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박용인
때리는 것도 힘에 부치지만
사실 맷집도 달린다.
권고사직을 제안받고 그는
소진된 복서처럼 무엇이든 그러안고 싶었다.
피와 땀으로 이룬 모든 것을
세월은 거의 힘을 들이지 않고 빼앗아버린다.
내버리다시피 판 주식을 사서 대박 난 사람처럼
불행은 감당할 수 없는 바로 그 자리를 비집고
재앙은 불평등에 그 본성이 있다.
누군가 지금 그에게 가벼운 안부라도 묻는다면
바늘로 된 비를 맞듯 그는
땅에 붙들리게 될 것이다.
화산재를 잔뜩 뒤집어쓴 얼굴로.
* 시집 ‘생활이라는 생각’(창비시선, 201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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