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디자인 때부터 감염 위험 차단해야
본관·신관·별관 복도로 이은 병원, 감염에 취약
식물원처럼 꾸민 중환자실 환자 회복에 도움 될 것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앞으로 또 온다
‘접촉’ 필요 없는 자율주행 침대와 휠체어
세계 10위 경제대국 걸맞은 최고 병원 만들자
김영훈 고려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박해윤 기자]
자율 주행 침대가 환자를 이동시키는 병원.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널리 쓰이는 병원.
병 치료뿐 아니라 삶의 회복까지 돕는 ‘토털 휴먼 케어’ 병원.
- 책 ‘나는 미래의 병원으로 간다’ 중에서
김영훈 고려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이 꿈꾸는 미래 병원 모습이다. 김 원장은 “의료가 단순히 병을 다루는 ‘기술’에 그쳐서는 안 된다”며 “인간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해주는 ‘아트’이자 ‘문화’로 의료의 기능과 역할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4년 고려대 안암병원장을 지낸 그는 2019년부터 현재까지 고려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을 맡아 고려대학교의료원(고려대의료원)을 세계 초인류 의료기관으로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최근에는 ‘나는 미래의 병원으로 간다’는 제목의 책을 펴내고 ‘미래 병원’ 건립을 위한 사령탑 구실을 하고 있다. 김영훈 부총장 겸 의료원장을 2월 8일 서울 성북구 정릉동 메디사이언스파크에서 만났다.
메디사이언스파크는 고려대의료원을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개발 역량을 갖춘 초일류 의료기관으로 도약시키기 위해 김 원장이 심혈을 기울여 조성한 곳으로,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바이오벤처 기업이 여럿 입주해 신약 개발 및 의료기구 연구를 한다. 감염병을 조기에 극복하기 위한 백신혁신센터도 만들었다.
디자인 때부터 감염 위험 차단
‘미래 병원’은 지금의 병원과 어떻게 다른가.“병원 지으려 땅을 팔 때(그라운드 브레이킹)부터 환자 중심으로 디자인돼 있어야 스마트 병원, 미래 병원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아직 현실에 없는 병원이라 그렇다. 앞으로 우리가 구현해 나갈 말 그대로 ‘미래’의 병원이다.”
김 원장은 ‘본관’ ‘신관’ ‘별관’을 예로 들어 미래 병원의 구체적 모습을 설명했다.
“대형 병원에 가보면 본관·신관·별관 건물이 따로 있고, 긴 복도로 서로 연결된 것을 볼 수 있다. 처음 본관만 지었다가 나중에 필요에 의해 신관·별관을 지어 연결한 것이다. 환자가 그런 병원에 처음 가면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해한다. 더 큰 문제는 감염에 아주 취약하다는 점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미로처럼 건물이 긴 복도로 연결돼 있는 병원은 환자는 물론 그곳에서 일하는 의료인에게도 감염에 치명적일 수 있다. 미래 병원은 지금의 병원 구조가 갖고 있는 한계와 감염에 대한 위험을 디자인할 때부터 차단한 병원이다.”
현재 종합병원 6인실은 좌우로 침대 3개를 나란히 배치한 형태여서 ‘창문’에 접해 있는 침대는 2개뿐이다. 미래 병원은 싱가포르 앵텡퐁(Ng Teng Pong)병원처럼 디자인 때부터 모든 침대가 모두 창문과 면하도록 설계해 햇빛도 잘 들어오고 환기도 용이하도록 한다는 게 김 원장의 설명이다.
“좁은 공간에 창문도 없이 길쭉하게 지어진 지금의 병원 건물은 바이러스가 가장 좋아하는 형태다. 미래 병원은 식물원처럼 채광도 잘되고 습도 조절과 환기가 용이한 구조를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만약 중환자실을 식물원처럼 꾸민다면 환자 회복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나.”
김 원장은 “지금의 중환자실은 멀쩡한 사람도 한 달 정도 누워 있으면 섬망(망령이 든 것처럼 헛소리를 하고 정신적 착란에 빠진 상황)에 빠질 정도로 중환자를 만드는 시스템”이라며 “미래 병원 중환자실은 환자와 의료인 모두를 위해 가장 쾌적한 공간으로 꾸미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환자실 공기를 반도체 공장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직접 반도체 공장을 다녀왔다고 덧붙였다.
“병원이 반도체 공장 수준의 에어 시스템을 갖춰 공기질을 높인다면 환자의 회복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은 앞으로 또 올 가능성이 크다. 팬데믹이 일상이 될 시대를 대비해 지금부터 병원을 창의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김 원장은 깨끗한 공기의 질 못지않게 소독물과 폐기물이 섞이지 않도록 물류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독물은 천장을 통해 오염될 염려 없이 공급받고 사용 후 폐기물은 밑으로 잘 빠지도록 병원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폐기물 만진 손으로 소독물을 만질 위험성이 있다. 이런 점도 병원 디자인 때부터 바꿔나가야 한다.”
인재 몰리는 K-메디칼, 세계 선도할 것
미래 병원 선구자 김영훈 원장은 “병원은 직관적이어야 한다”며 몇 가지 구조를 예로 들었다.“자율주행 로봇 침대와 휠체어가 운행하는 미래 병원에서는 접촉에 따른 감염 가능성을 현저히 낮출 수 있다. 접촉 없이 문이 열리고, 수술 방에 환자가 다가오면 무영등(수술 시 환부를 잘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조명기구)이 자동으로 켜지도록 해 누구든 편리하고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미래 병원이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감염 걱정 없는 안정적 시스템과 인프라를 병원이 먼저 구축하면 우리 사회는 물론 세계 각국에도 적용 가능한 롤 모델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같은 선도적 시스템과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많은 재원이 필요할 텐데….
“고려대의료원이 자율주행 침대, 에어 공조시스템 같은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적용할 수 있는 열린 플랫폼 구실을 하려고 한다.”
김 원장은 “K-팝, K-푸드, K-뷰티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앞으로는 훌륭한 인재가 많이 모여든 의대에서 세계 무대를 선도할 K-메디칼이 나올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고려대의료원을 위시한 우리나라 병원이 먼저 선도적 시스템과 인프라를 구축하고, 좋은 환경에서 치료받은 환자가 더 빠르게 건강을 회복한다는 데이터가 축적된다면 K-메디컬이 세계적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내가 대학을 다닌 1970년대와 세계 10위 경제대국이 된 지금의 한국의 위상은 크게 다르다. 과거에는 우리가 선진국을 따라 하거나 배우는 처지였다. 지금은 많은 국가가 우리를 롤 모델로 여겨 배우려 한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는 점을 자각하고 그에 걸맞은 무게감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세계 최고가 되고자 더 노력해야 한다.”
수년 전부터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트렌드 키워드는 ‘스마트 시티’다. 첨단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해 시민이 편리하고 쾌적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똑똑한 도시라는 의미다. 김 원장은 스마트 시티가 제 구실을 하려면 미래 병원이 공동체의 삶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플랫폼 구실을 충실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한 도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 시티의 7대 혁신 요소는 교통, 헬스케어, 교육, 에너지, 거버넌스, 문화, 일자리이다. … 중략 … 헬스케어 항목에는 원격 진료, AI 기반 스마트 문진, 스마트 응급 호출, 드론 활용 긴급 구조 등이 담겨 있다. 모두 필요한 것이지만 첨단 시설을 갖춘 대형 종합병원이 콘트롤 타워 구실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스마트 시티가 된다. 갑작스럽게 몸이 아플 때 스마트폰이 자동으로 119에 연결되고, 구급차가 5분 이내에 온다 해도 그 도시에 병원이 없어 이웃 도시로 가야 한다면 ‘스마트’한 상황이 아니다. - 책 ‘나는 미래의 병원으로 간다’ 중에서
환자 중심으로 의료진이 움직이는 시스템
김 원장은 “미래에는 대형 스마트 병원을 중심으로 하나의 주거 단지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병원을 중심으로 문화시설과 교육시설, 도서관과 박물관, 쇼핑센터 등이 들어서 그곳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가까운 장래에는 스마트 병원이 질병을 예방하고, 조기에 병을 발견해 치료하는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일상에서 건강하고 쾌적한 삶을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핵심 기능을 미래 병원이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미래 병원은 몸이 아파 병을 치료하러 가는 곳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평소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역할을 미래 병원이 하게 될 것이다.”
김 원장은 국내 종합병원을 스마트한 미래 병원으로 바꾸려면 우선 병원 문화가 환자를 중심으로 최적의 치료 프로세스가 가동되는 곳으로 변모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학교가 학생 중심으로 운영돼야 하듯 병원은 환자가 중심이다. 지금까지 대형 병원은 환자 중심이라기보다 의료인 또는 공급자 중심으로 운영됐다. 병원에 온 환자가 진료과와 검사실을 찾아 이리저리 이동해야 한다. 다행히 병원 시스템을 바꿔나가려는 움직임이 몇몇 병원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미래 병원에서는 환자가 한 곳에서 기다리면 경험 많은 의사가 먼저 찾아와 진찰한 뒤 필요에 따라 이비인후과, 안과, 심장내과 등 각 분야 의사들이 환자에게 와서 진료하고 최선의 치료 방법을 결정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환자를 중심에 놓고 의료진이 움직이는 시스템이 미래 병원의 모습이다.”
김 원장은 “첨단 정보통신 기술이 도입된 미래 병원은 AI와 로봇의 지원을 받아 데이터 중심으로 환자가 최적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병원에서 도입한 IT는 주로 입원 수속과 병실 배정, 각종 원무 처리 등 병원 행정 지원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미래 병원에서는 의사의 진료 행위에도 첨단 정보 통신 기술이 활용될 수 있다. 환자 의료 기록을 DB화하고, 유사 질병을 앓는 다른 환자의 방대한 의료 기록과 대조해서 질병을 진단하고 최적의 치료법을 도출해 내는 것이다. 미래 병원은 디지털 헬스 케어 장비의 혁신을 촉발시킬 뿐 아니라 광범위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신약 개발의 효율성과 적시성을 높여 신약 개발에도 획기적 전기를 가져올 수 있다. - 책 ‘나는 미래의 병원으로 간다’ 중에서
김 원장이 그리는 미래 병원, 스마트 병원이 하루아침에 현실화되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공간과 비용의 문제는 기본이고 무엇보다 제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한국의 의료 현실은 아직 원격의료조차 원활하지 못한 실정이다.
“미래를 기다려서는 안 되며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김 원장은 책 ‘나는 미래의 병원으로 간다’에서 프랑스 사상가 시몬 베유의 말을 상기시키며 미래 병원으로 가기 위한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강조했다. 혼자 꾸는 꿈은 꿈에 머물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한다. 그가 그리는 미래 병원, 스마트 병원을 현실화하기 위한 다음 스텝이 기대된다.
구자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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