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호

비흡연 폐암 환자 90%가 여성인 이유

[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 이야기]

  • 난임전문의 조정현

    입력2022-08-0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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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은 남성보다 요도 길이가 짧아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소변이 더 자주 마렵다. [Gettyimage]

    여성은 남성보다 요도 길이가 짧아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소변이 더 자주 마렵다. [Gettyimage]

    요즘 젊은이들은 남녀유별(男女有別)이라는 말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농담이라도 남자와 여자가 분별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간 혐오스러운 꼰대로 내몰리기 일쑤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남녀의 일을 구분하는 것에 극구 반대하는 분위기다. 소방관, 군인, 경찰, 외과의사 등 과거 남성 전유 직업이던 영역에 여성들이 당당히 진출해 맹활약하고 있다. 오히려 남성 역차별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남녀가 유별하지 않다는 것에 대해 생식의학자이자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다면, 생식 세계와 뇌 관점에서만큼은 남녀가 유별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질병 예방과 치료, 생리학적 관점에서 남녀가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흡연만 해도 그렇다. 여성은 남성보다 폐가 작고, 노폐물을 분해하는 자정력이 약하고, 폐포(폐 꼭대기 부분의 작은 주머니)의 변성이 빨라서 남성과 같은 양의 담배를 피워도 더 해롭다. 또 여성의 몸은 남성보다 지방이 더 많아서 담배의 독성물질(지용성)이 더 잘 녹고 축적된다. ‘비흡연 폐암’의 90%가 여성인 것도 이 때문이다.

    임신을 기다리는 여성의 흡연은 더더욱 타격이 크다. 소중한 아기를 열 달간 품어야 할 집(자궁)을 연탄가스로 가득 채우는 꼴이다. 실제로 여성 흡연자의 자궁 외 임신 확률이 비흡연자보다 2.2배나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태어나는 아기가 호흡기 질환에 걸릴 위험도 크다고 한다.

    여성과 술·담배

    코로나19 여파로 많이 줄긴 했지만 회식에서 폭탄주 마시기는 빼놓을 수 없는 문화다. 사람마다 알코올 분해 능력이 다른데 남녀는 그 차이가 극명하다. 성인 남성의 그것이 하루 소주 반병(알코올 50g)이라면, 여성은 남성의 절반 정도에 그친다. 따라서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여성의 혈중알코올농도가 더 높고 간에 미치는 해로움도 더 크다. 코로나19 이후 ‘집콕 음주’가 늘고 있다는데, 여성이 소량의 알코올이라도 지속적으로 마시고 담배까지 피운다면 산소 결핍 현상 때문에 여성의 신체 조직과 세포는 더욱 빠른 속도로 망가질 수 있다. 무엇보다 생식세포(난자)의 노화를 부추긴다.



    여성이 과음하면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빈뇨(배뇨 횟수가 하루 8회 이상) 증상이다. 여성은 남성과 똑같은 양의 맥주를 마셔도 훨씬 더 자주 소변이 마렵다. 여성의 요도 길이(평균 4cm)가 남성(평균 15~20cm)보다 짧기 때문만이 아니다. 방광 용량이 더 적어서 그렇다. 게다가 요즘 여성들은 커피를 보리차 마시듯 하다 보니 배뇨 횟수가 하루 10회 이상으로 늘 수밖에 없다.

    커피는 빈뇨를 부추긴다. 커피뿐 아니라 모든 카페인은 방광에 직접적 자극을 줄 뿐 아니라 이뇨를 촉진한다. 특히 맵거나 신 음식을 좋아하고, 탄산음료까지 즐겨 마신다면 방광은 자극을 받아 잦은 요의를 느낄 수밖에 없다.

    보통 ‘비뇨기과’ 하면 남성이 찾는 곳으로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비뇨기 계통 질환의 발병 확률이 현저히 높다. 2013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면 소변을 조금씩 지리는 요실금 환자 10만3000명 중 남성이 4.4%, 여성이 95.6%에 달했다.

    빈뇨를 일으키는 ‘과민성 방광’이라는 병이 있다. 여성에게 흔한 질병이다. 스스로 참으려는 의지와 상관없이 방광 근육이 저절로 수축해 급하게 소변을 자주 보는 증상이다. 이때 절박뇨(갑자기 증상이 일어남), 야간뇨(수면 중에 2차례 이상 소변 보기), 실금(조금씩 소변을 봄) 등이 함께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증상은 자율신경계의 지속적 자극과 방광 근육을 수축시키는 여러 인자에 의해 일어난다. 따라서 자율신경계를 안정시키고 빈뇨를 일으킬 수 있는 인자들을 줄여주는 것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단, 임신부의 빈뇨는 정상적 현상이다. 여성의 자궁 앞에 방광이 있는데, 태아가 자라면 자궁도 함께 커져 방광을 압박하게 된다. 방광이 자궁에 눌리면 소변 저장 용량이 줄어들어 자주 요의를 느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임신 기간 내내 분비되는 황체호르몬(프로게스테론)에 의해 평활근이 이완돼 이뇨작용을 한다. 특히 자궁이 골반 안에 있는 임신 초기와 태아의 머리가 골반 안쪽으로 내려오면서 방광을 누르는 임신 후기에 빈뇨증상이 심해진다. 그래서 임신부에게는 긴 회의시간이 부담되고, 장시간 운전(화장실 이용이 불가한)이 곤혹스럽다.

    생리적 차이 배려 필요

    최근 남녀의 중요한 생물학적 차이를 세포와 뇌에서 엿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뇌 쪽부터 살펴보면 감정에 관련된 신경회로가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발달해 있다는 것이다. 남성에 비해 여성은 세로토닌(행복호르몬)과 도파민(즐거움) 수송체가 뇌에 많고, 오피오이드(Opioid·몸 안에 있는 천연 마취제)도 뇌의 편도체와 시상하부 등에서 신경세포와 훨씬 많이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뇌 자체만 놓고 봐도 남성은 감정 기복이 심하고 외향적인 반면, 여성은 외부의 모진 풍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식을 키워낼 수 있도록 최적화돼있다고 볼 수 있다. 남편이 수렵에 주력하고 아내가 육아와 집안 살림을 도맡았던 것이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의 시초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남녀의 전통적 역할 분담은 생물학적 관점으로 봤을 때 가정 내에서 적재적소(適材適所)에 배치한 거였다.

    기왕 짚고 넘어가는 김에 한 가지 더 귀띔하면, 여성은 매달 생리를 필연적으로 해야 한다. 생산기(생리하는) 여성 5명 중에 3명은 생리통을 경험한다. 골반 내 질환이 전혀 없어도 생리 시작 직전부터 생리 후 28~72시간 동안 하복부 통증이 나타날 수 있다. 생리통이 심할 경우 맹장염에 걸린 것처럼 복통이 심해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한다. 생리휴가를 내서 쉬고 싶지만 계획 생리가 될 수 없어 막상 생리가 시작되면 휴가를 낼 상황이 못 돼 진통제를 과다 복용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여성이 남성과 다른 것 중 하나가 생리가 가까워지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는 것이다. 환자 중에 대기업에 다니는 상냥하고 싹싹한 A씨가 있었다. 그런 그녀도 월경이 다가오면 신경질적인 성격으로 변해 주변 사람을 힘들게 했다고 한다. 생크림 케이크나 크래커로 점심을 때우지만 저녁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폭식과 폭음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이 모든 증상이 월경 전 증후군(PMD)이다.

    PMD는 배란 이후 프로게스테론이라는 호르몬 대사물질에 의해 일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몸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곳이 뇌의 바닥에 있는 편도(아믹달라)다. 이곳에 GABA라는 아미노산이 붙어서 안정과 평온을 찾게 되는데, 배란 이후 분비되는 프로게스테론의 대사물질인 ALLO가 GABA가 붙어야 할 자리에 먼저 붙어 PMD가 일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직업에서 점점 성역(性域)이 사라지고 있다. 필자의 바람이 있다면 다양한 직업전선에서 성차별은 지양(止揚)하되, 여성 직장인에게만큼은 처한 상황(임신, 난임 치료 등)을 고려해 배려해 줬으면 한다. 한마디로 여성도 극한 직업 현장에서 땀 흘리며 뛸 수 있지만 생물학적 특징도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여성은 예비 어머니가 아닌가. 분야를 막론하고 여성의 생리적 특징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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