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툭하면 시국선언이요 걸핏하면 중징계다. 탄핵무효에서 파병반대까지 학교는 정치바람에 몸살을 앓는다. 교원단체와 교원노조도 더 이상 ‘정치색’을 감추지 않는다. 누더기가 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버릴까 고칠까.
한국교총이 개최한 ‘교육파탄정책 철폐 전국교육자대회’. 2001년 이슈는 ‘교원정년 환원’이었다.
시국선언은 공교롭게도 교육인적자원부가 전국 초중고교에 이라크 파병 관련 수업자료(교과서 보완 지도자료)를 배포한 다음날 발표돼 교육부와 전교조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먼저 양측은 자료집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교육부는 “지난달 전교조가 만든 자료가 반미와 파병반대에 치우쳐 있어 보다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교육자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교육부가 만든 자료에는 이라크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와 함께 이라크 평화·재건사업 추진 배경, 한국군의 평화유지 활동 및 이라크 지원 방향 등이 담겨 있어 대체로 파병을 긍정하는 쪽이다. 이 자료가 배포되자 전교조는 “정부의 파병 찬성을 유도하기 위한 역편향의 의식화”라며 비난했다. 전교조가 ‘반전·평화 계기수업 자료’를 내놓았을 때와는 서로 입장이 바뀐 것.
앞서 전교조는 6월28일부터 일주일간 이라크 테러단체에 의해 살해된 김선일씨의 죽음을 애도하며 ‘반전(反戰)·평화 계기수업’을 실시한 바 있다. 이때는 논쟁의 초점이 반전이냐 반미(反美)냐에 맞춰졌다. 전교조는 “평화는 인류공통의 보편적 가치이고, 교육자는 이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다”며 결코 ‘반미가 아니라는 점’과 ‘교육적 판단’에 무게를 실었다. 계기수업이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는 것을 애초에 차단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교육부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의뢰해 전교조의 ‘반전·평화 계기수업 자료’를 검토한 결과가 나오면서 정치적 공세가 거세졌다. 보고서는 자료집이 파병반대 혹은 반미 관점에서 구성돼 있고, 이성보다 감성에 호소하는 경향이 강해 학생들에게 편향된 시각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제 정치권이 논쟁에 끼여들었다. 한나라당이 “파병철회냐 찬성이냐를 떠나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정치수업을 반대한다”고 논평을 내보내자 민주노동당이 받아쳤다.
3월23일 전교조 집행부는 대통령 탄핵무효, 부패정치 청산 등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일부 언론은 교육부가 평가원의 분석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전교조 눈치보기’라며 비난의 화살을 교육부로 돌렸고, 평가원측은 관련 연구원이 개인적으로 교육부의 부탁을 받아 분석했을 뿐 평가원의 공식 의견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전교조는 ‘반전·평화수업에 대한 비방을 당장 중단하라’는 보도자료를 내고 “국민의 생명보다 미국과의 동맹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반전·평화수업’이 ‘반미·파병반대수업’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전교조가 이번 계기수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평화와 생명의 소중함”이라며 강경발언을 계속했다.
각 당의 성명전이 펼쳐지고, 언론은 이를 중계하고, 서로 다른 주장의 사설과 칼럼이 쏟아지고, 교육계도 둘로 나뉘어 지지와 반대를 선언하는 가운데 전교조의 ‘반전·평화수업’은 결코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올해만 세 번째 시국선언
전교조의 시국선언은 올해 들어 벌써 세 번째다. 3월23일 2만여 명의 교사들이 서명한 시국선언문에서 ‘탄핵무효, 부패정치 청산, 진보적 개혁정치’를 촉구했고, 4월13일 2차 시국선언에는 ‘전교조와 공무원 노조에 대한 탄압 중지, 공무원의 정치활동 자유 보장’을 들고 나왔다. 여기에는 1만3000여명의 교사가 동참했다.
특히 2차 시국선언은, 원영만 위원장이 전교조 홈페이지에 띄운 ‘민주노동당 지지를 호소하는 글’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법 위반 결정을 내린 것과 관련이 깊다. 전교조는 “선거를 빌미로 정부가 정상적인 노동조합 활동을 탄압하려는 비열한 의도”라고 규정하고 선관위와 교육부를 강력히 비난했다. 그 후 발표된 2차 시국선언은 아예 ‘공무원의 정치활동 보장’을 요구하고 나섰다. 1차 시국선언 때까지만 해도 탄핵무효 선언이 교원의 정치활동과 무관하다고 해명하는 데 치중한 것과 비교해 한 걸음 나아간 주장이다.
정반대 시각에서 이라크 파병문제를 다룬 수업자료집. 전교조가 작성한 ‘반전·평화 계기수업자료’와 교육부가 만든 ‘교과서 보완 지도자료’.
이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원칙 아래 교사의 정치활동을 포괄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차별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이를 통해 정치적 이슈와 관련된 계기수업이란 말만 꺼내도 정부가 엄단, 징계 운운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그렇다면 교육계가 신성불가침으로 여기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란 무엇인가. 이는 ‘헌법’ 제31조 4항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된다’는 데 근거한다. 즉 헌법이 보장하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세력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교육을 방어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교육기본법’ 제14조 4항은 “교원은 특정 정당 또는 정파를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해 학생을 지도하거나 선동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 대한 교육부 이근우 기획·법무관의 해설을 들어보자.
“특정정당에 유리·불리한 교육을 해서는 안 되며 법률의 규정과 교육자의 전문가로서의 양심에 따라 공정한 교육을 하여 객관적인 진리를 추구하여야 한다는 의미다. 미국에서는 교사의 정치활동을 허용하고 있으나 이 활동이 학교수업 또는 운영에 중대하고 본질적인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교사들은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데 자기의 지위를 이용할 수 없고, 학생들에게 주입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소란스런 정치활동에 참여하도록 강요할 수도 없다.”(새교육신문 2004.6.28)
지키기 어려운 ‘중립’
서울대 나병현 교수(아시아태평양교육발전연구단)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정치에 대한 교육의 수단화, 교육의 정치 종속화를 막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한다. “과거 교사들은 집권세력의 압력 때문에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유신헌법이 발표되었을 때 많은 교사들은 침묵을 강요당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그것을 찬양해야 했다. 집권당의 주장을 전파하는 것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음은 물론 공공연하게 장려되기도 하지만, 반대당의 주장을 지지하면 당장 파당적이라 하여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의 이름으로 단죄됐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교육에 대한 정치의 중립이 요청된다.”(‘지방교육자치제도의 철학적 기반’)
그러나 ‘정치적 중립’이 낡은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조항이 1960년대 3·15부정선거를 계기로 헌법에 명시됐음을 강조한다.
건국대 임지봉 교수(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는 “이승만 정권 시절, 공무원들이 선거에 조직적으로 개입하여 갖가지 선거부정을 저지르는 이른 바 ‘관권선거’를 겪은 뒤 우리 법은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규정한 선거법 조항을 비롯해, 공무원들에게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하는 규정을 두게 되었다”고 설명하면서 이를 근거로 “88만명에 이르는 공무원들의 기본권을 너무 포괄적으로 과잉 제약해 위헌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대표적인 과잉 규제입법으로 꼽은 것이 교사의 정당 가입을 막는 ‘정당법’ 제6조와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 제60조. 임 교수는 “정치활동을 싸잡아 금지할 게 아니라 시국선언이나 특정 정당 지지발언과 같은 ‘정치적 의사표현 행위’와 본격적인 ‘정당 가입 및 정당활동 행위’를 구분하여 정치적 의사표현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두텁게 보장하는 차원에서 허용해야 한다”고 말한다.(교육희망 2004.4.7)
하지만 이 무렵 헌법재판소가 “교육공무원의 정당 가입 및 선거운동 금지는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려 교원의 정치참여 논의에 찬물을 끼얹었다.(2004.3.25) 이는 2001년 두 명의 교사가 제기한 “정당의 발기인 및 정당원의 자격을 대학교수 등에게는 허용하면서 초중고 교사에게는 허용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 기본권 행사를 부당하게 차별하는 것”이라는 헌법소원에 대한 결정이었다.
교사가 감히 정치를?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요약하면 ①감수성과 모방성 그리고 수용성이 왕성한 초·중등학교 학생들에게 교원이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고 ②교원의 활동은 근무시간 내외를 불문하고 학생들의 인격 및 기본생활습관 형성 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잠재적 교육과정의 일부분인 점을 고려하고 ③교원의 정치활동은 교육수혜자인 학생의 입장에서는 수업권의 침해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④현 시점에서는 국민의 교육기본권을 더욱 보장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공익을 우선시해야 할 것이라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초·중등학교 교육공무원의 정당가입 및 선거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헌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결정을 놓고 “교수는 지식인이어서 정치활동을 해도 되고 교사는 기초지식의 전달자에 불과해 안 되느냐”는 반발이 쏟아졌다.
이민종 변호사는 4월2일 열린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정치활동 보장 정책토론회’에서 “헌법상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해당 교원의 중립의무라는 의미도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권력에의 예속을 거부하는 공무원 및 교원의 권리라는 의미가 더 중요한데도 헌법재판소가 이런 측면을 무시했다”며 헌재의 결정을 비판했다. 이 변호사는 특히 “교원의 정치활동을 ‘수업권 침해’로 보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면서 “게다가 대학교수와 초·중등교사의 직무와 능력 및 근무양태가 정치활동을 차별적으로 허용할 만큼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또 “판결문에 ‘현 시점에서는’이라는 단서를 붙여 교원의 정치활동 제한의 근거로 ‘시기상조론’을 들고 있으나 이는 이미 역사적 수명을 다한 악법”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7월초 전국 대학총장들의 모임인 대학교육협의회 하계세미나에서 ‘대학의 정치적 중립성을 위한 교수의 정치참여 제한’을 내용으로 한 결의문을 채택하려다 무산된 사건으로 인해 교수와 교사 간의 형평성 문제는 더욱 논란이 됐다. 교수는 재직중 국회의원에 당선되거나 고위공무원으로 임용될 경우 그 기간 동안 휴직을 허용하고 자동복직을 보장한다.(교육공무원법 제44조) 반면 교사는 지방 교육위원회라도 진출하려면 교직을 포기해야만 한다.
전교조는 공무원노조와 함께 17대 총선에서 공개적으로 민주노동당 지지를 선언하고 정치활동에 들어갔다. 그러자 언론에선 당장 ‘법치가 무너지면 정글로 간다’ ‘나라 전체가 법 무시’ ‘민주주의 위기’ ‘전교조는 치외법권 기구인가’ ‘공무원노조 선거개입 안 된다’ 등 연일 이들의 행동을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정치활동 보장에 관한 토론회’(2004.3.30)에서 건국대 이계수 교수(법학)는 이렇게 일침을 놓는다.
“지금의 상황은 법치가 무너져 정글로 가는 상황도 아니고, 나라 전체가 법을 무시해서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진 상황도 아니다. 공무원노조, 전교조가 민주노동당 지지를 통해 선거개입에 나서고 있는 상황은 더더구나 아니다. 지금은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공론화해야 할 때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한국교원대학교 교육정책대학원의 엄기형 교수는 “교육이란 넓은 의미에서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라고 말한다. “물론 정치의 개념을 넓게 잡느냐 좁게 잡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 교육이 사회적 진공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한 현실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데 이때 교육은 넓은 의미에서 정치적이다. 그러나 헌법이 보장하는 ‘교육의 중립성’은 좁은 의미에서 제도권 정치로부터의 독립을 말한다. 지금은 이 두 가지 개념이 혼재되어 쓰이고 있어 문제가 된다. 전교조가 정치수업을 할 때는 넓은 의미로,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좁은 의미로 정치를 말하니까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교실 수업의 정치성과 교사의 정치활동 그리고 교원단체의 정치활동은 각각 구분해서 말할 필요가 있다.”
엄 교수는 교육이 정치 논쟁에 휘말리고 있는 이유를 이렇게 요약했다. “교육의 정치적 본질에 대한 엇갈린 시각, 보수-진보의 이념적 대립구조, 정치·사회개혁에 대한 열망, 교원의 정치활동의 자유 인정 추세와 그 여부 등에 대해 우리 사회가 아직 명확한 기준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교육정책포럼’ 73호 2004. 4.)
그렇다면 최근 논란이 된 ‘반전·평화수업’에서 파병을 언급하는 것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 위반인가 아닌가. 또 지난 4·15 총선수업에서 대통령 탄핵문제를 다룬 것은 교사의 정치활동인가 아닌가.
1년 전 전교조가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는 ‘반전·평화수업’을 실시한다고 했을 때도 똑같은 논쟁이 벌어졌다. 특히 전교조가 만든 ‘반전수업공동자료집’ 가운데 ‘이라크전 퀴즈’가 논란이 됐다.
“바보가 아닌 한 부시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전쟁의) 이유를 믿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진짜 이유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이라고 묻거나, ‘누구나 맞힐 수 있는 이라크전쟁 퀴즈’(100점 만점)에서 “점수 80점 이하인 학생은 겉은 한국인이지만 실제로는 미국인일 가능성이 많다”는 식의 표현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런데 여기서 ‘반미(反美)’ 논쟁에 불을 지핀 것은 다름 아닌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이라크전과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개정을 중심으로 한 전교조의 반전수업이 반미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노 대통령의 지적에 교육부는 부랴부랴 자료집을 분석한 뒤 “일부 내용이 반미감정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으나 그렇다고 반미교육을 했다고 규정하기는 어렵다”고 보고했다. 노 대통령은 “중등교육의 경우 국가가 가치관을 교육할 권리가 있는데 전교조가 국가를 대신해서 그것을 지시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더 이상 문제삼지 않는 게 좋겠다”며 논란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이미 정치화되어 교육계 갈등의 한 축에 서 있는 교장협의회와 교원단체총연합회 등이 앞장서 전교조가 교실을 ‘반미·친북 선전장’으로 만들고 있다고 맹공을 퍼부은 뒤였다. 전교조는 퀴즈문항에 몇몇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 있음은 인정했으나, “일부 문제가 되는 부분을 들어 자료집 전체(52쪽 분량)를 싸잡아 매도하면서 ‘반전평화수업’을 의식화 교육으로 몰아가는 것은 적절한 비판을 넘어선 의도적 부풀리기”라고 맞대응했다. 반미논쟁은 가뜩이나 심각해져 가는 한국 교육계의 보혁 갈등을 더욱 깊게 했다.
지난해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도입과 관련해 학교현장의 갈등이 심화되자, 교총은 교육부총리 퇴진 서명운동을 벌였다.
그때마다 반대론자들 또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을 내세워 안티 전교조의 기치를 높였다. 교육부가 한 일이란 교사들에게 자제를 촉구하거나 시·도교육청 차원에서 엄단할 것을 지시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정치수업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을 막을 수 없었다.
지난 3월 ‘탄핵수업지침’ 파문이 일었을 때도 전교조는 “총선수업 자료(민주주의와 선거)는 국회의원선거라는 계기를 활용하여 학생들에게 민주시민의식을 교육하기 위한 것”이며 “다만 4·15총선이 대통령 탄핵과 맞물려 있어 탄핵에 대한 일반적인 해설을 담고 있을 뿐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의 부당성’ 및 ‘헌법 위반’ 문제는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수업자료가 만들어진 시기를 전후해 전교조 교사 수만 명이 ‘탄핵무효 시국선언’에 참가했고, 총선을 앞두고 원영만 위원장이 조합원들에게 띄운 ‘온라인서신’을 통해 민주노동당 지지를 호소하는 등 정치적 행보를 거듭해 의도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4년 전 16대 국회의원선거 때도 전교조 소속 일부 교사들이 총선수업의 일환으로 부모들의 정당 선호도를 조사한 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가르칠 권리 위에 배울 권리
지난해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도입을 놓고 교육부와 정면으로 대치했을 때 전교조가 실시한 ‘정보인권 수업’ 역시 학생들을 NEIS 반대 쪽으로 유도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당시 이를 지켜본 한 교사는 전교조 게시판에 ‘교사의 정치적 중립을 위하여’라는 글을 띄웠다.
“우리 학교의 한 교사가 NEIS를 주제로 수업을 했다. NEIS에 부정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 그런 자료만 챙겨서 학생들의 토론을 이끌었고, 당연히 대부분의 학생이 NEIS를 반대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그 결과를 가지고 교무실에 들어와서 이야기를 하는데 무어라고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반대쪽의 입장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적시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가치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엄기형 교수는 “교원단체가 명백히 정치노선을 밝힌 마당에 정치적 사안을 다루는 계기수업이 순수하게 가치중립적이라고 믿기 어려운 것이 엄연한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곧 ‘정치적 중립’은 아니다. 나병현 교수는 정치와 교육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교사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견해를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은 진리(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하는 것)를 가르쳐야 한다는 교육의 본질적 특성에서 요청되는 것이지 특정 정당을 옹호하거나 배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교사가 가르치는 내용이 파당적인가 아닌가는 정치가 아닌 교육적, 학문적 관점에서 결정돼야 한다. 다시 말해 교사가 자율성을 가진다고 해서 아무거나 가르쳐도 좋다는 게 아니다.”
이성주 전 교육부총리는 지난해 ‘교육공동체시민연합’을 발족한 직후 한국발전연구원에서 가진 강연에서 전교조의 계기수업을 거칠게 비판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 보여줄 것이 있고 보여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비판의식을 기른다고 해서 사회의 어둡고 부정적인 부분을 다 보여줄 수는 없는 일이다. 윤금이씨 사건 때도 그 처참한 사진들을 애들에게 보여주며 ‘미군이 그렇게 했다’고 가르쳤다. 여중생 사망사건 때도 장갑차에 치여 죽은 현장 사진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어느 나라 군대가 그랬지요?’ ‘미국이요.’ ‘맞아요. 여러분의 언니를 죽인 사람이에요’ 하는 식이다. 이런 것을 균형 있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나. 이런 내용을 계기수업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서 가르치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국가정책에 반하는 것을 가르치거나 일반적·사회적 통념으로 자리매김되지 않은 가치관을 가르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런 논란에 대해 수원대 강인수(교육법) 교수는 ‘교육받을 권리, 즉 국민의 수학권이 교사의 수업의 자유보다 우선적으로 보호돼야 한다’고 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환기시켰다.
“과거 정치집단이 교육을 정치의 수단으로 악용해온 과정에서 우리 교육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던가를 생각하면 교원은 교육의 중립성을 지킬 권리와 의무가 있다. 특히 정치 이슈를 주제로 한 계기수업에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학생에게 주입하려는 편향된 수업은 경계해야 한다. 학생들이 보편적 가치나 가치중립적 교육을 받을 권리는 교사의 수업권보다 우선된다.”
명지전문대 남승희(사회교육) 교수는 좀더 목소리를 높인다.
“어느 중학교에서 계기수업을 했다고 하자. 전교조 소속 교사인 반 아이들은 그런 수업을 받는데 나머지 아이들은 받지 못한다. 다른 한쪽은 원치 않는데 받아야 하고 한쪽은 받고 싶은데 받을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이것은 학습권 차별이다. 문제는 전교조의 편향성과 독점성이다. 지금까지 전교조가 보여온 이념적 성향으로 보아 정치 관련 수업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진행되리라 믿는 학부모는 많지 않다. 또한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로 교육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교사의 독점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전교조 교사도 참여하고 교총 교사도 참여해서 정치적으로 편향되지 않은 객관적인 수업자료를 만들어 철저하게 검증한 뒤 수업을 해야 한다.”
교육부는 전교조의 계기수업이 논란이 될 때마다 “교육과정에 없는 교육을 실시할 때는 학년이나 교과협의회 등과 협의를 거치고 학교장의 승인을 받도록 하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교육부의 책임회피에 불과하다.
강인수 교수는 “상황수업 혹은 계기수업과 관련한 학교현장의 혼란과 갈등의 책임은 전적으로 교육부에 있다. 교장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일선 학교에 미룰 게 아니라 교육부가 공교육 수준에 걸맞은 일종의 수업 매뉴얼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엄기형 교수 역시 “학교와 교실 수업의 직접적인 정치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행 실정법 안에서 계기수업을 해야 한다면 학교내 공론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교자치는 학교공동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학교자치가 교사들의 배타적 자치가 아니기 때문에 몇몇 교사나 특정 단체에 의해 수업의 내용과 방식이 결정되는 것은 곤란하다. 교사, 학생, 학부모, 학교당국 이렇게 각 교육 또는 학교주체가 협의해서 형식과 내용을 걸러가며 실시한다면 우리 국민들의 인식도 개선하고 더 이상 계기수업 논란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는 교사회, 학부모회, 학생회 법제화라는 ‘학교자치’의 또 다른 과제를 우리에게 안긴다.
정치활동 이미 시작됐다
지난 3월 전교조의 ‘탄핵무효 시국선언’에 대해 교육부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시·도 교육청에 엄정 조치할 것을 시달했다. 그러나 전교조는 “실정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교사들의 정당한 의사표현을 막을 수는 없다”고 맞섰다. 2월에는 사립중·고등학교 교장회가 한나라당에 특정 의원의 비례대표 공천을 요구하며 서명운동을 벌인 것이 실정법 위반이냐 아니냐가 논란이 됐다.
4월 총선 직전에는 광주의 한 중학교 교감이 선거법 위반혐의로 고발됐다. 그가 지역언론에 기고한 ‘젊은이여 투표장으로 가라’는 제목의 글 가운데 “위태로운 이 나라를 지금 바로 살려낼 수 있는 길은 탄핵 철회밖에 없다”는 등의 내용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전교조를 포함한 82개 단체가 결성한 ‘총선교육연대’는 17대 총선 교육부문 정당 평가 및 반(反)교육후보 명단을 발표하면서 선거에 개입했다.
지난 6월 이해찬 의원이 국무총리로 지명되자 교총은 회원 교사들을 대상으로 ‘차기 국무총리 후보로 이해찬 전 교육부장관이 적절한가’를 물어 91.3%로부터 ‘부적절하다’는 응답을 끌어냈다. 일부에서는 “설문조사가 아니라 노골적인 총리지명 반대서명”이라며 “교총이 특정 정치단체와 결탁해 교사들을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어쨌든 교원의 정치활동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울타리를 이미 넘어섰다. 사실 교원의 정치활동을 본격적인 논의의 장으로 끌어낸 것은 전교조가 아니라 교총이었다. 2000년 교육부에 초·중등교원의 정치활동 보장을 건의한 데 이어, 2001년 5월 이군현 회장(현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취임하면서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에 대한 지지·반대 운동 등 정치활동을 강력히 전개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교총은 그해 11월 초중등 교사·교수·외부인사로 구성된 정치활동위원회를 출범시켰고 교원과 교원단체의 정치활동을 위한 관계법령 개정작업에 들어갔다.
당시 연구책임을 맡았던 강인수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의견을 달았다. “처음에는 교원의 정치활동이 학생들의 민주시민교육을 오도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으나 오히려 민주시민교육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교사 자신이 실제의 정치 경험을 해보도록 하는 것은 필요하다. 또한 교직사회 분열을 운운하나 교원의 정치활동을 우선 중앙단체 명의로 활동하는 것으로만 국한한다면 일선 교직사회의 분열이 심각한 양상으로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학교에서도 정치에 대한 다양한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다.”
엄기형 교수는 “교원은 과거처럼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참여의 대상이며 교육공동체 형성의 주역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및 지역교육청, 나아가 지방자치단체, 지역사회의 정책 형성과 결정, 평가에 교원들이 적극 참여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교수·학습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교사의 정치적 자유권을 단계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대세다.
가장 먼저 해결할 일은 교원의 제도 정치권 참여를 가능하게 하고 나아가 이를 보장하는 관련법규 개정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즉 지방의원이나 교육위원으로 참여하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 현행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의 사직(辭職) 조항을 휴직(休職)으로 개정하는 등의 구체적인 작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이를 통해 상대적으로 학력이 높고 우수한 인력인 교원이 지방교육위원회를 포함한 지방의회에 진출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제도적 정치참여가 활성화될 수 있고 교원의 정치활동 요구를 현실적으로 담아낼 수 있다고 엄 교수는 설명한다.
노무현 대통령도 후보 시절 교사의 정치활동을 허용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바 있다. 교육방송 주최로 열린 대선후보 토론 준비과정에서 당시 노 후보는 “언제까지 막을 수는 없는 일 아니냐. 시민으로서 교사의 기본권은 인정하되 정치가 학교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묶어두고 단계적으로 푸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던 것. 이와 관련해 지난 4월 안병영 교육 부총리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단계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교원의 정치활동은 법리적 측면과 교육적 측면을 나눠서 이야기해야 한다. 법리적 측면에서는 기존 법체계나 헌법재판소 판결 등이 교원의 정치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것이 사실이다. 교육적 측면에서 여전히 대학교수와 초·중등교원의 경우를 차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초·중등학교는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기 때문에 교육과정 자체가 훨씬 더 조심스럽다. 또 국민적 정서나 한국의 정치문화, 교육과정에 대한 기대 등으로 볼 때 지금 교사들이 너무 앞장서서 정치활동 하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다고 본다. 그러나 계기수업에 대해서는 적절한 수준을 지키면 교육적으로 꼭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교육과정에서 교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전교조에도 그런 우려와 경고를 했다. 앞으로도 대화를 통해 수위조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덧붙여 안 부총리는 “모든 것이 아슬아슬하다”는 말도 했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처럼 교육과 정치의 관계를 잘 표현해주는 말이 있을까. 그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는 것은 교사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