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일 사이 영남 지역 7차례 방문… “포항의 사위”
지역 숙원사업 현장, 전통시장 찾아 방역·민생 행보
총리실 직제 개편, 부동산·경제 18명 자문단 구축
“안녕하세요 정세균입니다”…지하철 첫 정치인 방송
‘먹방’ 토크쇼 진행하며 대국민 접촉면 넓히기
6·25전쟁 70주년 유공자 기념메달 총리 인사장 발송
SK계 세 결집 관측, 대선 행보·서울시장 차출설 솔솔
총리실 “철없는 사람들이 던지는 말… 방역에 집중”
정세균 국무총리가 11월 7일 경북 포항시 죽도시장을 방문해 상인들을 격려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제공]
정치인으로서는 처음 지하철 안내 방송을 내보내고, ‘먹방’ 토크쇼 사회자로 출연하는가 하면, 국무총리비서실 직제를 개정해 18명의 특별보좌관·자문위원 진용을 구축하는 등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역량과 인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대선 후보 지지도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른바 ‘법검(法檢) 충돌’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동반 퇴진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 등 잠재적 대권주자들과 차별화를 시도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포항의 사위’ 환영하는 플래카드 내걸렸다”
정세균 국무총리(오른쪽)와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12월 4일 경남도청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정 총리는 앞서 10월 부산(16일), 경북 안동(30일)을 찾은 데 이어 11월에는 경북 포항(7일), 부산(11일), 울산(14일), 대구(28일) 등 잇달아 영남권을 방문했다. 부산에서는 부산시민의 숙원사업으로 꼽히는 부산항 북항 재개발 사업 현장을 찾아 지원을 약속하면서 “(북항 재개발 사업은) 오랜 숙원사업이자 부산 대개조 사업의 핵심으로, 부산항 개항 이후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 것”이라며 부산시민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앞서 포항에서는 2017년 포항 지진 피해 현장인 북구 흥해읍 대성아파트 단지를 방문해 지진 피해 관련 전폭적인 복구 지원을 약속했고, 포항공대 포항방사광가속기연구소와 포항 죽도시장을 찾아 연구원들과 상인들을 격려했다. 정 총리는 이날 “(포항에 오니) 처남 친구도 찾아와서 알은체해 주셨다. 고향을 방문한 느낌”이라며 ‘포항의 사위’를 내세우며 친근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정 총리 부인인 최혜경 여사는 흥해읍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홍준 선생의 딸이다.
울산에서는 해수자원화기술 연구센터 준공식에 참석했고, 대구에서는 이동식 협동로봇 규제자유특구(성서산업단지)를 찾아 대구 미래 먹거리를 챙기고 지역 의료인들과 조찬을 하며 격려하는 등 경제와 방역을 챙기는 데 주력했다.
대구·경북 지역의 한 언론인은 “정 총리가 잇달아 영남 지역을 찾아 경제 살리기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이 생긴 게 사실이다. 흥해읍 아파트 단지에는 ‘포항의 사위’(정 총리)를 환영하는 플래카드도 내걸렸다”며 “영남권을 잇달아 방문하고 대선 후보들이 자주 찾는 포항 죽도시장을 방문하는 걸 보고 ‘민주당의 제3 후보로서 뜻(대권 도전)을 드러내고 있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래 먹거리 공부, 대국민 접촉면 넓히기
12월 11일 방영된 KTV ‘어서 오세요, 총리 식당입니다’ 방송 화면. [KTV국민방송 유튜브채널 영상 캡처]
정치권에서는 “그린뉴딜과 디지틸경제는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 핵심 분야이고, 부동산 분야는 현 정부 최대 아킬레스건인 만큼 마치 유력 대선후보의 정책 특보단을 갖춘 모습”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광폭 행보는 방송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 총리는 11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매주 금요일 부처 장관을 초대해 식사 대접을 하며 정책 현안을 다루는 KTV ‘어서 오세요, 총리 식당입니다’(총리식당) 토크쇼 진행을 맡았다. 정책 홍보라고 하지만 총리가 직접 토크쇼 진행자로 전면에 나서는 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방송에서 정 총리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좋아하는 떡볶이와 김밥 세트를 준비해 ‘1호 손님’을 맞았다. 강 장관과 미국 바이든 대통령 시대의 한미동맹 등 외교 현안을 다루면서 평소 정 총리의 국가관과 공직관을 들려주는 등 기존 대담 프로그램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한 정부 부처 과장은 “부서 직원들과 ‘총리식당’ 예고편을 봤다”며 “먹방’을 하면서 정책을 홍보하는 게 ‘신선하다’는 반응과 함께 식사를 대접하는 정 총리의 인간적 모습에 예능 요소를 가미한 방송이어서 ‘KTV를 활용한 셀프 홍보’라는 지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안녕하세요 정세균입니다”…지하철 첫 정치인 방송
2020년 11월 16일부터는 지하철 2호선 서초·삼성·잠실나루역 등 10개 역에서 또 다른 ‘정세균 방송’이 나와 시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안녕하세요. 국무총리 정세균입니다”로 시작하는 13초 분량의 지하철 방송은 “음식 덜어 먹기, 위생적인 수저 관리, 종사자 마스크 쓰기, 모두가 건강해지는 세 가지 습관입니다. 함께 지켜주세요”라고 당부하는 식사문화 개선 캠페인. 지금까지 영화배우 안성기, 방송인 샘 해밍턴, 걸그룹 레드벨벳 등 연예인들이 지하철 안전 승차 캠페인 등 다양한 메시지를 방송으로 내보냈지만 정치인의 방송은 처음이었다. 따라서 정 총리가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거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최고위원은 “뜬금없이 지하철에서 정세균 국무총리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노림수가 있는 행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신동아’ 취재 결과, ‘정세균 지하철 방송’은 2020년 6월 9일 총리 주재 식품안전정책위원회 회의에서 식생활 개선 홍보 방안으로 논의됐는데, 이후 농림축산식품부가 광고대행사를 통해 서울지하철 입간판과 전광판 광고, 정 총리 음성광고 등을 의뢰한 것으로 확인됐다. 11~12월 2개월간 광고비용은 3000만 원가량. 당초 이 방송은 11월 16일부터 12월 22일까지 방송될 예정이었으나 논란이 일자 농림부는 방송 4일 만인 11월 20일에 대행사에 ‘음성 교체’를 요청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식사문화 개선 홍보 방송이 ‘신선하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뜬금없는 공공 잔소리’ ‘지하철 방송이 선거용 방송이냐’는 비판이 일부 있었기 때문이다. ‘정세균 지하철 방송’을 기획한 농림부 디지털소통팀 관계자는 “난감하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에 총리이자 중앙안전재난대책본부장이 식생활 개선 방송을 하면 시민들 반응이 좋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반대 목소리가 많아 우리도 놀랐다. (캠페인 방송이) 정치적으로 읽힐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농림부가 의뢰한 대행사로부터 음원 삭제 요청을 받고) 11월 30일 지하철 방송에서 정 총리 방송 음원을 삭제했는데 누락되는 경우가 있어 일부 역에서는 지금도 방송이 나올 수 있다”며 “12월 16~30일에는 정 총리 음성을 여자 어린이 음성으로 바꿔 캠페인 방송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각 지하철 라인마다 광고대행사가 있는데 2호선 담당 대행사가 농림부 광고를 의뢰해 내부 광고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쳤을 뿐 정치적 고려는 없었다”고 부연했다.
‘영웅에게’ 보낸 ‘총리 메달’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가 최근 참전유공자에게 보낸 메달과 정세균 국무총리 인사장. [독자 제공]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과거 6·25 참전용사에게 수여하던 ‘평화의 사도메달’을 국가보훈처장이 수여한 적이 있지만 이번 메달은 70주년 기념사업회가 주관한 만큼 위원장(정 총리) 명의의 인사장이 동봉된 것”이라며 “메달이 한꺼번에 전달되면서 그런 말이 나온 거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정 총리의 행보를 차기 대선과 연관해 해석하는 시각은 최근 ‘어대낙’(어차피 대선 후보는 이낙연)으로 불리던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지지도가 흔들리는 데다 당내 이른바 SK(정세균)계 의원들의 주축인 광화문포럼이 ‘시동’을 건 것과도 무관치 않다.
광화문포럼은 정 총리가 17대 국회 때 만든 공부 모임 ‘서강포럼’ 후신으로, 21대 국회 들어 참여 의원이 50여 명으로 늘었다. 10월부터 모임을 재개하면서 ‘정 총리가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코로나19 재확산세 속에 정 총리의 움직임이 정치 행보로 읽히는 건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조윤재 국무총리실 소통총괄비서관은 “식생활 개선 관련한 지하철 방송은 농림부에서 총리에게 요청해 녹음을 했는데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오해를 사지 않도록 방송을) 내리라고 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는 “올해 6~9월은 정 총리가 수해 현장을 중심으로 지역을 다녔는데 영남 지역은 수해 현장이 아니어서 11월에 집중적으로 방문했을 뿐 전국적으로 방문 지역을 안배하고 있다”며 “지역에서 방역 대책을 지휘하고, 그곳 단체장들의 요청으로 두세 개 일정을 함께 소화하다 보니 그런 말이 나오는 거 같다”고 했다. ‘서울시장 선거 차출설’은 “정치공학적으로만 보는 철없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던지는 말”이라며 “대선 등 차기 정치 일정도 코로나19 방역 성공에 달린 만큼 현재는 코로나 방역에 집중할 뿐”이라고 말했다.
배수강 편집장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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