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핀란드는 주어진 환경의 열악함을 딛고 일어서 세계 최상급의 국가경쟁력을 일궈냈다.
그렇지만 스웨덴과 러시아라는 두 강대세력 사이, 북극권에 가까워 농업조건이 불리하고 아름다운 호수와 삼림 이외엔 특별한 부존자원도 없는 땅에 자리잡은 핀란드인의 삶이 처음부터 그렇게 순조롭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그들은 우리 민족 못잖게 많은 역경을 극복해야 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전쟁 초기 나치 독일과 연합했던 대가로 소련에 카렐리야의 절반을 빼앗기고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지불해야 했으며 따라서 1970년대까지도 국민의 일부가 간호사 등 일자리를 찾아 취업이민을 떠나는 사례가 없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핀란드는 드디어 산업화된 복지국가로 변신해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지만, 1990년대 초 소련의 갑작스런 붕괴 여파로 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실업률이 20% 이상 치솟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았고, 수년에 걸쳐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1995년 당시 핀란드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가 넘고 국가경쟁력은 18위였으나, 국가경쟁력은 비록 26위로 그들보다 낮지만 세계 13위의 경제규모와 높은 성장률로 바짝 추격해오는 한국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우리의 성공비결을 알아내려 대학 총장단이 문교부 장관 인솔 아래 한국을 방문하는가 하면 그때까지 애써 이룩해놓은 복지국가체제를 대폭 수정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로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후 몇 년 사이 핀란드는 다시 한번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활용하는 데 성공해 세계 1등국 수준으로 발돋움했다. 사회주의의 이상을 혁명 없이 의회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리의 성실한 수용을 통해 달성한 것이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우리는 마치 국민소득 1만달러의 덫에 걸리기라도 한 듯 10년 넘게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1999년 38위로 떨어졌다 2003년 25위로 겨우 회복한 국가경쟁력 순위나마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핀란드인의 불굴의 정신
그렇다면 핀란드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그 해답을 찾는 일은 우리와 별 관계도 없는 듯한 먼 나라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무엇인가 배울 것을 제공하는 상대를 연구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지금 우리에게 학문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유익할 뿐 아니라 절대 필요한 일이다. 이제부터 핀란드인의 사고방식과 일처리 방식을 한국인의 그것과 비교 관찰해볼 기회를 가졌던 상식인의 견지에서 핀란드의 발전경로를 살펴보기로 하자.

핀란드 사람들은 흔히 자기들의 정체성을 S자로 시작하는 3개의 낱말, 즉 시수, 사우나, 시벨리우스(Sisu, Sauna, Sibelius)로 표현한다. 그 중에서 길고 음산한 겨울을 지내는데 필수적인 사우나나 핀란드인의 애국정서를 가장 잘 담아낸 시벨리우스의 음악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우리에게도 생소하지 않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시수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시수는 핀란드 국민 특유의 불굴의 정신을 말하는 것으로, 순탄치 않은 역사를 거치면서 단련된 외유내강의 기질, 무쇠와도 같은 정직과 강건함이라 할 수 있다.
언어와 종족으로 보아 핀란드인의 조상은 바이킹족이나 동슬라브족과 확연히 구분되는 원시적 산림족이었다. 그러나 13세기경부터 핀란드는 스웨덴의 행정체제 속으로 흡수됐고, 19세기초 러시아제국내 핀란드공국으로 그 지위가 바뀌기 전까지 약 600년간 스웨덴의 일부였다. 언어와 종족이 다른 스웨덴인의 지배구조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변경지대의 이민족으로 차별을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을 뜻했다. 오늘날에도 정치적·문화적으로 핀란드와 가장 가까운 나라는 스웨덴이지만 운동경기에서 결코 져서는 안 되는 상대로 인식되는 것 또한 스웨덴인 것은 이런 역사적 관계가 남긴 정서적 유산이다.