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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필립 시인의 시드니 통신

호주의 든든한 친한파, 변조은 목사·버지니아 저지 하원의원

“한국과 떼려야 뗄 수 없게 된 우리는 억세게 운 좋은 사람”

  • 윤필립 在호주 시인 philipsyd@naver.com

호주의 든든한 친한파, 변조은 목사·버지니아 저지 하원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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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개 농촌교회 담임목사

호주의 든든한 친한파, 변조은 목사·버지니아 저지 하원의원

한인동포들과 함께한 버지니아 저지 의원(오른쪽에서 세 번째). 맨 왼쪽이 권기범 시의원이다.

1960년초, 변조은 목사 부부와 두 살배기 아들은 마침내 한국으로 먼 길을 떠났다. 6·25전쟁의 참상을 보도를 통해 접하고, 난민과 전쟁고아를 돕기로 결심한 지 10년 만이었다.

맨 처음 도착한 곳은 피난민이 많이 모여 살던 부산. 휴전된 지 6년이 지났지만 부산 피난민촌의 환경은 열악하기만 했다. ‘하꼬방’이라고 부르는 판잣집이 즐비했고, 일제 강점기에 지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많았다.

피난민촌에 잠시 머물던 변조은 선교사는 선교활동과 봉사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위해 마산에 정착했다. 마산을 중심으로 거제도까지 가서 예배를 인도하고 봉사활동을 벌였다. 교인이 10∼20명밖에 안 되는 작은 교회를 순회하면서 선교활동을 했다. 교회도 피난민들이 거주하는 집과 마찬가지로 판잣집이었다.

농촌교회를 주로 순회하던 변 선교사는 충북 음성의 한센병 환자들이 개간지에 세운 교회에 몸담기도 했다. 그는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아주 많은 것을 깨달았다. 예수께서 늘 낮은 곳에 임한 이유를 깨닫게 된 것도 그곳이다. 그는 마산과 거제 지역 48개 농촌교회의 담임목사와 당회장을 맡았다. 그는 처음으로 한국어 설교를 준비해 48번이나 반복했던 일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한국 농민의 끈끈한 정은 또 어떤가. 사발에 깡보리밥을 꾹꾹 눌러 고봉으로 담아 내놓는 그 넉넉함이라니. 그는 그토록 정성스럽게 대접하는 사람들을 서운하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아무리 배가 불러도 먹고 또 먹었다. “선교사는 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는 선배 선교사의 말을 명심했다.

그 무렵 가난한 농촌에서 반찬이라고 할 만한 건 맵고 짠 김치에 시금떨떨한 된장찌개가 전부였다. 맵고 짠 음식에 뱃속에 난리가 난 것은 불문가지. 재래식 변소를 수도 없이 들락거렸다. 그런데도 그의 기억 속엔 고통은 간 곳 없고 농촌 아낙네의 푸근한 인심만 남아 있다.

“우리 목사님, 시장하셨나 보다. 밥 잘 드시네. 여기, 조금만 더 드세요.”

양 50마리 싣고 태평양 건너

변조은 선교사 가족이 한국에 도착한 지 8개월 만에 둘째딸 선혜가 태어났다. 그후 고아인 순자를 입양해 자녀가 금세 셋이나 됐다. 입양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주위에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넘쳐나는 것을 보고선 굳이 아이를 낳지 않고도 귀한 가족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입양 제안을 했고, 노마 브라운 여사도 그 뜻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브라운 여사는 교사생활을 하면서 판자촌 부녀자들을 모아 수예품을 만들었다. 그 수예품은 호주로 보내져 6·25전쟁 피해자들을 돕는다는 취지에 공감하는 호주 사람들에게 팔렸다. 호주인들의 호응으로 수예품 공동체는 성공적으로 운영됐다.

가난한 교인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변조은 선교사는 호주에 흔해빠진 양을 떠올렸다. 양을 키워본 적이 있던 그는 호주로 건너가 양 50마리를 배에 실었다. 다시 부산을 향해 태평양을 건너는 동안 배에서 손수 양에게 꼴을 먹이고, 배설물을 치웠다. 그 양들은 거제 지역의 가난한 농가에 무상으로 대주는 우유 공급원이 되었다.

변 선교사의 열성적인 활동은 서울에까지 전해졌다. 장로교신학대학에서 그를 교수로 초빙했다. 그는 6년 동안 하루 10시간 가까이 기차를 타고 마산과 서울을 오고갔다. 마산역에서 밤 10시30분 기차를 타면 아침 7시30분에에 서울역에 도착했다. 그는 장로교신학대학에서 주로 히브리어를 강의했지만 영어로 구약을 가르치기도 했다. 여기서 그가 한국어를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그의 제자인 홍길복(61·시드니우리교회) 목사의 얘기다.

“존 브라운 교수님한테서 이사야서 41장 원서강해를 듣고 시험을 쳤습니다. 그 며칠 후에 답안지를 돌려받았는데, 정말 믿기 어려운 사실을 목격했습니다. 한국에 온 지 5년 남짓한 선교사가 학생들이 한글로 작성한 답안을 빨간 펜으로 일일이 교정해놓았는데, 놀랍게도 학생들이 틀린 한글 맞춤법을 정확하게 지적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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