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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난 용들은 왜 불안하고 번민하나

수원 화성, 근대를 향한 열망

개천에서 난 용들은 왜 불안하고 번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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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원은 정조 이전에는 대여섯 가구가 자연에 의탁해 살아가던 들판이었다. 200여 년 전 마련한 토대 위에서 불안이 가득한 21세기의 일상이 건사된다.
개천에서 난 용들은 왜 불안하고 번민하나

수원 화성 창룡문에서 본 연무대 앞 잔디밭.

여기, 작은 마을이 하나 있다. 마을 사람들은 ‘현대’를 살고자 했으나 오랜 습속과 관계에 의해 ‘근대’에 머물러 있다.

사람들은 근면하고 성실해 “지난 20여 년 동안에 수공업자에서 공장주로 탈바꿈한 사람이 더러 있”을 정도로 물질적 만족을 웬만큼 획득했고 저마다의 품성 또한 따사롭고 다정하다. 그들의 “결혼생활은 견실하고 행복”했으며 대개 “교양 있는 척하면서도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살 수 있을 정도는 됐다. 물론 인간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듯이 약간의 실수와 죄악과 뉘우침이 없지는 않으나 오랜 근대적 습속과 관계가 이를 해소하거나 억눌러버리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속 깊은 얘기는 더 깊은 속으로 밀어넣고 익숙한 공동체의 규칙 안에서 살아간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야심이 있으니 자식들만은 이 작은 마을의 “치유할 수 없는 고루함”에서 벗어나서 큰 도시로, 대처로,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서 살기를 바랐다. 그러자면 공부를 잘해야 했다. 공부만이 살길이었다. 아쉽게도 이 마을의 소년들은 하나같이 부모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낙제를 거듭한 끝에 겨우 졸업하는 수준”이었다. 이 작은 마을에서는 그야말로 “이 좁은 세계 너머로 눈을 돌리거나 영향을 끼칠 만한 사람”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오직 한 소년만이 여느 평범한 아이들과 눈빛조차 달랐다. 소년이 얼마나 남다른지는 “다른 아이들 틈에 끼여 돌아다니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해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진지한 눈망울과 영리해 보이는 이마, 그리고 단정한 걸음걸이”를 가진 소년은 한 집안의 기대를 넘어 마을 전체의 열망을 일찌감치 짊어지게 됐다. 명석한 두뇌를 가졌음에도 겸손하게 행동했으며 가족과 친구와 마을 사람들을 늘 정중하게 대했고 고전 그리스 서사시에서 중세의 신학과 현존의 철학까지 몰입했던 이 소년에게 마을 전체가 기대를 걸었다.



헤르만 헤세의 자전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 이야기다. 총명하고 기품 있는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는 독일 남부 지역에서 성장한 헤세의 성장기와 일치한다.

개천에서 난 용들은 왜 불안하고 번민하나

건릉.

넘쳐나던 개천龍 신화

그런데 여기까지 읽고 나서 ‘혹시 이거, 내 얘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실은 그 때문에 ‘수레바퀴 아래서’로 이 글을 시작한 것이다.

요즘이야 서울이나 부산, 광주 같은 대도시에서 나고 자라고 그 대도시가 강렬하게 요구하는 일그러진 교육 열기에 편승하지 않으면 원하는 대학 입학을 꿈꾸지도 못할 지경이 됐지만, 20세기 중엽 이후 수십 년 동안 그래도 한국 사회에서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신화가 곳곳에서 작성된 바 있다.

내 가까운 사람 중에도 그러한 이력을 지닌 이가 적지 않다. 전남 목포, 전북 부안, 경북 영주, 경남 함안, 제주 서귀포, 강원 인제 등지에서 그야말로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 말이다.

방금 목포, 영주, 인제 이렇게 큰 도시 지명을 적었지만 내 아는 사람들은 그런 도시조차 중고교 때나 구경해봤을 뿐이고, 나고 자라기는 목포에서도 연락선을 타고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외딴섬이거나 영주나 인제에서도 깊고 높은 산속으로 한참 들어가야 하는 궁벽한 산촌 출신이다. 아침 일찍 산골짜기 마을에서 걷고 또 걸어 면소재지 버스 정류장에 가서 하루에 한 대밖에 오지 않는 시골 버스를 타고 영주나 인제로 나가서 그곳 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의 고명한 대학교에 입학 원서를 내러 가던 소년들, 그들이 이제는 마흔이 넘고 쉰이 넘어 한국 사회의 중추로 일한다. 흔들리는 고속버스나 새벽기차를 타고 홀로 대도시로 나와 이를 악물고 공부한, 개천에서 용이 된 사람들 말이다.

그들이 그렇게 아침 일찍 마을을 나설 때, 가족은 물론이고 더러는 마을 사람들까지 송별의 길에 나섰다. 약국댁 큰아들이 서울로 간다 해 나오고, 윗마을 어른 둘째 손자가 부산에 좋은 대학 입학하러 간다 해 나오고, 여자애가 공부가 다 뭐냐며 낡은 참고서를 불태울 때 담장 너머로 혀를 차며 구경하던 사람들도 서울의 최고 좋은 여자대학에 공부하러 떠나는 달밝골 큰 여식을 송별하러 나온다. 이런 풍경이 저 산업화 시절에는 결코 드물지 않았다. 그렇게 입신양명의 큰 꿈을 품고 대도시로 나선 사람들은 가족의 꿈이었고 마을의 자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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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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