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뒤, 나는 그 ‘프리 세일’ 기간을 놓쳤다. 매장에 자주 가지 않는 바람에 비정한 샵마들이 내게 전화를 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프리 세일’의 의미가 없었다. 세일 시즌이 다른 해보다 훨씬 일렀고, 콧대 높게 ‘NO SALE’을 외치던 브랜드들이 세일 중에서도 가장 ‘막세일’에 해당하는 ‘패밀리 세일’을 남발했기 때문이다. 이건 부정적인 ‘사인(sign)’이다. 불경기에 가장 둔감하다는 럭셔리 패션계도 찬바람을 느껴 이미지에 금이 가는 것을 각오하고 현금 확보를 위해 큰 폭의 세일을 단행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인리히 법칙’처럼 참사의 조짐은 지난 여름부터 나타났다. 2008년 9월 이듬해 봄여름의 옷을 보여주는 패션위크가 세계 4대 도시에서 열렸을 때 유럽 디자이너들은 클래식하고 칙칙한 옷들을 선보였다. 여기저기에서 경제 불안 요소들이 터져나올 때였다. 그러나 이번 위기의 진원지가 된 뉴욕의 디자이너들은 열대의 꽃처럼 화려하고 빛나는 옷들을 선보여 ‘철없다’는 비아냥을 들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유럽과 미국의 소비감소를 잊게 할 만큼 러시아와 아시아 부호들의 씀씀이는 입이 쩍 벌어질 만큼 컸다. 샤토페트뤼스 같은 최고가 와인은 없어서 못 팔았다. 구찌가 소속된 럭셔리그룹 PPR의 프랑수아 앙리 피노 회장은 “부자들은 언제나 존재하게 마련”이라며 낙관했다.
11월이 되자 불황은 도미노처럼 전세계로 확산됐다. 국내 브랜드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고, ‘맥럭셔리’라는 대중적 럭셔리 브랜드들은 매장 수를 대폭 줄였다. 그러나 최상위층에 해당하는 ‘위버럭셔리’ 브랜드들의 국내 매출 상승세는 꺾이지 않았고, 일부 브랜드들은 일본 관광객들 덕까지 봤다. 한 ‘위버럭셔리’ 브랜드 홍보담당자는 “경기가 안 좋을수록 위버럭셔리는 더 잘돼왔다”며 우아한 미소를 지었고, 백화점 관계자는 “럭셔리 없으면 지금 백화점은 버티기가 어려운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다국적 럭셔리 그룹들 주가는 반토막이 나 있는 상황이었다.
연말의 상황은 앞서 말한 대로다. ‘위버럭셔리’ 브랜드들이 패밀리 세일에 들어갔고, 할인판매도 하지 않던 브랜드들이 아웃렛에 들어가는 바람에 아웃렛이 뜻밖의 호황을 누리게 됐다는 소식도 들린다. 매년 누가 더 비싼 코트를 내놓는지를 두고 경쟁을 벌이던 모피 브랜드들은 모피 사용을 줄여 가격을 내린 디자인을 권하고 있다. 패션쇼와 VIP들을 위한 파티가 취소되는 바람에, 페라리와 람보르기니가 길거리에서 뒤엉켜 붕붕거리는 장관을 구경할 기회도 사라졌다.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최상위 부자들도 허리띠를 졸라맨다’는 기사에 따르면 불가리 그룹의 최고경영자가 최근 요트를 팔고 “나는 더 검소해졌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기사는 일부 럭셔리 브랜드들은 여전히 대형 매장을 열고 있으며 3만달러짜리 신상 악어가방도 선보이지만, 적어도 공공연히 돈을 펑펑 쓰는 부자 쇼퍼홀릭들은 사라진 듯하다고 전했다. 여기엔 호화 제트기를 타고 돈을 꾸러 다니다 비난을 산 회장님들의 영향도 컸던 것 같다(‘사기극’의 냄새가 짙게 나긴 하지만).
대기업 회장에서 보잘것없는 쇼퍼홀릭까지 쓰나미를 피해 모두‘엎드려’를 외치고 있는 가운데, 평소 사치품업계 진출을 노리던 이들은 싸게 매물로 나온 브랜드들을 합병하기도 하고 럭셔리 매거진의 라이선스를 사들여 화제가 되기도 한다.
이들은 ‘쓰나미의 속성은 지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쓰나미 후 우리는 어떤 광경을 보게 될까. 2009년 말엔 설레는 마음으로 쇼핑리스트를 쓰면서 겨울 세일을 기다리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