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호

‘검수완박’ 윤리적 파탄이었으되 한동훈式 ‘검수원복’ 바람직하지 않아

[금태섭의 IN&OUT]

  • 금태섭 前 국회의원

    입력2022-09-2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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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당 내로남불 폭주에 결정적 한 방 먹여

    • 시행령 통한 무력화는 삼권분립 원리에 반해

    • 위험한 최선보다 안전한 차선 택하는 게 민주주의

    • 尹 대통령, 文 정부와 달라지려면 ‘원칙’ 지켜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8월 11일 경기 과천시 법무부 청사에서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 개정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8월 11일 경기 과천시 법무부 청사에서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 개정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대통령의 낮은 국정 수행 지지율로 스트레스 받는 보수 유권자에게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단비 같은 존재다. 인사청문회 때 이모(李某) 교수를 이모(姨母) 교수로 착각하거나 영리법인으로 명시돼 있는 기부자를 장관 후보자의 딸로 오인하고 추궁해 실소를 자아내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비해 침착한 태도로 성실하게 답변을 한 장관은 능력 있고 합리적인 공직자의 전형으로 보였다. 국회 상임위원회나 대정부질문 과정에서도 준비가 부족한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정중하면서도 단호한 대응을 해 차기 대선주자로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대통령의 잇단 실언, 이준석 대표와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의 지루한 다툼에 고개를 들지 못하던 여당 지지자들은 한동훈 덕분에 어깨를 펼 수 있었다.

    그런 한 장관이 민주당의 폭주에 결정적 한 방을 먹이는 장면을 연출했다.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이 주도해 통과시킨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을 무력화하는 시행령을 만든 것이다. 민주당은 대선 직후인 4월 검찰의 수사 범위를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제한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지금은 민주당 대표가 된 이재명 의원의 사법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탄 법률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법안의 내용 자체도 조악했지만, 정치인 한 명 살리자고 대한민국 형사사법절차의 근간을 무너뜨려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런데 한 장관이 이끄는 법무부는 법안에 기재된 ‘등’이라는 한 글자에 착안해 검수완박 법을 사실상 개정하는 효과가 있는 시행령을 마련한 것이다.

    “정치인 한 명 살리자고…”

    원래 민주당이 통과시킨 법은 검찰 직접 수사가 허용되던 6대 중요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를 2대 중요 범죄(부패·경제)로 축소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법무부는 시행령을 통해서 당초 공직자 범죄로 분류되던 직무유기·직권남용·허위공문서 작성, 선거범죄였던 정치자금법 위반·선거매수 등을 ‘부패범죄’에 포함했다. ‘경제범죄’의 범위도 대폭 확장해 검사가 수사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혔다. 이른바 ‘검수원복’이다.

    검수완박 법안을 만들어서 통과시킨 것은 민주당이다. 그 법안의 조문을 그대로 이용해 내용을 바꿔버렸으니 민주당은 제 꾀에 빠진 꼴이 돼버렸다. 여당 지지자들로서는 모처럼 통쾌한 기분을 느낄 만한 일이 생긴 셈이다. 묘수를 찾아 야당에 한 방을 먹인 한 장관을 찬양하는 목소리가 보수 유튜브에 넘쳐났다. 특히 직권남용죄를 부패범죄로 재분류해 검찰이 수사할 수 있게 한 대목은 문재인 정권 당시의 권력형 비리 의혹을 파헤치는 데 유용한 무기로 쓰일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여당과 정부는 보수층의 환호가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조국 사태 이후 ‘검수완박’ 내로남불 전형

    5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한 이른바 ‘검수완박’ 관련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가결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항의하고 있다. [뉴시스]

    5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한 이른바 ‘검수완박’ 관련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가결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항의하고 있다. [뉴시스]

    원래 범죄의 종류를 한정해 검찰의 수사권을 제한하는 법률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수사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생각해 보면 그런 제도가 실제로 작동이 가능한지도 의심스럽다. 범죄 수사는 미리 전개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다. 단순해 보이는 형사사건을 조사하다가 배후에 숨어 있는 중대한 사건의 실마리를 발견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런데 애초에 ‘중요 사건’으로 분류되는 범죄에 대해서만 수사를 개시할 수 있다면 그렇게 찾아낼 수 있었던 수많은 범죄가 그대로 묻혀버릴 가능성이 높다. 또한 법에 규정된 중요 사건이라고 판단해 검찰이 수사를 시작했는데 막상 결과를 보니 범죄는 맞지만 중요 사건은 아닌 경우, 그 수사 결과를 토대로 피의자를 기소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검찰이 권한에 없는 수사를 한 셈이기 때문에 위법한 수사라고 볼 여지가 있다. 그런 경우에 혐의가 분명한 피의자를 풀어줘야 하는 것인가. 민주당의 검수완박 법은 이런 세밀한 부분에 대한 검토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채 통과됐다. 필자가 형사절차의 전문가로서 법안에 강력하게 반대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정권 초기에 검찰 특수부를 사상 최대로 확대해서 닥치는 대로 ‘적폐청산’에 동원했다가, 막상 조국 사태 이후 자기들이 수사 대상이 되자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한 것은 윤리적 파탄이고 내로남불의 전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모든 논리에도 불구하고 행정부가 만드는 시행령으로 입법부인 국회를 통과한 법률을 무력화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헌법에 규정된 삼권분립 및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반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권력을 입법, 사법, 행정으로 분리하고 어느 한 사람이나 조직이 독점하지 못하게 한 권력분립은 자의적 통치를 막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다. 특정한 법률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행정부의 판단에 따라 시행령으로 그 잘못을 교정하기 시작하면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균형이 무너지게 된다.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국회가 행정부의 독주를 막기 위해 법을 제정했는데 대통령이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법을 우회할 수 있는 시행령을 마음대로 만들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합법적 독재’가 시작되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당인 국민의힘도 2015년 정부의 시행령을 견제하는 내용의 법률을 만들어 통과시켰던 것이다. 검수완박이라는 엉터리 법률 하나를 고치자고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리를 훼손하는 것은 흉악한 범죄자 한 명을 처벌하기 위해서라면 진술거부권을 인정하지 않거나 강압적인 수사를 허용해도 좋다고 주장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때로는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기 위해 마련된 제도를 지켜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이 위험한 최선보다 안전한 차선을 선택하는 근대 민주주의의 정신이다.

    오랜 기간 쌓아 올린 관행 무너뜨린 민주당

    최근 수년간 한국 정치에서 드러나는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지금 당장의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된다면 오랜 기간에 걸쳐 어렵게 만들어진 제도나 관행을 서슴지 않고 한순간에 무너뜨린다는 점이다. 특히 민주당이 힘을 가졌을 때 그런 현상이 두드려졌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우리 국회에는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각각 여야가 나누어서 차지하는 관행이 있었다. 이것은 여당과 야당이 타협에 이르기 위해 끝까지 협상하고 노력하게 만드는 장치로 기능해 왔다. 현행 제도상 모든 법률은 법사위원회를 거쳐야 하는데 야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으면 여당이 힘으로 법안을 통과시키기 어렵다. 반면에 본회의에서 법안을 표결에 부치는 권한은 국회의장에게 있다. 여소야대 상황이더라도 여당 출신 의장이 동의하지 않는 이상 법안의 통과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여당과 야당이 합의에 이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소수당의 의견도 존중될 수 있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참패해 의석이 100석에도 못 미치던 시절에도 지금 국민의당 전신(前身)인 한나라당은 법사위원장 자리를 야당에 양보했다. 어느 쪽이 소수당이 되더라도 다수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인식이 정치권 전체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1대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민주당은 의장과 법사위원장을 독차지했다. 당장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 몇 개를 손쉽게 통과시키기 위해서 오랜 기간 쌓아 올린 관행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것이다.

    필리버스터가 한국에 와서 변질된 과정을 보면 이런 경향이 더 두드러진다. 원래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리가 지배한다. 최종적으로 표결 단계에 이르게 되면 다수의 의사가 존중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다수결의 원칙만 고집하고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다 보면 치유하기 힘든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파도 결정 과정에서 충분히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보장하는 장치들이 만들어졌는데 대표적인 것이 필리버스터다. 장시간의 발언이나 토론 등을 통해서 표결에 이르는 시간을 지연시킬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우리 헌정사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에 동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저지하기 위해 했던 필리버스터, 그리고 3선 개헌을 막기 위해 박한상 전 의원이 10시간 넘게 발언했던 사례를 찾을 수 있다. 2016년에는 소수 야당이던 민주당이 여당인 새누리당의 테러방지법 통과를 막기 위해 9일 밤낮에 걸쳐 필리버스터를 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다수당 의원들은 발언에 나서지 않았다. 사실 필리버스터를 통해서 법안 통과를 끝까지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수파의 입장에서 보면 어차피 결과가 확실하다면 소수파에게 발언 기회를 양보하는 것이 대승적으로 대처하는 길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2019년 공수처법과 공직선거법을 통과시키면서 이 관행을 깼다.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민주당 의원들과 정의당 의원들이 소수파의 입장에 처한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번갈아서 발언대에 올라간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참담했던 ‘선거법’ 개정

    물론 민주당 의원들의 행동이 법조문을 위반하는 것은 아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하는 발언인 이상 여야가 번갈아가면서 발언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필리버스터의 본질은 소수파에게 최소한의 기회를 주고 그 목소리도 존중하자는 것이다. 민주당은 그런 소중한 제도의 취지를 날려버렸다. 그 이후 대한민국 국회의 필리버스터는 다수파와 소수파가 서로 번갈아가며 자기주장만 늘어놓는 이상한 모습이 돼버렸다. 세계 어느 선진국도 이렇게 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참담했던 경험은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던 시절 있었던 선거법 개정이다. 당시 민주당은 공수처법 표결에서 정의당과 바른미래당 등의 협조를 얻기 위해 정의당이 원한 연동형비례 요소가 가미된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렸다. 그 법안이 통과되면 위성정당의 출현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높았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그런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었다. 어떤 상황이 와도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나는 선거법 개정안 내용에 대해 많은 의구심이 들었지만 당시 공수처법을 놓고 지도부와 갈등을 빚고 있었기 때문에 선거법에 대한 발언은 자제하자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선거법에 대한 본회의 표결 직전 의원총회장에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얘기가 나왔다. 선거법 개정 작업을 주도한 모 의원이 내용을 설명하면서, 지금 마련된 법안으로는 위성정당의 출현을 막을 수 없지만 공수처법 통과를 위해 찬성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발언 기회를 얻어서 문제 제기를 했다.

    “우리가 언제까지 국회의원을 할지는 알 수 없지만, 대한민국에서 선거는 이번 총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공수처가 당론이고 중요하다고 해도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선거법을 엉망으로 만들어서 위성정당이 출현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진부한 표현이지만 역사에 죄를 짓는 겁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민주당은 일사불란하게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나도 찬성표를 던졌다. 그 개정안 때문에 21대 총선에는 각양각색의 위성정당이 출현했고 의석을 하나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우리 당이 민주당(혹은 국민의힘)의 적자(嫡子)다” “아니다. 우리가 적자다”라고 싸우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다. 법안 하나 통과시키자고 대한민국의 선거제도와 정당제도를 수십 년 퇴보시킨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저지른 수많은 잘못 가운데 나는 이것이 가장 큰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정치 경험 없는 尹 대통령 당선시킨 이유

    윤석열 대통령이 5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5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다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검수원복’ 시행령을 돌아보자. 민주당이 밀어붙인 검수완박은 극히 잘못된 제도다. 그러나 그것을 바로잡겠다는 목표를 내세워 행정부의 시행령으로 국회의 입법을 뒤집는 것은 더 큰 잘못이 될 수 있다. 설사 법제처에서 적법하다는 판정을 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대통령에게 힘이 집중된 대한민국 정부 시스템에서 행정부가 국회를 무시하기 시작하면 그 부작용이 어디까지 이를지 짐작도 하기 어렵다.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정치 경험이 별로 없는 윤석열 대통령을 당선시킨 것은 공동선에 대한 인식이 없이 자신들만 옳다고 주장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편법을 일삼던 문재인 정부의 행태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와는 본질적으로 달라야 한다. 당장은 손해 보는 것 같더라도 원칙을 지키고 장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전통과 관행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권력분립의 원칙을 훼손할 위험을 무릅쓰고 검찰 수사권을 보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과 설사 비판할 지점이 많은 법률이더라도 국회에서 통과됐다면 존중하는 것 중 어느 쪽이 원칙을 지키는 것인지는 자명하다. 윤석열 정부가 진심으로 문재인 정부와 달라지려면 힘들더라도 후자를 택해야 한다.

    신동아 10월호 표지.

    신동아 10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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