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점(原點) 사고가 먼저, 대소 완급은 다음
“나 없을 때 우리 집에 가서 침실도 보라”
“비서는 내 가면만 써도 회장인 줄로 알아야”
조직 내 언어를 통일시켜라
1993년 4월 12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건설 현장을 방문한 이건희 회장. [삼성전자 제공]
그의 책 중 ‘먼저 숲을 보자’라는 제목의 글 중 일부다.
“나는 일하고 챙기는 데 나름의 몇 가지 원칙과 습관이 있다. 먼저 목적을 명확히 한다. 보고를 받을 때도 보고의 목적과 결정해야 할 일을 분명히 한다. 다음은 일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파악한다. 본질을 모르고는 어떤 결정도 하지 않는다. 본질이 파악될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물어보고 연구한다. 나는 삼성의 임직원들에게 ‘업(業)의 개념’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당신이 하는 일의 업의 개념이 무엇이냐’ 물으면 대부분 사람들이 당황한다.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자기가 하는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원점 사고가 먼저, 다음은 대소완급
그는 본질에 닿으려고 노력했던 상상력을 ‘원점(原點) 사고’라고 명명했다. 그의 책 중 ‘원점에서 생각하자’라는 글의 일부다.“모든 사물과 일을 대할 때 원점사고를 갖고 새롭게 바라보아야 비로소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프로 골퍼들이 슬럼프에 빠지면 골프채 잡는 법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일본 출장길에 들었던 혼다(本田) 회장 이야기는 원점 사고가 갖는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 준다. 혼다가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려고 할 때 혼다 회장은 간부들을 모아놓고 최대한 원가를 낮출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일주일이 지난 뒤 간부 대표가 ‘경쟁사인 도요타 자동차를 분해해 모든 부품마다 혼다가 더 싸게 납품받을 수 있는 가격을 적용해보니 1%~2% 원가 절감이 가능하다’는 보고를 했다. 그러자 혼다 회장은 ‘자동차가 별것인가? 오토바이 두 대를 쇠파이프로 연결시키고 거기다 뚜껑을 덮은 것 뿐인데…’라고 중얼거리며 회의장을 떠났다고 한다. 간부들은 큰 충격을 받고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검토했다고 한다. 과연 이 부품이 필요한지, 규격을 바꿀 수는 없는지 원점에서 생각한 결과 상당한 가격 경쟁력을 갖춘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원점 사고’는 획기적인 개선과 대안 제시에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오늘날처럼 변화가 일정한 궤도 없이 빨라지는 시대에 과거 지향적 사고는 후퇴와 실패를 의미한다. 일상생활에서부터 모든 것을 뒤집어 보는 원점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고인이 말하는 원점 사고를 하려면 숱한 가지치기를 통해 한곳으로 깊게 들어가야 한다. 이는 기존에 사람들이 옳다고 말하는 것들, 최선이라고 하는 기준들을 모두 ‘생각의 테이블’에 올려 놓고 과연 이 생각이 맞는지를 곰곰이 따지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고인의 말처럼 ‘궤도 없는 변화’가 지배하는 지금 시대야말로 ‘원점 사고’에 대한 깊은 숙고가 필요한 시점 아닐까.
이건희 회장은 일의 목적과 본질이 파악되면 ‘숲을 먼저 보고 나무를 보려는 노력을 습관화시키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 대목에서 동서양의 주소 표기법 차이를 예로 들며 이렇게 말한다(책에서 인용).
“동양과 서양은 크게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주소 표기법이다. 우리는 국가, 시·도, 시‧군‧구 읍‧면‧동 순으로 전체에서 부분으로 접근하고 있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을 좋아한다. 일의 대소완급(大小緩急)을 구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일의 본질에 바탕을 두고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것이다. 몇 년 전, 어떤 공장을 방문했을 때 건물은 한창 건설 중인데 조경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공장을 세우는 것이 최우선적으로 할 일인데 정원을 먼저 가꾸고 있다는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 일이다. 대소완급을 구분하지 못한 대표적인 경우다.”
“나 회장인데요…”
2006년 9월 19일 이건희 회장이 뉴욕 맨하탄에 있는 삼성체험관을 방문해 전시된 최신 휴대폰을 직접 시현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기외호 전 코리아헤럴드 사장은 1977년부터 1980년까지는 이병철 선대 회장 비서팀장을, 이건희 회장 취임 초기인 1989년부터 1991년까지는 이건희 회장 비서팀장을 맡았다.
삼성의 경우 비서실장은 비서실과 그룹 계열사를 총괄 관리하는 비서실의 수장이고 비서팀장은 지근거리에서 회장을 보필하는 말 그대로 비서다.
당시에 이건희 회장은 출근하는 날이 많지 않아 수시로 비서팀장을 자택으로 불러 업무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기외호 전 비서팀장은 이건희 회장 취임 초기 유일하게 회장을 일대일로 대면하며 대화를 나눴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말이다.
“회장은 계열사 사장들에게 모든 것을 맡겨놓고 집에서 혼자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삼성그룹이 격동기도 아니었고 하던 사업도 별 차질 없이 운영되던 시절이었다고 할 수 있지요. 돌이켜보면 회장은 미래를 내다보며 삼성의 앞날을 깊게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늘 오후 5시쯤이면 전화가 왔습니다. ‘나 회장인데요, 별일 없으면 집에 들렀다 가소’ 하시는 거예요. 서울 한남동 자택에 가면 홍라희 여사가 ‘오셨어요? 두 분 얘기 나누세요’ 하고 자리를 비켜주시고, 회장님과의 독대가 시작됩니다. 회장님은 잠옷에 파자마 가운을 입고 슬리퍼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으시고 부장인 저는 넥타이를 맨 정장을 입고 대화를 나누는 거였습니다. 속으로 얼마나 초긴장 상태였을지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대화는 빠르면 밤 12시, 늦으면 새벽 1, 2시까지 이어지는 날도 많았다고 한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나눴나요.
“수많은 질의와 업무지시가 떨어집니다. 삼성전자 얘기, 소니 얘기, 동경, 프랑크푸르트, 뉴욕 상황부터 정치 이야기, 사회 돌아가는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이었습니다.
대화라는 게 한사람만 계속 이야기할 수는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회장이 오늘은 무엇을 물을지, 뭘 소재로 대화를 나눌지 예측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할 수 있지요. 어느 날은 제가 좀 안 돼 보였던지 쓱 미소를 지으시면서 ‘삼성 회장의 시간이 얼마나 비싼지 아느냐, 영광으로 알아라’ 이러시는 거예요. 속으로는 ‘저는 죽겠습니다’ 말도 못하고(웃음).”
-술이라도 좀 하셨나요.
“그랬다면 좀 나았을 텐데 회장께서는 술을 전혀 못하는 체질입니다. 공식석상에서 외국인들과 와인 건배할 때 미리 와인 색과 비슷한 음료를 컵에 담아 놓았을 정도였으니까요. 술 대신 당시 제일제당에서 나온 ‘게토레이’ 2리터짜리를 옆에 두고 계속 그걸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셨어요. 하지만 담배는 줄담배를 피우셨습니다. 하루에 네 갑, 다섯 갑을 피우셨으니까 ‘체인 스모커’셨지요. ”
(고인은 88년 5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주량을 묻는 질문에 “맥주 반컵만 마시면 두드러기가 나고 근지럽기까지 하다. 의학적으로는 알콜을 소화하는 효소의 결핍증이라고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비서는 내 가면만 써도 회장인 줄로 알아야”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회장으로부터 뜻밖의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어느 날 ‘비서팀장은 내 가면만 써도 누가 회장인줄 모를 정도로 나와 생각과 행동이 똑같아야 된다. 그래야 제대로 보필할 거 아닌가, 내가 집에서 어떻게 해놓고 사는지 아는가? 나 없을 때 우리 집에 가서 침실도 보라’고 하시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할 정도로 보필에 신경을 쓰라’는 뜻으로만 알고 넘겼는데 정말 하루는 느닷없이 ‘가 봤느냐’고 물으시는 겁니다. 제가 머뭇거렸더니 ‘농담이 아니고 지시’라고 언짢아하시는 표정이 역력해 그날로 바로 한남동 댁 회장 침실을 들어가 보게 되었습니다. 침실 벽에는 텔레비전이 세 대(TV 두 채널과 비디오)가 놓여 있었고 책장은 물론 바닥에까지 각종 책과 자료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침대 네 모서리에는 미국 일본에서 보내 온 엄청난 영상 자료들, 각종 DVD가 마치 울타리라도 친 것처럼 삥 돌아 세워져 있던 것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방을 둘러보고 있는데 회장이 전화를 걸어왔다고 한다.
“‘어떤가’하고 느낌을 물어 보시는데 솔직히 말씀드렸죠. ‘너무 어지러워서 우선 정리를 좀 해야 되겠습니다’ 했더니 ‘절대 손도 대면 안 된다. 내 나름대로 다 정리해놓고 있는 거라 남이 건드리면 내가 못 찾는다’고 하시더군요.”
기외호는 당시 일화를 통해 “비서라는 업의 본질을 잘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당신 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려 했던 회장의 순수한 성품과 진정성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비서도 상사를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보필할 거 아닌가’ 하는 회장 마음이 강하게 전달됐습니다. 사실 대그룹 재벌 총수가 그렇게까지 자신을 숨김없이 연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요.”
비서실 홍보팀장을 맡았던 배종렬도 회장의 실천을 통해 홍보라는 업의 개념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어느 날 ‘홍보라는 게 뭔지 아나’ 물어 보시더니 ‘일본에 부탁해서 관련 책을 한 10권 보내라 하고, 미국 커뮤니케이션 관련 책도 구해서 다 공부를 하라’고 했습니다. 딱히 뭐라고 이렇다 저렇다 설명이나 지시는 안 하시면서도 ‘업의 개념을 파악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몇 번이나 말했습니다. 회장은 지시만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실천하려 노력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당신이 갖고 있는 뜻과 철학이 맨 아래 직원들에게까지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을지, 또 직원들 뜻을 어떻게 하면 당신 쪽으로 올라오게 할 수 있을지를 늘 고민했으니까요. 그러면서 홍보라는 업의 개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홍보라는 것은 국내외 돌아가는 상황과 전반적인 흐름을 포착해 대외적으로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사 내부적으로는 윗사람의 메시지와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직원들에게는 항상 긍정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홍보다.’”
조직 내 언어를 통일시켜라
앞서 필자는 ‘업의 개념’이란 자신만의 독특한 조어를 만들어내는 이건희 회장의 언어적 상상력’을 언급한 바 있다. 생전에 회장과 가까이 일했던 삼성맨들은 한결같이 “회장은 경청의 달인이었다. 당신 스스로는 말이 없고 눌변에 가까울 정도였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싫어했다”고 전한다.하지만 고인은 언어와 말의 위력을 누구보다도 깊이 알고 통찰한 사람이었다.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자’라는 간단한 구호성 멘트가 상징하듯 사물이나 상황의 본질을 짧은 말로 축약해 사람들 귀와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점에서 탁월한 ‘카피라이터’였다고나 할까. 어떤 면에선 언어를 통일해 구성원들 생각을 결집시키고 의식을 바꾸려 했었다는 점에서 뛰어난 선전선동가였다고도 할 수 있겠다.
고인이 생전에 쓴 글인 ‘말의 위력’(책에서 인용)이란 글을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독창적이고 함축적인 언어 개발과 메시지 발신에 몰두했는지 역력하게 느껴진다.
“나는 평소 임직원들에게 조직 내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가급적 통일시키고 조직의 철학과 가치관이 함축돼있는 독특한 용어를 개발하라고 말해오고 있다. 조직 내 언어인 용어는 경영활동의 실행수단이 될 뿐 아니라 그 조직의 질적 수준을 가늠케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조직 내 용어를 통일하는 것은 개성을 무시하는 획일화와는 다른 차원이다. 용어를 통일하면 이심전심으로 뜻이 통하게 돼 의사소통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줄이고 오해를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조직의 비전과 경영방침에 대한 공감대를 쉽게 형성해 나아갈 수 있다. 내 자신도 신경영을 추진하면서 직원들이 신 경영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와 예화 중심의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느라 고심했다…용어는 시대변화를 리드하고 때로는 한 사회나 조직의 철학을 대변하기도 한다.”
고인의 글에는 항상 예화가 등장하는데 이 글에서는 미국 월트 디즈니사의 사례가 나온다.
“고객 만족의 대명사처럼 인식되는 월트 디즈니에서는 독특한 자신만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종업원들을 (쇼)출연진이라는 뜻인 ‘cast member’라고 칭함으로써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종사하는 직원들에게 회사가 기대하는 바를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고객에 대해서는 집에 초대한 손님이라는 뜻의 ‘Guest’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리고 회사 내 문서작성을 할 때 이 단어가 문장 어디에 위치하든 반드시 대문자 G를 쓰도록 의무화함으로써 고객의 중요성을 조직 내에 확산시켰다. 나는 이 두 가지 용어가 오늘날의 월트 디즈니를 만들어낸 비장의 무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실제로 삼성인들은 신경영 선언 당시 매일 아침 10분씩 회장의 육성이 담긴 TV를 시청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톱 매니지먼트에서부터 말단 사원에 이르기까지 통일된 용어를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용어통일 자체가 신경영의 한 내용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세기말 현상’ ‘질 위주 경영’ ‘복합화’ ‘인프라’ ‘스케일’ ‘메기 이론’ ‘예의범절’ ‘에티켓’ ‘만 명을 먹여 살리는 인재’ 등등 보통 사람들은 한두 개만 들어도 머리가 아찔해질 말들을 삼성에서는 생산 현장에서도 가볍게 쓰게 되었다고 삼성맨들은 전한다.
지난 1월 ‘월간조선’이 공개한 회장의 육성 중 일부다.
“삼성 중역들한테 방정식을 하나 만들어주면 좋겠어. (밖으로) 나가는 목소리는 하나여야 돼.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인프라 등등 분야 합쳐서 틀을 딱 만들어 놓고 얘기할 땐 거기에 자기 회사나 자기 직급에 따라 살을 붙여서 이야기하는 거지. 의사의 경우 해부학과 병리학 같은 기본은 다 같고 소아과나 내과 등등으로 나뉘는 것처럼 기본을 갖고 디테일은 자기가 만드는 거야. 임원이라는 사람들이 맨날 그저 ‘밤잠 안자고 열심히 했습니다’라고 해서야 남들이 이해가 되냐고. 혼자 알면 소용없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야지.”
#이건희 #선전선동가 #업의개념 #경제사상가 #신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