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호

2020년을 달려온 내게 건네는 뜨겁고 달콤한 홈술

김민경의 ‘맛 이야기’ ㊶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20-12-2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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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에 각종 과일을 넣고 끓여 만드는 뱅쇼는 겨울날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마시기 좋다. [Gettyimage]

    와인에 각종 과일을 넣고 끓여 만드는 뱅쇼는 겨울날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마시기 좋다. [Gettyimage]

    2020년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12월 23일 0시부터 수도권에 사는 사람은 5명 이상 모일 수 없다. 11~12월 내내 극한 노동에 시달린 나는, 그러잖아도 한동안 집에 누워만 있겠노라 다짐했다. 그런데도 ‘모임 금지’ 명령은 어쩐지 마음을 헛헛하게 만든다. 달콤한 것 먹으며 한동안 뒹굴뒹굴 지내려면 마실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추운 겨울에 지친 몸과 마음을 녹이기 좋고, 달콤한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뱅쇼(vin chaud)’를 만들어야겠다. 

    뱅쇼는 와인에 과일과 계피 등을 넣고 끓여 만든 음료 이름이다. 독일어로 글루바인(gluwein), 영어로 멀드 와인(mulled wine), 이탈리아어로 비노 칼도(vino caldo) 혹은 빈 브륄레(vin brule)라고도 한다.

    뜨겁게 즐기는 겨울 와인 뱅쇼

    귀부균에 감염된 포도로 만들어 더욱 달콤하고 향긋한 헝가리 와인 토카이. [Gettyimage]

    귀부균에 감염된 포도로 만들어 더욱 달콤하고 향긋한 헝가리 와인 토카이. [Gettyimage]

    뱅쇼를 만들 때 와인은 굳이 좋은 걸 쓸 이유가 없다. 먹다 남은 것 또는 입에 안 맞는 것으로 해도 충분하다. 과일 종류도 제한이 없지만 귤, 오렌지, 천혜향, 한라봉 같은 감귤류는 꼭 들어가야 맛있다. 사과와 배도 한 쪽씩 넣으면 좋고, 포도나 감도 괜찮다. 과일이 충분하지 않을 때는 사과주스, 오렌지주스 등을 조금 부어도 된다. 이 외에 계피 또는 시나몬스틱이 필요하다. 정향, 팔각 등을 추가하면 풍미가 더 좋아진다. 

    준비한 재료를 모두 냄비에 넣고 센 불에서 한소끔 끓인다. 와인이 끓어오르면 불을 줄이고 20분 정도 뭉근하게 우린다. 설탕을 넣으려면 마지막에 넣고 녹으면 바로 불을 끈다. 따끈할 때 다 마시지 못한 뱅쇼는 완전히 식힌 뒤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실에 보관한다. 뱅쇼는 차게 마셔도 나쁘지 않지만 따듯하게 마셔야 제 맛이 난다. 

    뱅쇼는 와인으로 만들지만 술이라고 하긴 어렵다. 끓이는 과정에서 알코올이 거의 다 날아가서다. 이 점이 아쉬운 사람에겐 헝가리 와인 ‘토카이(tokaj aszu)’를 추천한다. 토카이는 귀부균에 감염된 포도로 만든다. 귀부균은 포도에 기생하는 일종의 곰팡이로, 포도의 단맛을 높이고 향도 한층 진하게 만들어준다. 프랑스 와인 중에서는 ‘소테른’이 귀부균에 감염된 포도로 만든 것이다. 소테른의 달콤함이 우아한 실크처럼 너울거린다면, 토카이는 좀 더 강건하고 직관적이다. 소테른은 여름에, 토카이는 지금 같은 겨울에 잘 어울린다. 



    내게 올해 12월 31일에 뭘 하고 싶은지 묻는다면, 이탈리아 사람들이 연말에 즐겨 먹는 달콤한 빵 ‘파네토네’와 함께 토카이를 마시고 싶다고 답하겠다. 단 현실에서 이 욕심을 실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토카이는 값이 만만치 않고 국내에서 구하기도 어렵다.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 달콤한 칵테일이다. 대형마트에서 깔루아나 베일리스 같은 향긋하고 달콤한 술 한 종류와 보드카 혹은 버번위스키 한 종류를 각각 산다. 위스키에 달콤한 술을 섞어 입맛에 맞게 만든 뒤 얼음 한두 개 띄워 흔들어가며 천천히 마신다. 달콤한 빵 한 입, 칵테일 한 모금 곁들이다 보면 나른한 몸에 편안한 마음이 깃든다.

    수고한 나를 조물조물 다독이는 따스함

    온 몸을 타고 흐르는 온기가 고생한 나를 조물조물 다독여주는 듯 느껴지는 허브 리큐어 예거마이스트.  [Gettyimage]

    온 몸을 타고 흐르는 온기가 고생한 나를 조물조물 다독여주는 듯 느껴지는 허브 리큐어 예거마이스트. [Gettyimage]

    잠이 솔솔 올 때쯤 허브 리큐어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무리해보자. 허브 리큐어는 보드카, 진, 럼 등을 증류한 뒤 허브액을 섞어 만든 술이다. 삼부카, 예거마이스트, 압생트, 베네딕틴 D.O.M, 코카레로 등이 유명하다. 허브가 주재료인 만큼 맛과 향이 하나같이 개성 넘친다. 단, 한 모금 마시면 녹진한 음료가 목을 타고 자르르 흘러가는 게 고스란히 느껴지는 독주다. 매혹적인 향에 벌컥 마셨다가는 목을 덥히는 열기에 놀랄 수 있다. 하지만 이내 온기 어린 술이 손끝까지 퍼지며 일 년 내내 수고한 나를 조물조물 다독여 줄 것이다. 

    2020년은 누구에게나 당황스럽고 여전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날들로 채워진 해다. 어쨌든 끝까지 달려온 나에게 달콤한 빵 한 조각과 뜨거운 술 한 잔을 건네며 칭찬해주고 싶다. 가까이 있는 소박하고 좋은 것들이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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