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악산’, 영조16년(1740년)경. 현재 경복고등학교 자리에서 살았던 겸재가 뒷동산이나 마찬가지인 북악산(백악산)을 그렸다.
조선후기의 역사와 문화, 지리와 언어, 가계(家系)와 보학(譜學) 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갖춘 저자는 수많은 자료를 섭렵하고 현장을 일일이 답사하여 250년 전 서울의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찾아냈다.
그래서 겸재가 그린 한양진경의 위치는 물론 지명의 유래와 지형의 풍수, 가옥의 구조, 정원의 조경, 수목의 배치, 화훼의 품종, 주인과 나그네의 마음, 그리고 그 속에서 그들이 일구어갔던 심오한 학문과 아름다운 시서화(詩書畵)까지 마치 눈앞에 실제로 펼쳐져 있는 것처럼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부록으로 현재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만들어서 누구든지 이 책을 들고 현장을 답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친절을 잊지 않았다. 소실되었던 세검정(洗劍亭)이 복원되고 양천향교(陽川鄕校)가 다시 세워질 수 있었던 것도 겸재가 남긴 한양진경과 저자의 이와 같은 학문적 연구가 거둔 성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이 책을 손에 들면, 서울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혔던 북악산(北嶽山, 白岳山)과 인왕산(仁王山) 일대의 명승들은 물론, 혜화문과 동대문을 나가 양수리에서 미사리와 광진을 거치고 송파와 압구정을 지나 다시 양화와 행주에 이르는 한강변의 명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곡유거(仁谷幽居)’, 영조31년(1755년)경. 겸재가 말년을 보낸 인왕산 골짜기 자신의 집을 그린 것이다.
그리하여 자연과 조화할 줄 아는 겸허한 마음으로 서울의 풍광을 아름답게 가꾸었던 선인들의 지혜를 배우고, 나아가 그 속에서 우리를 진정으로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자존의식 아래 독자적인 문화와 예술을 창조한 선인들의 전통을 되돌아볼 수 있다.
땅은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땅은 사람 때문에 소중하다. 그래서 아름다운 땅은 아름다운 사람에 의해서 더욱 아름다워진다. 진경산수화도 마찬가지다. 진경산수화의 핵심은 땅이 아니라 그 땅에 사는 사람과 그 사람의 실존적인 삶에 있다. 진경산수화도 아름다운 사람들에 의해서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겸재의 한양진경’이란 책 한 권으로 250년 만에 다시 이 땅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서울 토박이였던 겸재만큼 서울을 잘 알고 서울을 사랑하며 서울을 잘 그린 사람도 없었지만, 저자만큼 겸재를 사랑하고 겸재의 마음을 잘 알며 겸재 당시 서울의 아름다움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겸재의 한양진경과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의 한양진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