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호

연희동 소상공인 제로 웨이스트 운동 ‘유어보틀위크’

“좋은 일 해 보자고 시작했는데 손님이 외려 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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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0-12-0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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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로웨이스트]

    • 카페 한 곳에서 대형마트로 퍼진 일회용품 감축

    • ‘일회용품 제로’ 카페 보틀팩토리 앞장

    • 카페, 음식점, 소매점 50여 곳 참여

    • 게임처럼 랭킹시스템 도입 참여 독려

    • 소비자가 일회용품 덜 쓰는 환경 만들자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쌀가게 경복상회는 올해 처음 유어보틀위크에 참여했다. [박해윤 기자]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쌀가게 경복상회는 올해 처음 유어보틀위크에 참여했다. [박해윤 기자]

    “좋은 일 해 보자고 시작했는데 손님이 외려 늘었습니다.” 

    ‘유어보틀위크’에 참여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경복상회 김형진 대표(51)의 말이다. 경복상회는 쌀가게다. 외관이 심상찮다. 쌀가게엔 보통 쌀 포대만 잔뜩 쌓여 있다. 이곳은 다르다. 병에 담긴 곡물이 종류 별로 창가에 늘어서 손님을 맞는다. 가게 밖에서 곡물을 직접 볼 수 있는 구조다. 가게에 들어오면 천으로 된 주머니가 걸려 있다. 이 주머니를 사서 쌀을 필요한 만큼 직접 담아갈 수 있다. 곡물을 담을 용기를 집에서 가지고 왔다면 그곳에 곡물을 담아 사 갈 수도 있다. 

    김 대표는 “유어보틀위크 참여 전에는 도매 손님만 가게를 찾았다. 이제는 쌀이나 곡물을 소량으로도 사 갈 수 있으니 주변의 1인 가구 손님도 생겼다. ‘직접 쌀이나 곡식을 계량해 담아갈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며 가게를 찾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유어보틀위크는 연희동 일회용품 제로카페 보틀팩토리를 중심으로 2018년 시작한 행사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게 목적이다. 일회용품 배출을 줄이는 행사는 보통 소비자의 행동 변화를 촉구한다.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를 사용해라’ ‘일회용 플라스틱 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해라’라고 권고하는 방식이다. 

    유어보틀위크의 주인공은 소상공인이다. 가게 주인들이 환경을 먼저 바꿔 소비자가 다회용기를 들고 와 음료, 음식, 쌀, 채소 등을 사 갈 수 있게 했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자고 권고하기 전에 덜 쓸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다. 올해 11월 7일~30일 열린 유어보틀위크에는 연희동 일대 50여 개 가게가 참여했다. 



    신동아는 2020년 9월부터 재활용 독려와 재활용 불가 폐품 배출 감소를 위해 ‘제로웨이스트’ 관련 기사를 생산하고 있다. 그 중 플라스틱에 관한 기사를 보고 보틀팩토리에서 취재 요청을 해 왔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소상공인들이 모여 플라스틱 배출량 감축 운동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11월 19일 보틀팩토리를 찾았다.


    카페 한 곳에서 대형마트로 퍼진 일회용품 감축

    경복상회 내부에 붙어 있는 다회용기에 곡물을 담아 계산하는 방법.

    경복상회 내부에 붙어 있는 다회용기에 곡물을 담아 계산하는 방법.

    정다운(41·여) 보틀팩토리 대표는 “‘유어보틀위크는 어떻게 하면 일회용 플라스틱을 덜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한 행사”라고 밝혔다. 정 대표는 “일회용품 사용량을 줄이려면 소비자 의식만큼이나 마주하는 환경이 중요하다. 일회용품 없는 카페인 보틀팩토리를 통해 실험을 시작했다.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빌려주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텀블러 대여 서비스를 낯설어 하는 손님이 많았으나 본인 텀블러를 가져오거나 대여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늘었다. 이 실험을 통해 환경이 갖춰지면 소비자들이 플라스틱 사용 감축 운동에 흔쾌히 나선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가능성이 보이자 정 대표는 직접 다른 소상공인을 설득하러 나섰다. 일회용품을 주로 사용하던 카페나 식당이 타깃이었다. 처음에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일부 상인이 소비자들의 참여가 적을 것이라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일회용품 대신 다회용기를 사용할 때 소비자가 받는 혜택이 없어 참여할 사람이 적을 것이라는 우려였다. 2018년 첫 유어보틀위크에는 10개 남짓 가게만 참여했다. 기간도 딱 1주일로 현재에 비해 짧았다. 

    의외로 소비자들은 유어보틀위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인스타그램 등 SNS가 큰 역할을 했다. 소비자들은 다회용기를 사용해 음식이나 음료를 구매할 때마다 사진을 찍어 이를 공유했다. 정 대표는 “매출이 오히려 늘었다며 이듬해에도 참여하겠다는 가게가 많았다. 매해 규모를 늘려 올해는 50개 점포가 참여했다”고 밝혔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대형마트 ‘사러가 쇼핑센터’에 유어보틀위크 관련 패널이 붙어 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대형마트 ‘사러가 쇼핑센터’에 유어보틀위크 관련 패널이 붙어 있다.

    정 대표는 올해도 직접 유어보틀위크 참여 점포를 섭외했다. 음식점과 카페 외에도 쌀가게, 두부 가게, 반찬 가게는 물론이고 대형 마트인 ‘사러가 쇼핑센터’에도 유어보틀위크 코너가 생겼다. 대형마트의 채소 코너에는 보통 비닐봉지와 저울이 구비돼 있다. 소비자가 비닐봉지에 채소를 담아 무게를 재면 가격이 표시된 스티커가 나온다. 이를 비닐봉지에 붙여 계산대에 가져간다. 

    유어보틀위크를 통해 채소를 비닐봉지에 담지 않아도 무게 측정 및 가격 확인 스티커 발급이 가능해졌다. 비닐봉지에 넣지 않은 채 채소 무게를 달아 장바구니나 다회용 용기에 담아가는 것이다. 채소 코너 주변에는 일회용품을 줄여야 하는 이유, 다회용기 사용방법, 유어보틀위크에 대한 설명 등이 적힌 패널이 장식돼 있었다.


    게임처럼 랭킹시스템 도입 참여 독려

    유어보틀위크에 참여한 카페라면 어디서든 텀블러를 빌리고 반납할 수 있다.

    유어보틀위크에 참여한 카페라면 어디서든 텀블러를 빌리고 반납할 수 있다.

    유어보틀위크에 참여한 모든 카페에서 텀블러를 빌릴 수 있다. 정 대표가 직접 디자인한 텀블러다. 투명한 플라스틱 소재로 만든 컵에는 파란색 뚜껑이 달려 있다. 일회용 컵과 비슷하게 생겼다. 빌린 텀블러는 유어보틀위크 참여 카페 중 어느 곳에 반납해도 무방하다. ‘보틀클럽’(Bottle Club)이라는 이름의 텀블러에 부착한 칩으로 텀블러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사용한 텀블러는 세척 및 살균을 거쳐 다음날 다시 각 카페에 배달된다. 

    유어보틀위크는 소비자 참여를 독려하고자 랭킹 제도를 도입했다. 다회용기를 들고 매장을 방문해 물건을 구입한 내역을 ‘제로클럽’(ZERO CLUB)이라는 앱에 기록할 수 있다. 구매 기록에 따라 포인트를 받는다. 다회용기 사용이 보편화하지 않은 품목을 파는 가게일수록 높은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 포인트가 높아질수록 제로클럽 앱 안에 그려진 나무가 자란다. 

    정 대표는 “포인트를 모아 현금화하거나 마일리지로 사용할 수는 없으나 독려 효과는 확실하다. 주민들이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각자 점수를 자랑하며 축제처럼 유어보틀위크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락앤락에서 ‘락앤락커’에게 지급한 다회용기.

    락앤락에서 ‘락앤락커’에게 지급한 다회용기.

    집에 들고 다닐만한 다회용기가 없는 사람도 유어보틀위크에 참여할 수 있었다. 밀폐용기 제조사 락앤락(Lock & Lock)이 제품 협찬에 나선 덕분이다. ‘락앤락커’라는 명칭의 락앤락 서포터즈가 되면 다회용기를 무상으로 받을 수 있다. 물론 숙제가 있다. 유어보틀위크 참여 가게에서 다회용기를 이용해 물건을 구입하고 이를 인스타그램에 공유해야 한다. 

    올해 유어보틀위크는 제로클럽 집계 기준 4주간 130여 명의 동네 주민이 참여했고 750여 건의 일회용품 사용을 줄였다. 유어보틀위크가 끝나도 일회용품 사용 절감 운동은 멈추지 않는다. 제로클럽 앱으로 계속 포인트를 쌓을 수 있다. 


    정다운 보틀팩토리 대표.

    정다운 보틀팩토리 대표.

    정 대표는 힘닿는 데까지 유어보틀위크를 이어갈 계획이다. 

    “2015년부터 플라스틱 일회용기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다양한 실험을 통해 배출 저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어보틀위크는 그 같은 실험의 일환이다. 과도한 일회용품 사용이 문제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려면 당장 내 주변에서부터 일회용품 사용을 줄일 수 있게 돕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섭외와 홍보 등의 과정이 힘들지만 내년에도 유어보틀위크를 개최할 예정이다.”





    박세준 기자

    박세준 기자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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