게 아니라 ‘원래 그런 분’이었을지 모른다. 그 점을 일찌감치 꿰뚫어본 사람이 있다. 이 원고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 사실을 확인하고 필자 또한 깜짝 놀랐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은 무려 10여년을 앞서 ‘조국이 조국했네’ 하는 상황이 도래할 것임을 예견했다. 2011년 10월 출간된 ‘닥치고 정치’에서다. 

2010년 ‘오마이뉴스’ 대표이사 오연호와 조국이 나눈 대담집 ‘진보집권플랜’이 출간되자 김어준은 책을 구해 펼쳐들었다. 서문을 읽자마자 딱 브레이크가 걸렸다. 그는 ‘닥치고 정치’에서 아주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사실 서문을 읽자마자 ‘이거 재수 없을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조국에게는 “자신이 가진 걸 당연히 여기는 종류의, 진보적 엘리트 특유의,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우아하고 거룩한 오만”이 흐른다. ‘잡놈’인 김어준은 대중의 눈높이에서 그걸 바로 알아챘다고 주장한 것이다. 

“재수 없을 수, 있겠다. 재수 없다가 아니라. 그리고 재미, 없다. 재미없을 수, 있겠다가 아니라. 전자는 위험하고 후자는 안타깝다. 이렇게나 훌륭한 선수가. 에이, 씨바.”

“실로 영험하지 않은가”

물론 저 예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조국을 열렬히 옹호하는 이들이 아닌 평범한 국민들에게 조국 일가는 “재수 없을 수, 있겠다”가 아니라 “재수 없다”라고 느껴질 것이다(그게 아니면 법무장관직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또한 “재미없을, 수 있겠다”가 아니라 재미는 확실히 있다. 자신이 인터넷에 써놓은 온갖 정의롭고 고상한 말로 하나부터 열까지 ‘셀프 반박’ 당하면서도 끝내 SNS를 끊지 않는 대학 교수라니. 얼마나 ‘빅잼’, ‘꿀잼’인 존재냔 말이다. 

김어준이 이해하는바, 조국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공부 잘하고 잘생긴 아이로 칭찬받으며 성장했을 것이고, 그 경쟁에서 항상 선두에 있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를 위해 직접 나서기까지 했고 또 하고 있으니까.” 그러므로 조국에게는 스스로를 대견해하는 기색이 뚝뚝 흐른다. ‘진보집권플랜’의 서문만 봐도 그런 게 훤히 보인다고 김어준은 말한다. 조국의 예의바른 태도에 깔린 그 캐릭터는 조국이 정치인으로 성장하는데 방해가 될 것이다. 김어준이 덧붙인다. 

“그 예의에는 ‘제가 그런 칭찬을 받을 만은 하죠.’란 태도가 이미 깔려 있는 거라고, 대중은 감각한다고. 느낀다고. 직관적으로 그런 걸 캐치해낸다고. 이런 건 축적되면 고착된 이미지가 되고, 나중에는 어떤 노력으로도 바꿀 수가 없어. 그런데 그 위험성을 스스로는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은. 정치를 한다면 이건 문제다. 자신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느껴질 수 있는 애티튜드가 지속적으로 유포된다. 서문이 바로 그렇다. 이런 건 재수 없을 수, 있다.(웃음)” 

실로 영험하지 않은가? 대학 시절부터 조국과 친하게 지냈던 진중권도 몰랐던 조국의 진면모를 김어준은 인터뷰집 서문만 읽고 딱 간파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무학의 통찰’인가 싶어 모골이 송연해질 지경이다. 

사실이 그렇건 그렇지 않건 다른 그 누구도 아닌 김어준이 내린 판단이니 조국을 이런 캐릭터라고 파악해보자.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당연하게 여기는, 호감형의 외모를 지닌 고학력 중년 남성. 공기처럼 우아하고 거룩한 오만을 둘러친 강남좌파. 그리하여 “자신이 가진 자산 때문에 대중 일반에게 야기할 수밖에 없는 모종의 박탈감”을 선사하는, 재수 없(어 보일수도 있)는 사람.

‘평화’니 ‘민족’이니 하는 거창한 이야기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은 그런 각도에서 바라볼 때 실로 요긴한 책이다. 김어준이 ‘닥치고 정치’에서 지금의 조국이 어떤 사람인지 ‘기술적(descriptive)’으로 설명했다면,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은 조국이 어째서 지금의 조국이 되고 말았는지 ‘발생적(genetic)’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조국의 성장기로 돌아가 그의 인격 형성 과정을 확인해볼 수는 없다. 하지만 조국을 우아하고 거룩한 오만의 거품 속에 살게끔 한 주변 분위기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추론이 가능하다. ‘조국백서추진위원회’가 무려 3억 원을 모금해 발간한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이 이를 이해할 수 있는 고리 중 하나다.

책의 서문에는 “백서는 어디까지나 백서이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자료 제공’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적혀있다. 하지만 그 자료의 내용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혹시라도 이 책이 자료집의 기능을 하지 않을까, 세상에 없는 특급 자료가 담겨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구입하려는 사람이 있을까봐 하는 말이다. 

보다 중요한 건 책을 만든 이들이 그 자료 중 무엇을 모으고 어떤 것을 버렸으며 종합적으로 어떻게 해석했느냐다. 그런 내용은 책의 앞부분인 ‘발문’과 1부 총론에 집약돼 있다. 

우선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인 김민웅이 쓴 ‘발문’을 살펴보자. 그는 조국 사태의 연원을 대법원의 강제징용 관련 판결에서 찾는다.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자주적 입지를 만들기 위한 민주세력의 역사관을 무너뜨려보겠다는 자들의 반란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 이 원고를 쓰기 위해 꼼꼼히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을 검토했지만 조국 사태와 강제징용 판결 사이의 연결고리를 납득할 수 있는 꼭지나 대목은 등장하지 않는다. 책의 전체를 아우르는 서문인데 책의 내용과 아무 상관없는, 그저 ‘평화’니 ‘민족’이니 하는 거창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 

같은 문단에서 김민웅은 역시 그 누구도 묻지 않았는데 윤미향과 정의기억연대를 거론한다. “이들의 목적은 분명했다. 촛불시민혁명의 대의에 먹칠을 하고 그들의 세상을 탈환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세는 이후 ‘정의기억연대’를 상대로 다시 되풀이된다.” 하지만 위안부 피해자에게 최대한의 평온과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 윤미향과 정의기억연대의 주된 목적이 아니었다는 지적도 있다. 그들이 반일운동 더 나아가 반미운동의 일환으로 위안부 피해자를 앞세우고 있었을 따름이었다는 의구심이 일각에서 제기됐기 때문이다.

사모펀드와 ‘독립운동가’의 자의식

우리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위안부 피해자였던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의 폭로 덕분이다. 그 과정에서 검찰은 개입한 바 없다. 그러나 김민웅에 따르면 심지어 마포쉼터 손영미 소장이 자살한 것도 검찰 탓이다. “그 과정에서 소중한 활동가 한 분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자살의 이유를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정황상 정의기억연대 및 윤미향을 향한 수사에 부담을 느꼈을 수 있지만, 그는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 주변인들 역시 구체적인 내역에 대해 경찰이나 언론에 충분한 진술을 제공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김민웅이 볼 때 이건 검찰 탓이고 검찰이 손 소장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검찰개혁’을 막고자 하는 수작이다. 

물론 말도 안 되는 궤변이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갛고, 어쩌고저쩌고 해서 백두산까지 이어지는 동요가 훨씬 더 논리적으로 보인다. 백번 천 번 양보해 그의 말이 사실이라 한들 그게 조국 사태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조국이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시절 그의 일가가 사모펀드에 투자하고, 그에 앞서 딸을 (표창장 위조 의혹까지 받으면서)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시킨 게 무슨 독립운동이라도 된단 말인가? 

그렇다. 김민웅을 비롯한 조국백서 관계자들은 실제로 그런 사고방식을 전제로 깔고 있다. 자신들은 여전히 독립운동을 하고 있으며, 따라서 중간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숭고한 목적에 봉사하는 것이므로 반발하는 자들은 모두 친일파요 ‘토착왜구’라는 거다. 

여기서 우리는 시대착오와 피해의식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자의식 과잉이라는 하나의 결과를 낳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일본으로부터 독립한지 7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일제치하를 살고 있는 양 비장한 태도를 취한 채, 자신이 일제에 쫓기는 독립운동가라도 되는 양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노라면 당연히 ‘거악에 맞서는 정의로운 나’라는 자의식이 가득 차오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러한 자의식은 조국백서를 만들고 쓴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정의롭고 멋진 나’ 라는 자의식이라면 조국을 따라올 사람이 없다. 지난해 10월, 아직 그가 법무장관이었고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시점으로 돌아가 보자. 그는 법무장관 신분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초유의 상황에 처했다. 그러면서도 딸의 생일 케이크를 사들고 가는 모습이 담긴 실루엣을 본인의 SNS 프로필 사진으로 썼다. 

이건 ‘연예인병’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연예인들은 여론의 동향에 민감하다. 여차하면 재빨리 ‘잠수’한다. 그보다는 상상의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애국지사병’이라고 보는 게 낫겠다. 대중의 눈으로 세상만사를 해석하는 ‘잡놈’ 김어준이 ‘닥치고 정치’에서 내린 촌평을 다시 빌려본다. 

“하지만 지금 조국의 애티튜드에선 사람들이 (‘나는 너무 대단해’라는 식의) 그런 종류의 자의식을 느껴버린다는 거야. 실제 조국이 그렇지 않더라도. 그런 자의식은 기본적으로 연예인 자의식이거든. 나약한 종류의 자의식이거든. 정치인으로 나서게 되면 그런 자의식은 나 같은 사람에게 금방 탄로 날 뿐 아니라,(웃음) 그런 자의식이 없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애티튜드로는 그런 게 있다고 느껴지게 만든다는 거야. 내 말의 핵심은.”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5월 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정식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5월 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정식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우리는 같은 질문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어째서 조국의 우주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이 조국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것일까? 

전우용이 쓴 총론 ‘조국 정국을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를 읽다보면 약간의 실마리가 잡히는 듯도 하다. 전우용은 조국을 둘러싼 교육 문제가 “기득권층 일반의 관행 혹은 상식의 문제”라며 “자녀 입시와 관련한 이 사건은 조국이 평소 지향해온 ‘가치’와 비교하면 부도덕하다는 인상을 받을 만하지만, 사회적 연줄망 안에서 작동하는 우리 사회의 ‘평균적 욕망 실현 방식’과 비교하면 특별히 부도덕하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국은 “지배 세력 내의 개혁운동가”이므로 그가 보이는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를 비난하면 개혁이 불가능해진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전우용은 조국 같은 ‘높으신 분’은 그렇게 사셔도 된다, 특히 그분이 개혁이라는 큰 일 하시는 분이라면 미천한 아랫것들이 함부로 손가락질하고 그래서는 안 된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설마 대놓고 저런 소리를 할까 싶지만 사실이다. 오해의 여지가 없도록 전우용은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한다. “조국의 ‘도덕성’을 둘러싸고 제기된 문제들이 (...) 한국 사회의 상층 엘리트들 사이에서 작동하는 일반적 관행과 도덕성에 비추어 보면 대개 ‘상식’ 범위 안에 있는 일이었다.” 

조국의 자녀 입시 논란, 사모펀드 논란, 위장전입과 사문서 위조 논란 등이 과연 ‘상식’ 범위 안에 있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조국을 ‘개혁적인 윗분’이라고 숭배하는 건 전우용의 자유지만, 조국이 법 앞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헌법 제11조에서 명시하고 있는바 한국은 법 앞의 평등을 명시하고 있는 민주공화국이다. 

전우용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지는 않다. “‘법치국가에서 ‘법 지식인’ 또는 ‘법 전문가’들이 사회 최상층의 이해관계를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법 적용과 집행이 최상층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된다면 그 사회는 신분제 사회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기 때문이다.” 

분명 방금 전우용은 조국이라는 “지배 세력 내의 개혁운동가”의 위법행위를 지적하고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몇 페이지를 넘기면 법 전문가들이 사회 최상층의 이해관계를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하나의 글인데 앞에서 한 말과 뒤에서 한 말이 다르다. 조국을 옹호하기 위해 그를 ‘높으신 분’으로 치켜세웠지만, ‘높으신 분’이라고 봐주면 민주주의가 망가진다는 분열적 인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조국이 어쩌다가 지금의 조국이 되었는지 그 비밀을 밝혀줄 실마리가 바로 이 글에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조국의 인생에서 이렇게 앞뒤 안 맞는 소리까지 해가며 그를 옹호해줬던 사람이 과연 전우용 하나뿐이었겠는가.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도는 게 아니라 온 우주가 조국 본인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경험은, 조국의 삶에서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을 테다. 말하자면 자칭 ‘민주개혁 세력’의 ‘자발적 복종’이 만들어낸 거품 속에 조국이라는 한 개인의 세계관이 갇혀 있는 셈이다. 

때로는 그 환상이 위기에 처할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면 전우용 같은 이들이 나타나 자발적으로 조국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조국의 천동설적인 자의식을 보호해줬을 것이다. 조국은 “지배 세력 내의 개혁운동가”이고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를 비난하면 개혁은 불가능”하지만 “법은 최상층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되면 안 된다”는 전우용의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그래도 개혁은 돈다...’

‘트루먼 쇼’의 주인공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의 마지막 페이지는 1만 원 이상 후원 등록을 하고 후원자명 표기에 동의한 8188명의 명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국이 마치 ‘트루먼 쇼’의 주인공처럼 일종의 가상현실 속에 살고 있는 건 바로 그런 맹목적 보호 때문일지도 모른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 대한 취재는 정당하지만 내 딸 조민에 대한 취재는 인권유린이라는 이중 잣대와 ‘내로남불’의 세계관은 그러므로 단지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그 수많은 ‘순수한 마음’이 모여 한 사람의 판단력을 저 지경으로 망가뜨리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사실 우리 모두에게는 어느 정도 왕자병이나 공주병이 필요하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이 험한 세상 속에서 숱한 난관을 겪으며 꿋꿋이 살아가려면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다, 덤벼라 운명아!’라고 소리 지르는 기개가 요구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평생에 걸쳐 과잉된 자의식의 늪에 빠져 있는 모습은 바라보기만 해도 괴롭다. 처음에는 좀 웃기고 말 수도 있지만, 그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수천여 명이 박수치고 돈 모아주는 광경은 일종의 집단 학대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검찰개혁과 촛불혁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문득 조국이 불쌍하게 느껴진 건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신동아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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