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자, 가지, 옥수수, 총각무…. 손바닥만하던 텃밭이 이제 여기서 거둔 갖가지 채소를 이웃에게 나눠줄 만큼 넉넉해졌다. 100여 평의 텃밭에는 그의 보물이 가득하다.(좌) 대학 시절에 만난 아내는 삶의 동반자이자 음악적 동지. 함께 정원을 가꾸는 재미가 쏠쏠하다.(우)
그는 전원생활을 하면 할수록 자연의 소중함에 눈이 뜨인다고 했다. 사계절은 물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숲과 미물에 이는 미세한 변화, 하루에도 밤낮으로 달라지는 흙의 온도, 초목의 빛깔…. 상식적인 자연의 변화는 그를 매일 감탄과 감사 속에서 살게 했다.
“자녀 교육 때문에 대부분 도시생활을 선호하지만 도시와 시골의 감성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도시생활하는 제자들에게 시골에서 산책도 하고 한적한 곳에서 낚시도 하도록 권했더니 작품이 한결 여유로워지더군요.”

이 교수가 작곡한 곡을 메조소프라노인 아내 김정희씨가 노래하고 있다.
이 교수는 날 때부터 음악과 가깝게 지냈다. ‘섬집아기’ ‘어머님의 마음’ ‘진짜사나이’ 등을 작곡한 고(故) 이흥렬 박사가 부친. 7남매 가운데 다섯이 음악을 전공했다. 이영조 교수의 부인과 두 자녀 역시 음악을 한다. 집 안에서 쉴 새 없이 울리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가족 몇몇이 모여 뚝딱 연주회를 여는 분위기에서 자란 그는 중학교 시절까지 당연히 음악을 전공하려니 했다고 한다.
“누님 여럿이 음악을 공부해 사실 저는 이과로 진학할까 했어요. 그런데 음악성이 흐르는 피, 환경은 어쩔 수 없나봐요. 자꾸 피아노 소리, 노랫소리에 마음이 가더라고요.”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청년 못지않다. 아직도 새로운 곡을 쓸 때면 입술이 떨려올 만큼 흥분한다. 자신의 삶, 문학, 자연에서 느낀 감상을 악보로 옮길 때가 제일 행복하다.
앞마당과 뒷산에서 대금을 불고 거문고를 뜯는 것도 그의 큰 기쁨이다. 서양 음악을 공부했지만 국악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 피리, 장구, 단소 연주에도 능하다. 그의 작품이 ‘한국의 선율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조명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그 때문일 거다. 국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통역병 시절 만난 미군 사령관의 영향이 컸다.
“통역을 해준 미군 사령관과 국악원에 갔습니다. 사령관이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창(唱) 소리에 대해 묻는데 대답을 할 수가 없더군요. 오히려 우리 음악에 대해 그가 더 해박했습니다.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음악을 등한시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제대 후 국악원에 들어가 국악을 배우기 시작했죠.”
그는 “국악과 서양 연주 형태가 만났을 때 이를 어떻게 예술화할 것이냐가 요즘 가장 큰 고민거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