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호

중국 민주화의 향배

GDP 3000달러의 함정? 대응카드는 ‘제한적 개혁조치’

  • 하종대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입력2008-09-03 1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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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림픽 이후 중국은 어떻게 변화할까. 이는 중국을 연구하는 학자는 물론 온 세계가 주목하는 관심사다. 특히 최근 중국 지도부가 올림픽 이후 전면적인 정치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중국의 정치 변화, 나아가 민주화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지에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륙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그 향배를 두고 격렬한 토론이 전개되지만, 정작 중국 공산당은 한국 등 아시아 민주국가들이 1인당 국민소득 3000~5000달러 시기에 겪은 정치적 혼돈이 중국에서 재현될까 두려워하는데….
    중국 민주화의 향배

    3월 티베트 라싸의 독립시위 현장에서 중국 공안요원들이 방패로 벽을 만들어 투석에 맞서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장기간 이어진 독립시위는 중국의 정치적 안정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 계기였다.

    중국의 향후 전망을 살피기 위해 가장 먼저 눈이 가는 것은 중국 경제의 개방 흐름이 지속될지 여부다. 올해는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한 지 30년이 되는 해다. ‘중국 개혁개방의 총 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은 1978년 12월18일부터 22일까지 5일간 열린 중국 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에서 역사적인 개혁개방을 선언했다.

    이후 중국은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개혁을, ‘죽의 장막’에서 ‘특구 설치’로의 개방을 선택했다. 이 역사적인 선택의 결과는 경이로울 정도로 성공적이다. 1978년 3645억2000만위안(약 2165억달러)이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24조9530억위안(약 3조2800억달러)으로 늘어나, 독일(3조2972억달러)에 이어 세계 4위로 올라섰다. 연평균 9.8%의 엄청난 성장 속도다. 1978년 224.3달러였던 1인당 GDP는 지난해 2487.3달러로 29년 만에 11.1배 늘었다.

    덩치만 커진 게 아니다. 1978년 12월 개혁개방을 선언한 데 이어 1992년 10월 중국 공산당 제14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공식화했다. 또 2001년 12월엔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해 세계경제의 틀 안으로 들어왔고, 지난해 3월엔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5차 전체회의에서 사유재산과 국유재산을 동등하게 보호하는 물권법을 통과시킴으로써 사실상 자본주의적인 시장경제의 법적 토대를 확실히 마련했다. 경제 부문은 개방과 함께 법적 제도적 개혁이 동시에 차근차근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계속되는 ‘죽의 장막’

    정치 부문 역시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중국 공산당의 지도이념이 새로운 지도부가 구성될 때마다 바뀌고 있다. 1세대 핵심지도자인 마오쩌둥(毛澤東)의 혁명사상, 2세대 핵심지도자인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론, 3세대 핵심지도자인 장쩌민(江澤民)의 3개 대표론, 4세대 지도부의 당 총서기인 후진타오(胡錦濤)의 과학발전관이 그것이다.



    중국 민주화의 향배
    덩은 마오의 계급투쟁론에서 처음으로 탈피했다.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통해 생산력 발전이 우선임을 분명히 했다. 2002년 11월 당 규약에 삽입된 장 전 주석의 ‘3개 대표론’이란 공산당이 선진사회의 생산력(사영기업가)과 선진문화 발전(지식인), 광대한 인민(노동자와 농민)의 근본이익을 대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3개 대표론의 이념에 따라 자본가에게도 공산당의 문이 활짝 열렸다.

    또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던 덩샤오핑의 ‘1개 중심’과 ‘2개 기본점’ 이론도 무너졌다. 1개 중심이란 경제발전을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고, 2개 기본점이란 개혁개방과 4항 원칙을 말한다. 4항 원칙이란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 견지 △사회주의 노선 견지 △인민민주독재 견지 △공산당 영도 견지를 말한다. 하지만 자본가에게도 공산당 입당이 허용됨으로써 장기적으로 인민민주 독재가 불가능하게 된 셈이다.

    지난해 10월 중국 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당장에 오른 후 주석의 과학발전관은 기존의 성장일변도 정책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함과 동시에 사회적 안정을 위해 균등한 분배에도 힘써야 한다는 이론이다.

    점증하는 모순, 격화되는 항거

    그러나 정치사회적 필요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졌을 뿐, 중국 공산당의 기본이념이 바뀐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중국 공산당은 공산당 영도 원칙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공산당의 영구 집권을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서구식 다당제’는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중국은 8개의 중국민주동맹, 구삼(九三)학사 등 8개의 민주당파가 있지만 공산당과 집권 경쟁을 벌이는 정당이 아니다. 이들은 공산당의 보조부대로 공산당의 집권에 참여한다는 의미의 ‘참정 정당’일 뿐이다.

    둘째, 자유선거를 통한 지도자 선출 역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촌장과 촌서기는 직접 선거로 뽑고 있다. 하지만 향·진(鄕·鎭)부터는 일부 실험지역에서만 공산당 서기에 한해 직접 선거가 이뤄지고 있다. 향·진의 정부 수장은 여전히 간접 선출 방식으로 정한다. 결국 민주화의 기본척도라 할 수 있는 국민의 직접 참여에 따른 지도자 선출, 다당제에 따른 정권의 수평 이동 등은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는 셈이다.

    이렇듯 정치적 민주화가 지연되면서 권력에서의 소외, 사회 불평등 심화 같은 문제점도 점증하고 있는 것이 중국의 현실이다. 이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폭동이나 테러, 집단항거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6월28일 구이저우(貴州)의 웡안(瓮安) 현에서는 주민 1만여 명이 시위를 벌였다. 공안국 간부의 아들이 포함된 여중생 강간범 일당을 경찰이 멋대로 풀어줬다는 의혹을 제기한 시위대는 공안국 청사에 불을 질렀고, 이 과정에서 진압경찰의 발포로 주민 1명이 숨지고 15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민주화 방향 둘러싼 사상투쟁

    올해 3월14일 티베트의 수도 라싸(拉薩)에서 시작된 티베트인들의 대규모 독립시위는 중국 정부의 무력 진압에도 불구하고 한 달 남짓 계속됐다. 중국 북서부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에서는 8월 들어서만도 두 차례의 집단 테러가 발생하는 등 소수민족의 항거가 잇따르고 있다.

    중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00년 4만 건이던 집단소요 사건은 2005년 무려 8만7000건으로 늘었다. 5년 만에 주민의 집단소요가 2배 이상으로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중국 정부가 사회 안정을 유지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주민의 집단항거가 지방이나 중앙 정부의 무력화나 통제 불능 상태를 야기하지는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인당 GDP가 3000달러를 넘어서는 내년부터는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서구 학자들은 1인당 소득이 3000~5000달러가 되면 국민의 정치 참여 욕구가 강렬해지고, 이에 따라 사회 동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실제로 한국과 대만 등 아시아의 민주국가들이 1인당 소득 3000~5000달러가 될 때 이런 동란을 겪었다. 중국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동란이다.

    이렇듯 사회모순이 격화되고 주민 불만이 높아지면서, 민주화 지연에 대한 지식인들의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2006년 7월 ‘황푸핑(皇甫平)’이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개혁파 저우루이진(周瑞金·69) 전 런민(人民)일보 부총편집장은 인터넷에 “중국 공산당도 베트남처럼 경선을 통해 총서기를 뽑자”는 파격적인 글을 올렸다.

    그는 2007년 10월 열린 중국 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공산당 지도부를 후보자가 선출자보다 많은 ‘차액(差額)선거’를 통해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은 약간의 차액선거를, 총서기를 비롯한 정치국원과 상무위원, 성 서기는 찬반만 묻는 ‘등액(等額)선거’를 실시하고 있다.

    중국 민주화의 향배

    2007년 10월 열린 제17차 전국대표대회. 중국 공산당의 차세대 지도부를 선출한 이 대회를 앞두고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선거방식 개혁에 관한 다양한 주장이 제기됐다.

    이어 그해 말엔 위커핑(兪可平) 중국 공산당 편역(編譯)국 당대마르크스주의연구소 소장 겸 비교정치 및 경제연구중심 주임이 파격적인 글을 실었다. 그는 중국 공산당 산하 중앙당교가 발행하는 주간 ‘쉐시(學習)시보’에 ‘민주는 좋은 것(民主是·#53165;好東西)’이라는 글을 실어, “민주는 정국 불안정을 초래하고 행정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지만 지금까지 인류가 발명한 제도 중 가장 좋은 정치제도”라며 “의식주가 아무리 좋아도 민주적 권리가 없다면 인류의 인격은 불완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민주가 법제도를 훼손하고 사회질서를 ‘통제불능’ 상태로 만들 수 있지만 이는 민주의 허물이 아니라 정치가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사회불안을 감수하고서라도 민주주의를 실시해야 한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사뭇 혁명적이다.

    또 지난해 말엔 왕자오쥔(汪兆鈞·60) 안후이(安徽)성 정치협상회의(정협) 상무위원이 “경제특구처럼 정치특구를 만들어 언론과 집회의 자유를 허용하고 다당제를 도입해 실험을 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또 “공산당 이외의 다른 정당의 집권을 금지한 ‘당금(黨禁)’을 해제하라”는 요구도 함께 제기했다.

    하지만 민주화라는 큰 틀에 동의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중국이 어떤 방향으로 정치민주화를 이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제각각이다. 이러한 서로 다른 주장은 치열한 사상투쟁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학자들의 주장은 크게 신좌파의 순수 공동체주의와 민주사회주의, 공동체주의 위주+자유주의 가미, 자유주의 위주+공동체주의 가미의 4가지로 요약된다.

    마빈(馬賓) 전 국무원 발전연구센터 고문 등 순수 공동체주의를 지향하는 신좌파는 개혁개방과 시장경제 자체를 부인하고 계획경제 시대로 돌아가자고 주장한다. 이들은 빈부격차와 부패, 환경오염 등 사회모순은 모두 개혁개방에서 비롯된 만큼 개혁개방과 시장경제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셰타오(謝韜) 전 런민(人民)대 부총장 등 민주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부류는 폭력혁명을 부인하고 사유재산제를 인정하면서 스웨덴 같은 북유럽의 복지국가를 이상으로 여긴다.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의 혼합형은 가장 많은 학자의 지지를 받는 주장이다. 이 가운데 위커핑 공산당 중앙편역국 부국장은 유럽처럼 공동체주의 위주로 자유주의가 가미된 형태를, 톈지윈(田紀雲) 전 국무원 부총리는 미국처럼 자유주의를 위주로 하되 공동체주의가 가미된 정치체제를 이상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정부 역시 민주화와 정치개혁을 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올림픽을 앞두고 8월1일 외신기자들과 가진 기자회견에서 “올림픽이 끝나면 전면적인 정치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역시 지난해 2월26일 런민일보에 발표한 ‘사회주의 초급단계의 역사적 임무와 우리나라의 대외정책에 관한 몇 개의 문제에 관해’라는 글을 통해 “민주조치를 확대하고 법치사회를 확립하며 계속 정치체제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층 수준의 제한된 민주화?

    하지만 중국 정부 고위지도자의 이 같은 발언은 당내 민주화나 기층 민주화로 제한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중국 공산당 권력서열 2위인 우방궈(吳邦國)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은 최근 중국 공산당 이론지 ‘추스(求是)’에 발표한 문장을 통해 “중국은 절대로 서방의 정치제도를 그대로 본뜨지 않을 것”이라며 “삼권분립이나 다당제, 양원제 등은 절대로 실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중국 정부가 올림픽 이후 정치 개혁이나 민주화를 추진한다 할지라도 서방 국가가 생각하는 정치구조나 과정에 대한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개혁이 아니라 향·촌(鄕·村) 등 기층에서 매우 제한적인 수준의 민주화 조치에 불과할 것이라는 강력한 암시다.

    이름 공개를 꺼리는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의 한 교수는 “민주화 조치가 사회안정을 깨고 동란을 유발해서는 안 된다는 게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가장 근본적인 요구라는 점에서 중국의 민주개혁은 돌다리도 두드려 건너는 식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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