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호

“배운 게 죄”라는 유시민, 무지한 게 죄!

[노정태의 뷰파인더④] 김정은은 18세기 기준으로도 한낱 폭군

  •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입력2020-10-0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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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차례나 “김정은 계몽군주” 언급 유시민

    • ‘명령하노니, 너는 자유다’ 말하는 王은 근대인인가

    • 김정은, 자유와 번영에 힘 실어줄 의향 없어

    • 계몽군주는 부유하고 똑똑해진 시민에 의해 무너져

    • 자칭 ‘지식 소매상’의 현란한 궤변과 대중 기만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5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가균형발전선언 16주년 기념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5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가균형발전선언 16주년 기념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유시민(61)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북한의 김정은을 ‘계몽군주’라고 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18년 JTBC ‘썰전’에 출연해 김정은을 두고 소년가장이며 계몽군주가 될 가능성이 있는 존재라고 말했다. 당시에도 반발은 있었으나,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거대한 이벤트 덕에 큰 논란거리가 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9월 25일 북한군이 우리 국민을 총으로 쏘아죽이고 시신을 소각한 지 고작 사흘이 지났을 때다. 유시민은 또 다시 김정은에게 계몽군주라는 수식어를 헌사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것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북측 통지문이 공개된 직후다. 북측 통지문에는 유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논란이 커지자 유시민은 닷새 후인 9월 30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해 계몽군주라는 표현이 칭찬의 의미가 아니라는 취지로 둘러댔다. 독재자 중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 개혁적 행보를 하는 사람들을 계몽군주라고 칭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자신은 김정은이 권력을 세습한 독재자임을 명시했으니 칭찬이 아니라는 논리다. 

    물론 궤변이다. 생각해보자. 지구상 그 누구도 김정은이 독재자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니 김정은에게 독재자라고 말하는 건 특별한 비난이 되기 어렵다. 유영철을 살인자라고 부른다 해서 상대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계몽군주라는 수식어는 김정은에게 붙을 경우 당연히 칭찬이 된다. 유시민 스스로가 설명했다시피 ‘그나마 상대적으로 좀 나은 독재자’라는 뜻이라면 더욱 그렇다. 대체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봐야 저런 소리를 변명이라고 늘어놓을 수 있는 걸까.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계몽군주는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개념이다. 모순이라는 말이다. 칸트에 따르면 계몽이란 우리가 미성년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미성년 상태란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계몽된 사람은 그 누구의 지도나 간섭 없이 스스로의 지성을 사용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독립적 주체다.

    따라서 그 정의상 계몽은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짧지만 중요한 에세이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에서 칸트는 단언한다. “민중이 스스로를 계몽하는 것은 오히려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민중에게 자유만 허용된다면 계몽은 거의 확실히 이루어질 수 있다.” 계몽주의자는 궁극적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 모든 이가 스스로를 계몽해 더 나은 세상으로 향할 수 있다는 낙관적 믿음이 계몽주의의 근간을 이룬다.

    여기서 계몽군주라는 문제적 존재가 등장한다. 역사상 어느 지역에서도 계몽주의의 꿈을 시민계급 스스로 이루어낼 만한 역량이 없었다. 시민에게는 왕족과 귀족, 성직자 등 구체제의 기득권을 이겨낼 힘이 부족했다. 구시대적 권력을 쥔 통치자는 새 시대의 문물과 부국강병을 원하지만 자유로운 시민들이 활개 치며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 경우 계몽은 밑에서 위로 올라오지 못한다. 반대로 한 사람의 군주가 근대화의 이상을 품고 있을 때, 이를 실현하는 하향식 프로젝트의 형태로 근대화가 시도된다.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근대화를 추구하는 기묘한 형국이다.

    그 ‘근대화’ 속에는 자유, 평등, 신분제 폐지, 민주주의 같은 가치가 포함돼 있다. 계몽군주는 근대화를 원치 않는 귀족과 백성을 근대로 이끌고자 한다. 신민들의 저항을 이겨내야 하니 더욱 큰 권력을 필요로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계몽군주의 권력이 커질수록 진정한 근대화는 이뤄질 수 없다. 

    이 대목에서 독립운동가이자 아나키스트였던 이회영(1867년~1932년)에 대한 일화가 떠오른다. 이회영은 독립운동을 위해 가산을 정리하고 노비 문서를 불태웠다. 거느리던 식솔들에게 “너와 나는 평등한 관계이므로 더는 내게 존댓말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런 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리 없다. 입에서 나오는 게 존댓말이요 몸은 여전히 굽신 대며 시중을 든다. 그 꼴을 보다 못한 이회영은 회초리를 들어 “너와 내가 평등한 존재라는 것을 왜 이해하지 못하느냐, 어서 존댓말을 그만두지 못하겠느냐”고 혼을 냈다고 한다.

    물질적 측면을 넘어 정신적, 제도적 근대화까지 추구하는 계몽군주가 흔히 처하는 역설이 여기에 있다. ‘내가 명령하노니, 너는 자유다’라고 왕이 명령한다면 그 백성은 자유인인가, 아닌가. 전근대적 권력을 이용해 근대화를 추진하는 계몽군주는 근대인인가, 전근대인인가.

    강제수용소 운영하는 독재자가 계몽군주인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월 5일 제7기 제19차 정치국 회의를 주재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6일 보도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월 5일 제7기 제19차 정치국 회의를 주재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6일 보도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정리해보자. 계몽군주는 부국강병을 원한다.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모든 군주가 계몽군주는 아니다. 근대 이후 세계에서 나라가 잘 살기 위해서는 사유재산을 보호하고 상공업을 키워야 한다.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징병제를 도입해야 하므로 그에 걸맞은 정치적 권리를 국민에게 나눠줘야 한다. 평범한 국민도 일사분란하게 명령에 따라야 하니 적어도 문맹은 면하고 사칙연산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보통교육이 필요해진다.

    이와 같은 개혁은 장기적으로 군주의 권력을 약화시킨다. 근대 이후 세계에서 부국강병을 추구하려면 어쩔 수 없이 국민을 부유하고 똑똑하게 만들어야만 한다. 중산층은 경제력을 기반으로 들고 일어날 테다. 군복무를 통해 공통의 정체성을 갖게 된 군중은 문맹에서 벗어나 자유사상가들이 찍어낸 팸플릿과 선동문을 읽고 왕을 향해 총부리를 들이댈 거다. 

    계몽군주는 스스로 만들어낸 조국 근대화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모순의 운명을 끌어안고 있다. 세계사의 수많은 계몽군주들은 무사히 퇴임하거나 사망했어도 결국 자신이 추구한 근대화로 인해 자신의 왕조가 몰락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러시아 표트르 대제가 만든 대학에서 육성된 인텔리겐차는 로마노프 왕조를 무너뜨리고 러시아 혁명을 일으켰다.

    김정은을 두고 계몽군주 운운하는 유시민의 말이 엉터리인 것은 그래서다. 김정은은 더 나은 국가를 만들기 위해 국민의 자유와 번영에 힘을 실어줄 의향이 없다. 최근에는 장마당에서의 거래가 늘고 있다는 관측이 없지 않다. 그것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시장을 형성하고 거래를 보장하며 사유재산권을 지켜주는 근대화와는 거리가 있다. 그저 암시장이 늘어난다는 뜻일 뿐이다. 외려 중앙권력의 약화 내지는 의도적 방기로 인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유럽 대부분의 계몽군주는 가혹한 처벌과 고문을 줄여 자신의 근대성을 입증하려 했다. 김정은은 고모부를 잔인하게 처형했다. 지금도 북한 곳곳에 아우슈비츠를 방불케 하는 강제수용소가 있다. 미국의 북한인권위원회 그렉 스칼라튜 사무국장에 따르면 현재 북한 강제수용소에 12만여 명이 수감 중이다. 계몽군주와는 정반대의 길을 오롯이 걷는 셈이다.

    박노자는 10월 5일 블로그와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모든 것은 민을 위해서지만, 민에 의해서는 아무것도 이루어질 게 없다”던 신성로마제국 황제 요제프 2세의 말을 인용해 ‘위에서 아래로 내려 보내는 개혁’을 계몽군주의 본질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 공산주의 체제와 그 권력을 세습한 김정은을 보며 계몽군주를 연상하는 것에는 일리가 있다는 얘기다. 앞서 말했듯 그러한 관점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무엇’이냐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일부러 도외시한다. 계몽군주는 평범한 독재자가 아니다. 자신의 발등까지 찍을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근대화의 도끼를 크게 휘두르는 독재자다.

    근대화라는 신념 혹은 이념

    그런 기준에서 보자면 한반도 역사상 가장 큰 족적을 남긴 계몽군주는 박정희다. 그는 엄밀한 의미에서 ‘군주’는 아니었으나 군주 수준의 절대 권력을 휘둘렀다. 박정희는 조국 근대화라는 명료한 목표를 스스로 인식하며 추구했다. 경제 발전을 위해 법질서를 정비했고 사회 치안을 확립했다. 자유시장경제를 추구했고 중산층을 육성했다. 보통교육을 확립했고 더 많은 이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박정희가 근대화를 이념으로서 추구했다는 사실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지금도 정부서울청사에 가로 2m, 세로 4m로 새겨져 있는 박정희의 휘호가 그의 신념을 웅변한다. ‘우리의 후손들이 오늘에 사는 우리 세대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고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을 했느냐고 물을 때 서슴지 않고 조국 근대화의 신앙을 가지고 일하고 또 일했다고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게 합시다. 일천구백육십칠년 일월 십칠일 대통령 박정희.’

    물론 박정희 시대는 완전한 시민적 자유와 거리가 먼 독재 정권 시기였다. 이는 모든 계몽군주의 통치기에서 공통적으로 엿보이는 현상이다. 프리드리히 2세의 프로이센, 표트르 대제의 러시아에서 그랬듯, 국민의 평균 수명이 늘고 영양 상태가 개선되며 문맹률이 낮아지고 고등교육기관이 발전한다. 시민적 자유와 권리의 신장은 그런 물질적 성장을 채 따라잡지 못한다. 이에 국민 사이에 불만이 누적된다.

    핵심은 박정희가 근대화 자체를 자신의 신념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점이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관한 가장 유명한 일화를 떠올려보자. 

    길을 뚫어야 하는데 ‘미신’에 사로잡힌 마을 주민들이 영험하고 신성한 나무를 지켜야 한다며 결사반대했다. 그러자 박정희의 명을 받들어 조국 건설에 한창이던 정주영 현대 회장이 직접 다이너마이트로 나무를 폭파하고 길을 뚫었다. 거침없는 근대화의 길 앞에 과거의 풍습과 전래의 신앙은 그저 폭파의 대상이었다. 박정희는 한국의 명절이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추석과 설날을 없애기까지 했다.(물론 두 명절은 고속도로 건설 현장의 거대한 고목처럼 한방에 폭파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오히려 신정(新正)이 사라지는 추세다.)

    계몽군주를 다른 절대권력자와 구분하는 기준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근대화에 대한 집착 말이다. 계몽군주는 농노제를 폐지하고, 대학을 만들고, 수염이나 상투를 자르도록 하고, 국민에게 익숙지 않은 서구적 풍습을 도입하는 독재자다. 박정희도 그랬다. 

    박완서가 단편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에서 잘 그려냈듯 “박정희 정권 초기에 사회를 정화한답시고 관청이나 국영기업체에서 축첩한 자는 자진하여 사표를 쓰라고 엄포를 놓”았다. 당시는 6·25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으므로 남자의 수가 적었다. 먹고 살만한 남자들이 첩을 거느리는 것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유구한 전통이었다. 박정희는 계몽군주로서 피지배층의 반감을 무릅쓰고 축첩제를 근절하기 위해 나섰다.

    박정희는 진심으로 근대화를 추구했고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자신이 이룩한 근대화의 결과물인 민주화의 물결에 휩쓸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김재규의 돌발적인 박정희 암살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김재규가 부마항쟁의 현장을 목도하고 심상치 않은 민심을 느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조국 근대화는 성공했다. 그리하여 더는 계몽군주를 용납할 수 없는 근대적 시민이 탄생했다.

    ‘지식 소매상’과 ‘용팔이’ 사이

    9월 25일 노무현재단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생중계된 ‘한반도 평화국면의 동요원인과 대안 모색’ 토론회에서 유시민 이사장(왼쪽)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계몽군주 같다”고 표현했다. 함께 출연한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왼쪽에서 세 번재)은 “‘통 큰’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재단 유튜브 캡처]

    9월 25일 노무현재단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생중계된 ‘한반도 평화국면의 동요원인과 대안 모색’ 토론회에서 유시민 이사장(왼쪽)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계몽군주 같다”고 표현했다. 함께 출연한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왼쪽에서 세 번재)은 “‘통 큰’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재단 유튜브 캡처]

    이 글의 목적은 박정희 예찬이 아니다. 계몽군주라는 개념이 지니고 있는 양면성을 이해하자는 것이다. 유시민의 궤변과 달리 김정은은 21세기가 아니라 18세기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계몽군주는커녕 한낱 폭군에 지나지 않는다. 박정희야말로 계몽군주의 엄밀한 개념에 부합한다. 조국의 근대화를 원했고, 성공했으며, 역사를 진전시킴으로써 자신이 만든 역사에 뒤쳐진 존재가 되고 말았다는 역설까지 놓고 볼 때, 실로 그러하다.

    유시민이 잘 말했다시피 계몽군주라는 말은 칭찬도 비난도 아니다. 특정 시기의 특정 독재자가 역사적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했느냐를 기술하는 표현일 뿐이다. 자칭 ‘지식 소매상’ 유시민은 이른바 ‘용팔이’처럼 거짓말을 섞어가며 현란한 말솜씨로 대중을 기만하고 있다. 김정은은 계몽군주가 아니며 박정희는 계몽군주의 역할을 해냈다. 우리는 그 유산과 부채를 모두 상속받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때로는 더디고 뒷걸음질 치더라도 민주공화국의 역사를 한 걸음씩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


    ●1983년 출생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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