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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를 빛낸 스타들⑧

‘넘볼 수 없는 그녀’ 유지인

“물 흐르듯 따라가야 하는데 버리지 못한 게 너무 많아요”

  • 글: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넘볼 수 없는 그녀’ 유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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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그런 소문이 있었어요. 원래 여배우는 귀찮게 하는 남자가 많기 마련인데, 유지인씨만큼은 아버지가 장군이라 그럴 수가 없다는 거죠(웃음).

“실제로 군인이셨지만 대령으로 예편하셨어요. 당시 영화계에서 제 위치가 묘했기 때문에 나온 말일 거예요. 그때는 대학을 나와 여배우가 된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또 그때만 해도 저희 집이 경제적으로 꽤 여유가 있었거든요. 외가가 일본에 있었는데 외할아버지가 나고야 한인학교를 세운 분이셨고요. 그렇다 보니 동료 배우들과는 분위기가 좀 달랐겠죠.”

-부친이 군인이었다니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 반대가 심했을 것 같은데요.

“엄청났죠. 대학에 진학할 때도 부모님은 가정과를 가라고 하셨거든요. 고등학교 2학년 때 교생선생님 중에 오빠 친구가 한 분 있었어요. 그 분 말씀이 중앙대 연극영화과에서 도강을 한 적이 있는데 너무 좋았다는 거예요. ‘하고 싶은 게 많은 너한테 어울리는 과’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 전공을 하기로 마음먹었죠. 솔직히 연기를 전공할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딱 맞는 선택을 한 셈이 됐지만.”

-연기는 대학 입학 전에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고3이던 1973년 9월에 동양방송(TBC)에서 14기 탤런트를 모집했어요. 그때 담임선생님이 직접 원서를 써주셨죠. 방송국 공채에 붙으면 대학 연영과에 가기가 쉽다는 거였어요. 반 학생 중 몇 명이 대학에 진학하느냐가 무척 중요한 시절이었으니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신 거죠. 단발머리에 노란빛 원피스를 입고 방송국에 갔는데 정말 운이 좋았어요. 그때 기억으로 주위에 온통 쟁쟁한 사람들뿐이고 학생은 저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뽑힐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겠죠.

전부터 ‘끼’가 많은 편이었어요. 중학생 때부터 오락부장을 했거든요. 2학년 때는 학군단 기수를 하면서 전방에 위문도 다니고 그랬어요. 위문공연으로 ‘춘향전’을 했는데, 선생님이 춘향이 역을 하라는 걸 재미가 없겠다 싶어서 우겨서는 월매 역을 했어요. 결국은 ‘춘향전’이 아니라 ‘월매전’이 됐죠, 군인 아저씨들이 재밌다고 난리가 나고.”

-스크린이나 TV 속 이미지는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데, 상당히 적극적인 면도 있었군요.

“나한테 맞는 자리를 선택하길 즐겼어요, 부모님 뜻과는 상관 없이. 어릴 때는 어른들 말씀 잘 듣는 모범생이었죠. 새벽 6시에 일어나고 아버지가 퇴근해 오시기 전에 집에 가서 10시에 자는 게 철칙이었어요. 그 틀을 벗어나면 큰일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보니 틀 바깥도 참 괜찮은 세상이더라고요.

영화에 데뷔하게 된 계기는 잡지 표지모델 쪽이었어요. 막 창간한 대학생 대상 잡지 표지에, 하얀 문 앞에서 빨간 모자를 쓰고 강아지를 안고 있는 포즈로 찍은 사진이 실렸죠. 그 무렵 연방영화사에서 소설가 강신재 선생님 원작의 ‘그대의 찬손’이라는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강 선생님이 그 사진을 보고 ‘내가 찾는 사람은 이런 인상’이라고 하셨던 모양이에요. 영화사 직원들이 그런 이미지의 아이를 찾아 명동거리를 헤매다가 우연히 저랑 딱 마주친 거죠. 정말 말 그대로 우연히.

끌려가다시피 영화사에 갔더니 여러분이셨어요. 그때는 아버지가 전방에 계실 무렵이었으니 집에서 허락할 리가 없죠. 끝까지 안 한다고 버텼더니 신문지에다 현찰을 싸주대요. 돈에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는데 결정적으로 ‘세계일주를 보내주겠다’는 말에 넘어갔어요. 당시 세계일주라면 말 그대로 꿈에나 그리던 일이었거든요. 물론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죠. 이후 너무 바빠 보내준다 해도 못 갔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대의 찬손’은 지금 필름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대본만 있어요. 참 순수하고 괜찮은 영화였는데…. 촬영하면서 박종호 감독님한테 많이 혼났어요. ‘그게 걷는 거냐, 로봇 다리지’ 그러시더라고요. 집에 TV가 있기는 했지만 저는 프로레슬링만 열심히 봤거든요.(웃음) 그러니 연기의 ‘연’자도 모르는 초보가 어떻게 연기를 하겠어요. 그에 비하면 요즘 젊은 배우들은 정말 잘하는 거예요.

겨우 촬영을 끝내고 길바닥에 포스터가 좍 붙었어요. 아버지가 신문에 난 영화광고를 보고 ‘그 정도 유명해졌으면 됐다. 더 유명해질 것도 없고 뭔가를 이루려 애쓸 것도 없다’ 그러시는 거예요. 아마 그 말 때문에 제가 지금까지 오지 않았나 싶어요. 저 작품은 꼭 하고 싶다, 저건 나만 할 수 있다, 그런 고집을 피워 본 적이 없어요. 대신 나한테 맡겨진 작품은 반드시 소화해내려고 애썼죠. 수동적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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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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