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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신화의 재발견 ⑪·마지막회

세상의 종말, 라그나뢰크의 도래

비다르는 늑대 펜리르의 아가리를 찢어버리고…

  • 김원익 (사)세계신화연구소 소장·문학박사 apollonkim@naver.com

세상의 종말, 라그나뢰크의 도래

  • ● 大軍의 무게에 폭삭 무너진 무지개다리
    ● 광활한 비그리드 평원에서 펼쳐진 최후의 전투
    ● 상대 진영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든 신과 거인
    ● 오딘을 삼켜버린 펜리르, ‘전쟁의 신’ 티르의 죽음
    ● 수르트의 ‘불칼’이 태워버린 세상…라그나뢰크
라그나뢰크, George Wright, 1908.

라그나뢰크, George Wright, 1908.

고대 노르드어로 ‘라그나(ragna)’는 신을 뜻하는 ‘레긴(regin)’의 복수형이다. ‘뢰크(rök)’는 황혼 혹은 파멸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라그나뢰크(Ragnarök)’는 ‘신들의 황혼’ ‘신들의 파멸’을 뜻한다. 북유럽 신화에서 신들의 파멸은 자신들뿐 아니라 거인들과 인간들 그리고 난쟁이들 모두의 파멸을 초래하기에 라그나뢰크는 정확히 말하면 세상의 종말을 의미한다. 

북유럽 신화는 태초부터 신들과 거인들의 갈등에서 시작돼 계속 증폭되다가 결국 양측의 전면전이 벌어지면서 아홉 세상 모두의 종말로 끝을 맺는다. 북유럽 신화의 세계는 마치 인간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라그나뢰크를 향해 나아가는 형국이다.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악곡 ‘니벨룽의 반지’ 4부 제목은 ‘괴터뎀머룽(Götterdämmerung)’인데 ‘신들의 황혼’이라는 뜻이다. 라그나뢰크를 독일어로 옮긴 것이다. 국산 게임 ‘라그나로크(Ragnarok)’도 라그나뢰크의 영어식 표기다. 북유럽 신화에서 라그나뢰크는 이미 언급했듯 빛의 신 발데르가 갑자기 죽음으로써 그 전조를 보인다. 신들은 그동안 신들과 거인들 사이에서 애매한 입장을 취했던 로키가 발데르의 죽음을 야기한 만큼 거인들 편이 돼 신들을 공격할 거라고 생각했다. 라그나뢰크를 앞당길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도망친 로키를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어떻게든 그를 잡아 일단 라그나뢰크를 지연시켜야 했다. 


연어로 변신한 로키

그물을 갖고 있는 로키, 18세기 아이슬란드 필사본 삽화.

그물을 갖고 있는 로키, 18세기 아이슬란드 필사본 삽화.

그렇다면 로키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로키는 장님 호드와 겨우살이를 이용해 발데르를 죽게 만든 뒤 미드가르드로 숨어들었다(‘신동아’ 10월호 “‘빛의 신’ 발데르의 죽음, 파멸의 ‘라그나뢰크’ 전조” 참고). 그는 산속에서 시야가 탁 트인 높은 언덕을 발견하고 그곳에 집을 지었다. 로키의 집은 조망이 아주 좋고 곳곳에 문을 만들어놓아 사방을 경계하기에는 최적이었다. 그래도 불안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산새가 지붕 위에 내려앉으면서 내는 소리나, 바람 소리에도 깜짝 놀라기 일쑤였다. 

불안에 떨던 로키는 집 근처에 있는 프라낭이라는 제법 큰 폭포를 발견하고, 그곳 연못에서 연어로 변신해 숨어 있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그때부터 집은 비워둔 채 주로 연못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사방이 노출된 움막보다 차라리 밖이 전혀 보이지 않는 연못 안이 편했다. 그러던 어느 날, 로키는 움막 앞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요깃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아마 껍질로 그물을 만들었다. 그물은 망 사이가 아주 촘촘해서 아무리 작은 물고기라도 한번 걸렸다 하면 도저히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았다. 



바로 그때 갑자기 멀리서 신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로키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고 얼른 그물을 불 속에 던져 넣은 뒤 폭포로 뛰어들어 연어로 변신했다. 신들은 바로 오딘이 보낸 로키의 ‘체포조’였던 것이다. 

신들이 로키의 거처를 알 수 있었던 건 오딘의 궁전에 있는 용상 흘리드스캴프 덕분이었다. 홀리드스캴프는 아홉 세상의 모든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체포조 대장은 바로 아스 신족에서 가장 현명한 크바시르였다. 그는 로키의 움막과 그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모닥불 속에서 불에 탄 채 선명하게 남아 있는 그물 형상을 보고 상황을 알아챘다. 크바시르는 토르를 비롯해 동행한 신들에게 아무 말 없이 턱으로 폭포의 연못을 가리키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어 단단한 아마 껍질로 커다란 그물을 만들어 양쪽에 길게 막대기를 달아두었다. 그 그물은 폭포 연못의 가장 긴 쪽을 막아도 남을 정도로 길었다. 새벽이 되자 신들은 그 그물을 갖고 약속이라도 한 듯 폭포 연못 아래 입구 쪽으로 내려갔다. 먼저 토르가 그물의 한쪽 끝 막대기를 잡더니 다른 신들에게는 그대로 있으라고 하고 자신이 폭포 속으로 들어갔다. 이어 반대편 입구에 서서 그물 끝을 폭포 속에 넣고 반대편 신들에도 그렇게 시켰다. 이어 신들은 토르의 신호와 동시에 양쪽에서 그물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오딘의 ‘체포조’가 던진 그물

폭포 속 물고기들은 이미 로키가 뛰어들어 연어로 변신하자 불안감을 느끼고는 하류로 내려가 버렸다. 폭포 안에는 단지 로키가 변한 연어 한 마리만 남아 있었다. 신들이 점차 그물로 호수 바닥을 더듬으며 폭포 위쪽으로 올라오자 로키는 당황하지 않고 이전에 봐둔 두 개의 커다란 바위 사이에 몸을 숨겼다. 신들의 그물은 그의 등지느러미를 스치고 지나갔을 뿐이다. 신들이 폭포 위에서 그물을 들었을 때 그물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신들은 손의 감각으로 꽤 커다란 물고기가 그물을 스친 것을 알아챈 터라 이번에는 그물 아래에 돌을 달아 호수 반대 방향을 더듬기로 했다. 

신들의 그물이 구석구석 샅샅이 바닥을 더듬으며 내려오자 로키는 당황했다. 그는 아예 폭포 입구를 지나 강 아래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폭포 아래쪽 수심은 아주 얕아 더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연어로 변신한 자신의 몸통이 밖으로 드러나 더 쉽게 사로잡힐 게 뻔했다. 고민하던 로키는 아예 그물을 뛰어넘어 폭포 안쪽으로 더 깊숙이 몸을 숨기기로 했다. 그래서 신들의 그물이 점점 다가오자 적당한 순간을 노려 힘차게 도약해 그물 가운데 위를 날아 반대편 폭포 속으로 뛰어들었다. 신들은 돌발 사태에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그만 그물을 놓치고 말았다. 

다시 전열을 정비한 신들은 그물로 폭포 바닥을 훑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두 번째와는 다르게 신들이 그물 양쪽에만 서 있었던 게 아니라 가운데에서 토르가 양손을 들고 선 채 그물 바로 위를 잔뜩 노려보며 이전보다 천천히 폭포 입구에서 위쪽으로 이동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그물을 사용하는 방법이 세밀해지고 발전한 셈이다. 하지만 수면 아래에 있던 로키는 이런 상황을 알 턱이 없었다. 그는 두 번째 방식대로 그물을 피할 심산으로 다시 적당한 순간에 껑충 뛰어올랐다. 하지만 그는 반대편 폭포 속으로 떨어지기 전에 그만 토르의 두 손에 꼼짝없이 잡히고 말았다. 토르는 손안으로 뛰어든 연어를 단단히 붙잡았다. 로키가 아무리 몸을 흔들고 용을 써도 ‘천하장사’ 토르의 손아귀를 빠져나갈 수 없었다. 

토르가 움막 옆에 연어를 던져놓자 로키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토르는 그물을 만들고 남은 끈으로 로키를 꽁꽁 묶었다. 그런 다음 이미 물색해 둔 미드가르드의 깊은 산속에 있는 음습한 동굴로 로키를 데려갔다. 그동안 다른 신들은 로키의 두 아들 발리와 나르피를 찾아 동굴로 데려왔다. 발리의 어머니는 린드, 나르피의 어머니는 시긴이었다. 신들이 계획대로 발리를 늑대로 변신시키자 녀석은 나르피에게 달려들어 날카로운 이빨로 그의 몸을 갈가리 찢어놓은 다음 울부짖으며 요툰헤임 쪽으로 사라졌다. 얼마 후 로키의 조강지처 시긴도 남편이 있는 곳으로 끌려와 슬픔에 잠겨 울기만 했다. 신들은 또한 널찍하고 긴 석판 석 장도 구해 왔다. 


야만의 시대, 3년간의 겨울, 불안한 전조

로키의 형벌, Louis Huard, 1900.

로키의 형벌, Louis Huard, 1900.

신들은 이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자 로키의 아들 나르피의 시신에서 내장을 모두 수습한 뒤 특수 약물을 첨가해 쇠줄보다 더 단단한 끈으로 만들었다. 이어 그 끈을 세 조각으로 나누어 그중 하나로 로키의 손과 발을 묶은 다음 석판 하나를 그의 어깨에 대고 팔과 함께 친친 감았고, 두 번째 석판은 그의 허리에 대고 다른 끈으로 친친 감았다. 세 번째 석판은 그의 무릎 밑에 대고 다리와 함께 친친 감았다. 로키를 묶은 내장 끈은 특수 매듭을 지어놨기에 누구도 풀 수 없었다. 로키는 그야말로 옴짝달싹 못하는 식물인간 같은 상태가 돼버린 것이다. 로키의 벌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얼마 후 사냥의 여신 스카디가 커다란 독사 한 마리를 잡아 오자 신들은 동굴 속 종유석에 녀석의 입을 벌린 채 묶어놓아 그 독이 곧장 로키의 얼굴로 떨어지도록 했다. 

이제 로키는 죽은 듯이 누워 있다가 그 독을 고스란히 얼굴로 받아내며 고통으로 신음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장난기 넘치던 로키가 이제는 신들마저 측은한 마음이 들 정도로 정말 처량한 신세가 돼버린 것이다. 신들은 그의 아내 시긴을 불러 로키를 맡긴 다음 그에게 동정하는 마음이 더 생길까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신들이 사라지자 시긴은 얼른 동굴에서 그릇처럼 오목한 돌을 찾아내 그것을 뱀의 독이 떨어지는 남편의 얼굴 위에 대고 있었다. 이어 돌그릇이 독으로 가득 차면 얼른 그것을 가까운 웅덩이에 버렸다. 그러는 사이 독이 얼굴에 떨어지자 로키는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깊은 신음을 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로키의 자식들을 유폐하는 오딘, Lorenz Frølich, 1906.

로키의 자식들을 유폐하는 오딘, Lorenz Frølich, 1906.

사실, 신들은 로키뿐 아니라 오래전 그의 세 자식도 외진 곳에 유폐해 놓은 적이 있다. 로키의 정식 아내는 시긴이다. 하지만 로키는 심심하면 요툰헤임으로 내려가 거인족 여인들을 만났다. 그중 앙그르보다라는 여인은 늑대 펜리르, 왕뱀 요르문간드, 헬 등 세 아이를 낳았다. 그들이 태어나자 운명의 세 여신 노른은 신들에게 로키의 자식들로 인해 신들이 파멸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신들은 그들이 장성해서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아스가르드로 잡아 와 유폐하자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얼마 후 토르, 티르, 헤임달 등 세 신으로 결성된 특공대는 새벽녘에 요툰헤임의 앙그르보다의 집으로 잠입해 그녀가 저항할 틈도 주지 않고 로키의 세 자식을 아스가르드로 잡아 왔다. 오딘은 우선 왕뱀 요르문간드는 인간들의 세상인 미드가르드를 감싸고 있는 바다에 던져 넣었다. 시간이 흐르자 요르문간드는 점점 자라나 바다를 한 바퀴 돌아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을 정도로 거대한 뱀이 됐다. 이어 오딘은 헬을 지하세계로 보내 그곳을 지키는 여왕이 되게 했다. 마지막으로 늑대 펜리르는 아주 단단한 끈으로 묶어 아스가르드의 황량한 초원에 유폐해 놓았다. 이렇게 로키를 비롯한 그의 세 자식이 모두 유폐돼 있었지만, 북유럽 신화에서 라그나뢰크는 잠시 늦춰졌을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그 징후가 명확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라그나뢰크의 징후는 맨 먼저 인간 세상인 미드가르드에서 나타났다. 라그나뢰크가 다가올수록 인간 세상은 윤리와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야만의 시대’로 변해 간다. 북유럽 신화는 그런 시대를 ‘도끼의 시대’ ‘칼의 시대’ ‘늑대의 시대’로 정의한다. 야만의 시대에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뿐 아니라 이웃들마저 늘 분쟁을 일으키며, 친구들은 날마다 서로 폭력을 휘두르고, 부모와 자식들은 불화에 휩싸이며, 형제들은 만나기만 하면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 이런 다툼과 갈등은 점점 한 나라의 계층과 계층, 지역과 지역, 더 나아가 나라와 나라 사이로 확산되면서 전 세계가 3년 동안 엄청난 혼란에 빠진다. 

그 후 다시 핌불베트르라는 3년 동안의 혹독한 겨울이 계속된다. 이 기간 여름은 없어지고 차가운 폭풍우와 함께 계속해서 눈만 내리기 때문에 대지가 꽁꽁 얼어붙는다. 그 후 태양과 달을 뒤쫓던 늑대 스콜과 하티가 마침내 그들을 따라잡아 마차를 몰던 솔과 마니를 집어삼켜 버리고, 밤하늘에 총총한 별들도 모두 바다로 떨어져 세상은 암흑천지가 돼버린다. 이어 사방에서 지진이 일어나 대지가 흔들리면서 하천이 모두 범람하고, 나무들이 모두 뿌리 뽑히며, 산이 모두 무너져 내린다. 이 지진으로 묶여 있던 늑대 펜리르도 끈에서 풀려나고, 물이 불어난 바다에서는 왕뱀 요르문간드가 서서히 몸을 풀면서 해일이 일어난다. 


수탉들의 울음소리, 위험을 감지한 헤임달

걀라르호른을 불고 있는 헤임달, 18세기 아이슬란드 필사본 삽화.

걀라르호른을 불고 있는 헤임달, 18세기 아이슬란드 필사본 삽화.

바로 그 순간 아홉 세상의 세 곳으로부터 라그나뢰크의 서막을 알리는 수탉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거인들의 나라 요툰헤임에서는 진홍빛 수탉 퍌라르가 갈그비드 숲에서 울고, 아스 신족의 궁전 발할라 궁전 지붕 위에서는 금빛 수탉 굴린캄비가 울음을 운다. 지하세계인 헬헤임에서는 이름 모를 검붉은 수탉이 운다. 그 소리에 화답하듯 지하세계를 지키던 개 가름이 사납게 울부짖으면서 자신의 집인 그니파헬리르 동굴에서 튀어나온다. 위험을 감지한 아스가르드의 수문장 헤임달도 걀라르호른을 공중에 높이 들고 숨을 가쁘게 쉬면서 급히 불어댄다. 그 나팔 소리를 듣고 세계수 이그드라실이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내며 몸을 비튼다. 

마침내 죽은 자들의 손톱과 발톱으로 만든 지하세계의 여왕 헬의 전용 배 나글파르가 헬헤임의 전사들을 가득 싣고 미드가르드에 있는 바다에 나타난다. 거인들의 왕 흐림은 부하들을 이끌고 헬의 배에 올라 항구로 안내한다. 그 와중에 족쇄에서 풀린 로키도 그들과 합류한다. 요르문간드도 마침내 뭍으로 기어올라 그들에게로 다가간다. 이미 족쇄에서 풀려난 늑대 펜리르도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달려온다. 불의 나라 무스펠헤임에서는 수르트가 사라진 태양보다도 밝은 불칼을 휘두르며 전사들을 이끌고 나타난다. 그들은 모두 항구에 모여 전열을 정비한 다음 무지개다리 비프로스트로 몰려간다. 

무지개다리는 마치 사다리처럼 양쪽 다리를 각각 미드가르드와 아스가르드에 걸쳐놓고 두 세상을 연결하고 있다. 그들이 아래 미드가르드 쪽에서 다리를 오르기 시작하자 위쪽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신들의 파수꾼 헤임달은 걀라르호른을 힘껏 불어 신들과 아홉 세상 구석구석에 적들의 공격을 알리고는 급히 자신의 궁전으로 피신한다. 그들이 마침내 모두 아스가르드로 넘어오자마자 대군의 무게에 힘이 겨웠던지 무지개다리는 폭삭 무너져 내린다. 

오딘은 헤임달로부터 적들의 동향을 보고받은 즉시 만반의 대비를 한다. 그는 우선 자신의 애마 슬레이프니르를 타고 미미르의 샘으로 달려가 미미르에게 조언을 듣는다. 이어 신들의 회의를 주재해 전략을 짠 다음 죽은 영웅들의 영혼인 에인헤랴르를 소집해 무장시킨다. 

그들이 싸운 곳은 바로 아스가르드의 광활한 비그리드 평원이다. 양쪽 군대는 그렇게 한참 동안 서로 마주 보며 대치하고만 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상대 진영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들더니 무자비하게 싸우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도 신들과 거인들은 서로 자신의 적수를 용케도 찾아낸다. 제일 먼저 오딘이 늑대 펜리르를 향해 돌진하지만 오히려 거대하게 몸집이 불어난 펜리르가 커다란 입을 벌려 오딘을 통째로 삼켜버린다. 그걸 보고 오딘의 아들 비다르가 펜리르에게 달려들어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 이때 그는 한쪽 발로는 펜리르의 아래턱을 밟은 채 왼손으로 그의 위턱을 잡고 녀석의 아가리를 찢어 죽인다. 비다르는 장차 자신이 늑대 펜리르를 대적하게 되리라는 예언을 듣고 미리 그의 강한 이빨에도 찢어지지 않는 특수 신발을 만들어놓은 터다. 


요르문간드의 독에 중독돼 죽은 토르

토르와 왕뱀 요르문간드, Emil Doepler, 1905년경.

토르와 왕뱀 요르문간드, Emil Doepler, 1905년경.

토르는 예전에 한번 낚시로 잡을 뻔했던 왕뱀 요르문간드에게 달려들어 녀석을 붙잡고 한참을 씨름하다가 결국 망치로 쳐서 죽이지만, 자신도 비틀거리며 겨우 아홉 걸음을 걷고 나서 쓰러져 죽는다. 요르문간드가 그와 싸우면서 뿜어낸 독에 그만 온몸이 중독돼 버린 것이다. 프레이르는 불의 거인 수르트와 용감하게 맞서 싸우다가 그의 불칼을 맞고 쓰러진다. 프레이르는 거인 여자 게르드를 아내로 얻기 위해 천하무적의 칼을 자신의 하인에게 ‘중매료’로 주어 수르트의 공격을 제대로 막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헤임달은 로키와 싸워 그를 죽이지만 자신도 목숨을 잃는다. 한쪽 팔밖에 없는 전쟁의 신 티르도 지하세계의 개 가름과 싸워 녀석을 죽이지만 마찬가지로 자신도 목숨을 잃는다. 

전투에 참여한 나머지 신들과 에인헤랴르도 서리 거인들, 헬의 전사들, 불의 전사들과 싸우다가 모두 목숨을 잃는다. 그때 돌연 비그리드 평원의 전쟁터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불의 거인 수르트가 자신의 불칼을 마음대로 휘둘러 아홉 세상 곳곳에 거대한 불덩이들을 날려 보낸다. 그러자 천지가 화염에 휩싸인다. 세계수 이그드라실도, 아스가르드의 궁전도, 미드가르드에 있던 나무들과 집들도 모두 화염에 휩싸인다. 그 화염 때문에 미드가르드의 모든 강물과 호수는 점점 마르기 시작하고, 바닷물은 지글지글 끓어오른다. 얼마 후 그 화염을 이기지 못하고 대지마저 굉음을 내며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 마침내 신들이나 거인들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이 종말을 고하는 라크나뢰크가 도래한 것이다.


김원익
● 1961년 전북 김제 출생
● 연세대 독문학과 졸업(문학박사), 독일 마부르크대 수학
● 신화연구가, (사)세계신화연구소 소장
● 저서 : ‘신화, 인간을 말하다’ ‘그림이 있는 북유럽 신화’ 外



신동아 2020년 11월호

김원익 (사)세계신화연구소 소장·문학박사 apollon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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